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343)
제343화. 여우와 여우야 (17)
드라마는 쉴 틈 없이 몰아쳐 클라이맥스까지 다다랐다. 주술이 완성되어 여우야의 몸이 구속되고 해아가 비명을 질렀다. 명곡이라고 평가받는 OST가 극적인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도현과 두 사람은 화면에 온전히 집중한 채였다.
“은인, 은인님! …여우야!”
산 채로 심장이 뜯기는 기분이 이러할까. 두 눈에서 피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저 때문에 늘 피를 묻혀 오던 이가 기어이 제 몸까지 포기하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요! 이만하면 됐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도망가세요! 이곳을 벗어나시란 말입니다! 제발, 좀!”
목에서 피를 토할 것처럼 외쳐 봐도 여우야는 요지부동이었다. 생리적인 고통에 일그러진 남자의 낯이 망막에 선명히 새겨졌다. 목덜미에 와 닿는 칼날보다 그게 더 그녀를 괴롭게 했다.
“제발, 제발….”
기어이 해아가 무너졌다.
그녀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감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자식만큼은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목이 베인 것도, 남자가 저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이 오래된 인연의 사슬을 끊을 때가 되었구나.”
해아의 귀에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 순간 해아는 평정을 찾았다. 멍한 낯으로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해아는 그제야 이 상황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깨달았다.
나였다.
내 욕심이었다.
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해서. 내가 당신을 놓아주지 못해서. 내가 당신을 원해서.
내가 당신을 마음에 품어서.
“…은인님.”
화면 속의 해아가 웃었다. 뺨이며 입꼬리며 볼썽사납게 떨렸지만, 그건 분명 미소였다. 마지막으로 연모하는 이에게 어여쁘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먼저 끊어내지 못하시겠다면.”
가엾을 정도로 흔들리면서도 단단한 목소리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둘이서 작은 오두막에 살 때, 산짐승이 집 주변까지 들이닥친 적이 있었다. 그날 남자는 해아에게 작은 단도를 쥐여 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올 때까지만 버텨 달라면서.
손바닥과 손목이 베이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저를 구속하던 밧줄을 잘라냈다. 붉은 피가 번져나갔다. 이상을 눈치챈 여우야가 뒤늦게 주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보다 해아가 더욱 빨랐다. 세 사람의 귀에 익숙한 대사가 들렸다.
“그러니 자유로워지세요.”
쓰러지는 몸을 단단한 손이 다급히 받아들었다. 해아는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붉은빛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게 살아 있을 때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도현은 몰아치는 강이든의 연기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신을 잃고 죽어가는 해아를 보며 그는 완전히 넋을 놓았다. 괜찮다, 살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제 피를 흘려 넣다가 통하지 않자 덜덜 떤다.
육체가 점차 차갑게 식는다. 혼이 떠난 육체는 생기를 잃어간다. 여우야는 도저히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흰자까지 온통 붉어진 채로 피눈물을 흘리던 요괴는 기어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
여우야는 저를 죽이려던 주술 한가운데에 해아를 집어넣고 그녀에게 요기를 쏟아붓는다. 법력과 신력, 그리고 요기까지 휘몰아치며 해아에게 스며들었다. 죽음보다 더한 무게가 실리니 인간의 영혼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인연의 끈에 붙들린다.
스님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어, 어찌 그런…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냐!”
진심으로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너로 인하여 그녀는 억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을 것이다. 구천을 떠나지도 못하고 발을 붙이지도 못한 채 떠돌아다니다 악귀가 되어 지옥에 떨어질 거란 말이다!”
여우야는 윤회의 사슬로 들어서려는 해아의 혼백을 저주했다. 영계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영원히 지상을 떠돌도록. 그리하여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제 곁에 머물도록.
오직 죽음에서 기원한 요괴만이 걸 수 있는 저주였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여우야는 그저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숨이 멎은 해아의 육신에만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에, 주지 스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다가 주술을 발동시킨다. 무엇이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게 했는지는 몰랐다. 억겁을 떠돌게 될 해아를 향한 연민인지. 혹은 그들이 절에서 지낸 동안 쌓였던 정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혹인지.
그리하여 죽음에 다다라야 했을 여우야가 죽음 대신 산수화에 봉인되고.
그로부터 오백 년 후.
영혼 상태로 그 오랜 시간 지상을 떠돌며 과거와 자아를 잃어버린 해아의 혼백이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했을 아이의 몸에 깃들게 된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해아가 인연의 실에 이끌려 봉인된 절에 발을 딛게 된다.
