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257)
제257화. 선택과 집중 (9)
아니, 하루 우유는 어떻게 이런 걸 비밀로 할 수가 있지? 오혜은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대충 사태를 파악한 잼잼이들이 팬 카페에서 아우성을 쳤다.
[이러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나 본데]어떻게 알았냐;
대충 이런 요지의 글이 쏟아졌다. 너무하다,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등등 말이 나왔지만, 결론은 그래서 좋다는 얘기였다.
오혜은은 지윤정과 함께 머리 위로 담요를 뒤집어썼다. 학교에서 핸드폰을 할 때 종종 쓰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면 선생님들이 복도를 지나다가 이쪽을 봐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담요 안으로 들어온 지윤정이 키득키득 웃었다.
두 사람은 설레는 표정으로 영상을 틀었다. 영상이 재생되자마자 지윤정이 오, 하는 소리를 내었다.
영화 필름처럼 장면이 촤르륵 펼쳐졌다. 두 사람 다 무슨 장면인지 알고 있었다. 먼저 보았던 광고의 장면들이었다. 그러다가, 빠르게 감기던 필름이 한 곳에서 멈췄다.
“어… 똑똑한 두뇌 그 장면 맞지?”
“맞는 듯?”
배경은 교실이었다. 방금 막 발표를 끝낸 건지 박수가 쏟아졌다. 도현이 싱긋 웃은 채 자리에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쳤다.
반을 나가려는 도현을 한 남자애가 붙잡았다.
“어디 가? 다음 체육이잖아.”
“아. 잠깐 할 게 있어서.”
“뭔데?”
그 질문에 도현이 의뭉스럽게 웃었다. 상대가 ‘뭐, 늦기 전에는 와. 오늘 농구 시합이라 네가 빠지면 안 된다고.’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도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반을 나갔다.
문턱을 넘으며 도현이 살짝 눈을 깔았다. 살짝 내린 고개 덕에 눈에 띄는 입매가 은은한 호선을 그리는 게 아주 짧게 지나갔다. 반은 가장 끝에 위치해서 몇 걸음 앞이 코너였다.
단정한 구둣발이 코너를 돌아 한 발짝 내디뎠다.
동시에, 빛이 쏟아져 내렸다.
기역 자로 되어 있는 학교는 코너를 돌자 또 다른 반들이 나왔다. 그리고 제각각 복도에 나와서 떠들던 아이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란스럽던 복도가 조용해졌다.
“…3, 3반 반장이다!”
누군가 새된 목소리로 외침과 함께… 밝은 빛이 복도 끝부터 쏟아져 내렸다. 쏟아져 내렸다는 표현 외에는 걸맞은 게 없었다.
만화에서조차 유행이 지난 효과에 지윤정은 잠시 아득해졌다. 역광에 가려졌던 도현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자 검은 실루엣처럼 보였던 게 선명해졌다.
느릿하고 신비로운 배경 음악이 잔잔하게 깔렸다. 흐읍! 누군가 감격에 젖어 입을 틀어막았다. 그 옆에 있던 친구는 휘청이며 복도 벽에 몸을 기댔고 몇몇 아이들은 다급히 핸드폰 카메라를 틀었다. 조용한 복도에는 도현의 구둣발 소리만이 맑게 울렸다.
“와씨… 병맛인데 얼굴이 소화하는 거 실화냐.”
오혜은이 감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도현은 막 피식 웃은 참이었다. 말 그대로 ‘피식’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폭력적인 충동이 들었을 터인데, 도현은 처음부터 그렇게 나고 자란 양 잘 어울렸다.
오혜은이 헛웃음을 치며 어이없는 투로 말했다.
“감독 누구냐…. 가서 큰절하게.”
“픕! 미친, 아, 웃기지 마.”
“뭐래. 난 진심이거든?”
두 사람이 키득거릴 때였다.
“자, 잠깐…!”
무리 속에서 한 여자애가 튀어나왔다. 순정 만화처럼 어깨 뒤로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뭐, 뭐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오혜은이 입을 다물고 집중했다.
여자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청순한 얼굴 위로 홍조가 올라왔다. 긴장이 어린 눈으로 입술을 깨물자 속마음이 에코 효과를 달고 울렸다.
– 오늘만을 기다렸어. 오늘이야말로…!
“왜 날 부른 거야?”
어느새 멈춰 섰던 도현이 반듯하게 서서 소녀를 응시했다. 웃음기가 가신 눈이 대답을 종용하자.
“항상, 말하고 싶었어…!”
휘익-.
바람이 불었다.
학교 복도에 왜 그런 게 달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복도 창문에 달린 흰 커튼이 바람에 흩날렸다. 마주 보고 있는 소년과 소녀의 머리카락도 바람에 흔들렸다. 소녀가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언제부터 나오고 있었는지 모를 로맨틱하고 달달한 노래가 귀를 간지럽혔다.
