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296)
제296화. 일상의 균형 (15)
오스카는 요즘 직업 만족도 최상을 찍었다. 배우 덕분에 살면서 한 번 와보기도 힘든 뉴질랜드에 왔을뿐더러,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환상적인 풍경이 반겨주었다. 어디 그뿐일까. 돈을 쏟아부은 영화답게 호텔의 서비스조차 완벽했다.
“도현, 우리 평생 가자.”
뜬금없는 오스카의 말에 도현이 애석함을 담아 말했다.
“평생은 안 돼요. 저 내년에 한국 가서 어려워요.”
“이럴 땐 그냥 알겠다고 하는 거야.”
“아, 알겠어요.”
“이미 늦었거든?”
“오스카… 까다롭네요.”
도현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는 척을 하던 오스카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너 좀 여유로워졌네.”
“제가요?”
“응, 처음에 만났을 땐 농담도 모르던 애였는데…. 역시 환경 덕분인가.”
그런가. 도현은 오스카가 그리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요즘, 스스로 많이 풀어진 걸 느끼고 있었다.
‘역시 그거 때문이겠지?’
스위스에서 있었던 치욕의 밤.
다시 떠오른 기억에 잠시 괴로워하던 도현은 애써 허공을 걷어차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고 이성을 되찾았다.
‘그게 일종의 충격요법이 된 건가.’
도현은 기억하는 모든 순간, 스스로를 온전히 풀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형도 마찬가지였다. 불완전한 영혼을 타고난 이의 운명이 원래 그런 것인지, 그들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마 그렇기에 도현은 연기로, 형은 바이올린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켜켜이 쌓은 걸 토해낸 것이겠지.
그대로 자랐다면 미래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강제로 풀려버렸다. 의도했든 아니었든 말이다.
그 경험은 어떤 의미로도 잊기 어려웠다. 그러니 아마 도현이 전보다 말랑해졌다면, 그 일이 가장 유력한 원인일 것이 분명했다.
“르옌, 촬영 시작한대. 우리 저기로 가 있자. 오스카도 같이 가요.”
아침부터 몽롱한 신시아가 팔을 잡아끌었다. 도현은 신시아가 끄는 대로 따라갔다.
뭐, 오스카의 말처럼 환경의 영향도 적잖이 있는 거 같고.
영화 촬영지는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한, 파라다이스 밸리(Paradise valley). 이미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되었을 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명한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경은 이곳, 카티푸 호수의 정경을 보고 “여기 지상에 파라다이스가 있는데 누가 사후를 걱정하겠는가?”라고 한 적이 있었다.
과연, 과장이 아니었다. 도현도 영화를 본 적 있었다. 그때 영화 속에서 보았던 풍경이 한 치의 틀림없이, 아니 그보다 더욱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동화 속 세계가 펼쳐진 거 같았던 알프스 산맥과는 달랐다.
도현이 머무는 곳은 파라다이스 밸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 글레노키 마을. 주민이 이백 명 정도 되는 작은 마을로, 관광업이 발달되어 있어 생활하기에 나름 편했다. 패스파인더 촬영 팀은 이곳에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글레노키의 화려한 호텔도, 파라다이스에 펼쳐진 커다란 호수와 설산도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패스파인더 세트장이었다.
안개가 낀 산맥 아래, 호수 근처에 만들어진 세트장을 본 도현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페어리 픽처스에 방문하면서 종종 보았던, 우더 일족 마을의 미니어처 모형이 이곳에 그대로 재연되어 있었으니까!
숲, 그리고 호수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마을은 그 자체만으로 환상적이었다. 진짜 노바우드 대륙에 발을 디딘 것 같았다.
도현은 관광하러 온 사람처럼 뉴질랜드 남섬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촬영 때문에 온 것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이건 그가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할 게 없어서였다.
첫 번째 시리즈인 [Pathfinder : The Frozen Forest>에서 르옌의 출연은 그 임팩트와는 별개로 매우, 몹시 적었으니까.
그 때문에 나중에 합류해도 되었지만, 데이먼 감독의 배려로 미리 와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도현은 이곳에 도착하고 이 주를 아무것도 안 하고 보냈다.
“문제 다 풀었어?”
아,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이 정도 스케일이 되면 배우들의 케어도 수준이 다른 건지, 페어리 픽처스 측은 선생님을 초빙했다. 학교를 결석하고 촬영할 어린 배우를 위해서!