* * *
[여우야 이 미친놈]해아 저주해서 몇백 년간 영혼 상태로 떠돌게 했단 거 아님… 진짜 집착 끝판왕이다
– 보다가 머리 깰 뻔;; 진짜 미친놈 ㅇㅈ
– 이거 드라마에는 안 나왔는데 해아 혼백 되고 나서 처음에는 정신이 있었음… 여우야 봉인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떠돌다가 한이련 육체가 해아가 본래 윤회를 겪었더라면 입고 태어나야 했을 몸인데 거기에 깃든 거.
⌞미친….
⌞그럼 정신 있는 채로 오백 년간 떠돈 거야???
⌞ㄴㄴ 점차 자아가 붕괴되긴 함. (웹툰 78화에서 작가 피셜) 윤회는 전생을 벗는 과정임. 그래서 정신이 마모되다가 온전히 자아를 잊었을 때 환생의 자격을 얻어 한이련 육체가 태어나고 거기 들어간 거래.
⌞헐… 그래서 기억 없구나
⌞와 나도 지금 앎… 그냥 환생인 줄 알았지
⌞222222
⌞ㄷㄷㄷ 여주 굴림물이었음?
⌞이 정도면 피폐물아니야???
⌞사실 여우야 입장에서는 그런데 한이련이 멘탈짱짱기존세라 강제 로코행됨
⌞ㅅㅂㅋㅋㅋㅋ 강제로코행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 : 아 오백 년 정도 구천을 떠돌면 이 정도는 한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뭐 여우야가 삽 들고 땅 파고 들어가면 한이련이 멱살 잡고 끌어올리는 거넼ㅋㅋㅋㅋㅋㅋㅋ
⌞삽까지 부숴버리는 수준 아니냐ㅋㅋㅋㅋㅋ
[이도현 연기 ㄹㅇ 미침]서지민이 과거 기억해내고 너랑 얽히면 안 됐어 할 때 이도현 표정… 그때 당시엔 별생각 없었는데 오늘 자 보고 다시 보니까 다르게 보임 ㅎㄷㄷ
– 외면했던 거 확인 사살당한 표정
⌞잘못 저지른 댕댕이가 주인님 볼 때 표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 개웃긴데 맞는 거 같기도 하고…
– 그니까 저 때 한이련 현생+ 해아 시절까지 겹쳐봤단 거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 오백 년 동안 혼백 상태로 떠돌게 한 거 알고 나서 대체 무슨 심정이었을까
⌞서사 왜 이리 마라맛이냐ㅠㅠㅠㅠ 불속성로코인 줄 알았더니 그냥 불속성…
⌞근데 난 진짜 요괴는 요괴다란 생각 들었어
⌞22222 나도 그 생각했어!!
[이도현 첫 화 대사](요괴가 왜 요괴인 줄 아느냐? 그 태생이 저주이기 때문이지.)
자기 비하인 줄 알았더니 진짜 저주 맞았음 사랑도 요괴(저주)같이 하네
– 지극히 객관적인 자기 판단이었음ㅋㅋ
– 요괴랑 인간이 얽히면 안 된다는 스님 말도 틀린 건 없는 듯
⌞맞아 여주니까 로코 가능하지… 극피폐마라맛드라마될 수 있었음
과거 편이 모두 방영되고 나서 이전 회차의 도현의 연기가 다시 화제가 되었다. 화제가 화제를 몰고 오고. 또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구미호뎐 : 인과 연> 최고 시청률 38%! 40% 돌파 가능성은?]도저히 믿기 어려울 만큼의 화제성을 끌어 담더니, 그다음 날.
8회차 방영에서 전날 최고 시청률인 38%를 넘은 38.6%를 보여주어 40% 돌파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님을 증명해냈다.
그리고 도현은.
“잠깐 휴식합시다!”
촬영을 위해 촬영장에 와 있었다.
* * *
토요일에 방송되었던 8화는 반향을 일으켰다. 그야, 사전에 ‘백스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한이련이 드라마가 끝날 때 즈음.
– 나는 이제 네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야! 좋아한다고!
박력 넘치는 고백을 날려버렸고.
– 저주에서 태어난 요괴가 줄 수 있는 건 저주밖에 없어. 그걸 내가 너무 늦게 알았어.
한이련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린 여우야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설렌 그녀의 심정과 다르게 그건 작별을 고하는 인사이자, 기억을 봉인하는 주술이었다.
8화 만에 고백이 이루어졌는데 빛의 속도로 차인 데다가 기억까지 빼앗겨버린 것이다.
놀라운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고백과 차임이 일어나기 전에 한이련은 교양 수업에서 윤채준을 만나게 된다. 더는 그에게 마음을 품지 않은 한이련은 그가 불편하지만, 같은 조로 묶여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있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한이련은 무언갈 발견한다.
