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346)
제346화. 종영, 그리고 (1)
과거 편 이후의 장면들은 모두 드라마 방영 이전에 촬영해놓지 않고 순서대로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에만 집중하면 되는 사람들은 안성에 계속 머물렀지만, 서울에 스케줄이 있는 신휘민이나 새 학기부터 통째로 학교를 빠지기 어려웠던 도현은 자주 안성과 서울을 오가야 했다. 촬영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더 긴 날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부로 끝이었다.
정가현은 카메라 너머의 도현에게 집중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겁에 질린 듯 떨리는 눈빛에 그녀는 작게 감탄했다.
“…나와주면 안 돼?”
도현은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익숙한 기척이 느껴지길래 설마, 설마 했다. 그래도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리지 않는 이상 한이련이 이곳에 올 리가 없으니 착각이라 여겼다.
“여우야.”
착각이라기엔 너무 선명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말이다.
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가 어디라고. 아직도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리라 생각하는 건 속 좋은 가정이었다.
다 알았을 텐데.
“안 열어줄 거야?”
심장이 크게 뛰었다.
“좋아. 마음대로 해. 근데 나도 마음대로 할 거야.”
“!”
도현이 크게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절을 감싼 결계가 동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극 내내 그렇게 당혹스러운 얼굴은 처음이었다. 큰 잘못을 저질러 눈치 보는 아이처럼 검은 눈동자가 사방을 살폈다. 도망칠 곳을 찾는 듯이 다급히 굴러가던 눈동자가 멈춘 곳은.
“저, 저기다.”
여우야가 봉인되었던 산수화 족자였다.
도현의 두 눈에 희망이 번졌다.
그래, 저기로 들어가면 못 찾을 거야. 주저 없이 산수화에 뛰어들려던 때였다.
“으악!”
꼬리를 강하게 잡아채는 손길과 함께 지옥에서 올라온 거 같은 음산한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잡았다.”
오소소!
소름이 돋은 도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틀었다. 그리고 거기엔 음침하게 웃고 있는 서지민이 있었다.
“도망가려고 했어? 어쩌지… 나한테 잡혀 버렸네?”
털썩!
힘이 빠진 도현이 주저앉았다.
1화와 같은 장소였지만, 구도는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가련한 여우 요괴와 포악한 인간의 모습에 스태프들이 웃음을 참았다.
사납게 웃은 서지민이 도현의 멱살을 쥐었다. 그에 사람들은 다 같이 한 장면을 떠올렸다. 예고편에 삽입되어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던 그 장면.
– 그러니 선택하거라.
“그러니까 선택해.”
– 나와 이곳에서 칠 년을 보낼지. 함께 갈지. 그도 아니라면….
“나와 이곳에서 평생을 보낼지, 함께 갈지. 그것도 아니면….”
아니면?
도현이 긴장한 눈으로 쳐다보자 서지민이 참고 참던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멱살을 쥐었던 손을 풀고 주저앉은 도현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보고 싶었어, 내 여우야.”
여자의 품 안에 안긴 채로 소년이 눈을 깜빡였다. 천천히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짧은 머리카락이 아래로 내려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도현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보는 사람이 애가 탈 정도로 느린 몸짓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올라간 손이 간신히 서지민의 뺨에 닿고.
“컷! 오케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누나?”
“아, 미안. 사이즈가 딱 좋아서.”
나는 바디 필로우가 아니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로 넘어진 탓에 엉덩이가 약간 얼얼했다.
‘멍은 안 생겼겠지.’
과장되게 연기하려다 보니까 세게 넘어져서 약간 걱정되긴 했다.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어느새 강이든이 코앞에 와 있었다. 도현은 그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후의 부분은 도현의 몫이 아니었다.
웹툰에서도 어린 모습을 하던 여우야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성인으로 변해서 한이련을 꽉 껴안으니까. 그렇게 한이련이 여우야를 껴안는 구도에서 여우야가 한이련을 품에 안는 구도로 변하는 장면이 설렘 포인트였다.
이 드라마의 정체가 로맨스라는 걸 잊으면 안 됐다.
도현은 대기 의자로 향하는 사이 많은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잘했다, 수고했다. 마지막까지 좋았다. 그런 말들이었다. 도현도 그들에게 일일이 화답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수고했어요.”
“매니저님도요.”
