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278)
제278화. 선택과 집중 (30)
“일곱 명…. 그래도 많이 줄었네요.”
“전 영원히 안 끝날 줄 알았어요.”
[Pathfinder>의 총감독, 토드 만의 말에 마리아가 가볍게 대답했다.“따로 볼까요? 아니면….”
기획팀장의 질문에 토드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한 명 한 명의 실력은 충분히 봤습니다. 지금은 누가 더 배역에 어울리는지 아는 게 중요하죠.”
여기 있는 심사 위원들은, 불러 모은 일곱 명의 지원자의 영상을 이미 닳도록 본 후였다. 그뿐 아니라 과거 참여한 작품이 있을 경우 그것까지 참고했다.
“그럼 한 번에 들어오라고 합시다.”
토드 감독이 직원에게 말을 전달한 후, 심사 위원들은 테이블에 모여 다시금 지원자들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토드 감독의 시선이 향한 곳은 가장 위에 있는 아이, 윈저 프란시스였다.
윈저. [Pathfinder>의 감독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그가 르옌 역할로 제일 먼저 떠올린 인물이었다.
다섯 살에 모델로 데뷔한 윈저는 어린 모델 중에서도 드물게 여러 번 화제가 되었다. 덜 자란 통통한 뺨에도 숨겨지지 않는 완성형 이목구비와 더불어, 윈저 특유의 신비롭고 묵직한 분위기가 나이와 대비되며 기묘한 매력을 자아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볼 때 드러나는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눈빛과 시선은 정지한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작년에 윈저가 출연했던 영화 [Overfield>는 흥행 성적만 보자면 썩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윈저 프란시스의 가능성을 확인하기엔 충분했다.
어디선가 숨어 있던 다이아몬드가 툭,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토드는 윈저보다 르옌에 어울리는 아이는 찾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비단 그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원래는 원작자인 마리아도 토드의 의견에 동의했다.
‘지금은….’
토드가 옆자리에 앉은 마리아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녀가 집중해서 보고 있는 곳엔 웃는 듯 아닌 듯, 묘한 표정의 아이가 있었다. 토드의 미간이 반사적으로 좁아졌다.
얼마 전.
마리아는 대뜸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캐스팅에 참여하는 건 사실 반길 만한 일이라 토드는 쉬이 긍정했다.
그리고 저 애의 영상을 봤다.
기획팀장은 보자마자 ‘뭔…?’ 하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어 웃던 그는, 이내 팍 꽂힌 마리아의 얼굴을 보고 심각성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곤란한 얼굴로 쩔쩔매는 기획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의견을 개진했다.
– 지금 우리는 사회의 보편적 관념 탓에 엄청난 보석을 놓치는 걸 수도 있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제 아이들을 찾으면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다고요. 경력, 인기, 환경 모두요.
– 음, 맞는 말씀이십니다.
은근슬쩍 거드는 이가 있었으니, 데이먼 컬렌버그였다. 이쯤 되자 토드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저, 실력은 좋지만 탱탱볼 같은 인간이 또 이상한 데로 튄 게 분명했다. 튈 거면 혼자 튈 것이지, 이젠 아군까지 만든다. 토드가 이마를 짚었다.
기획팀장은 마리아에게 여러 가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건 악수였다. 입고 온 호피 무늬 점프 슈트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마리아는 ‘이성, 논리, 현실’ 따위는 영감을 가로막는 방해물이라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비슷한 부류의 데이먼의 꼬임에 넘어갔겠지만.
아무튼, 그들의 반대는 마리아를 더욱 불타오르게 만들다 못해 반대의 의미로 확신을 준 거 같았다. 그 결과 마리아는 지금 오디션장에 앉아 있었다.
여태 캐스팅에 관여해오긴 했어도 오디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건 주인공, 아서 우더 역할이 전부였다는 걸 생각하면 퍽 이례적인 일이었다.
기획팀장은 아주 골치 아픈 모양이지만, 사실상 토드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캐스팅이란 게 독단적으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게 아무리 스타 작가라고 해도 말이다.
토드의 생각은 문이 열리면서 끊겼다. 맨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윈저 프란시스였다.
“오….”
어디선가 감탄사가 들렸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 게 틀림없었다. 처음부터 토드가 뽑았던 이유가 있는 아이였다.
“실제로 보니까 더….”