화창한 날의 복도. 흩날리는 커튼. 모세의 기적처럼 벽에 붙어 이쪽을 주시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서로만이 세계의 전부라는 듯이 쳐다보는 소년 소녀.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갔다.
“설마…?”
오혜은의 머릿속에 순정 만화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고 있을 찰나였다. 소녀가 수줍게 손을 들어 올렸다. 모두가 소녀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 우유… 안 마실 거면 나 주면 안 돼?”
수줍게 펴진 손가락이 향한 곳은, 주머니 위로 슬쩍 보이는 흰 우유 팩이었다. 쓸데없이 바람이 한 번 더 불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하.”
어처구니없다는 듯 짧게 웃은 소년이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냈다. 그러곤 보란 듯이 아주 느릿하게 입가로 가져가.
“!”
꿀꺽, 꿀꺽, 꿀꺽.
순식간에 우유 한 팩이 비워졌다. 경악한 소녀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파르르 떨렸다.
이내 우유를 다 비워낸 도현이 입 주변을 핥곤 뱀처럼 매끄럽게 웃었다. 그건 비웃음이기도 했고, 감히 제 것을 탐낸 이를 향한 조소기도 했다.
울듯이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막은 소녀를 본 소년이 다 비운 우유 팩을 만족스럽게 보다가, 곧 여유로운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나른히 말했다.
“250가지 테스트를 통과하고 111가지 성장 영양소를 가진 최고의 우유를 네게 줄 거 같아?”
내가 뭘 들은 거지. 오혜은이 벙벙한 낯을 하든 말든 천사 같은 얼굴로 헛소리를 뱉은 소년이 매정하게 뒤를 돌았다.
털썩-!
용기를 내어 말했던 소녀가 좌절한 낯으로 가련하게 주저앉았다. 청순한 생머리가 덧없이 흩날렸다.
그런 소녀를 등지고 선 소년이 눈썹을 까딱이며 옆을 돌아보았다. 먼저 보았던 광고에서처럼 화면을 보는 이들을 직시하는 구도였다. 그때도 깜짝 놀랐는데 지금도 눈이 마주친 기분에 오혜은은 움찔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놀란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도현이 오만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그 미소에 오혜은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 어울리려면 하루 우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대로 손에 들린 우유가 클로즈업되었다가, 이내 우유 팩에 그려져 있던 로고만이 화면에 남았다.
그리고 한 번 본 적 있던 문구가 떠올랐다.
[하루를 채우는 우유.하루 우유]
영상이 끝나고 화면에 되감기 로고가 떠올랐다. 그러나 오혜은도 지윤정도 가만히 있었다.
뭐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데 지윤정이 중얼거렸다.
“도현이도 돈 힘들게 버는구나….”
“푸핳!”
그 안타까운 어조에 오혜은은 진심으로 터져서 미친 듯이 웃어댔다. 너무 웃어서 그런지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눈물도 맺혔다. 오혜은이 웃자 웃음에 감염된 지윤정도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아… 헉, 진짜 찌윤, 개 웃겨.”
간신히 진정한 오혜은이 책상에 널브러졌다. 지윤정은 여전히 웃긴지 간헐적으로 낄낄대고 있었다. 웃음을 꾹 눌러낸 오혜은이 핸드폰을 보았다. 오혜은의 시선을 확인한 지윤정이 말했다.
“감독이 미친 듯?”
“근데 솔직히 잘 어울리지 않아?”
평소 도현의 이미지는 단정, 차분, 우아 그 자체였다. 나이가 갓 두 자릿수를 찍은 남자애한테 우아라는 단어가 어떻게 붙을 수 있는가 싶지만 정말 그랬다.
아니, 오히려 갓 두 자릿수 찍은 남자애라 그런지도 몰랐다. 그 나이대 애 중에서 도현만큼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차분한 애는 없으니까.
물론 도현이 그간 연기한 배역도 성격이 꽤 독특했지만, 그런 배역으로서의 연기와 CF에서의 연기는 느낌이 좀 달랐다. 영화에서는 진짜 배역이 된 느낌이라면, CF에서는 ‘이도현’으로서 연기한 느낌.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웃겼다.
지윤정이 고개를 주억였다.
“음… 그건 그래. 솔직히 진짜 성격이 저래도 좋을 거 같아.”
오혜은은 상상해 보았다. 재수 없고, 성질 나쁘고, 마치 모 영국 마법 학교의 백금발 소년 같은 도현이.
…좋은데?
* * *
하루 유업 마케팅 부서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광고가 공개되고 며칠. 반응은 아주 즉각적이고 빠르게 돌아왔다.
매출 증가 추이가 아주 가파른 각도를 그렸다. 거의 뭐, 에베레스트 산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팀원들은 훈훈한 눈으로 그 추이를 보았다. 역시 이도현을 잡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이도현의 위치는 아주, 아주, 아주 특별했다. 어린 나이부터 신기록을 세우며 국위선양을 한 잘생기고 예쁜 소년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두 가지 버전으로 하길 잘했어요.”
