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특별한 이유 (20)
“그건 뭐야?”
“부모님이 보내주신 선물이요.”
“선물? 오늘 무슨 날이야?”
침대 헤드에 비딱한 자세로 기대어 시큰둥한 목소리로 묻다가, 불현듯 상체를 일으켰다.
두 눈에 당혹이 묻어났다.
“…혹시 진짜 무슨 날이야?”
그 질문에 도현은 잠시 고민했다. 아무런 날도 아니었지만, 놀라는 모습을 보니 순순히 대답해 준다는 선택지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도현이 대답 없이 서 있자, 정희성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혹시… 생일이야?”
그 목소리가 너무 조심스러워서 도현은 문득 웃음이 났다.
그게 실수였는지, 정희성의 얼굴이 펴지며 이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너 생일 아니지? 꼬맹이가 이제 형을 놀려 먹으려고 드네. 어?”
그의 말에 도현이 배시시 웃었다.
기가 차다는 듯이 도현을 보던 정희성이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들겼다. 도현이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꾸물꾸물 기어 올라가, 그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근데 선물은 갑자기 왜?”
“원래 종종 보내주세요.”
쯧.
정희성이 혀를 찼다.
“그럴 거면 찾아오기나 하지.”
정희성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선물을 노려보았다.
도현이 웃자, 뭐가 좋다고 벨 없이 웃냐며 도현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하지 마요. 엉망이 되잖아요.”
진짜로 싫어서 하는 말보다는 엄살과 투정에 가까웠다. 정희성도 그걸 아는지 도현의 머리를 더욱 꾹꾹 누르며 장난쳤다. 그 손길이 거칠지 않고 다정했다.
한참을 유치하게 투닥거리다가 지친 두 사람이 침대 헤드에 늘어졌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정희성이 감탄사를 뱉었다.
“꼬맹아. 그러고 보니 너 생일이 언제냐?”
“제 생일이요?”
“그럼 너지. 누구겠어?”
말을 내뱉은 정희성은, 자신이 누군가의 생일을 궁금해한 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제 생일을 물어본 게 처음인 아이가 어색히 말했다.
“9월 10일이에요.”
“…이미 지났네.”
정희성이 애써 태연히 답하자, 그 심정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말갛게 되물었다.
“형은요?”
“나는 몰라.”
“모른다고요?”
“응. 서류상 생일은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런데 꼬맹아.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거 있어?”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서요?”
“그건 내 생일이고. 네 생일은 다르지.”
도현이 조금 뚱한 표정으로 정희성을 보았다. 그러자 그 표정은 뭐냐면서 정희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도현이 평소보다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생일은 이미 지났잖아요.”
“왜, 내년도 있잖아.”
정희성의 말에 도현이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내년이 있었죠, 아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표정을 파악하기 위해 정희성이 고개를 내릴 찰나.
고개를 들어 올린 도현이 그를 보고 웃었다.
“형 말이 맞아요.”
반짝이는 두 눈이, 옅은 생기가 도는 뺨이, 한없는 애정이 담긴 표정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정희성은 심장이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기실 도현을 만난 후로, 그는 종종 그러한 감각을 느꼈다.
표현할 길 없는 감정이었다.
도현이 부모님의 팔을 붙잡고 조르는 아이처럼, 마냥 말간 표정으로 갖고 싶은 것을 얘기했다.
갖고 싶은 걸 떠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고민해야만 했다.
정희성은 갈색 눈동자에 부드러운 온기를 띠고 도현이 떠올릴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다 도현이 간신히 한 가지를 말하면 숨길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나는 투로.
“다른 건 더 없어?”
그리 물었다.
그 애정 어린 물음이 너무 좋아서 하릴없이 머리를 쥐어 짜내던 도현은.
한참을 신나서 늘어놓다가, 이내 의심스럽게 그를 보았다.
“말한 거 다 사줄 거예요?”
“아니?”
“…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돌아온 대꾸에 도현이 황망한 낯으로 정희성을 보았다.
정희성은 태연했다.
“사주려고 했는데, 너무 많아서 안 되겠다.”
“…형!”
놀림 받았다는 생각에 도현이 억울한 표정으로 목소릴 높였다. 그런 도현에 정희성은 짐짓 장난스레 웃으며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 * *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멎질 않았다. 심장이 빠듯하게 아팠다. 그게 기쁨 탓인지 슬픔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통인지 행복인지조차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런 도현에 당황한 건 아이들이었다.
“놀래서 그래? 미안해!”
“도리토스! 미치지 마! 정신 차려!”
할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도현의 주위를 빙빙 돌았고 니콜라스가 도현의 어깨를 잡고 짤짤 흔들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져 고개를 드니, 아픈 표정으로 도현의 얼굴을 닦아주는 엄마가 보였다.