그가 둘러주는 담요를 덮으며 도현은 촬영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까까지 도현이 있던 자리에 선 강이든이 서지민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연기에 빠져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에게서 앙숙 같은 대학 선후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다.
이 드라마는 로맨스 코미디였다. 그러니 아무리 도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나, 정말로 결정적일 때는 강이든이 필요했다. 중학생 남자아이가 맡을 수 없는 일이란 소리였다.
그건 도현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그냥 아직 어릴 뿐이었다.
‘그래도… 아쉽네.’
능력과 노력의 부족이 아니니 스스로를 탓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쉬운 것까진 어쩔 수 없었다.
할리우드에서 도현은 제약이 많은 편이었다. 동양인 소년. 제약이 없으면 더 이상한 조건이었다.
그 때문에 도현은 본인의 의지와 명성, 연기력에 비해서 커리어가 상당히 적었다. 한때 도현의 라이벌이었던 윈저 프란시스가 한 해에 두세 개의 작품에 들어간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 그랬다.
윈저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맥도 찍은 작품 수만 따지자면 도현의 몇 배는 많았다. 제약 사항들 탓에 작품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면서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 숨통이 좀 풀릴 거란 기대였다.
‘근데 나이가 걸릴 줄이야.’
비단 이 상황만 두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소속사 측으로 오는 대본들만 봐도 그랬다. 아무리 비중이 높다고 하나, 어린애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빨리 크고 싶어서요.”
그럼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조금 더 천천히 크셔도 됩니다.”
“네?”
갑작스러운 말에 도현이 그를 쳐다보았다. 경찬호가 당연한 것을 말하듯 담담히 말했다.
“지금도 과할 정도로 잘하고 있어요. 다들 배우님이 너무 빨리 크시는 것보단 천천히 커가길 바랄 겁니다.”
“…그래요? 그렇구나.”
그가 도현의 속내를 읽은 건 아닐 터다. 그런데도 도현은 복잡하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유쾌한 기분이 들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요.”
작게 대답한 도현이 다시금 촬영 현장을 보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인 채였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후련 섭섭한 얼굴로 제각각 한마디씩 얹었다.
“와, 난 이제 산이라면 지긋지긋해요.”
“저도요. 이제 잘 때 벌레한테 안 물려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어우, 행복해.”
다들 너스레를 떨고 있지만, 눈에는 아쉬움이 걸려 있었다. 촬영할 땐 힘들었어도 막상 끝나려니 마음이 복잡한 것이다.
“다음번에는 서울에서 보겠네요?”
서지민이 웃으며 말하자 세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터디만을 말한 게 아니었다.
드라마가 이렇게 떴는데 방송국에서 그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촬영이 끝난 것과 별개로 한동안 여러모로 바쁠 게 분명했다.
‘돈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네.’
서지민이 행복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구미호뎐 : 인과 연>의 마지막 촬영이 끝이 났다.
* * *
‘그래도 이건 좀 심각하게 빠른 재회 아닌가.’
안성에서 서울로 돌아와 주말을 쉬고 난 이틀 뒤.
도현은 다시금 촬영장에서 강이든을 만났다. 차이점이 있다면 드라마 촬영장이 아니라 CF 촬영장이라는 걸까.
물론 광고주 입장은 이해한다. 드라마의 인기가 한참 치솟을 때 빨리 광고를 찍어 내보내고 싶겠지. 하루빨리 찍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정된 촬영이 일주일 정도 당겨진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이쪽은 좀 민망했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마지막 촬영이다 보니 감독이며 스태프며 배우들이며 모여서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을 나눴다. 그리고 주말이 지난 후 다시 만난 것이다.
“주말 잘 보냈어요?”
“응.”
저쪽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거 같아서 도현도 민망함을 버리기로 했다. 대신에 미리 전달받았던 콘티를 확인했다.
광고에 크게 흥미가 없는 도현이 이 CF를 찍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소속사 대표님이 전화해서 ‘이건 꼭 해야 한다!’라며 강력하게 어필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필이라기엔 부탁에 가깝긴 했다. 사실 그 정도로 부탁하지 않아도 찍을 의사가 있었다. 대표님이 그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 배우님 이미지에 좋게 작용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대표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매니저의 그런 말도 있었고.
경찬호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괜찮은 광고라는 소리였다. 그쯤 되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콘티를 보던 도현은 생각했다.
‘결국 학교는 또 못 가네.’
