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252)
제252화. 선택과 집중 (4)
새디가 그를 이끌고 아이들 무리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들의 미묘한 관계를 몰랐던 새디는 당황한 눈치였다.
주디스가 도현의 눈치를 보았고, 콜린과 브레디는 시선을 피했다.
아.
그런 그들을 태연하게 응시하던 도현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헤레이즈가 없었다.
‘괴짜들’ 멤버만 모이는 것이니 사실 당연한 건데, 왜 헤레이즈가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예상치 못한 빈자리에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옆에 와 있던 게 익숙해졌나 보다.
헤레이즈를 찾는답시고 침묵했더니 분위기가 더 나빠졌다.
“안녕.”
이 이상 어색해지는 걸 바라는 건 아니라 도현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저마다 인사를 해왔다.
좋아, 훌륭히 망했네.
헤레이즈도 없고, 아이들은 저의 눈치를 보며, 곧 루카가 온다. 도현은 오늘이 아주 완벽하게 망했다는 걸 인정했다.
그는 상황을 수습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현은 이런 망한 분위기 속에서도 잘할 자신이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를 일이었으니까.
다행히 아직 루카가 안 왔으니 그사이 분위기를 좀 펴야겠다고 생각하며 도현은 적당한 화젯거리를 찾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대답이 돌아올 거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였다. 도현이 태연하게 말을 더했다.
“나는 최근까지 영화가 개봉한 여파를 실감했어. 친구가 밴드 클럽을 만들고 나한테 들어오라고 권유했거든. 영화 속에 나온 괴짜들이 멋져 보였나 봐. 아, 너희도 밴드부 애들이 밴드에 들어오라고 그러니?”
“어, 나, 나 밴드부에 들어갔어…!”
반가운 화제인지, 숨죽이고 있던 브레디가 반응해왔다. 답지 않게 먼저 길게 말한 보람이 있었다.
“정말? 역시 기타 포지션이지?”
“응! 맞아! 사실 나도 애들이 밴드부에 들어오면 어떻겠냐고 그랬거든… 촤, 촬영할 때 재밌기도 했고! 그래서 들어가기로 했어.”
“나도 권유받았는데!”
콜린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러자 내내 눈치를 보고 있던 주디스가 태클을 걸었다.
“네가? 그 애들 영화 안 본 거 아니야?”
“내가 뭘!”
“네가 할 수 있는 건 코드 세 개가 전부잖아.”
주디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자, 빵 터진 새디가 웃음을 터트렸다. 브레디도 웃긴지 어깨를 떨었다.
“언제 적 얘길 하는 거야? 나도 이제 세 개보단 더 많이 할 줄 알거든?”
그는 퍽 억울해 보였다. 그 반응에 재미가 들린 주디스가 싱글거리며 콜린을 놀렸다.
“아하, 그래서 마지막 공연 때 실수했어?”
“그건….”
“그거 실수였어? 맙소사, 나는 그게 연출인 줄 알았어!”
새디가 흥미로운 투로 외쳤다.
“뭐? 아니야! 연출 맞아!”
“정말? 누구 말이 맞는 거니?”
역시 한창 활기찰 나이라 그런지, 하나둘씩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새디도 초반의 이상한 기류를 완전히 잊었는지 아이들 틈에 녹아들어 투닥대고 있었다. 주디스는 여전히 이쪽을 살피는 것 같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어, 저기! 루카! 여기야!”
콜린이 팔을 크게 휘저었다.
도현은 언젠가 닥칠 상황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몸을 틀었다. 저번에 몇 번 보았던,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환하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도현은 그 모습을 보며 역시 갈색은 낯설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보라색 머리카락이 워낙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서 그런가, 갈색 머리카락을 한 루카는 다른 사람 같았다.
“다들 와 있었네?”
“네가 제일 늦었어.”
“나는 일찍 나왔어! 길이 막혀서 늦었지.”
루카가 아이들과 익숙하게 대화를 나누고는 새디를 보았다. 새디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루카를 보고 있었다.
“안녕? 네가 에이미지?”
“안녕! 나 네가 나온 영화 봤어! 너 진짜 멋있더라. 네가 오늘 온다고 해서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
루카는 특유의 쿨함 덕분에 또래 여자애들한테 호감을 쉽게 얻었다. 진에게 통했던 그 매력은 새디에게도 어필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친해지고 싶어요’라는 걸 얼굴에 딱 붙여놓은 거 같은 표정을 지을 리가 없으니까.
“고마워. 너도 엄청 멋있어. 특히 그 헤어스타일 너랑 잘 어울려.”
“다른 사람들도 다 잘 어울린다고 그러더라! 나는 너무 이 스타일만 해서 이제 좀 벗어나고 싶은데 말이지. 사실 이제 와 다른 스타일을 하면 어색할 거 같기도 해.”