마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데이먼이 영상을 보여줄 때도 이미지적인 부분에서는 가장 어울린다고 느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그냥 르옌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줄줄이 들어왔지만, 윈저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마리아의 시선도 윈저에게 꽂혀 있음을 확인한 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드가 별 걱정 없는 건 이 때문이었다. 그 또한 그가 찾은 아이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네 번째 후보자가 들어오면서 한 씩씩한 인사에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심사 위원들은 흐뭇한 미소를 걸치고 그를 반겨준 후 그다음 후보자를 보았다. 네 번째 후보가 인사를 한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 그 뒤로는 줄줄이 힘찬 인사와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
우렁찼던 인사의 행진이 뚝 끊겼다.
“이런.”
토드는 저도 모르게 의미 불명의 탄성을 흘렸다. 윈저에게 꽂혀 있던 심사 위원들의 눈이 모조리 한쪽으로 쏠렸다.
시선을 제게로 잡아끄는 존재감도 존재감이지만 지금 저 아이는.
“르옌….”
마리아가 홀린 듯 말했다.
“맙소사, 제가 상상했던 르옌이 저기 있어요.”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주변에 있던 심사 위원들이 듣기에는 충분했다. 토드의 단단한 확신과 자신감이 삐끗, 흔들리기에도 말이다. 토드와 눈이 마주친 기획팀장은 지진이 난 동공으로 심정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토드 감독은 앓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왜냐면, 정말 저 애는 오디션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어쩌면 그 전부터 르옌 그 자체인 거 같았으니까.
‘안녕하세요!’라는 풋풋하고 예의 바른 인사 대신, 그를 평가하기 위해 모인 이들의 눈을 한 번씩 차례대로 마주치는 배짱 있는 행동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또 그게 잘 어울려서 더 그랬다.
마침내 검은 눈이 토드를 선명히 담아냈을 때, 그는 오싹함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이가 평가받는 자리에서 평가하는 이들을 찍어 누르려고 한단 말인가. 기가 막혔다.
미친놈이다 싶다가, 자연스레 조사차 보았던 [The Wanderer>가 떠올랐다. 그건 제대로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연기였다.
카메라 테스트 영상에서도 그렇고, 확실히 저 후보는 어두운 연기에 소질이 있었다. 검게 뻥 뚫린 거 같은 어둠, 그러한 것들을 저 나이에 표현하는 게 얼마나 놀라운지 아는 그는 데이먼과 마리아의 호들갑이 영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영화는 [The Wanderer> 같은 독립 영화가 아니었다. 소름 끼치는 영감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대중성 면에서는 부족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영 어덜트 소설 기반이었다.
고개를 저은 토드가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의자 보이지? 그 의자에 편하게 앉아. 지금부터 한 명씩 질문할 거야. 질문을 받으면 거기에 대답하면 돼. 먼저 윈저 프란시스?”
“아, 네.”
“점심은 먹었니?”
“안 먹었어요.”
가볍고 일상적인 질문이 들어오자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윈저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덧붙였다.
“원래도 촬영하기 전에는 잘 안 먹어요. 잘 체해서요. 오늘도 그럴까 봐 안 먹었어요.”
“배고프진 않아?”
“지금은 모르겠어요. 이따 집에 돌아갈 땐 그럴지도 모르죠.”
그 대답에 옅은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다섯 살 때부터 쌓은 연예계 경력이 쉬이 얻은 건 아닌지 그는 금방 제 페이스를 찾았다.
“이따가 과자라도 챙겨주라고 할게. 그래, 윈저. 너는 왜 이 오디션에 지원했니?”
“제가….”
본격적인 문답이 오가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긴장과 경계 어린 눈으로 윈저를 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윈저는 강력해 보이는 후보였다.
어리다고 해도, 아니 어리기 때문에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윈저를 향한 심사 위원들의 호의와 관심 같은 것.
그리고 그들을 신경 쓰이게 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누군가 ‘작가님’이라고 한 걸 보아, 개성 있는 차림새의 여성이 원작자인 거 같았는데, 그녀의 시선이 자꾸 제일 왼쪽 끝으로 향했다.
그사이, 문답을 끝낸 윈저 다음으로 두 번째 후보에게 질문이 향했다. 점차 가까워지는 순서에 아이들은 잡생각을 버리고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중간에 아이 하나가 말이 꼬인 것을 제외하고는 무난한 문답이 오가고, 이내 일곱 번째 지원자의 차례가 되었다. 토드가 소년을 보며 입을 열었다.
“기다리느라 힘들었지?”
“그다지 힘들진 않았어요. 얘기를 듣는 것도 나름 괜찮았거든요.”