누군가한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차라리 그편이 마음이 편했다. 학교에 가면 신경이 곤두섰으니까.
학교보다 촬영장이 더 편했다.
…잠깐.
‘계속 스케줄 있으면 학교 빠질 수 있는 건가?’
도현이 눈을 깜빡였다.
“매니저 형.”
“네?”
“저 이거 말고 광고 들어온 거 있어요? CF 아니어도 되니까요.”
“리스트 전달드릴까요?”
리스트로 만들 만큼 많다는 소리였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정도는 더 스케줄에 집중해도 되지 않을까? 한번 생각이 트이니 스케줄을 잡아야 할 이유가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보다 많았다.
어차피 델마 때처럼 학교에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도현 배우님, 이쪽으로 와주세요!”
일단 지금은 CF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도현은 불순한 생각을 지우고 스태프에게 다가갔다.
* * *
[쨈들 오들도 좋은 하루 ٩(*’へ’*)و] [쨈모닝!] [쨈모니잉] [드라마 비하인드] [구미호뎐 배우들 케미 넘 좋음] [도리 광고 찍었어!!!] [헐 도리 별스타 백억 년 만에 업뎃됨] [그어아ㅏㅏㅏ] [로하이, 이도현-강이든 광고모델 발탁]로하이 정수기가 배우 이도현과 강이든을 전속 모델로 기용, ‘로하이 얼음 정수기’의 신규 광고 ‘조선시대 편’과 ‘현대 편’을 제작하고 TV와 유튜브, 온라인 등 대규모 온, 오프라인 공략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번 신규 광고는 로하이 정수기의 한층 발전된 냉각기술과… (중략) 국내 정수기 브랜드 1위를 공고히 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강이든은 5년 전 로하이 정수기 모델로 발탁되어 두 번째 계약이다. 이번 광고는 이도현 배우를 섭외해서 더 넓은 연령층을 아우르려는… (중략) 효과를 기대해본다.
로하이 정수기는 신뢰감 있는 이미지의 두 배우로 정수기의 기술력과 깨끗함을 강조하고, 기존의 정형화된 광고 틀에서 벗어나 유쾌함을 추가하면서 브랜드의 트렌디함을 부각할 계획이다.
– 으꺄!!!
– 꺄꺄!!!
– 그래서 정수기 바꾸면 된다는 거지?
– 근데 모델 진짜 잘 골랐다
⌞맞아 도현이도 그런데 강이든도 둘다 좀 깨끗한 이미지임
⌞실제로도 깨끗함 스캔들도 없고
⌞도리는 스캔들 터지기엔 너무 어리지 않을깤ㅋㅋㅋㅋ
– 우리 도리토스 완조니 우주대스타아니야 ㅠㅠㅠ
⌞정수기 광고 진짜 탑티어 연예인만 찍던데…
⌞내가 다 뿌듯하다
⌞나도나도
– 도리야 이모가 돈 모을게…ㅠㅠㅠ 집에 있는 정수기가 로하이가 아니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생이라 슬픈 잼잼이…
⌞나둡…
[광고주들도 울도리 청량깨끗시원 이미지 아는 듯ㅋㅋ]첫 CF가 우유고 두 번째가 정수기!
– 내가 광고주라도 도현이 쓰고 싶을 거 같음ㅋㅋ
– 역시 ㄹㅈㄷ
[아기 찐 아기 시절 보구가] [근데 CF 언제 나올까?] [찐사극도 한번 해주면 좋겠다♡♡♡] [드라마 왜 끝나는데ㅠㅠ] [미이미 4월호 발탁] [??? 도현이 오ㅐ케 활동 자주해]아니 싫다는 건 아닌데 갑작스러워서…
– 나도…ㅋㅋㅋㅋㅋㅋ
– 우리 애가 갑자기 워커홀릭이 된 기분
⌞울도리는 촬영 없어도 워커홀릭이었어 (Feat 전참쟁)
⌞아 맞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활동도 좋은데 쉬면서 해 도현아ㅠㅠ
[드디어 내일] [드디어 내일 2222] [아ㅠㅠ 천년만년 방영해주면 좋겠다] [안 돼ㅔㅔㅔ] [여깽이 도리 보는 게 마지막이라니ㅠㅠㅠ]시간은 꾸준히 흘러 구미호뎐 마지막 방영일이 다가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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