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84)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84화(84/199)
언더독의 반란 (4)
* * *
사고(事故).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사건.
드라마나 영화, 하다못해 다큐멘터리를 찍다가도 더러 일어나는 것이 촬영현장의 사고다.
보통 이런 사고는 배우와 스탭들이 똘똘 뭉쳐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단속한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자체가 현장 통제의 미숙을 증명할 뿐더러, 사고 뉴스가 시청률에 호재로 작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품 속 배우가 온몸을 던져 그 사고를 막아냈다면,
심지어 휘말린 이들이 모두 주연이라면?
[‘백정장군’ 촬영 현장 화재 사고··· 주연을 구한 또 다른 주연] [아찔했던 현장, 그 중심엔 ‘박건’이 있었다] [또다시 대두된 허술한 안전관리··· 사고 원인은 지나치게 빨리 뿌린 물줄기] [실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던 5분, 박건은 어떻게 동료를 구했나] [로만의 ‘구원투수’ 맹활약··· 전인우 PD “그저 배우들에게 감사할 뿐”]이렇게 전방위적인 보도가 퍼져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무려 S급 여배우가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더 큰 일을 겪을 수도 있었다.
현장에서 찍힌 사고 영상의 풀버전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스탭이 흘린 정보만으로도 당시 급박함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낙하하는 나무토막 밑에서 동료를 구해 낸 배우.
영화가 따로 없는 스토리에, ‘백정장군’을 모르는 사람들마저 몰려와 댓글창을 불태웠다.
-요즘 드라마판 현장 수준 ㄷㄷ
└(FACT)심지어 제작비 500억이라고 함
└└500억이 아니라 400억
-아니 저거 거의 죽을 뻔한 거잖아; 스케일 큰 드라마에서 말이 되냐 이게
└방송쟁이들 원래 그럼 ㅋㅋ 영상미 뽑는답시고 배우 갈아넣다가 사고내지
└└안전장치도 안 깔고 세트장에 불을 지르는 걸 그냥 받아준다고?
└└└원래 백하니 노빠꾸임
-그 와중 박건은 ㅋㅋㅋㅋ 이젠 하다하다 사람까지 구하네
└미담으로 부족하다… 그저 [전설]이다…
└└관계자 피셜 들었는데 떨어진 게 서까래였다고 함; 그것도 통으로 된 나무토막
└└맞았으면 최소 골절상이었겠네
└└└그것도 팔다리 얘기지; 몸이나 머리에 떨어졌으면….
└└└└로만이고 CVN이고, 백하니까지 박건한테 삼보일배해도 모자랄 듯
-이시간 하이페리온 배우들 : 어리둥절
*
그 주, ‘백정장군’ 방영일.
주말에도 불이 켜진 홍보팀에, 모처럼 최필립이 방문했다.
“어, 필립 씨!”
“오랜만요. 공 팀장님 계실 줄 알고 왔지.”
친분 있는 공 팀장은 반가이 맞지만, 다른 직원들은 쭈뼛쭈뼛하게 고개만 숙인다.
최필립 자체가 격 없이 대하기 어려운 캐릭터일 뿐더러, 탑 배우와 직원 사이엔 벽이 높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박건 형제나, 홍보팀 간식을 책임지는 진지유가 예외인 것이다.
“안녕하세요.”
“예, 수고들 하십니다.”
홍보팀 사람들과 데면데면한 인사를 나눈 최필립이 공 팀장에게 씩 웃었다.
“엄청 바빴죠? 밖이 시끌시끌하던데.”
“말도 마요. 기자들 연락에 방송국 관계자들 전화까지 쏟아져서,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래도 덕분에 한 주간 화제성은 달달하게 먹었잖아요. 다친 사람 없고, 박건 씨는 명예 소방관이 됐고, 하이페리온 찌꺼기들 찍어 누를 일만 남았으니 잘 된 거지.”
듣던 공 팀장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다친 사람이라······.”
“왜요, 설마 백하니 걔 드러누웠어요? 이딴 인간들이랑 같이 일 못 하겠다면서?”
