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588)
#제588화. 어느 여름, 태양 (1)
따사로운 한낮. 대도시와 조금 떨어진 마을. 햇살이 통유리를 투과하는 일 층 카페. LP판이 돌아가면서 나는 경쾌한 재즈.
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릴 때면 주민들은 종종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페 사장, 로디는 도현의 앞에 커피를 놔주었다. 매번 유기농 녹차만 마시길래 내 카페는 원두 맛이 최고라며 권한 메뉴였다.
도현은 그의 시선 속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원두 향이 입 안에 가득 차올랐다가, 여운을 남기고 맴돌았다.
“어때, 내 말이 맞지?”
“그렇네요.”
어렸을 때부터 차 종류를 많이 접해서 그런지, 커피보다는 차를 즐기는 편이었다. 그런 도현의 입에도 로디가 내린 커피는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권유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때, 도현의 시야에 시내를 걷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동급생들이었다.
The bower lake school은 일주일 전에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그 탓인지 며칠 전부터 유독 시내를 돌아다니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집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 남은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두 명은?”
“뉴질랜드로 갔어요.”
“…뉴질랜드?”
도현이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촬영 때문에요.”
“너는?”
“저는 그 장면에 안 나와서.”
사실 따라갈까 생각도 했는데,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남기로 했다.
뉴질랜드까지 갔다가 오는 건 번거로운 일이기도 했고. 또 도현이 따라가면 스태프들은 일거리가 늘어나니까.
그런 이유로 인해 도현은 학교에 남았다.
방학이자, 휴일이었다.
“혼자 남아서 아쉽겠네.”
“그렇지도 않아요. 전 이 마을이 마음에 들거든요.”
“그러냐?”
로디가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 마을이 평화롭긴 하지.”
그는 며칠 전에 있었던 마을 최고의 반려견 대회에 대해서 떠들었다. 그의 옆집에 사는 윌슨의 강아지가 그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윌슨이 파티를 벌였고, 로디는 와인 한 병을 가져가 그를 축하해 주었다는 게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그때면, 촬영 중이었을 때네.’
물론 평일이라 늦은 시간에 마을에 나오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아, 그렇지. 잠깐 기다려 봐라.”
로디는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접시를 들고나왔다. 둥그스름한 윗면에 진한 초콜릿이 흘러내리는 도넛과 속에 블루베리 필링이 꽉 찬 크림 도넛이었다.
검은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 도넛은 갑자기 왜?
“기부의 밤 때 팔 도넛을 연구 중이거든.”
“기부의 밤이요?”
도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고, 로디는 ‘몰랐던 거냐?’ 하며 과장되게 놀란 척을 했다. 넉살스러운 사람이었다.
“매년 7월 말에 열리는 마을 행사야. 마을 길목에 가판대를 늘어놓고 물건을 팔기도 하고, 나처럼 가게가 있는 경우에는 ‘기부의 밤 참여 가게’라는 팻말을 걸어 놔. 참여를 희망한 사람이나 가게는 그날 매출의 반절 이상을 기부하는 게 원칙이란다. 나는 매년 그 행사에 참여했지. 작년엔 수제 푸딩을 특별 메뉴로 팔았는데, 아주 인기가 좋았어.”
“참여하는 사람이 많나요?”
“그럼. 가장 높은 매출을 달성한 가게는 표창장을 받거든. 그걸 가게 문 앞에 걸어두면 적어도 몇 달 동안은 매출이 높아져.”
“생각보다 세속적인 이유네요….”
떨떠름한 목소리에 로디가 껄껄 웃었다.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 그날 밤은 축제기도 하니까, 다 같이 즐기는 거지. 자, 그러니까 도넛 맛 평가 좀 해주겠니?”
“큰 도움이 될 거 같진 않지만….”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디가 도현의 앞에 접시를 내려주었다. 도현은 뜨거운 시선 속에서 초콜릿도넛을 한입 베어 물었다.
겉을 코팅한 초콜릿이 진한 단맛을 품고 녹아내렸고, 약간은 묵직한 빵이 입 안에서 쫄깃거렸다. 아몬드를 섞었는지, 중간중간 오도독 씹히는 것도 있었다.
맛있다.
“어때?”
코코아를 좋아하는 도현의 입맛엔 착 붙었다. 그러나 도현은 티 내지 않고 어른스레 말했다.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균형을 잡아주는 거 같아요. 초콜릿도 달기만 한 게 아니라 굉장히 고급스러운 맛이고요.”
“비싼 초콜릿을 썼거든! 음식의 맛은 재료로부터 나오니까 말이다.”
로디는 도현이 알아준 게 기쁜 기색이었다. 도현은 그의 재촉에 못 이겨 블루베리도넛도 먹어 보았다.
초콜릿도넛의 빵이 조금 묵직한 식감이었던 것과 달리 블루베리 도넛은 가볍고 푹신했다. 그게 달고 상큼한 블루베리 필링과 무척 잘 어울렸다.
도현은 도넛 위에 뿌려진 슈거 파우더가 입술에 묻었을까 싶어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로디가 그런 도현을 기대감 어린 눈으로 보았다.
“기부의 밤에만 팔기엔 아까워요.”
정말로 로디는 솜씨 좋은 제빵사였다. 로디는 껄껄 웃더니, 그래도 한나의 포도파이를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겸손을 떨었다.
한나의 포도파이라면 도현도 먹어본 적 있었다. 상담 날, 마샤 교장 선생님이 고양이를 맡아주기로 하고 받았던 파이가 바로 그 파이였으니까.
포도주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포도주로 파이를 만들면 그런 맛일까 싶은 깊은 맛이었다.
