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erver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195
나 혼자 프리서버 195화
195
말쑥한 차림의 한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레벨 업을 하고 경지에 오르면 오를수록 피부는 맑아졌고 외모는 어려졌다.
과거에는 멀쩡했던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었지만, 지금은 깨끗해졌다. 어려서부터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어 왔으니 외모라면 누구에게도 꿀리지는 않았다.
깔끔한 정장과 액세서리들을 착용하자 재벌 집 아들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잘생겼네요.”
“잘 모르겠는데.”
“저와 잘 어울리는데요?”
백연하가 팔짱을 꼈다.
백연하의 미모야 두말할 필요 없었다.
오히려 너무 예뻐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그녀다. 어려서부터 말이다.
한 쌍의 남녀가 거울 앞에 선다.
촤륵! 촤르르륵!
어디서 냄새를 맡은 건지 기자들이 어느새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이소희의 얼굴도 보였다.
저 여자는 언제 대전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걸까.
누군가가 외쳤다.
“결혼 축하드려요!”
“엥?”
“정말 축하드려요!”
짝짝짝짝!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어디서 말이 새어 나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얼렁뚱땅 결정되는 것이란 말인가?
백연하가 웃으면서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와아! 마녀가 웃었다!”
“저렇게 웃으니까 사람이 달라 보이네.”
“그렇게 바뀌었으니까 사령관님과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아, 저기.”
“이곳은 대한백화점 의류점입니다. 백연하 헌터와 나경철 사령관이 상견례를 위하여 의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건 아닌데.”
“맞잖아요?”
“그냥 소개만 하는 자리 아니었나?”
“저와 결혼할 거죠?”
“뭐, 그게 그렇기는 한데.”
“그럼 하는 거죠.”
아주 단호한 백연하의 논리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결혼이라는 것이 내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상관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전부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하아. 나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백연하의 손에 이끌린다.
이제는 가벼운 선물을 하나 마련할 모양이다.
고급 시계 코너였다. 백연하의 아버지인 백강철 회장은 시계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한다. 사치스럽다면 사치스러울 수도 있지만, 백강철 회장의 지위를 생각하면 소박한 취미라고 할까.
재벌 회장 중에서는 슈퍼카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확실히 이 정도면 소박한 취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상품이네요.”
“시계를 받고 좋아하실까?”
“그럼요. 제 아버진 제가 잘 알아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그럼 갈까요?”
우리는 백화점에서 나갔다.
뒤를 보니 하나의 군단이 쫓아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무질서한 패잔병들 같았지만 말이다.
드디어 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마치 꿈을 꾼 느낌이었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친 말쑥한 모습의 남자가 보인다.
“이렇게 잘 생겼는데, 왜 숨기고 다니셨나요?”
“딱히 숨긴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현실로 나와도 항상 이렇게 다니실 수는 없겠죠?”
“군복이 더 편한 것 같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온다.
어째 군복이 더 정이 간다. 사병들이 입는 군복과는 차원이 다른 재질이다. 장성급부터는 말이다.
차량은 어느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었고 그곳에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다.
“고급 음식점이에요.”
“이런 산속에 음식점이 있다니. 서울 맞지?”
“북한산 자락이죠.”
차에서 내리자 백연하가 내 옷매무새를 만져 주었다.
그야말로 자동이라고 할까.
내 가방도 들어 주었다. 간편하게 지갑과 몇 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는 가방이다.
“그럼 가죠.”
“뭐, 그러자.”
긴장할 이유는 없다.
백연하의 아버지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래 봤자 일개 기업의 회장이 아닌가.
정자에 이르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님. 작은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백강철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백연하 아버지와 만났다.
***
여자 친구의 아버지.
어쩌면 미래의 장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
백연하의 미모가 누구로부터 물려받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잘생긴 노인이다.
많은 나이임에도 인물이 훤칠하다.
“나이가 꽤 많지요?”
“백 회장님이야 워낙 유명한 분이시니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그렇습니까? 쿨럭!”
백 회장은 기침을 하더니 갑자기 각혈을 쏟았다.
꽤나 당황스러운 일이다.
“음, 폐암 4기입니다.”
“폐암 4기라…….”
“작년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도 오래 버텼습니다. 하이브리드 신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도 치료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불가능하다더군요. 워낙에 전이가 많이 되어서 말입니다.”
백연하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보니 백연하가 결혼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었을 거라 생각해 보니 그녀의 행동들이 이해가 됐다.
백연하는 내 마음을 읽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폐암 말기 환자라고 해서 길드장님과 결혼을 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가?”
“당신이 유일하게 제 마음을 움직인 사람이기에 결혼을 결심한 거죠.”
“아직 우리는 이제 사귀기 시작하지 않았나?”