백하니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법한 의심이다. 실제로, 불과 몇 년 전에도 감독과의 불화로 보이콧까지 간 적이 있었다.
“아뇨, 멀쩡히 잘 찍는다는 것 같더라고요. 현장 분위기야 박 배우가 있으니 걱정 없고.”
최필립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사람은 치트키지. 기사 보고 연락하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습니다, 하는데··· 진짜 무슨 슈퍼맨인 줄.”
“그나저나, 필립 씨는 웬일이에요?”
“대표님 만나러 왔다가 시간이 좀 남아서. 온 김에 모니터링 좀 하러 왔죠.”
“음? 필립 씨 영화 편집본을요?”
“그건 거기 편집기사랑 감독이 할 일이고. 지금은 백정장군 볼 건데요?”
이번엔 공 팀장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남의 작품엔 소속사 배우든, 친한 연예인이든 관심 없기로 소문난 최필립 아닌가.
아무리 시간이 맞아도 ‘백정장군’을 직접 본다는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여러분, 수고하십니다! 커피랑 간식 좀 드시고들 하십쇼!”
그때, 열린 문으로 최필립의 로드매니저가 커다란 봉지를 들고 등장한다.
이건 다른 사람들 캐릭터 아니었나? 얼떨떨한 시선들 속에서, 최필립이 어깨를 으쓱했다.
“요즘 이게 회사 유행이래서.”
*
예술의 꽃은 다양성이라고 했던가.
같은 수백억짜리 대작일지라도 셀링 포인트는 천차만별이다.
작가의 시나리오와 감독의 특성마다 호흡도, 전략도 다르다.
이를테면 ‘하이페리온’은 1화 초반부터 승부수를 끊임없이 던진다.
시작하자마자 수영복을 입은 21세기 하렘 왕국이 나오고, 자극적인 배드씬과 청소부를 폭행하는 재벌 3세들이 줄을 잇는다.
병서한은 비열할지언정 엄연히 능력 좋은 감독이다. 갑질과 멸시, 욕망과 분노 등 선명한 감정들을 휘몰아쳐 시청자를 빨아들인다.
반면 ‘백정장군’은 기본적으로 호흡이 긴, 캐릭터의 빌드업이 임팩트를 키우는 작품이다.
당연히 이천인··· 백정탈을 뒤집어쓴 주인공이 날뛰는 순간부터 시청률도 달리기 시작한다.
―자네, 혹시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백정탈 말이야!
경성에 소문이 돈다.
직접적인 ‘척결’ 대상이 된 일본인들이나 고위 관료뿐만이 아니다.
삯일을 하고 짚신을 파는, 조선인들마저 저잣거리에서 이야기하는 화제는 하나다.
썩어 가던 이 거리에,
왜인(倭人)들의 악몽이 나타났다고.
―아니, 난 처음 봤어. 글쎄 만물상 밤거리에서 왜경 둘을 고깃덩이처럼 썰었다니까!
‘백정탈’을 처음 본 사람은 양장점 조 서방이었다. 그 말 많은 사내는 뺨에 난 사마귀까지 벌게져서 괴한의 인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가면! 탈놀이패들이 쓰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어. 불빛에 드러난 생김새가 어찌나 해괴하던지, 아직까지 눈앞에 선명해.
―어떻게 생겼는데?
―눈은 화등잔을 켠 것처럼 부리부리하고, 뺨과 입은 흉신처럼 일그러졌어. 대나무 패랭이에 흰 두루마기를 입었더랬지.
―백정탈이네! 그거 백정탈 아닌가!
―분명 조선인이야. 조선인 독립운동가가 탈놀이패를 흉내내며 왜놈들을 죽이고 다니는 걸세!
듣던 자들이 손뼉을 치자 조 서방은 황급히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붙인다.
―쉿, 누가 들으면 자네들도 잡혀가. 지금 종로경찰서에서 총검을 든 순사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온다지 않나.
―백정탈을 잡으려고?
―그럼! 내 듣기론, 체포고 뭐고 없이 총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구먼.
―몹쓸 놈들··· 가만, 그럼 왜놈들이 더 난리를 칠 게 아닌가? 더 납작 엎드려야겠어.
