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warrior turns into a million-dollar actor RAW novel - Chapter (86)
전직 용사는 천만배우-86화(86/199)
파리의 쇼 스틸러 (1)
* * *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로만 엔터테인먼트.
막 수뇌부의 회의가 끝났다. 펼쳐진 서류를 긁어모아 옆구리에 낀 본부장이 나갔다.
이내 대표실 문이 굳게 닫혔다. 지금부터는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 서 비서가 다른 불청객은 절대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다.
노중만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슬슬 오겠군.”
21:00,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는 약속한 시각에 늦는 법이 없었다.
그가 노트북의 영상통화를 켜자, 화면에 이쪽과 비슷한 집무실 풍경이 떠올랐다.
서재를 배경으로 책상 앞에 앉은 미팅 상대는 C&J 콘텐츠사업본부장, 진규일이다.
“안녕하십니까.”
“예, 본부장님도 무탈하셨습니까.”
두 사람 모두 바쁜데다, 지금은 긴밀하고 산발적인 협조가 필요한 단계다. 그래서 여태까지의 미팅은 주로 웹캠으로 이뤄져 왔다.
회의 주제는 시작하자마자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쭉 질러 이어진다.
CVN의 자체 OTT 플랫폼 ‘시빙(CE-VING)’의 브랜드화부터, 출범 시기와 백정장군의 글로벌 판권, 선공개 여부 등등.
주요 안건들이 얼추 지나간 뒤, 진규일 본부장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곧 출국이겠군요.”
“예, 오늘 밤일 겁니다.”
“혼자 보내셔도 괜찮겠습니까? 지금이라도 팀을 따라 띄울 수 있습니다.”
배우를 소속사 대표보다 더 생각하는 동맹의 수장에게, 노중만은 빙긋 웃었다.
“본부장님도 영상을 보셨을 텐데요.”
백하니를 구한 촬영영상 얘기다. 화면 건너의 진규일도 픽 웃고 말았다.
“괜한 얘길 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친구인데요.”
“이해합니다. 워낙 흉흉한 시국이니까.”
말 그대로, 요즘의 ‘하이페리온’ 및 KBC-DG-조이너스 삼각편대 쪽 분위기는 흉흉하다.
화제의 첫방을 시작으로 쭉쭉 성장하던 시청률 그래프도 정체됐고, 그 사이 ‘백정장군’은 턱 밑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몇몇 시간대에서는 시청률까지 따라잡힌 상황 아니던가?
연기하는 배우들은 몰라도, 그 뒤에 있는 자들은 더욱 필사적으로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어제, 박 배우가 잠시 회사를 들렀습니다. 아마 자기가 자리를 비웠을 때 움직일 거라고, 본부장님 쪽도 미리 대비해 두라더군요.”
“본인이 없을 때라······.”
진규일의 눈매도 가늘어진다.
‘박건은 배우로 위장한 국정원 요원이다’, 이제 대부분의 팬이 저 밈을 사실처럼 밀고 있었다.
예전 ‘서울의 개’ 때부터 보여 줬던 신체능력이었으나, 논(Non) 와이어 스턴트는 물론이고 이번 사고까지 막으며 더욱 위상이 올라갔다.
노중만이 말을 이었다.
“백정장군 촬영 직후, 미행이 몇 번 붙었다고 말했었습니다. 따라가 잡진 않았지만 아마 DG 쪽 파파라치일 것 같았다고요. 본인이 사라졌으니 더 과감하게 따라붙을 겁니다.”
“지금이 낚아올릴 적기겠군요.”
“같은 생각입니다.”
한쪽은 재계, 다른 한쪽은 엔터테인먼트계 출신이지만 선수들끼리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
고개를 끄덕이던 진규일 본부장이 물었다.
“아, 그나저나··· 이번 패션위크는 단순 참석입니까? 쇼에 잠깐만 비춰져도 추후 글로벌 팬들에게 어필하기 좋을 텐데요.”
“설마요. 외신에서 병풍이나 서려고 현장을 비울 배우는 아니죠.”
태연한 대꾸에, 이 역시 예상했다는 듯 진규일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수 년··· 불과 사오 년 전만 하더라도 전속 앰배서더들이 런웨이에 서던 때도 있었다. K팝이 빌보드 차트를 접수하고 한류 셀럽들이 글로벌 명품 모델을 꿰차던 시절이었다.
“한국인 모델들도 몇몇 런웨이에 서는 걸로 아는데, 꽤 놀랄 겁니다.”
“그 친구가 갑자기 올라와서요?”
유행은 돌고 돌며, 시대는 흘러간다. 이번 파리의 쇼는 주춤하던 K-컬쳐의 재침공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아니, 배우인지 모델인지 헷갈릴 테니까.”
시작은, 하이패션의 본산인 파리부터다.
*
비행은 썩 쾌적했다.
모기업의 명성에 걸맞게, 심수진 본부장은 소속사 편으로 퍼스트클래스 티켓을 보내 왔다.
직항이었지만 CDG(샤를드골국제공항)까지는 무려 열두 시간이 걸렸고, 그 동안 건은 기내식을 먹고 드라마 몇 편을 내리 보았다.