“작년 우승자도 한나였어. 한나 집에 가면 트로피가 잔뜩 있는 거 아니? 한나가 다른 지역에 가 있지만 않았다면 올해도 한 개가 더 늘었겠지.”
작은 마을이란 건, 서로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공동체 생활이 장점만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도현이 보기에 이 마을 사람들은 즐겁고 화목해 보였다.
“기부의 밤에 우리 가게에 한번 들르렴. 시식해 준 보답으로 도넛을 주마.”
“그때 제가 이 마을에 있다면요.”
“음? 어디 갈 곳이 있니? 휴가?”
“휴가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친구를 보러 가요. 한동안 머물다 올 거 같은데, 기간을 정하진 않았어요.”
“어디로 가는데?”
도현이 작게 웃었다.
“뉴욕이요.”
* * *
-삐익!
경쾌한 휘슬 소리가 울렸다. 푸르게 일렁이는 물 표면이 크게 출렁이더니,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물속에서 고개를 빼낸 소년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휴식!”
니콜라스는 유연하게 헤엄쳐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엉덩이를 걸쳐 앉자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수경을 벗고 있자니, 친구가 다가와 어깨를 쳤다. 밥을 먹으러 가잔 뜻이었다.
니콜라스는 몸을 일으켜 친구의 뒤를 따라갔다. 방학에도 나와 훈련하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도시락이 휴식 공간에 쌓여 있었다. 그것 중 아무거나 집어서 의자에 앉았다.
학기 중에는 새벽 훈련과 오후 훈련만 하다가, 방학을 맞이해 오전 오후 훈련을 하니 평소보다 피로가 쉽게 쌓였다.
니콜라스는 오후에 있을 장거리 수영 훈련을 대비하며 음식을 전투적으로 씹어 먹었다.
도시락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씻고 햄버거를 사러 나갔다. 대여섯 명의 소년들이 햇빛 아래를 걸으며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눴다.
“금요일부터 오프잖아. 뭐 할 거야?”
학교 수영부도 방학은 있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다음 주 일요일까지가 그랬다. 수영부 아이들은 저마다 학교에 오지 않는 날 무엇을 할 것인지 떠들어댔다.
누군가는 집에서 게임을 할 거라고 했고, 누군가는 가족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자랑했다. 여자 친구랑 만나기로 했다는 소년도 있었다.
이런 날 니콜라스는 보통 소속된 수영 클럽에 갔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리고 하루 정도는 컨디션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었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달라질 예정이었다.
“난 친구가 오기로 했어.”
“친구? 온다고?”
“불쌍하게도 시골 기숙 학교에 박혀 있거든. 그래서 우리 집에 오라고 불렀어. 난 일주일 동안 뉴욕 투어 가이드가 될 예정이야.”
“어디서 놀 건데? 나도 불러. 나도 다음 주 내내 집에 있을 거 같으니까.”
니콜라스는 자신의 친구가 이도현이며, 르옌 누바라의 배역을 맡은 배우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숨긴 건 아니었다. 그저 사방팔방 자랑하고 다니는 게 쿨하지 않아 보였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직 니콜라스의 특별한 친구에 대해서 아는 친구는 없었다.
“걔가 좋다고 하면.”
니콜라스의 친구, 벤터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았다. 그리고 주제는 또다시 넘어갔다.
니콜라스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에메랄드색 눈동자 위로 구름이 유유히 흘렀다. 소년은 눈가를 찌르는 갈색 머리카락을 대충 뒤로 쓸어 넘겼다.
‘금요일.’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니콜라스! 너 햄버거만 먹을 거야?”
와그작, 미간이 구겨졌다.
“좋은 말로 할 때 감자튀김이랑 셰이크도 시켜. 사이즈 업 해서.”
소년은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였고, 심지어 운동부였다. 그에게 제일 참을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바로 조금 먹는 거였다.
* * *
학교로 돌아온 도현은 기숙사로 가는 길에 마샤 교장 선생님과 마주쳤다. 산책하고 있었는지, 느긋하게 걷던 마샤가 도현을 보며 웃었다.
“기숙사로 가는 건가요?”
그렇다고 답하자 마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연스럽게 말했다.
“요즘엔 온실에 오지 않네요.”
“아.”
도현이 눈을 깜빡였다.
학기 중에 도현은 온실을 아지트처럼 삼았다. 거기서 연기를 하기도 했고, 이끼를 위한 연주회도 종종 열었다. 연주회의 횟수는 늘어서 이젠 제8회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 공간은 신시아와 로즈마리가 클럽 공간을 빌려준 것이었다. 신시아가 뉴질랜드로 떠나고, 로즈마리도 본가로 돌아가니 자연히 발걸음이 끊겼다.
“바이올린이 무척 듣기 좋았거든요. 괜찮다면 종종 온실에 들러서 연주해 주세요.”
막힌 공간이 아니니 들은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교장 선생님일 줄은 몰랐던 도현은 왜인지 민망한 기분에 목덜미를 쓸었다.
“제가 일을 방해했을까요?”
“설마요.”
마샤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요즘 아드리아나와 제 취미가 차를 마시며 온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를 듣는 거예요.”
심지어 아드리아나 선생님까지.
낯이 화끈해진 도현은, 그제야 왜 아드리아나가 날이 갈수록 친근한 눈빛을 보냈는지 이해했다.
“…나중에, 나중에요.”
“그래요, 그럼.”
가벼이 답한 마샤는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탄식을 뱉었다.
“요즘 마을에서 기부의 밤에 공연할 음악가들을 모집하고 있어요. 관심 있다면 도현도 지원해 봐요. 꽤 재밌는 경험이 될 거예요.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롭거든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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