– 아… 이거요? 태어날 때부터 있었어요. 조금 신기하게 생긴 점이죠?
바로 발목에 있는 두 개의 붉은 점이었다.
– ㅁㅊㅁㅊㅁㅊ
– 신휘민이 흑막이라고????
– 왠지 그 얼굴에 평범한 조연일 리가 없다 했음
– 그럼 주지 스님 환생임??
– 아닠ㅋㅋㅋ머머리 환생이라니까 웃기잖아
– 환생 아니고 후손임 ㅋㅋㅋㅋ
– 와 근데 신휘민 악역 찰떡이다… 생긴 게 흑막상이라 그런가
– ㅇㅈㅇㅈ
– 근데 ㅅㅎㅁ 연기 왜 이렇게 잘함? 아이돌 아님?
– 스터디 들어갔다는데
– 연기력 나쁘지 않음 ㅇㅇ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신휘민이 촬영장에서 천사의 후광 같은 걸 두르고 돌아다닐 만큼이나.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낯선 반짝임에 떫은 낯을 한 도현이 물었다. 물론 신휘민은 원래도 줄곧 웃는 낯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과 이 웃음은 좀…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래 보여?”
제 뺨을 더듬은 신휘민이 실없이 웃었다. 도현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런 도현을 신휘민이 따뜻한 눈으로 보았다.
도현의 경계심이 더욱 올라갔다.
그리고.
그 기행을 보고 있던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만도 하지.’
8화가 방영되고 나서 소속사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엄청난 칭찬과 더불어 앞으로 그룹 활동을 그만두는 것만 아니라면 배우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신휘민이 배우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며 질질 끌던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개인 활동은 그룹이 망하는 지름길이라며 고집스레 배우 활동을 막아서던 사람이 말이다.
몇 년 만에 원하던 것을 이뤄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촬영장에서 가장 기분 좋은 사람은 신휘민일 게 분명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아침에 저한테 ‘형 힘드시면 운전은 제가 할까요?’라는 소름 돋는 소리를 내뱉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저기에 두 번째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었다.
“너 오늘따라 귀엽게 생겼다.”
“…….”
“아니다. 원래 그랬나?”
“…제가 잘못했으니까 그만해요.”
도현이 괴롭게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안 그러던 사람이 이러니까 굉장히 괴로웠다.
“하하하, 장난이야.”
“…하아.”
“근데 한 번만 들어 올려도 돼?”
“…….”
순간적으로 징그럽게 굴지 말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던 도현은 놀라운 인내심으로 참아낸 후 대타를 구해왔다.
“선배님이 안아 주신대요.”
“오. 정말요?”
도현이 강이든의 물음표를 외면했다. 온화한 낯으로 두 팔을 벌리는 신휘민을 경멸의 눈으로 보던 강이든이 핸드폰을 톡톡 두들겼다.
“아! 제가 그거 아니라고…! 엥?”
얼마 안 있어 소환된 서지민을 신휘민에게 툭, 민 강이든이 유유히 자리를 떴다.
“응? 으응? 휘, 휘민 씨?”
당황한 것도 잠시.
“뭐야. 프리허그 중이에요?”
“네. 세상이 예뻐 보여서요.”
“그냥 제가 예쁜 거 아닐까요?”
“그것도 맞는 말씀이네요.”
“세상에! 휘민 씨가 보는 눈이 좀 있구나!”
그 누구와도 죽이 잘 맞는 서지민이 신휘민의 팔을 잡고 빙빙 돌며 하하호호 놀아주었다. 훈훈한 결말이었다.
* * *
휴식 시간이 끝나고 촬영이 재개되었다.
윤채준의 함정에 한이련이 걸려들어 오백 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여우야는 이번에야말로 스스로 소멸하기를 택한다. 다만 오백 년 전과 달리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인연의 실을 끊어내 한이련을 자유롭게 놓아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은 그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기억을 지운 한이련이 주술에 휘말려 기억을 되찾질 않나. 심지어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현생의 기억을 넘어.
– 은인님!
그 호칭을 꺼내 들고.
– 뭘 하고 있나 해서 와 봤더니. 여우 새끼야. 꼴이 그게 뭐냐?
그의 악우인 이무기까지 등장한 것이다.
“끼어들지 마!”
힘이 없어 다시 어린 모습으로 돌아간 여우야가 거칠게 으르렁거렸다. 흥분한 걸 알려주듯이 앳된 얼굴에 붉은 선이 돋아나 있었다.
“도, 도와주세요!”
한쪽에선 끼어들지 말라 이를 세우고 한쪽에선 도와달라고 애걸한다. 주술을 시전 중인 윤채준까지 시야에 담은 이무기는 감탄했다.
“훌륭한 개판이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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