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erver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28
나 혼자 프리서버 028화
028
“정말 게임 같은 광경이로군.”
현실을 기반으로 게임을 만들었기에 이런 광경이 펼쳐지는 건지, 게임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그냥 지금과 같은 모습이 게임같이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 중에 묘하게 위압감을 주는 무리가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과거에 좀 놀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거대한 덩치를 가진 남자들이 10명이나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전직 깡패 출신이라고 아주 광고를 하는구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덩치의 남자들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작은형님을 뵙습니다!”
“너희들…….”
“형님,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살아서 만나 뵙게 되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야, 이 새끼들아! 지금이 어떤 때인데 이딴 식으로 입고 오냐? 주변을 둘러봐라. 우리가 어디 놀러 가냐?”
“형님! 우리는 건달입니다. 건달이 건달다워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세상이 바뀌기 전이지.”
한진수까지 검은 양복을 입고 나왔다.
지들 나름대로는 길드 창단을 한다고 해서 멋을 부린 모양인데, 헌터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킥킥댔다.
위압감이야 충분했지만, 그들에게서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즉, 이들이 헌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병신들이 쇼를 하고 있네.”
“허접들 모임인가 봐. 지금이 어느 때인데 검은 양복에 각을 잡고 있어?”
“저러다가 떼죽음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나는 머리를 짚었다.
아직도 옛 부하들은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입고 가면 다 뒈진다. 최소한 방어구 정도는 걸치고 와야 하는 거 아니냐?”
“형님, 봐주시죠. 그래도 옛날 분위기를 좀 내려고 한 모양인데요.”
길드 창단과 동시에 어제 파묻어 두었던 오우거 사체부터 처리하게 될 것인데, 이대로 갔다 가는 코볼트 한 마리에도 몰살을 당할 것이다.
이 업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불쌍한 놈들은 멋을 한껏 부렸다. 3년 동안이나 함께 굴러 왔던 오세근마저도 말이다.
“잘 들어라. 길드 창단은 조직 결성이 아니다.”
“그래도 길드의 색깔은 분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길드의 색깔?”
한진수의 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있었다.
한진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작은형님의 잠재력이 추후 지존으로 군림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길드가 옛 조직처럼 체계를 잡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누구도 뭐라고 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으음.”
한진수의 말은 논리 정연했다.
무슨 짓을 하든, 힘이 있으면 정당해지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었다. 놈의 말대로 옛 조직처럼 체계를 잡아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었다.
“그건 나와 너희들이 성장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조직의 은어로 말해 줄까? 나는 지금 막 조직에 들어온 꼬마이고, 너희들은 그 꼬마를 따르는 좆밥들이다. 알겠냐?”
“…….”
“하지만 뭐, 너희들 마음도 이해는 한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멋을 부리고 싶은 마음도 이해해. 다만 오늘뿐이다. 그리고 필드로 진입을 하게 되면 모두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물론입니다, 작은형님.”
“어쨌든 반갑다, 이 새끼들아. 뒈지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반갑습니다, 작은형님!”
“호칭은 형님으로 통일하자. 차라리 길드장이라고 하든지.”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앞으로는 큰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후유.”
반가운 건 반가운 것이고, 옛 조직 출신들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씩 바꿔 나가면 되지, 뭐.’
초보자 마을에 진풍경이 펼쳐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헌터들을 쫓는 기자들에게 요즘 가장 핫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나경철일 것이다.
며칠 만에 레벨 36을 찍는 기염을 토하였고 A급 수배자와 겨루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갖추었다.
그런 나경철이 옛 조직원들을 모아 길드를 결성한다고 하니 기자들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 틈에는 이소희 기자와 카메라맨 이창기도 섞여 있었다.
“와아, 정말이었네.”
“조직 결성식을 한다는 이야기요?”
“그건 아니고, 길드 창단식이잖아. 조직 결성은 불법이고 길드 창단은 합법이지. 엄연히 달라.”
“저건 딱 봐도 조직 결성으로 보이는데…….”
마을 광장에서 그들은 길드를 창단한다며 모여 있었지만, 하는 짓는 꼭 조직 결성이나 다름없었다.
거대한 잔에는 술이 반쯤 채워져 있었고 그 12명의 남자들은 칼로 손바닥을 그어 피를 섞고 있었다.
나경철만 일어나 있었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각 조직원들에게 돌아가며 술잔을 채웠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아 들었다. 마치 왕이 신하에게 어주를 하사할 때처럼 공손하고 경건해 보인다.
“예전에는 조직을 저런 식으로 만들었나 봅니다.”
“조직 결성은 다 다르지. 저건 저들만의 문화일 거야. 그나저나 찍고 있지?”
“당연하지요.”
이소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경철은 길드 창단식을 하고 있었고 그에 맞는 멘트를 쳐야 한다.
여기까지 멘트를 마쳤다.
창단식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중이다.