제일 바쁜 건 헤레이즈였다. 초반에 혼자 촬영할 게 산더미인 데다가 수업까지 들어야 했으니. 도현과 신시아가 느긋하게 공부하며 경치를 즐기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응. 너는….”
“나도 다 했어.”
볼우물이 패이도록 웃는 신시아에 도현은 넘어가지 않았다.
“신시아, 우리 숙제는 과학이잖아.”
“으응, 하지만 이게 더 재밌는걸.”
분명 아까까진 과학 문제집을 잘 보고 있었던 거 같은데. 어느샌가 식물도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아까 봤던 이끼 이름은 알아냈어! 여기 봐, 똑같이 생겼지? 이름은 시그린이래. 왜 시그린이라 불리는지 모르겠어. 여기는 호숫가잖아. 하지만 시그린이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어… 아?”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신시아에 도현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신시아가 탄성을 내뱉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이름이랑 되게 비슷하지 않아? 신시아, 시그린! 꼭 자매 같지? 동생이 생긴 기분이야.”
“지금 이끼 말하는 거 맞지?”
“응! 이따 아서한테도 알려 줘야겠다.”
도현은 오는 길에 본 바위틈에서 자라난 이끼와 이름이 비슷하다고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신시아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정말 이끼를 동생 삼고 싶은 거야?
왜 시그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고민하기 시작하는 신시아를 도현이 신중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시아는 요즘 도현의 주요 관찰 대상이었다.
저게 본래 성격인지, 아니면 고도로 몰입하여 본래 성격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인지 볼 때마다 헷갈려서였다.
헤레이즈와 도현을 이름이 아닌 배역으로 부르는 걸 보면 몰입인 거 같기도 한데, 표정에 어색함이나 꾸며낸 기색이 조금도 없어서 다시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몰입이라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도 아직 멀었구나.’
역시 세상은 넓다고 느끼며, 도현은 좀 더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팔자 좋다?”
헤레이즈가 티타임을 가지는 도현과 신시아를 보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너도 와서 앉아.”
“아서, 네 쿠키는 남겨놨어.”
헤레이즈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주연이라 분량이 많은 건 좋은데, 진짜 좋은데. 자신은 기가 쭉 빠질 정도로 촬영을 하고 왔는데 정작 친구들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억울해졌다.
“헤레이즈! 너는 안 돼. 시간 없어. 헤어 좀 수정하자.”
자리에 앉으려던 헤레이즈는 스태프 한 명에게 다시 불려갔다. 도현과 신시아가 온화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뭐지….’
그 표정이 너무나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여 더 기분이 이상해진 헤레이즈가 얼굴을 찡그리며 끌려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던 신시아가 몽롱한 투로 말했다.
“좋다아. 매일매일이 이랬으면 좋겠어.”
“나도.”
햇빛에 구워진 치즈 태비가 이런 기분일까. 앞으로 한 일 년 정도는 이렇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팔락.
도현이 읽던 소설책을 한 장 넘겼다. 신시아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한쪽에선 전쟁 같은 치열한 촬영이, 한쪽에선 느긋한 오후의 티타임이 펼쳐졌다.
찰칵.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사람이 있었으니, 도현의 보호자로 따라온 오스카였다. 도현은 익숙하게 고개를 들었다.
“엄마한테 보내려고요?”
“응. 그리고… 그냥 제안인데.”
“말씀하세요.”
“이거 SNS에 올리는 거 어때?”
멈칫. 찻잔을 더듬던 손길이 완전히 멎었다. 도현이 미간을 좁히자 오스카가 빠르게 덧붙였다.
“어차피 우리 촬영지는 이미 기사로 나가서 알 사람은 다 알아. …그리고, 언제까지 계정을 정지시켜 놓을 순 없잖아. 그때 일은 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 사람이 나빴던 거지.”
“그건, 알아요.”
신시아가 호기심을 담은 눈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도현은 갈등 어린 표정으로 찻물에 비친 자신을 노려보았다.
그날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도현은 친구들과 몇 번 진지한 대화를 나눴고, 메리에게 상담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란 걸 인정했다.
그래도….
“네가 그 문제에 너무 얽매이지 않길 바라서 꺼낸 말이야. 싫다면 거부해도 돼.”
