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437)
제437화. 소슬하니 부는 바람에 (19)
첫 장면은 진흥왕의 승하를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왕의 서거에 궁 안과 궁 밖의 모든 이들이 슬퍼했다. 그리고 가장 처절하게 슬퍼하는 자는, 그의 첩인 미실이었다.
– 어찌 저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눈을 감은 진흥왕의 창백한 낯이 시리게 박혔다. 미실은 그칠 줄을 모르고 오열했고.
– 구, 궁주님!
이내 모든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도현은 화면 속의 가엾은 여인을 보다가 대각선에 앉은 현실의 신주하를 돌아보았다. 옆 사람과 건배하던 신주하가 무슨 용건이냐는 듯이 눈썹을 들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신주하의 이목구비를 조목조목 따져보면 강한 느낌보다는 처연하고 청순한 느낌을 풍겼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 자체에서 느껴지는 강한 아우라 탓이었다.
도현이 고개를 내젓자 신주하가 싱겁다는 듯이 웃었다. 도현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고깃집 안을 쭉 둘러보았다.
“왜?”
두리번거리던 도현을 본 신주하가 말을 걸었다.
“그게, 방영 시작하기 전에는 다들 긴장한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요.”
오프닝 나올 때는 숨소리까지 죽였던 이들의 태세 전환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도현의 의문에 대답한 건 신주하가 아닌, 카메라 감독이었다.
“다들 질리도록 봤으니까 그렇지.”
“네?”
“처음엔 따악, 긴장했는데 막상 보니까 어떤 장면인지 다 알겠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나도 긴장이 풀린 거지. 원래 시작하기 전이 제일 떨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작금의 상황을 이해한 도현이 다시금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화면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있었다.
도현은 제가 직접 본 장면은 제 기억과 대조해보면서, 보지 못했던 장면은 보지 못했던 대로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도현을 흘긋거렸다.
진윤아를 비롯한 아역 배우들은 오늘 참석하지 않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말 나이 탓인지, 그냥 부담스러워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서 제일 어린 이는 도현이었다. 그쪽으로 시선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그것도.
“에잇, 아직도 네 병밖에 안 비웠어? 더 마셔, 더!”
“술이 입에 쫙쫙 받네!”
한쪽에서는 술병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데, 홀로 콜라를 홀짝이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면 더욱이. 도현은 잠시 술을 부어 넣는 이들을 질린 눈으로 보았다.
‘이 사람들… 회식은 핑계고 그냥 술 마시러 온 거 아니야?’
정답에 근접한 의심이었다.
그런 도현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성진수 감독이 넌지시 물어왔다.
“혹시 자리 불편해요?”
“네? 아, 아니요. 안 불편해요.”
행운의 토템 겸 부르긴 했다만, 홀로 콜라를 홀짝이는 중학생을 보니 뒤늦게 걱정이 일었다. 도현이 불편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그 우려 섞인 시선에 도현은 마지막 미련처럼 화면을 한 번 응시했다. 그리고 금방 고개를 돌렸다.
“이거 맛있네요. 저 더 먹어도 돼요?”
걱정을 덜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려고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도현이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면, 도현이 짚은 고기가 그곳에서 제일 비싼 거란 사실이었다.
“뭐? 시켜! 당장 시켜! 삼 인분… 아니, 테이블당 삼 인분씩!”
“이 비싼 걸요?”
“그 정도는 먹어줘야지!”
성진수의 호탕한 외침에 사람들이 크게 환호했다.
고기 가격 같은 걸 알 리 없는 도현은 환호를 듣고도 ‘고기를 좋아하는구나’ 하며 태평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도현은 이번엔 텔레비전 쪽으로 몸을 틀지 않았다. 제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을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드라마는 재방으로 다시 봐야지.’
드라마는 다시 볼 수 있지만, 이 순간은 다시 올 수 없으니까.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기념비적인 1화가 엔딩을 맞이했다. 흑백사진처럼 물드는 화면에 취기가 오른 윤정아가 중얼거렸다.
“흑, 대본 쳐내느라 힘들었는데….”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도 자알 만들어졌다! 다들 감사합니다!”
“오오!”
웃음과 함성, 박수 소리가 섞였다.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이 작품을 만들어냈단 충족감에 휩싸여 근심 없이 웃었다.
그러나 관문이 하나 남아 있었다.