몇 차례 의례적인 말이 오갔다. 앞선 아이들과 특별히 다를 것 없는 대답들이 이어졌다. 조금 독특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어디였냐는 질문에 아서의 아버지가 아서를 위해 희생한 장면을 꼽았단 거였다.
“그거 소설의 거의 첫 장면인데, 거기까지만 소설을 읽은 건 아니지?”
마리아가 짓궂게 건넨 질문에 도현은 당황한 기색 없이 ‘소설 전문을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었다’고 답했다. 그에 호기심이 인 마리아가 한 장면을 말하자, 정말 그 부분을 술술 읊어서 모두가 경악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잠시 후.
모든 문답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심사 위원들은 첫 번째 순서부터 미리 공지했던 장면을 연기해 보라고 말했다.
윈저 프란시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드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요구된 장면은 2권에서 나오는 부분으로, 무난한 부분이라 되레 까다로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모두가 비슷하게 잘 소화해내면 눈에 띄는 게 힘드니까.
심지어 장면도 짧았다.
정령이 두 번째 시험을 알려준 후, 르옌은 누바라에 원한을 품고 있던 한 소년에게 시비가 걸린다. 그리고 르옌은 만만치 않은 성정답게 간단히 비꼬는 것만으로 그를 조롱거리로 만든다.
이때 나누는 대화가 이번 오디션에서 연기하는 장면이었다.
대략 한 명을 제외한 모두의 견제를 받으며 윈저는 나름 능숙하게 연기를 마쳤다. 냉기를 풀풀 풍기는 그의 연기는 르옌을 꽤 정적이고 조용한 캐릭터로 해석한 거 같았다.
비꼬기는 비꼬는데 그 과정에서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윈저 다음 지원자는 조금 더 재수 없는 연기를 펼쳐서 더 각자의 개성이 돋보였다.
‘호오.’
토드 감독이 속으로 감탄했다.
생각보다 더 지원자들의 수준이 높았다. 물론 너무 차가워 보이려다가 되레 뻣뻣해 보이고, 고압적인 귀족처럼 보이려다가 그냥 얄미운 느낌이 나는 안타까운 지원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준비를 많이 한 티가 났다.
연기를 끝낸 여섯 번째 지원자가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나름 만족스럽게 해냈는지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심사 위원의 시선이 막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에게 닿았다. 그 시선에는 제각각의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었다.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되지?”
“네.”
카메라가 다시 돌아갔다. 여섯 번 동안 상대 역할을 해주었던 직원이 다시금 대사를 읽었다.
“어쩌냐?”
한 박자 쉬고.
“이번 시험은 네 그 위대한 종족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데. 이번엔 시험의 미로처럼 개수작 같은 건 부릴 수 없을걸? 여긴 신성한 나무 안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발연기였다.
열심히는 읽는 거 같은데… 그 어떻게 할 수 없는 어색함과 뻣뻣함이 흘러넘쳤다. 연기에 몰입하기 쉽지 않을 텐데도 훌륭하게 무표정한 낯을 유지하던 도현이 어느 순간 입꼬리를 매끄럽게 올렸다.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딱, 적절한 미소.
은근히 조마조마하게 도현을 보고 있던 데이먼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칠 뻔했다.
카메라 테스트 때도 그랬지만, 도현의 연기는 참 절묘했다. 그냥 보면 우아하게 웃는 거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상대를 비웃고 있는 거 같았다. 그 정확한 지점을 찾아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고 할 만했다.
“…이게 웃겨? 아, 막막해서 웃음이 나나 보지?”
도발하는 말에도 성급하게 굴지 않고 잠깐 뜸을 들이던 도현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내 일족을 그리 높게 보고 있었단 말이지 않니. 정령께서 주관하시는 시험에 부정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이런, 네가 날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보는 줄은 몰랐네.”
놀랐다는 걸 표현하듯이, 태연하게 까딱이는 눈썹이 품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능청맞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 시선이 갔다. 마치 이곳이 소년이 주인공인 사교계 장이 된 거 같은 느낌이었다.
“안타깝지만, 그런다고 해서 네 마음에 보답할 생각은 없으니 단념하도록 해.”
몇 자리 건너 데이먼이 웃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 테스트 때 봤던 무게감을 덜어낸 연기였다.
몇몇 이들은 그 무게감을 높이 샀지만, 너무 어두운 건 아닌가 싶었던 토드는 제 마음을 정확히 맞춘 거 같은 연기에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꼭 제 머리를 열어 확인한 후, ‘안타깝지만, 내가 잘하는 건 그런 연기뿐만이 아니니까 단념하도록 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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