모든 소리가 멀어졌다.
* * *
“…이걸 어쩐다?”
정희성이 자신의 앞에 쌓인 택배를 보았다. 두 눈에는 곤혹이 가득했다.
“왜 시켜서는….”
크고 작은 택배 상자에 든 건, 도현이 갖고 싶다고 말했던 것들이었다.
단 하나도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도 주문해서 상당히 양이 많았다.
‘주면 좋아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곧바로 떨쳐냈다.
그는 떠날 이였다.
꼬맹이의 곁에 오래도록 있어줄 수가 없었다.
정희성은 스스로를 향해 경고하듯이,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가 잊지 않도록 몇 번이고, 다시.
꼬맹이가 선물을 부여잡고 우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조차도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흔적은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도현이 살아가야 하는 건 그가 없는 미래일 테니, 과거의 흔적 따위는 꼬맹이의 발목을 붙잡는 거추장스러운 짐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정희성이 미적지근하게 웃었다.
* * *
“도리야, 괜찮아.”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진이었다.
진이 무언가 알고 말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사무치도록 위안이 되어 다가왔다.
받은 게 너무 많은데 돌려줄 방법은 없다. 그게 도현을 늘 서럽게 했다. 해결할 수 없는 슬픔은, 발버둥 칠수록 깊이 빠져드는 늪이었다.
“괜찮아.”
그러나 깊은 늪으로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있어서.
그래서 도현은 늪에 잠겨 질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서서히 주변의 소리가 돌아오고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졌다.
“너무….”
잔뜩 쉰 목소리였다. 도현이 멈칫하다가 큼, 목을 풀었다.
“너무 놀랐나 봐요.”
이제야 평소의 목소리와 비슷해진 것 같았다. 도현이 누군가 건네준 휴지로 눈을 닦았다.
눈물이 멈췄다.
그대로 손에 얼굴을 묻고 몇 번 숨을 쉰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운 탓에 발개진 눈가로, 환하게 웃었다.
“생일 파티는 상상도 못 해서, 그래서 놀랐나 봐요. 이제 괜찮아요.”
눈물을 그치고 웃는 도현에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낯을 했다.
특히, 부모님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때였다.
“그 정도로 감동한 거야?”
어깨를 쫙 편 니콜라스가 뿌듯한 표정으로 코를 훔쳤다. 진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니콜라스 덕분에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야. 아무리 놀라도 그렇지. 그렇게 서럽게 우냐?”
그 누구보다 당황했던 맥이 황당하다는 낯으로 핀잔했다.
그러면서도.
‘쟤한테 놀래는 장난은 하지 말아야지’
잊지 않고 주의하는 맥이었다.
확실히, 갑자기 운 도현 때문에 다들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도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아니, 뭐…. 미안할 건 없고.”
맥이 멋쩍은 기색으로 머리카락을 헤집다가, 무언가 불쑥 내밀었다.
“이거나 받아.”
도현이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품 안에 쏙 밀어 넣었다. 현란한 포장지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폭신한 느낌이 들었다.
얼떨결에 선물을 받아 든 도현이 맥을 보는데, 그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어 저마다 도현의 품에 제 선물을 안겨주었다.
도현은 선물을 한가득 들고 멀거니 서 있었다.
두 손 가득한 무게감에 입술을 깨물다가, 이내 눈매를 흐리며 웃었다.
선물은 가지각색이었다.
니콜라스는 그가 간신히 구했다던 쿠키를, 진은 예쁜 양초를, 맥은 푹신하고 보드라운 담요를, 할리는 강아지 인형을, 브라운은 손바닥만 한 작은 게임기를 주었다.
도현은 선물 하나하나 풀어보며 일일이 감탄하고 무척이나 재밌어했다. 선물한 사람이 다 뿌듯할 정도였다.
“엄마 아빠 선물도 있어.”
도현이 서혜나와 이장혁의 손을 보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바닥에 놓인 선물 상자 모두 다 도현이 거야!”
언제나 도현의 예상을 뛰어넘는 부모님이었다.
도현은 단순히 풍선처럼 파티 분위기를 위한 소품이라고 생각했던 선물 상자들이 정말 선물이 든 상자임을 깨달았다.
“너무… 많은데요.”
“많으면 친구들이랑 나눠 가지면 되지.”
도현의 귀가 솔깃했다.
“그래도 돼요?”
서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도현이 거니까 도현이 맘대로 해.”
“감사합니다!”
도현이 기뻐했다. 그 표정에 서혜나와 이장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바닥에 있는 상자들을 풀어 헤쳤다.
저마다 상자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떠들면서 놀다 보니, 바닥은 금방 난장판이 되었지만, 이곳에서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신 게임기야!”