나경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과거를 청산했다. 어떻게 보면 강제로 청산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후회는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양지로 나오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우리는 최강의 길드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하여 길드의 이름을 ‘지존 길드’로 명명한다. 너희들은 길드를 이루는 주축이 될 것이니 앞으로 수련을 게을리하지 마라.”
“예, 큰형님!”
“그리고 최소한 조직의 냄새를 다 빼낼 것이다. 우리는 조직이 아닌 길드이니까.”
“예!”
“일어나라. 첫 행보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첫 행보는 무엇입니까?”
“뭐기는? 오우거 사체처리다.”
“푸하하하하!”
“길드의 첫 행보가 사체처리래. 저게 말이냐, 막걸리냐?”
여기저기에서 웃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세 좋게 길드를 창단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직 B급 헌터도 채 되지 못한 길드장이 하이에나를 조직하여 작업장으로 나간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소희도 과연 이 길드가 언제까지 갈까 싶기도 했다.
아니, 애초에 이걸 길드라고 할 수나 있는 걸까.
이소희가 멍하게 그들을 쳐다보고 있자 이창기가 다급하게 말했다.
“선배, 멘트.”
“컷! 수고하셨습니다.”
“하아, 그러니까 길드가 일반인들을 모은 하이에나 조직이라는 거지.”
“그런 것 같네요.”
“도대체 나경철 씨는 무슨 생각인 거지?”
이소희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나경철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꺼내서 확인을 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면 본격적으로 헌터들을 모아도 됐을 텐데, 하는 일이 겨우 하이에나 조직을 재정비한 것이었으니까.
길드 창단식을 마쳤다.
나는 별로 많지도 않은 돈을 쪼개어 길드원들의 초보 장비를 맞춰 주었다.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조악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막상 필드에 나갈 때는 이 장비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세근아, 가서 트럭 빌려 와라.”
“알겠습니다.”
12명이나 되는 인원이 승용차를 타고 갈 수는 없었다.
오세근이 차량을 렌트하러 간 사이였다.
웅성웅성.
광장 중앙이 홍해처럼 쫙 갈라지더니 허리까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여자가 걸어왔다.
황금빛 갑주로 무장하고 있었고 등에는 거대한 대검을 매고 있었다. 군데군데 뚫린 갑주 사이로 비친 새하얀 속살은 남자들의 음심을 자극하였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된 이상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였다.
그녀는 바로 한국 헌터계의 지존 백연하였다.
***
웅성거림이 멈추었다.
백연하가 쓸데없이 이곳을 찾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녀는 정확하게 내 앞에 섰다.
“제가 말씀드렸죠? 또 만나게 될 거라고.”
“정확하게는 또다시 만나게 될 예감이 든다고 말했었지요.”
“…….”
백연하는 내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그야말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 앞에서 벌거벗겨진 기분이라고 할까.
예전에도 느낀 것이었지만 그녀를 보면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건들었다가 영혼까지 탈탈 털릴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지존이 가진 힘일 것이다.
백연하는 자신이 가진 힘을 굳이 갈무리하지 않았다. 지존이었기에 그럴 이유도 없었으며 그런다고 해서 괜한 시비에 휘말리지도 않았다.
하기야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수많은 남자들이 러브콜을 보낼 것이다. 그걸 한 방에 해결할 목적으로 오히려 힘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제안을 하죠.”
“제안이요? 해 보시오. 제안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
“레이터 길드 밑으로 들어오세요.”
“……!”
웅성웅성.
주변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레이터 길드는 아무 길드에게나 합병 제안을 하지 않는다.
일단 합병이 되면 내 지위는 간부부터 시작하게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정도로 레이터 길드에서 몸이 달아올랐다는 말이다.
그들의 정보력이라면 정부에서 나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백연하가 말을 이었다.
“짐작하셨겠지만, 길드 백부장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쓰지요. 지금 당신이 결성한 길드의 길드원들은…….”
백연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썼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길에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들은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사체처리반에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죠.”
이번에는 길드원들이 나를 바라봤다.
길드를 창단하자마자 흡수될 위기에 처했다. 길드 합병을 제안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백연하였으니 당연히 내가 흔들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후후후.”
나는 낮게 웃고 말았다.
분명 레이터 길드의 정보력은 칭찬해 줄 만하다. 나와 군이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접촉 사실만 알았지 내용까지 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레이터 길드가 아무리 대단해도 국가라는 거대 집단을 모두 상대하지는 못할 테니까.
정부에서는 나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주었다. 그 안에 S급을 달성하면 수많은 혜택을 주겠노라 계약까지 했다.
더불어 그때가 되면 고위 헌터들도 영입 제의를 받아 길드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터 길드에 들어갈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거절하겠소.”
“흐응…….”
백연하는 예의 그 이상한 침음을 흘렸다.
당황했다기보다는 흥미로운 장난감을 쳐다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백연하가 위아래로 나를 쓱 훑어본다.
살짝 입맛까지 다시는 것을 보니 확실히 정상은 아닌 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