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560)
제560화. The bower lake school (11)
대치는 길지 않았다.
성난 고릴라처럼 씩씩댄 레슬리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라비니아, 설마 저 원숭이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지?”
그는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눈으로 도현을 보더니 들으란 듯이 말했다.
“네가 관심 가질 만한 애가 아니야. 얼굴이 좀 반반해봤자 그뿐이지. 저 음침한 눈을 좀 봐. 우리랑 격이 맞지 않는다고.”
레슬리는 도현이 음침하다고 확신했다.
처음 봤을 때도 범죄자처럼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였고, 다시 만났을 땐 자신을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 인사를 받았다. 그를 조롱하고 모욕하기 위해 비열하게 군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검은 눈동자는 너무 까매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레슬리는 그게 찝찝하고 불쾌했다. 저 눈에 굴욕감이나 패배감이 떠오르는 걸 보면 속이 좀 풀릴 거 같았다.
레슬리는 더욱 이죽거렸다.
“왜 이 학교에 왔어? 거지처럼 뭘 주워 먹고 싶어서? 영화 촬영은 핑계고, 누구 한 명한테 빌붙고 싶어서 온 거 아니야?”
반응한 건 도현이 아닌 다른 쪽이었다. 헤레이즈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두 눈에 미약한 불쾌감과 수치심이 스쳤다.
그는 구태여 도현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가 큰 키와 또래보다 커다란 덩치로 압박하면, 대개 주눅이 들어 시선을 피했다. 그는 도현도 그러길 바라고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 도현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레슬리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였다.
“미안한데, 레슬리. 조금 떨어져 줘. 친하지 않은 사람과 가까이 있는 걸 별로 안 좋아해.”
“무, 뭐?”
그는 귀를 의심했다.
도현의 말엔 고저가 없었다. 다만 긴장감 없이 부드러웠다. 꼭 학교 뒤편의 호수가 그리는 물결처럼. 그제야 도현이 조금도 겁먹지 않았음을 깨달은 레슬리의 뺨이 달아올랐다.
“이 거리에선 네 숨소리가 들려. 별로 유쾌하진 않아.”
풉, 도현의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닌 척,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터트린 소리였다. 레슬리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너….”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처음은 교실에서. 지금은 카페테리아에서! 저 음침한 놈은 그에게 두 번이나 모욕을 주었다. 레슬리가 이번에야말로 손을 봐주기 위해 주먹을 쥐려던 순간이었다.
“레슬리, 뒤로 가.”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비니아, 너도 들었잖아. 나를 아주 우습게 만들었어! 이 자식을 봐줄 순 없어.”
“그건 나중에 네가 알아서 하든가 하고. 지금은 내가 먼저 말하고 있었잖아, 레슬리.”
“굳이 이런 놈이랑 말을 섞을 필요는….”
“그만.”
팔짱을 낀 라비니아가 자못 짜증이 올라온 낯으로 레슬리를 보았다.
“내가 누구한테 관심을 가지건 말건 네가 참견할 권리는 없어. 제발, 레슬리. 물론 네 머리로는 어렵다는 건 알지만, 가끔은 한번 말하면 이해 좀 하면 좋겠어. 뒤로, 가라고.”
레슬리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그는 찢어발길 듯한 눈으로 도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뒤에서 언제 비킬 거냐는 핀잔이 들려오자, 주먹을 쥐면서 옆으로 비켰다.
도현은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생각했다. 최대한 레슬리를 피해 다녀야겠다고. 마주치면 곱게는 안 놓아줄 거 같았다.
라비니아는 그런 레슬리의 기분이나 도현의 사정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거 같았다. 그녀는 오직 도현에게만 신경을 쏟았다.
매끈한 이마나 짙은 눈썹, 혼혈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한 이목구비와 곧은 콧대를 보는 눈동자가 제법 탐욕스레 빛났다. 진이 얼굴을 뜯어먹을 것처럼 볼 때는 우습고 재밌었는데, 지금은 불편하기만 했다.
“들어간 클럽이 있어?”
라비니아의 질문에 시몬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아직 없어요.”
“그럼 골든 이글은 어때?”
“라비니아!”
얼굴을 꿰뚫을 것 같은 눈빛으로 도현을 노려보던 레슬리가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다. 내내 가만히 서서 구경하던 시몬도 이건 이상했는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야?”
“그냥, 나쁘지 않잖아.”
그 대답에 시몬은 흥미를 잃은 눈치였다. 그는 도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마음대로 하라며 관심을 끊었다.
“도현아, 들어올래? 내가 널 추천할게.”
라비니아의 친근한 부름에 주변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헛숨을 들이마셨다. 그들은 저들끼리 바삐 시선을 교환했다.
도현은 대답하기 전, 희게 질린 안색으로 서 있는 소년을 보았다. 맑은 청회안은 수심으로 인해 조금 짙어진 채였다.
“…아직 무슨 클럽에 들어갈지 안 정해서요.”
“그래서?”
“고민해 볼게요. 제안해줘서 고마워요.”
라비니아가 큰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물결 진 머리칼 사이로 진짜 보석인 게 분명한 귀걸이가 작게 반짝였다.
부드럽게 말했지만, 화를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레슬리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보건대,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게 익숙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라비니아는 오히려 웃었다.
“그래, 천천히 고민해봐. 너무 오래는 말고. 나는 네가 꽤 마음에 드니까.”
“…그래요? 영광이네요.”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그럴 리가요.”