본 16부작, 수정 후 20부작이 된 영도은 작가의 시나리오는 제작진 사이에서 오히려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평을 들었다.
거기에 일본어 대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주조연과 단역들, 인기 작가와 대작 전문 PD의 조합은 매 씬마다 짜릿한 영상미를 선사한다.
―괜찮소? 그렇게 아래만 보다간 넘어지오.
―아, 당신은 그, 서양에서 사업을 크게 성공해 돌아왔다는······.
―이천인이오. 머지않아 경성 모두가 내 이름을 알게 될 사내기도 하지.
복수를 다짐하며 서방으로 건너갔다가, 성공한 화포상이 되어 돌아온 이천인의 이중생활도 극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요소다.
본디 시대극이란 복수귀의 칼춤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개화기의 문법에 따르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대사와 복색들에, 함께 등장하는 배우들의 열연은 보는 이를 감탄시키기 충분하다.
“뭐야, 조현아가 총독부 딸 역할이었어요?”
앞에 없으니 당연히 선배 호칭은 생략된다. 최필립의 말에 공 팀장이 답한다.
“필립 씨는 몰랐겠구나. 그래서 한창 기사도 뿌렸었잖아요. 조현아 대 백하니, 원조 얼음공주랑 겨울여왕의 신구 대결이라고.”
최필립은 팔에 돋은 소름을 마구 문질렀다.
“어우, 오그라들어. 저런 거 띄우려면 진짜 대패가 한 트럭은 있어야겠다.”
혹독한 평과는 별개로, 극 속에서는 두 여배우가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친다.
‘경성모던’이라는 당대 최고의 인기 살롱.
그곳에서 송별학의 손녀 송이설과 정무총감의 셋째딸 하루카, 그리고 ‘백정탈’ 이천인은 서로 다른 욕망으로 엮이고 이끌린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요?
―글쎄. 은원이 아니면 금세 잊는 터라.
―잠깐만요, 이 공(公)!
―그렇게 부르지 마시오. 나는 그렇게 높은 신분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송이설이 무언가를 깨닫고 붙잡지만, 이천인은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렇게 극은 거칠게 약동하는 시대, 청춘들의 불꽃을 한껏 불태우며 회차의 막을 내렸다.
“본방이 훨씬 재밌네, 1화랑 2화는 유튜브로만 봐서 좀 아쉬웠는데.”
“그치, 형? 이게 훨씬 재밌다니까.”
매니저와 함께, 홍보실 한쪽을 차지하고 모니터링을 마친 최필립이 중얼거렸다.
방영 내내 데스크탑에 스마트폰, 사무실 전화까지 문어처럼 붙잡고 일하던 공기형 팀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두 분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나 본데요, 오늘 시청률 보니까.”
“그럴 만 하죠. 몇 퍼센트예요?”
“우리 쪽 최고시청률이 19.2%. 잠깐이지만 동시시청률로는 하이페리온도 잡았어요.”
최필립이 휘파람을 불었다.
“오, 저력의 KBC. 이번 주에도 못 재낄 줄은 몰랐네.”
듣고 있던 로드매니저가 끼어들어 물었다.
“그럼 저쪽은요? 하이페리온 쪽은 최고시청률이 몇이래요?”
“21.5%, 병서한이도 극 후반부에서 터뜨리는 솜씨가 만만찮아요.”
얼핏 따라잡기 부담스러워 보이는 수치지만··· 공 팀장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시작 이후, 전체적인 시청자 이탈 지표를 봤을 때는 이쪽이 우위인 탓이다.
“우리 팀장님, 또 엄살 부리신다. 딱 봐도 다다음 주쯤엔 문한빈 목 따겠구만.”
“어허, 그런 말 홍보실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 잘 될 것도 부정 탄다니까?”
“알았으니까 내 영화나 잘 챙겨 줘요. 나까지 백하니 꼴 되면 진짜 회사 나갈 거야.”
전쟁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잠실 한강변,
리버뷰가 보이는 최고급 복합주상아파트.
혼자 살기엔 지나치게 넓은 고층의 거실에, ‘백정장군’이 재방영되고 있다.
