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512)
제512화. Debut as a ?? (1)
아이들의 얼굴에 긴장이 흘렀다.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날이 어느새 훌쩍 다가와,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다.
“…우리, 하는 거지?”
클라인의 딱딱한 목소리에 진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오늘은 바로….
“찍자.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촬영 날이었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건 익숙해진 일이었다.
하지만 연기?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아이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만약 그들끼리 하는 거라면 서로 우스운 꼴을 놀리고 낄낄대며 놀았을 것이다. 영상을 남겨 두고두고 흑역사로 박제했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거였다.
“더 자유롭게 해도 돼.”
도현이 고개를 기울이곤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얼굴 근육이 굳은 건 아닌 거 같고….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네가 너를 제어하고 있어. 왤까….”
그들이 막 아지트에 모였을 때.
– 캐서린, 가능하면 네게 연락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안 났어.
성큼성큼 캐서린에게 다가간 도현은 이렇게 말한 후, 캐서린이 무어라 반응할 새도 없이 다짜고짜 제안했다.
– 네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그리고 보통의 경우, 도현이 저런 식으로 제안하면 거절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건 캐서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마치 교수님 앞에 선 대학원생처럼 빳빳하게 굳은 캐서린이 떨리는 눈으로 도현을 보았다.
말꼬리를 흐리던 도현이 아, 하는 탄성을 내었다.
“캐서린, 혹시 부끄러워?”
물론 알고 있다.
도현은 이런 걸로 화를 낼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밴드 활동을 할 때는 뭘 해도 허허실실하던 애였다.
조니가 건반을 잘못 눌러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다비드가 반 박자 빠르게 들어가도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클라인이 한 마디를 아예 놓쳐도 ‘응, 그럴 수 있어!’ 하던 도현이었단 말이다.
그런 도현이 연기 얘기를 꺼내자마자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표정을 굳혔다거나, 찬바람이 쌩쌩 분다는 뜻이 아니었다. 정말 눈빛이 변했다.
표정만 보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온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런데도 캐서린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압박감을 받았다.
마치 한마디 할 때도 잘 골라서 해야 할 것 같은…. 여기서 잘못 대답하면 웃는 얼굴로 영혼까지 털어갈 거 같은….
“캐서린?”
“아, 아니. 음….”
쭈뼛대는 소녀에 도현이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평소 자신감 넘치고 시크하던 캐서린의 모습과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연기하는 게 부끄럽다기보단.”
“응.”
“그…. 네가 보고 있잖아.”
“…내가 보는 게 왜?”
도현의 떨떠름한 물음에 캐서린이 제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그리고선 해탈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아무리 동네 남자애처럼 굴어도, 넌 할리우드 배우잖아. 네 앞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도 우습게 보일 거 아니야.”
캐서린이 한 말에 클라인과 조니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그들도 캐서린과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아마추어끼리 노는 것과 앞에 프로를 두고 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
겉모습은 태연했지만, 도현은 꽤 당혹스러운 상태였다. 배우라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만한 위치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평온한 낯 아래로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던 도현이 물었다.
“음…. 내가 방해될까?”
만약 그렇다고 하면 캐서린이 촬영할 때 잠깐 자리를 비켜줄 의향이 있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도현은 가벼운 마음으로 제 존재가 방해되면 방에 가 있겠다고 했다. 그 발언에 캐서린은 기겁하며 부정했다.
“뭐?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난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네가 없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
하마터면 ‘Freaky Child’의 지대한 공헌자이자, 비장의 조커를 눈치 주며 쫓아낼 뻔했던 캐서린이 식은땀을 비질 흘렸다. 뭐 이리 극단적이야, 쟨.
“그냥…, 어떻게 하면 주변 상황을 잊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지 조언만 좀 해줘.”
삶은 시금치처럼 흐물흐물해진 캐서린을 두고 도현은 차마 ‘그냥 하면 되던데’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도현은 무엇이 도움 될까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맡은 역할의 이름을 알아?”
“이름? 이름이 있었어?”
가사에는 ‘그녀’ 혹은 ‘그’라는 지칭만 등장한다. ‘그녀는 소녀였어’ 이런 식으로.
당연히 캐서린도 이름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름을 붙여줘. 네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름으로. 그리고 네가 그 이름의 주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언어는 커다란 힘을 갖는다.
부정확한 누군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정의된 대상을 두고 상상하는 게 더 쉬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캐서린은 이게 도움 되는 게 맞나 의심하면서도, 착실히 이름을 생각해냈다. 도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털털한 성격과 인형 같은 외모, 그리고 명품을 휘두르고 다니는 재력으로 요즘 십 대 소녀들에게 아이콘과도 같은 존재.
“…루카?”
도현의 낯이 대번에 굳었다.
“그건 말고.”
“내가 정하라며?”
“캐서린.”
도현이 눈매를 휘었다. 소년은 웃는 낯으로 부드러이 말했다.
“다른 이름이 좋을 거 같아.”