취한 윤정아 작가를 대신해서 성진수가 방송국에 있는 피디의 전화를 받았다. 사람들은 오프닝 전보다 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도현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얼마나 나오려나.’
여우야 때는 최고 시청률이 21%가 나왔다. 평균 시청률은 18.9%였다. 당시 사람들이 굉장히 기뻐하길래 대충 잘 나왔구나, 하며 함께 기뻐했던 도현은 훗날에야 그게 정말 대단한 수치란 걸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만큼 나오려나?’
낮게 나온다고 해서 실망하진 않을 테지만, 이왕이면 높은 게 좋으니.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은 성진수 감독이 가게 내부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는 울컥했는지 눈이 조금 발개진 채였다.
“크흠, 평균 시청률은… 18.5% 나왔습니다.”
“헉!”
“18.5%?”
사람들이 웅성댔다. 그들의 생각보다 괜찮은 모양인지 다들 안색이 밝았다.
“그리고!”
감독이 낸 큰 소리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모았다. 그는 기대의 시선 속에서 입을 열었다.
“최고 시청률… 21.8%!”
“…헐?”
아까는 ‘헉!’이었다면 지금은 ‘헐?’이었다. 현실적으로, 아니 그 수치도 사실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아무튼 기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여겼던 ‘18.5%’라는 수치와 ‘21.8%’는 전혀 달랐다.
성진수 감독은 사람들과 함께 놀라고 있는 도현을 보았다.
‘아마 저 애 때문일 테지.’
말도 안 되는 최고 시청률과 평균 시청률의 간극. 그건 분명 사극에는 관심 없지만, 도현을 보기 위해 틀었던 이들이 만들어낸 수치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 드라마 자체에 매혹된 이들이 ‘18.5%’라는 수치에 기여했으리라.
한편, 도현은 이번 드라마 첫 방의 시청률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전 시청률과 비교해 보려던 심산을 눈치라도 챈 듯이 재밌는 결과가 나왔으니까.
이런 경우에는 덜 잘 나왔다고 해야 하는지, 더 잘 나왔다고 해야 하는지 가늠해보던 도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첫 방영은 첫 방영일 뿐.
적당한 성적만 나왔다면 그때부터 중요한 것은 2화에서 그 흐름을 이어가느냐, 아니냐였다.
그리고 도현은 흐름을 이어갈 자신이 있었다.
* * *
[왕의 길, 시작부터 ‘왕도’ 걸었다!] [왕의 길 1화, 최고 시청률 21.8%로 마무리!] [SBC 사극, 왕의 길 성공적인 첫 시작…]왕의 길은 시작부터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이번 하반기 왕의 자리에 가장 유력한 후보임을 증명했다.
[1화 존버했는데 ㅠㅠ] [아니 도리토스가 안 나오다니] [도리토스를 달라!!!] [내일까지 또 기다려야 해] [도혀니 내내 기다렸는데]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ㅠ
– ㅠㅠㅠㅠㅠㅠㅠㅠ
– 하 밀당 당하는 기분이야
– 나도…ㅠㅠ
[왕의 길 존잼인데?]도현이 보려고 켠 건데 어느새 집중해서 봄 ㅋㅋㅋㅋ
– 신주하 좀 미친 듯
└ ㅇㅈ 1화 내내 미실 그 잡채임
└ ?? : 폐하, 이젠 제가 어여뻐 보이십니까?
└ 아 이거ㅠㅠㅠㅠ 올해 들은 것 중에서 제일 짜릿했음ㅠㅠㅠ
└ ㄹㅇ 도라방스…
└ 진평왕 ㄱㅅㄲ 나라면 나라 바쳤다
– 제작진 이 박박 간 게 티 나더라 ㅋㅋㅋㅋㅋ
– 도혀니 안 나온 건 아쉽지만… 드라마는 재밌는 거 인정!
도현의 팬들은 도현의 등장이 없었던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드라마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토해냈다.
도현은 커뮤니티나 팬 카페의 반응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드라마가 상당한 호평을 얻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정확히는 모를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쉴 새 없이 빠르게 올라가는 2반 단톡방을 보다가, 도현은 약간 질린 낯을 했다. 답장을 하려고 해도 눈 깜빡할 사이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와 있어서 뭘 할 수가 없었다.
도현은 반 단톡방이 조금 잠잠해지면 그때 답장하기로 하며 다른 단톡방을 눌렀다.