“그래도 결혼을 약속하기는 했잖아요.”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백연하의 아버지는 곧 죽을 사람 같았다.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 용할 정도로 말이다.
우선 식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한잔하시겠습니까?”
백강철이 술을 권한다.
나야 마셔도 상관없겠지만 백강철 회장이 술을 마셔도 될지는 모르겠다.
“간은 멀쩡하다더군요.”
“그래도 무리이실 겁니다. 술이라는 것이 인체 곳곳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괜찮습니다. 사위와 마지막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요.”
“그것참.”
단숨에 술을 넘긴다.
여기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상황이 복잡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백강철 회장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젊어서부터 고생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대한그룹을 세웠지요. 하지만 인생무상이더군요. 허허허허!”
그는 술잔을 들었다.
말기 암 환자가 술을 마셔도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것도 설마 기술의 발달인 걸까.
“드워프들이 있으니 신약이 개발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나노로봇으로도 치료가 가능할 테니까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건 저희 드워프 물산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술은 그만 드시지요. 나노로봇을 만들어 수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수도 잘 발달되어 있고 신약과 결합하면 실시간으로 치료하고 수술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현대의학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지요.”
“으음.”
백강철은 침음을 흘렸다.
이미 생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희망을 주어도 될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희망마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였으니까.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미련은 버렸습니다. 물론 방법이 있다면 치료는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우르카 족장을 호출하기로 하였다.
백강철은 말기 암 판정을 받고도 1년이나 생존했다. 지금까지 암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드워프들과 상의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끈을 놓지 마시죠.”
“제 나이가 어느덧 70입니다.”
“결혼이 꽤 늦으셨군요.”
“결혼은 20대 초반에 했지요. 한데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연하가 생겼습니다.”
“그렇군요.”
“그 이후에는 후계자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해서 연하가 뒤를 이어 주었으면 했습니다. 요즘에는 예전과는 세상이 다르지 않습니까.”
“분명히 그렇지요.”
“하지만 연하는 헌터가 되었습니다. 하여 사위에게 그룹을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령관님이어서 다행입니다.”
“저는 사업에 대해 잘 모릅니다.”
“오세근 사장님이 잘 알아서 하시겠지요. 드워프 물산이 어떤 곳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산업의 미래이지요.”
백강철 회장은 술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술을 마시고 싶은 것 같았지만, 치료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 보려는 것이었다.
좋은 현상이다.
백강철이 희망을 놓아 버린다면 나로서도 충격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백연하가 얼마나 큰 실의에 빠질지는 알고도 남을 일이었다.
‘나에게는 백연하가 필요하지.’
이면 세계를 정복하는 문제도 그랬지만 백연하는 다방면에서 뛰어났다. 감정은 그렇다고 치고 말이다.
“치료가 되든 말든 이제는 좀 쉬고 싶습니다. 해서 대한그룹을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사령관님보다 훌륭한 신랑감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고의 신랑감이지요.”
그는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매우 만족해하는 미소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반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청하고 싶습니다.”
백강철 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제 딸을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가능하면 빨리 결혼식을 보고 싶습니다. 나노로봇이 개발되는 데 꽤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빨리 될 겁니다. 원천 기술만 있다면 드워프들이 발전시키겠죠.”
“원천 기술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카 족장이 호출을 받고 왔다.
그는 백강철 회장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다 죽어가는 노인이로군요.”
“맞아. 다 죽어가는 분이지. 살릴 수 있겠나?”
“불가능합니다. 드워프는 신이 아니거든요.”
우르카 족장은 남아 있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드워프가 술을 좋아하는 것이야 누구나 알고 있었다.
“나노로봇의 원천 기술이 있다면?”
“나노로봇이 뭡니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로봇을 말하는 거지. 마이크로 로봇은 들어 봤겠지?”
“들어 보기는 했습니다.”
“먼지보다 작은 입자 수준의 로봇을 만들어 수술을 하는 거지. 성수와 포션 등이 있으니 치료를 하면서 말이야.”
“암세포를 도려내는 겁니까?”
“태워 죽이는 거지.”
우르카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일단 설계도를 봐야겠습니다.”
백연하는 근처에 서 있던 총괄이사를 불렀다.
이미 회사는 백연하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서도 작성되었고 승계 작업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백강철이 죽으면 자동으로 백연하가 승계를 받지만, 딸이 결혼하면 사위의 이름으로 승계될 것이다.
그러니 지시를 받은 총괄이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번에 개발 중인 나노로봇의 설계도를 가져오세요.”
“데이터로 곧바로 전송받아 뽑아 오겠습니다.”
총괄이사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 역시 우르카 족장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도 알았다.
어쩌면 백강철 회장을 살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