친화력이 좋은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졌다. 나름 위기감을 느낀 듯, 도현을 흘끔거리던 주디스도 이쪽에 신경을 끊고 두 여자아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쩌다 보니 여자애끼리, 남자애끼리 대화하는 구도가 되었다. 도현은 이게 루카가 일부러 의도한 분위기라는 걸 어림짐작했다.
“노는 것도 좋은데, 이제 슬슬 리허설 준비를 시작해야 할걸?”
“노라!”
굵은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노라가 악기가 마련된 무대를 손으로 가리켰다.
“곧 있으면 디에나가 부를 거야. 미리 가 있는 게 어때?”
친절을 가장하고 있지만 묘한 귀찮음이 묻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로 향하는 길에 새디가 소리 죽여 속삭였다.
“노라가 어제 늦게까지 놀아서 오늘 피곤하다고 했거든. 아마 우리가 시끄러워서 치운 걸 거야. 가끔 그럴 때가 있어.”
함께 시트콤을 찍은 시간이 짧지 않은 만큼 정확한 해석이었다. 콜린이 조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조 자체였다며 감탄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조도 그렇잖아. 완전 똑같네!”
콜린이 다시금 감탄했다.
과정이 어찌 되었건, 곧 리허설을 해야 하는 건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주변에 있는 스태프에게 연습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후 제각기 악기를 들었다.
도현은 드럼 의자에 앉아 묘한 회상에 빠져들었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음악 학원도 그만두었고, 방학 다음 날 진에게 끌려가 드럼을 쳤던 게 마지막으로 스틱을 잡은 순간이었다.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스틱을 잡아본 적이 없었는데도 손에 와 닿는 감촉이 아주 익숙했다.
“이렇게 모이니까 기분 이상하다.”
주디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현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모여서 다시 연주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가. 자꾸 묘한 기분이 치고 올라왔다.
“지금 맞춰볼 거지?”
루카가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며 물어왔다. 푸른 눈은 이내 도현에게 닿았고,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도현은 타이밍을 읽어냈다.
양팔을 들어 허공에서 스틱을 부딪쳤다. 정확히 네 번, 스틱의 몸체가 서로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낸 후.
치잉-!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인데도 모든 소리가 딱 맞아떨어졌다. 여름방학 내내 익혔던 것이 몸에 새겨지기라도 한 걸까. 그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연주였다.
루카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마이크 없이 가벼운 허밍만을 얹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촬영 날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다른 아이들도 똑같은 걸 떠올리고 있는지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 차올랐다. 이 순간이 너무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건 도현도 다르지 않았다.
도현은 새삼 이전의 모든 폭풍 같았던 일이 그저 꿈속의 바보짓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그가 모든 걸 망쳤고 이 여름 방학은 최악으로 남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러한 생각을 포함해 모든 게 멍청한 일처럼 느껴져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냥 이렇게 재밌게 연주하면 될 텐데 뭐가 그렇게 복잡했을까. 물론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또다시 멍청하게 굴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타임머신이 발명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생길 리 없었으므로, 도현은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분리해서 보며 혀를 찼다. 그러다 형이 보고 있었다면 ‘개구리 올챙일 적 생각 못 한다더니’라고 말하며 머리를 헤집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디에나 감독이 시트콤에 불러서 다행이다.
다시 한번 괴짜들이 모이는 일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여름 방학 일을 떠올리며 후회와 자책, 온갖 마이너스적인 감정에 적셔져 갓 태어난 메추리처럼 파들파들 떨고 있었겠지. 자기 평가에 꽤 냉정한 도현이었다.
모든 것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 꽤 나쁘지 않은 기억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경험은 새로운 기분을 선사했다. 그러니까 뭐든 전보다는 나아질 것 같다는 막연하고도 무모한 착각 같은 거 말이다.
도현이 가장 앞쪽, 무대의 정중앙에 서 있는 루카를 보았다. 허리께에서 굽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검은 눈동자가 그 뒷모습을 피하지 않고 직시했다.
* * *
촬영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Little Sisters>는 십 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시트콤이었고, 딱 그만큼 정신이 나가 있었다. [Little Sisters>에서 무대 공연 장면은 [Freak!>에서와 완전히 달랐다.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이자 클라이맥스 부분이라 그런지 관중들은 정줄을 놓고 음악을 즐겼다. 뛰어다니는 건 예삿일이요, 테이블에 올라가서 윗옷을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도현은 이날 남의 뱃살을 처음 보았다. 딱히 보고 싶던 건 아니라 반갑진 않은 사실이었다.
그중 가장 압권인 건 마치가 자매들이었다.