“…뭐, 그래.”
캐서린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인 후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냈다.
“그럼 제니퍼.”
“좋아, 네가 연기하는 인물은 제니퍼야. 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야 해. 넌 캐서린이 아니라 제니퍼라고.”
이번엔 통과인 모양인지, 방긋 웃은 도현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를 보던 캐서린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소꿉놀이가 효과가 있어?”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캐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름 정의하기는 꽤 효과가 있었다. 다만, 캐서린이 몰랐던 재능을 발견해내고 제니퍼란 가상의 인물에 완벽하게 몰입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왜 내 눈치를 봐? 넌 제니퍼잖아.”
도현의 끊임없는 세뇌 때문이었다.
“제니퍼는 나를 모를 텐데. 나를 쳐다볼 이유가 있을까?”
“…….”
아이들은 질린 낯이 되었다.
특히, 클라인은 속으로 안도했다.
‘난 가르쳐 달라고 안 해서 다행이다….’
안쓰러운 시선이 캐서린, 아니, 제니퍼를 향했다. 제니퍼는 그사이에 뺨이 홀쭉해졌다. 정말 홀쭉해진 건 아닐 테지만, 피로에 찌든 표정 탓에 그리 보였다.
제니퍼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재수 없는 제니퍼!”
정신을 반쯤 놔 버린 게 분명했다. 혀를 쯧쯧 차던 클라인이 제니퍼의 어깨를 토닥였다.
“힘내. 그래도 아까보단 더 나아졌어.”
“클라인….”
“근데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넌 제니퍼잖아.”
“이 개자식아….”
제니퍼가 클라인의 멱살을 잡아챘다. 탈탈 털리는 클라인을 보고 고개를 젓던 도현은 진과 브라운을 불렀다.
“왜?”
“이제 촬영해도 될 거 같아서.”
“드디어?”
브라운이 반색했다.
“응.”
어느 정도 세뇌… 아니, 몰입이 끝났다. 갑자기 연기력이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내가 있어서 연기하기 어렵단 소리는 안 나오겠지.
도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이 난 진이 외쳤다.
“제니퍼! 촬영 시작하자!”
“망할 제니퍼!”
* * *
위잉-
“오….”
다비드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시선은 천장, 정확히는 천장 아래를 배회하는 드론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드론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
드론을 조종하던 브라운은 드론과 연결된 노트북을 가리키며 말했다.
“찍을 수는 있는데 많이 흔들릴 거야.”
브라운의 말에 진이 끼어들었다.
“후보정해도 그래?”
“…그거 나보고 하라는 거지?”
“너 아니면 누가 해?”
너무 당당하게 되물어서 도리어 할 말이 없어진 쪽은 브라운이었다. 어이는 없는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진 않았다.
그리고 그걸 놓칠 진이 아니었다.
“가능한 거지?”
“…정도에 따라 달라.”
“그럼 촬영하고 나서 생각하면 되겠네!”
짝! 손뼉을 치며 경쾌하게 말하는 진에 브라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꼼짝없이 휘말렸단 사실을 깨달은 건 몇 초 후였다.
“바보.”
옆을 지나가던 다비드가 말을 툭 던졌다.
브라운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잠시 후.
제니퍼는 진의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있는 채였다.
짙은 흑갈색 머리카락은 구불구불 컬이 들어간 채였고, 검은색 카고바지는 허리선보다 낮은 위치에 걸쳐져 있었다. 그 위로는 나시와 검은색 크롭 티셔츠를 겹쳐 입었는데,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했다.
천장에 떠오른 드론이 제니퍼의 시선 바로 위쪽으로 이동했다.
“레디.”
신호를 맡기로 한 조니가 한 박자의 텀을 두었다.
제니퍼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 난 제니퍼다.
그리고.
“액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 * *
She was a girl
그녀는 소녀였어
Who grew up in San Diego
샌디에이고에서 자라난
손바닥으로 책상을 짚은 도현은 노트북 화면에 집중했다. 카메라가 거꾸로 돌아 있어서 화면은 위아래가 뒤집힌 채였다.
두 마디의 가사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가 천천히 돌았다. 한 바퀴를 돌자 정상적인 각도의 제니퍼의 모습이 보였다.
눈썹을 잔뜩 모은 소녀는 아끼던 인형을 동생에게 빼앗긴 언니처럼 뚱해 보였다. 입을 꾹 다문 소녀는 천장이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양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And when the sea breeze knocked on the window
그리고 바닷바람이 창문을 두드릴 때면
그때, 제니퍼의 눈동자가 옆으로 돌아갔다. 카메라가 더 멀어지며 제니퍼가 누운 침대와 창문까지 한 화면 안에 담았다.
창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She just looked at the sea
그녀는 바다를 바라봤대
제니퍼의 고개가 완전히 돌아갔다. 그녀의 옆얼굴을 타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소녀의 시선이 창문 너머를 향했다.
Imagine’ of what would happen
if the ocean dried up
저 바다가 메마르면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하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