박선이 챙겨 준 아이패드로 OTT 플랫폼을 쭉 훑자 볼 만한 것들이 꽤 많았다.
그 중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학폭 피해자의 대리폭행 서비스가 흥미로웠는데, 역시 OTT답게 선정성과 잔인함이 TV와는 급이 달랐다.
‘그나저나, 비행기는 오랜만에 타는군.’
군 시절엔 상공에서 떨어지는 작전보다는 수상 침투를 주로 했고··· 그 전에는 해외를 가 본 적 자체가 없었다.
‘형, 배낭여행 다녀올래? 요즘 유럽도 코스만 잘 짜면 비용도 얼마 안 나온대.’
‘아냐, 그냥 혼자 다녀와.’
이십 대 초반이었던가? 대학에 들어간 뒤, 박선이 방학 때마다 해외로 나가자고 졸랐지만 거절했었다.
바쁘다, 피곤하다, 할 게 많다는 핑계를 대다가 결국 그 국내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
그리고 자원한 것이 군대, 거기서 또 끌려간 것이 다른 차원의 철왕국이었고.
‘여행을 가긴 갔어. 너무 멀리 다녀와서 그렇지.’
파리로 출발한 것은 새벽녘이었다.
밤샘촬영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자, 늦은 시간임에도 출국 소식을 들은 팬들과 기자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의도치 않게 ‘공항패션’을 찍히고, 탑승 전 소규모 포토타임도 가진 다음, 비행기로 올라오니 메신저가 반짝거렸다.
박선 : [진짜 가고 싶었는데 ㅠ.ㅠ]
박선 : [그래도 시킨 거 잘 하고 있을게]
박선 : [파리도 다 부숴 버리고 와(빠샤)]
한 시간 전 부여에서 헤어진 동생의 톡 위로, 이번에는 동료의 실시간 메시지가 들어온다.
진지유 : [슬슬 도착했겠다]
진지유 : [맞네, 현장 기사 올라오네]
진지유 : [오늘도 잘 입었네요! 조심해서 다녀오고··· 변휘승 씨는 조심해요]
진지유 : [현지 모델들이랑 스캔들 나면 홍보팀이 막기도 어려우니까]
진지유 : [(땀을 흘리는 여우 이모티콘)]
“새벽 네 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안 잤나?”
동료의 스캔들에 수상하리만치 관심이 많은 여배우를 뒤로 하고, 짧은 잠에서 깨어나자 드골 공항이었다.
입국심사를 끝마친 건은 캐리어를 끌고 공항 입구로 걸어나갔다.
마중을 나오기로 한 인간은 굳이 그가 찾을 필요도 없었다.
“여, 자르마니 킹! 지상파를 씹어먹는 노중만의 비밀병기, 코리안 고드!”
“···다시 귀국해도 됩니까?”
“안 되지. 런웨이엔 서야 할 거 아냐.”
손을 휘휘 흔들던 변휘승이 씩 웃었다.
그는 현수막 대신 태극기가 그려진 괴상한 발마칸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심지어 자체제작이 아닌 디자이너 브랜드로 보였다.
“박건 배우, 파리의 첫인상은 어떻습니까?”
“이번에 자르마니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되셨는데, 연예계 활동 후 처음으로 하시는 해외 활동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이번 패션위크에 참석하는 한류스타가 역대급으로 적어서인지, 공항은 한적했다.
카메라를 멘 국내 언론사의 기자는 두 명뿐이었고 변휘승의 뒤쪽에서 기다리던 현지 거주 팬들만 꺅꺅거리면서 사진을 찍어 댔다.
간단한 인터뷰를 마친 뒤, 변휘승이 능숙하게 현장을 정리했다.
“그럼 우린 갑니다. 기자분들, 기사 좀 잘 띄워 주십쇼. 박 배우 없는 동안에도 드라마 시청률 팍팍 올려야 되니까.”
“아이고, 물론입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쇼.”
“그럼 저희는 먼저 현장으로 가 있겠습니다, 당일날 기대하겠습니다!”
공항 앞에는 예약한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타자마자 변휘승은 외투를 벗어던졌다.
“두 번은 못 입겠네, 국위선양도 힘들어.”
“그냥 안 하시면 되잖습니까.”
“야, 지금 이미지 최고인 너한테 붙어야 기사라도 좋게 나가지. 이럴 때 입으려고 비싼 돈 주고 사 놓은 거야.”
건은 연예인 선배 겸 단기 가이드의 오류를 지적해 주었다.
“기자분들은 제 사진만 찍어 가셨는데요.”
변휘승은 기껏 당첨된 로또를 잃어버린 표정이 되었다.
“아, 조졌네.”
그 동안은 어떻게 지냈냐, ‘회도팀’ 종방연 끝나고 처음 보는 것 아니냐, 대략적인 근황 토크가 끝나자 본론이 나왔다.
“그래서, 이번엔 뭐야?”
“뭐가요?”
“아직 오피셜 안 띄웠잖아. 이번에 앰배서더로 오는 게 그냥 구경이냐고, 아니면 진짜 자르마니 쇼에 서는 거냐고.”