얽매인다. 확실히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현이 걱정하는 건, 그것과는 좀 달랐다. 어차피 이곳에서 신시아나 헤레이즈한테 누군가 접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렇게 그들을 주시하는 스태프들이 많은데 어떻게.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또 낯선 기척이 느껴지면 능력을 쓸 거 같은데.’
이성과 다른 반사적 반응이었다.
그날 이후, 도현은 이전과 같은 정도로만 능력을 다루겠다고 다짐한 것과 다르게 몇 번이나 세계를 엿보았다. 변명하자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 문득 낯선 기척이 느껴지면 뇌를 거쳐 이성적으로 판단할 새 없이 반사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니 그도 당황스러웠다.
그건 덩어리 님이 경고했던 부분을 제외하고도 문제를 만들어냈다. 현실과 멀어지는 문제에 비해서는 문제도 아니지만….
‘신체의 성장이 유독 빨라졌어.’
고작 삼 개월 사이에 도현은 5cm나 자랐다. 아무리 성장기라고 해도 빠른 속도였다. 추측하건대, 위기감을 느낀 육체가 좀 더 단단해지기 위해서 성장을 서두르는 거 같았다.
그리고 존재감.
저기 있는 스태프들이 ‘엘프인가?’, ‘뭐? 요정 아니었어?’, ‘여기가 고향인가 봐’ 하며 도현을 흘깃거리는 건 그들의 탓이 아니었다.
도현이 손가락 끝을 다른 세계에 걸치고 있어서였다.
제7의 감각이 활성화될 때마다 눌러내서 그런지 처음처럼 의식이 집을 나가는 일은 없었다. 다만 깔짝깔짝 엿보는 통에, 그 부작용으로 아주 조금,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세계의 흐름에 넘어간 것이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촬영 팀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파라다이스와 성수기가 지나 사람 수가 적은 글레노키 마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능력이 써질 일이 거의 없거든.
잠깐 고민에 빠져 있던 도현이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
“네, 여기서 문제 될 것도 없어 보이고… 오스카 말대로 언제까지 그럴 순 없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반사적으로 능력을 쓰는 버릇을 자제하는 법을 익히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런 면에서 한적한 뉴질랜드 남섬은 최고의 훈련지였다.
오스카는 좋아라 하며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아까보다 더 헬쑥해진 헤레이즈가 합류하자, 내재되어 있던 사진사의 본능을 다시금 발휘했다.
그 사진은 이틀 뒤, 도현의 계정에 올라갔다.
세 달 만의 업로드였다.
* * *
[미치겠다, 이도현]대체 왜 더 잘생겨진 건데?
– 그러니까… 피드 새로운 거 올라왔대서 헐레벌떡 달려갔는데 미모 무슨 일이냐고…
– 지금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사진 언급되고 장난 아님ㅋㅋ
⌞역시 갓도현
– 사진 올리자마자 에드워드 좋아요 누른 거 봤어? 진짜 사이좋나 봐
⌞흐-뭇
– 근데 도현이 왜 이렇게 많이 컸어?
⌞나도 느낌…!!
⌞222나도
⌞대체 업로드가 없었던 지난 몇 달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잼잼이들아 나만 느낀 거 아니지?](사진)
갑자기 애가 훅 큰 거 같은데… 맞아???
– 괴짜들 때 헤레이즈보다 조금 작았는데 지금은 키가 엇비슷
– 키도 키인데, 인상이 살짝… 변했달까?
⌞아 이거 ㅇㅈㅇㅈ
⌞뉴질랜드 공기가 좋나…? 원래도 천상계였는데 지금은 무슨… 뭔가 영접하기도 죄송스러워;;
⌞배경 때문인가???
⌞아니면 연기 준비하느라 그런 거 아니야? 도리 분위기 휙휙 바꾸는 거 잘하잖아
⌞와 그런 거면 진짜 소름…
의도치 않은 능력 남용으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평소보다 도드라진 도현의 사진은, 예상치 못하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패스파인더의 촬영은 순조롭게 이어져.
“도착했대요?”
“응. 오고 있대.”
도현의 얼굴에 가벼운 기대와 설렘이 떠올랐다.
패스파인더의 주연 중 한 명이자, 르옌 누바라가 속한 누바라족의 수장, 전대 길잡이 역을 맡은 배우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얼어붙은 숲의 중심 에피소드, 첫 번째 시험을 촬영하기 위해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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