누군가가 말했다.
모델 효과도 효과지만, 광고를 모델에게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들은 이번 기회로 돈을 아주 갈퀴로 쓸어모으기 위해 작정했다.
가장 우유를 많이 구매하는 소비층은 단연, 어린아이를 둔 보호자였다. 그러니까 도현이 또래나 플러스마이너스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부모 말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 도현을 모델로 발탁했던 패션 브랜드 마린느의 실적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나이대 부모님들은 모두 제 자식이 도현처럼 크길 바랐다! 도현의 하루를 보여주며, ‘야, 너두 우유 먹으면 이렇게 될 수 있어’라는 식의 광고를 한 건 다름 아닌 그들을 저격한 것이었다.
그런 의도대로 부모들의 하루 우유 선호도가 미친 듯이 폭증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도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연령층이 넓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년층을 공략했으면, 젊은 사람도 공략해야 할 것 아닌가? 그들을 위해서 조금 더 자극적이고 조금 더 재밌는 광고를 기획했다.
그게 바로 [하루 우유 CF – 번외편] 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대로,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화제가 되었다. 도현의 비주얼이나 순정 만화 전개, 적절한 병맛까지! 젊은 사람들의 이목을 완전히 끌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루 우유는 십 대부터 사십 대까지의 연령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헉, 허억. 지, 진짜죠, 이거?”
성과급을 확인한 마케팅 부서 직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 막내 직원은 앞으로 이도현이 출연하는 영화는 무조건 봐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었다.
* * *
“도리야!”
퍽!
어깨를 강하게 내리치는 손에 도현이 몸을 움츠렸다. 얼얼한 어깨를 쓸자니 진이 호탕하게 웃었다.
“세게 안 때렸는데, 가만 보면 넌 리액션이 좋아!”
정말 리액션이라 생각하는 걸까?
묘한 눈길로 보는 도현을 무시한 진이 도현의 목에 팔을 둘렀다.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또 공부하고 있어? 넌 질리지도 않아?”
“곧 시험이니까.”
“그래도 네가 공부만 하니까 심심해.”
진의 어리광에 도현이 AMC 문제지를 보다가, 한참 풀고 있던 것을 서랍에 집어넣었다.
“어? 안 해도 돼?”
“응, 괜찮아.”
솔직히 말해서 AMC 10이 AMC 8보다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도현에게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헷갈리는 개념이나 수식을 완전히 익히고, 문제 몇 개 풀며 유형을 외우다 보니 이젠 설렁설렁 풀어도 될 정도였다.
“기만자….”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였다. 그 음침한 중얼거림에 도현이 바짝 굳었다.
“헤, 헤더…?”
불그스름한 눈을 부릅뜨고 이쪽을 노려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헤더였다. 헤더가 짓씹듯 내뱉었다.
“말 걸지 마. 나는 기만자랑 대화 안 해.”
네가 먼저 말 걸었는데.
“…….”
하지만 도현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입을 딱 다물었다. 기실 그는 헤더에게 잘못한 게 있었다.
그건 좀 된 일이었다.
도현은 그간 올림피아드 반에서 조금, 평범한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제를 적당히 틀리고 어려운 척했다는 소리였다. 속이고 싶었던 건 아니었지만 너무 큰 격차에 아이들이 자꾸만 의욕을 잃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니콜라스의 대회 일이 터졌다. 그러니까, 한창 니콜라스를 도와 기록 갱신을 도와줄 때 일이었다.
다니는 사람 수가 적은 학교는 원래 이런지, 도현이 니콜라스의 기록 갱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소식은 며칠 지나지 않아 쫙 퍼졌다. 그에 방과 후 올림피아드 수업 시간에 해리 선생님이 우려를 표했다. 친구를 돕는 건 바람직하지만, 지금 시험이 코앞이지 않냐는 요지의 우려였다.
그래서 도현은 해리 선생님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수업 시간 중 AMC 10 기출 문제를 모두 풀었고, 단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다.
“그건 정말 해설을 들은 문제들이 끼어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
“안 믿어.”
팩!
헤더가 고개를 틀었다. 도현은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헤더는 도현이 문제를 잘 풀어서 화가 났다기보다… 그가 거짓말을 해서 화가 난 거였다. 아니, 화가 났다기보단 속상해한다고 해야 하나, 삐쳤다고 해야 하나….
평범하게 말하다가도 가끔 부아가 치미는지 저렇게 퉁명스럽게 굴 때가 있었다. 아마 시험이 다가와 부담감과 스트레스에 더 저러는 거 같았다.
‘내일 머핀이라도 구워서 가져와야겠다.’
사죄의 뇌물을 바칠 계획을 짜고 있는데, 얌전히 도현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있던 진이 말을 꺼냈다.
“너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응? 왜?”
“네 시트콤 방송하잖아. 그거 우리 집에서 같이 볼래? 니키도 불러서!”
도현이 눈을 깜빡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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