―나는 백정탈이다.
―가라. 가서 놈들에게 전해라.
―일제의 악몽이, 지금 경성에 돌아왔노라고.
85인치 벽걸이 TV, 거실 좌우의 블루투스 스피커는 실감 넘치는 감상을 제공한다.
팟, 리모콘을 누르자 일본인 순사에게 추상같은 호령을 내리던 백정탈이 꺼졌다.
저장해 둔 1화 후반부를 또다시 재생하며, 백하니는 안마의자에 발을 올렸다.
―반갑소, 나는 서방에서 방금 돌아온 이천인이라고 하오······.
이천인―박건의 음성이 넓은 집 안을 이리저리 부딪치며 돌아다닌다.
성공한 여배우의 집답게, 가전제품과 가구들은 하나같이 명품들로 깔려 있다.
거실에 구축한 홈시어터, 방마다 설치해 둔 빔 프로젝터, 빌트인 형태의 세탁기와 냉장고마저도 시장 최고가들이다.
위이이잉―
독특한 점이라면 러그 위를 미끄러지는 로봇 청소기, 그리고 AI를 장착한 최신형 캣봇(로봇 고양이)이 몇 대씩 있다는 것이다.
캣봇 한 대가 안마의자 팔걸이로 올라오자 백하니는 손을 뻗어 머리를 쓸었다.
···이 집에 진짜 반려동물은 없다. 거실 저편의 수족관도 열대어들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투사한 LED 벽면일 뿐이다.
“내일 알람, 6시에 맞춰 줘.”
-예, 그럴게요.
툭 던진 말에 스마트폰의 인공지능이 반응해 대답한다. 세운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며, 백하니는 생각한다.
며칠 전의 촬영현장,
동료가 그녀를 감싸 안던 짧은 찰나를.
‘···무슨 구닥다리 로코도 아니고.’
촬영 중 소품이 낙하하고, 함께 연기 중인 상대 배우가 자신을 구한다라······.
뻔하다 못해 헛웃음이 날 로맨스 스토리다. 이런 씬이 있는 시나리오를 받았으면 읽은 순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엉터리 영화에 강제로 끌려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것도 몇 명인지 모를 여주인공들 중 하나로.
―다친 곳은 없습니까?
자꾸만 귓가를 맴도는, 건조하고 무덤덤한 목소리도 침착을 잃게 만드는 주범이다.
그녀는 눈치가 빠르다. 인간의 행동엔 반드시 목적이 있고, 이 바닥 사람들은 목적성을 숨긴 언행의 대가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본인의 안위는 제쳐 두고 타인에게 달려드는, 저 맹목적인 이타(利他)를 해석할 수 없어서.
“진지유, 그 여우가 뭘 뜯어먹으려고 계속 들러붙나 했는데······.”
이 역시 착오였다. 흰 이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소속사 라이벌의 짬밥도 십수 년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드라마 특출과 시상식 참석, SNS 라방까지 지원사격을 나섰을 리가 없다.
“내일 알람, 5시로 다시 맞춰 줘.”
이제 몇 시간 뒤면 또다시 촬영장에 가고, 얼굴을 마주보며 합을 맞춰야 한다.
자신을 연기하는 것은 익숙하다. 가짜 감정을 내세워 스스로를 숨기는 행위도.
그러나 속이지 않아도 되는 이 앞에서 거짓된 ‘백하니’를 연기하기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닌 것이다.
봉착한 위기는 그뿐만이 아니다. ‘백정장군’의 후반부, 극의 끝부분에 있는 씬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키스 씬이 최소 한 차례에··· 극의 흐름에 따라 추가될 여지가 있다고 했던가?
그 와중,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묻는다.
눈치없는놈 : [몸은 좀 괜찮습니까?]
눈치없는놈 : [스탭들이 많이 걱정하더군요.]
눈치없는놈 : [피곤하면 쉬십시오, 내일 보죠.]
여전히 무릎을 감싼 채로, 여배우는 고개를 젖혔다. 거실로 내려뜨려 둔 무드등 때문일까. 오늘따라 조명을 받은 뺨이 붉다.
“···괜히 짜증나네,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