“할, 네 친구 재밌다.”
그녀의 입에서 자연스레 나온 애칭에 헤레이즈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냥 이 자리에서 빨리 뜨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 보였다. 작게 웃은 라비니아가 도현에게 윙크했다.
“다음에 또 봐.”
쪽, 손바닥에 키스한 라비니아가 그걸 도현에게 흔들었다. 당황한 도현이 무어라 반응할 새도 없이 라비니아는 뒤돌아서 가 버렸다.
결국 도현만 바보처럼 그 자리에 남았다.
“어때,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의 손 키스는?”
언제 왔는지, 어깨에 팔을 두른 테오도르가 짓궂게 물었다. 도현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제 헤레이즈의 심정을 알 거 같았다. 낄낄 웃은 테오도르가 접시를 내려놓았다. 도현도 그제야 내내 들고 있던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둘 수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일등석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로즈마리가 물었다. 목적어가 빠져 있었지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도현은 감자튀김 하나를 쿡 찍었다.
“안 들어가.”
“왜?”
“관심이 없으니까.”
“흐음.”
포크를 까딱대던 로즈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니아를 꼬시고 싶으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걘 손짓만 하면 남자애들이 넘어오는 게 당연해서, 오히려 도도하게 구는 걸 좋아하거든. 물론 처음엔 도도해도 나중엔 자기한테 함락되어야겠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도현은 왜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그냥 촬영하러 온 것뿐인데.
‘그렇다고 진짜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없고.’
이곳에 있는 건 도현만이 아니었다. 도현은 떠나도, 신시아와 헤레이즈는 남는다. 두 사람한테 피해가 갈 만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도현이 피곤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방법이 없나?”
“왜 피하는 거야? 들어가서 나쁠 건 없는데. 게다가 아까 레슬리가 너를 아예 분쇄해버릴 거같이 쳐다보던데, 그 개새끼한테 목줄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라비니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을걸. 관심 없다는 이유로 감수하기엔 너무 성가시지 않아?”
테오도르의 의문은 타당했다.
도현은 대답을 고민했다.
아침에 시몬이 행패를 부리는 걸 봤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런 권력 놀이엔 별로 끼고 싶지 않다고? 그것도 아니면 들어가면 더 귀찮아질 거 같은 예감이 든다고? 다 테오도르가 납득할 거 같진 않았다.
말을 고르던 도현이 입을 열었다.
“내 룸메이트가 휴 모건이야.”
“아.”
그는 단박에 이해했다.
“이 문제는 그럼 됐지?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온건하게 거절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거든.”
“레슬리부터 망했다고 봐야 하는데.”
도현은 테오도르의 말을 무시했다. 대신에 로즈마리와 신시아에게 답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접시에 담긴 브로콜리와 눈싸움을 하던 신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클럽에 들어가.”
“신시아, 나는 그걸 거절하려고….”
“다른 클럽에 들어가면 돼.”
“…….”
“오?”
“르옌은 촬영 때문에 바쁘니까.”
의외로 테오도르가 신시아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촬영 때문에 바쁘니까 클럽은 한 개밖에 못 들어간다고 하라는 거지?”
“응.”
“나쁘지 않네. 좀 티 나는 거짓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클럽에 들어가면 거기 주장이 널 보호해 줄 수도 있고.”
그럼 중립에 가까운 클럽에 들어가는 게 좋을 텐데…. 테오도르의 중얼거림에 도현이 말을 얹었다.
“펜싱 클럽은 아니겠네.”
“음? 아니야. 꽤 나쁘지 않아. 아이덴은 공사가 확실하거든.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어. 아이덴은 인재를 좋아하니까. 물론 네가 펜싱에 재능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펜싱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은 아니야.”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보완은 가능하지만, 일단 ‘운동 신경’만 떼어 놓고 보자면 도현은 평균치보다 조금 뒤떨어졌다.
쯧, 혀를 찬 테오도르가 말했다.
“그럼 이건 기각.”
“식사모는 어때?”
“식사모?”
도현이 되묻자 신시아가 말했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신시아, 혹시 말이야.”
“응?”
“거기 구성원이 혹시 너랑 로즈마리 둘이야?”
“어떻게 알았어?”
“그러게. 어떻게 알았을까….”
“최근에 신입 부원을 받고 있어. 클럽 모임 장소는 온실이야.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다음 주에는 털깃털 이끼로 화분을 만들 예정이야.”
“털깃털 이끼라니. 정말 멋지다.”
옆에서 테오도르가 진심이냐는 눈으로 보았다. 도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드럽게 웃었다.
“고마워, 신시아. 생각해볼게.”
“르옌은 언제나 환영이야.”
그 후로 그들은 햄버거 안에 양배추가 들어가야 하는지 아닌지, 감자튀김을 셰이크에 찍어 먹어야 하는지 아닌지 따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카페테리아를 나온 네 사람은 소화할 겸 산책로를 걸었다.
날씨 좋다.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던 도현의 눈에 돔 모양의 건물이 들어왔다. 도현은 휴가 해주었던 말을 금방 기억해냈다.
‘마사라고 했던가.’
반질거리는 건물을 보는 검은 눈이 깊게 아롱거렸다. 한참 그렇게 있던 도현은 뜬금없이 말했다.
“정했어.”
“뭘?”
도현이 손가락을 들어 멀리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세 사람의 시선이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승마 클럽이 좋겠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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