조는 잔뜩 신이 나 얼음이 든 양동이를 로리에게 부었고, 매그는 깔깔거리며 테이블 위에 엎어졌으며, 베스는 외계인과 접신하는 춤을 추고 에이미는 무대 위로 뛰쳐 올라왔다.
노래를 부르는 루카의 옆에 서서 엉망진창인 하모니를 넣더니, 도현의 옆에 와서 손바닥으로 드럼을 내리치기도 했다. 도현은 당황하다가도 금방 웃고 말았다.
미쳤다, 미쳤다 하면서도 이내 아이들은 완벽히 적응을 끝내 이성을 놓고 연주했다.
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괴짜 타이틀을 반납해야 해.”
콜린의 감상에 모두가 동의했다.
괴짜는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었다…. 도현은 진심으로 시트콤을 찍다 보면 사람의 정신머리가 좀 맛이 가게 되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딱 그렇게 정신없는 만큼 웃기도 많이 웃었다.
도현은 오늘이 되어서야, 자신이 처음 시트콤을 찍으러 왔던 날, 이들이 얼마나 자제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자, 자. 힘든 건 알겠지만 촬영은 마저 해야지!”
디에나 감독이 손뼉을 치며 하는 말에 브레디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는 놀라 입을 가렸다. 그에 콜린이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재밌기는 재밌는데…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도현이 여전히 기운 넘치는 노라를 다소 질린 눈으로 보았다. 아까 아이들을 쫓아내고 기운을 비축한 덕인지, 노라는 여전히 쌩쌩하다 못해 날아다녔다.
“노라! 그만 웃고! 다시 촬영 들어간다!”
디에나 감독의 외침에 촬영장이 조금 가라앉았다. 레디, 고! 외치는 그 말에 회장 안에 박수 소리가 가득 찼다.
막 무대를 마친 괴짜들 팀이 단상 위에서 내려오자 마치가 자매들이 그 앞에 섰다.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조였다.
“좋은 무대였어.”
한번 눈썹을 들썩인 캐시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로리가 옆에서 ‘리틀 조야…!’ 하는 소리를 내다가 에이미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네 무대도 나쁘지 않았어.”
“뭐? 건방진 꼬마가.”
조가 헛웃음을 쳤다. 두 사람의 손이 이내 서로의 손을 잡고 강하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까불지 마, 꼬마야.”
“누가 까부는지는 결과를 보면 알겠지?”
어느 쪽도 지지 않았다.
이어 한 사람 한 사람,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좋은 경기를 펼친 라이벌에게 보내는 예의였다.
마지막으로, 에이미가 제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 이상한 안경 때문에 나는 네가 배틀 로얄 스플래쉬 스타 시즌 4나 좋아하는 너드인 줄 알았어! 오해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제는 알아! 네가 정말 핫한 애라는 것과 나만큼 뛰어난 드러머라는….”
툭.
그건 정말 실수였다. 조와 투닥거리던 로리가 실수로 팔꿈치를 들었고, 그게 제이의 얼굴을 친 것이다.
“어! 미안하…?”
에이미의 두 눈이 크게 홉떠졌다.
“너… 유진…?”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였다.
“유진? 유진이 누구야?”
이미 에이미의 엑스보이프렌드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로리가 눈치 없이 물었고 조는 흥미진진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팝콘을 우적거렸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 봐, 매그와 베스도 그 양옆에 딱 붙어서 팝콘을 뺏어 먹는 중이었다.
배신감에 가득 찬 에이미가 바들바들 떨었다. 거의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 비스무리하게 맛이 가버린 눈동자에 제이가 히익, 소리를 내며 잔뜩 쫄아붙었다.
“유진…? 너, 너어…!”
“나, 나는 유진이 누군지 몰라!”
“거짓말! 말은 왜 더듬은 건데!”
“으악! 왜 달려드는 거야! 난 진짜 모른다고! 난 제이 로빈이야!”
“웃기지 마! 너 이리 와! 너 나한테 한국으로 간다고 거짓말한 거야? 그런 거야? 야! 와! 안 와? 니가 안 와? 오라고 망할 새끼야!”
제이는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차마 도와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가련하고도 불쌍한 낯으로 그들을 응시했지만, 심장이 철이나 지옥의 불로 된 게 틀림없는 악마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겐 몹시 불행한 일이었다.
“힘.”
저를 구슬려 이곳까지 끌고 온 캐시는 남의 집 불구경이라도 하는 양 심드렁한 낯으로 안 하느니만 못한 성의 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제이는 절망에 빠졌다.
그는 생각했다.
역시, 그 밴드부실에 발을 들인 것부터가 실수였노라고.
(다음 편에서 계속)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