“구경만 할 거였으면 안 왔죠.”
건이 대꾸하자 변휘승은 호들갑스럽게 놀라는 척을 했다.
패션위크 때문에 몇 주 전부터 도착해 있었다더니, 전보다 텐션이 확실히 높다.
‘아니, 그보다는······.’
오래된 수심··· 번뇌가 사라진 쪽에 가깝다. 못 본 사이 눈 밑의 다크서클도 희미해졌고, 쑥 들어갔던 뺨도 보기 좋게 살이 붙었다.
유심히 보고 있자 변휘승이 이상한 눈빛으로 자기 턱을 만졌다.
“왜, 뭐 묻었냐?”
“아뇨. 바쁜데 흔쾌히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놀러왔는데 바쁘긴. 놀던 친구들 중에 모델 출신이 많아서 패션위크 시즌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야.”
“놀던 친구요?”
“어, 인맥도 한번씩 점검할 겸. 아니면 내가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길 오냐.”
그가 아는 변휘승으로 미뤄 볼 때, 저 ‘친구’란 십중팔구 전에 만난 여자들일 터였다.
변휘승은 민첩하게 자판을 두드려 어딘가에 연락하더니 물었다.
“패션위크는 이미 시작했고, 자르마니 쇼는 내일이야. 며칠이나 있다가 간댔지?”
“끝나고 바로 돌아갑니다. 귀국하는 비행기표도 심 본부장님이 예매해 주셔서요.”
“그치, 끝나고 바로··· 뭐?”
파리고 런던이고, 느긋하게 패션위크를 즐길 여유는 없다.
다른 일정이 잡힌 것도 아니라, 바로 ‘백정장군’ 촬영장으로 복귀한다고 하자 변휘승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그럼 관광은? 파리엔 처음 왔다면서?”
“거긴 관심 없습니다. 일하러 온 건데요.”
“아니, 진짜로 그놈의 쇼에만 섰다가 또 촬영하러 간다는 게 말이··· 되지. 그치, 박건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실제로 박선이 짜 준 일정표엔 공항 도착 이후, 분 단위의 계획들이 꽉 차 있었다.
적힌 스케줄을 훑던 건이 물었다.
“선배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숙소에만 데려다 주시고 일 보셔도 됩니다.”
“아니지, 명색이 4대 패션위크인데 온갖 셀럽들이 돌아다닐 거 아냐. 이 기회에 미래의 한류스타도 여기저기 소개해 줘야지.”
“한류스타까지는 좀.”
“이번에 들어간 드라마, CVN이 런칭하는 OTT로도 송출한다며. 글로벌 팬들은 어쩌고, 또 헐리우드론 진출 안 할 거야?”
저렇게 말하면 반론할 도리가 없다.
몇 마디로 말문을 막아 버린 변휘승은 음흉한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너무 걱정 마. 내가 아는 인간들은 다 널 보고 싶다고 난리였거든.”
“절 말입니까?”
“당연하지. 그러니까 내일 기대해 봐.”
*
파리패션위크.
전 세계에서 열리는 패션위크 중 가장 권위 있는 4대 패션위크가 뉴욕-런던-밀라노-파리라면, 파리는 그 넷 중에서도 단연 톱을 달린다.
이번에 개최되는 프레타포르테는 F/W 컬렉션으로, 수십 개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한데 모여 별들의 잔치를 벌인다.
“잭, 이번에 자르마니가 새 앰배서더를 데려왔다면서?”
“들었어. 심지어 쇼에 올린다던데, 대체 누구야? 그것도 런웨이 첫 순서를 준다는 소리가 있어.”
“한국 배우. JMRY 내부 임원 픽이라더군.”
대형 패션위크들은 행사가 진행되는 기본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첫날의 백스테이지, 쇼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거대한 공간에 소문이 돈다.
눈 밑과 뺨의 특수분장을 지우던 네덜란드 출신 남자 모델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국? 거기다가 배우라고? 정신이 나갔군.”
먼저 한 명이 운을 떼자, 나머지 모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몇 마디씩 거든다.
“언제 적 한류야? 그것도 파리에서.”
“지난번 런던에서도 영 폼이 안 좋더니, 이젠 아예 땅으로 꺼지려는 모양이지.”
“모델도 아닌 일반인을 쇼에 세운다고? 더는 셀러브러티 장사가 안 먹힐 텐데.”
이들 중 대부분은 내일 쇼에도 서는 탑 모델들이다. 당연히 모델로서의 프라이드 역시 업계 내 누구보다 강하다.
실제로, 한때 글로벌 앰배서더들이 런웨이에 심심찮게 서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내부의 불만과 외부의 질책, 준비되지 않은 스타들이 쇼를 망친다는 지적 때문에 서서히 사라지던 이벤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저들 사이에서도 보수적인, 역사와 전통의 브랜드가 전속계약 셀럽을 쇼에 세운다?
누구의 결정인지는 몰라도··· 기획한 이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키 큰 흑인 모델이 중얼거렸다.
“그 높은 콧대에 망신살이 뻗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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