브라운이 게임기가 포장된 팩을 들어 올리며 무척이나 신나 했다. 그러다가 도현과 눈이 마주치고는 멈칫했다.
“어… 이, 이거 쓸 거야?”
두 눈에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도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스! 신난다! 내 거다!”
브라운이 게임기를 껴안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잔뜩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수영 모자다!”
그걸 들고 있는 사람은 니콜라스였다. 도현이 부모님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혹시 이것도…?’
그리고 도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저마다 하나씩 들고선 기뻐하고 있었다. 도현은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아셨던 걸까.’
묘한 기분에, 도현이 뺨을 문질렀다.
그렇게 선물 상자 뜯기 타임이 지나고.
한참 난리를 치니 배가 고파진 아이들이 케이크에 슬그머니 관심을 보였다.
케이크 말고도 다른 음식이 많았으나, 삼단 케이크의 위용에 모두 마음을 빼앗긴 탓이었다.
케이크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던 그들은, 여럿이서 먹으니 잘라 먹는 게 깔끔할 것 같단 이유로 커팅하기로 했다.
도현은 서혜나가 손에 쥐여 준 빵칼을 들고 케이크 앞에 섰다.
위에서부터 자르기 위해 의자에 올라간 채였는데, 의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이장혁이 꼭 붙잡고 있었다.
“예쁘게 잘라야 해!”
진이 신신당부했다. 그 진지한 표정에 도현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조심.
빵칼이 가장 높이 있는 케이크의 가운데 부분을 갈랐다. 다들 숨을 죽였다.
이윽고.
케이크가 완벽하게 반으로 갈렸다.
도현은 긴장을 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예쁘게 케이크를 커팅했다. 어여쁘게 잘린 모습에 진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얘들아! 접시 받아 가!”
이장혁이 말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접시를 받아 들었다.
접시를 들고 케이크 앞으로 가면 서혜나가 원하는 부위의 조각을 덜어서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도현의 접시 위에는 빨간 리본이 있는 부분이 놓였다.
합.
도현이 케이크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설탕을 듬뿍 넣은 케이크 시트가 솜사탕처럼 입 안에서 사르르 흩어졌다.
케이크를 한 조각씩–니콜라스는 두 조각이었다-해치우고 난 후, 그들은 테이블에 늘어진 음식들을 먹으며 파티를 즐겼다.
도현과 이장혁이 사 온 멕시코 요리와 젤리들도 어느새 그사이에 자연스럽게 껴 있었다.
니콜라스와 할리가 젤리 바구니 앞에 서서, 심오한 표정으로 젤리들의 순위를 매기고 있는 게 보였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선 젤리들이 앙증맞았다.
‘이래서 괜찮을 거라고 한 거구나.’
그 말의 진의를 알아차린 도현이었다.
그렇게 잔뜩 먹은 후에는, 브라운이 선점한 최신형 게임기를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다 같이 게임을 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과열되어서 서로에게 쿠션을 던지면서 난리를 치기도 하고.
조금 지치면 다시 바닥에 늘어져 젤리나 쿠키 따위를 씹으며 당을 충전했다.
목이 말라 주변을 둘러보던 도현은 음료수가 모두 동이 났음을 깨달았다. 음료수를 가지러 주방에 가니, 막 구운 마들렌을 꺼내는 서혜나가 보였다.
“도현아, 왜?”
“음료수 가지러 왔어요.”
“음료수가 떨어졌구나.”
냉장고를 연 서혜나가 고개를 들고는 물었다.
“하리토스 남았는데 마실 거니?”
“네, 그걸로 주세요.”
도현이 음료수를 건네받았다. 다시 거실로 가려는데, 서혜나의 목소리가 도현을 잡았다.
“도현아.”
도현이 자신을 불러 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서혜나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서혜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일 파티는 즐겁니?”
“네, 정말 즐거워요.”
머뭇거림 없이 나온 답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서혜나는 무언갈 망설였다.
도현이 차분히 기다리자,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앞으로는….”
서혜나가 말을 잠깐 쉬었다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생일날 늘 함께 있을게.”
다만, 그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 건, 그녀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떨렸던 탓일 것이다.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도망치듯 나온 도현이 아득한 낯으로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아이들과 떠들던 진이 도현이 돌아온 것을 눈치채고는 빨리 이리로 오라며 손짓했다.
진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도현이 그리로 가자, 친구들이 도현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어느새 아이들 사이에 섞여 든 도현이 니콜라스가 한 농담에 웃음을 터트렸다.
– 앞으로는, 생일날 늘 함께 있을게.
‘그렇구나.’
도현이 문득 주방을 돌아보았다.
이제 알 것 같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때도, 지금도.
이 순간들이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상을 받아서도, 생일이어서도 아니었다.
이 순간이 특별한 이유는 함께 기뻐해 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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