– 와 신주하 선배님 와… 찢으셨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서지민의 주접이었다. 대체로 그녀가 호들갑을 떨면, 신휘민이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강이든은 눈팅만 하고 답장은 안 하는지 안 읽음 표시는 사라졌지만 말은 없었다.
– 어! 도현이 읽었넹
– 도현이~~ 넌 언제 나와?
– 아, 왕의 길 엄청 재밌더라! 대박 날 거 같아!
– 드라마 잘 봤어. 지민 씨 말대로 재밌더라.
위의 세 개와 휘황찬란한 이모티콘들은 서지민, 마지막 차분한 메시지는 신휘민의 것이었다. 도현이 답장하기도 전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 지금 회식 끝난 거야?
…내가 회식에 온 걸 어떻게 알았지. 그런 도현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소름 돋는 타이밍에 다음 메시지가 떴다.
– 고깃집에 있는 거 인별에서 봤어^^.
“귀신같네….”
도현은 떨떠름해 하면서도 답장을 쳤다.
– 네, 집에 돌아가고 있어요.
– 너무 늦은 시간 아니야? 우리 도현이 피곤하겠다ㅠㅠ!
– 저 괜찮아요. 별로 피곤하지도 않고요.
거기까지 보낸 도현은 잠깐 고민했다. 언제 나오는지 말 해줘도 되나. 그러나 고민은 곧 끝났다.
저 세 사람이 어디 가서 말할 사람도 아니고.
– 저 내일 나와요.
– 헉…!!
– 완전 기대된다
– 내일 무조건 본방사수 할 거니까 말리지 마.
– 저도 지민 씨처럼 본방 사수 해야겠네요 ㅎㅎ
두 사람의 반응에 작게 웃던 도현은 새로운 메시지에 눈을 깜빡였다.
– .
저게… 뭐지.
내내 읽씹을 하던 강이든이 뜬금없이 점 하나를 남겼다. 도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거… 자기도 본방 사수하겠다는 말 같은데.
해석을 마친 도현은 헛웃음 쳤다.
강이든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도현은 서지민에게 타박을 들으면서도 다시 읽씹을 시작한 강이든을 보다가, 문득 스터디를 한 지 오래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촬영도 있고 논란도 있고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으니까….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도현은 생각했다.
이번 겨울에는 자주 만나야겠다고.
* * *
이튿날.
텔레비전을 켠 남자가 소파에 늘어진 쿠션 중 아무거나 집어서 품에 안았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캐릭터 인형이 품 안에서 찌그러졌다.
“드라마 보려고?”
막 샤워하고 나온 온탑의 리더가 옆에 앉았다. 그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터는 걸 보며 신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볼래.”
“그래요.”
두 사람의 대화는 평온했다. 얼핏 건조하게 보일 정도로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형! 형! 내일 아침에….”
리더를 찾아 나온 윤지원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신휘민을 보고 흠칫했다. 신휘민이 시선을 피하지 않자, 그의 눈동자가 도록 굴러갔다.
여우야 방영 당시, 신휘민은 대표에게 속살거려 윤지원을 군대 예능에 보냈다. 범인이 자신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 이후로 윤지원은 신휘민을 슬슬 피하며 꺼렸다.
픽, 그의 입술에서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게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윤지원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이내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리더의 다리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은 절대 쫀 적 없다는 허세였다.
“드라마 보는 거지? 나도 볼래.”
말을 거는 대상은 리더 형이면서, 눈길은 은근히 신휘민에게 가 있다.
‘같잖기는.’
이럴 때면 윤지원이 어리단 게 확 느껴졌다. 신휘민은 어린애와 기 싸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화면을 보았다. 윤지원이 의식하든 말든 한 치의 관심도 주지 않으며.
그사이 오프닝이 끝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어제도 같이 드라마를 보았던 리더가 중얼거렸다.
“어제도 그랬는데 오늘도 죽는 걸로 시작하네.”
그의 말대로, 1화에 이어서 2화의 포문을 여는 첫 장면은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그게 1화에서는 진흥왕이었다면, 2화에서는 진지왕의 어린 아들이라는 게 차이점이었지만.
신휘민은 생각을 털어내며 화면에 집중했다. 마침 궁내의 무거운 분위기에 압박감을 느낀 덕만이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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