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01)
#제601화. 어느 여름, 밤 (1)
“여기야?”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는데, 문틀을 구성한 목재와 한쪽 면을 차지한 유리창만 보아도 그 독특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네. 다녀올게요.”
“그래. 천천히 갔다 와.”
탁.
차의 문이 닫혔다.
도현은 건물 앞에 서서 문을 쳐다보다가, 짧은 숨과 함께 문고리를 돌려 밀었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실례합니다.”
“…….”
안에 아무도 없나?
의아해진 도현이 내부로 발을 들였다. 가게 안에 놓인 진열장에는 온갖 골동품이 가득했다. 발레리나가 우아하게 손을 뻗은 오르골부터 세월이 묻어나는 회중시계, 목재로 된 보석함 등등.
심지어 청화백자로 추정되는 도자기도 있었다. 도현은 저게 옛 중국의 것일지, 아니면 조선의 것일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일지, 가짜일지 속으로 고민해 보았다.
“누구슈?”
가게 안쪽에 방이 있는 건지, 뒤쪽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나왔다. 그는 멜빵바지에 조금 바랜 듯한 회색 셔츠를 걸치고 있었는데, 나이대를 추정하기가 어려웠다.
머리카락은 희었으나 안경 아래 주름이 진 눈은 선명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건 술병이야. 민간에서 만든 거고 그리 오래되지 않아 비싸진 않지. 그래도 수집하기엔 나쁘지 않아.”
술병이었구나.
“중국 건 아니야. 그건 더 화려하거든. 그 옆에 있는 접시가 일본 건데, 술병의 고향이 일본의 옆에 있는 나라….”
“한국이요?”
그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제야 도현의 얼굴을 제대로 눈에 담는 기색이었다. 긴가민가한 표정에 도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국인이에요. 미국인이기도 하고요.”
“그렇군. 그래서, 살 거냐?”
“음, 아니요.”
고개를 저은 도현이 그를 쳐다보았다.
“아론 마이어스 씨 맞으시죠?”
“그게 내 이름이긴 하다만.”
“축제 공연을 관리하신다고 들었어요.”
그가 안경을 한 번 더 추켜올렸다.
“참가자?”
“네.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아요.”
“흠….”
그는 눈으로 도현의 손가락을 훑었다.
그게 끝이었다.
갑자기 방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 아론에 도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된 건가, 안 된 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려니, 아론이 다시금 나왔다.
“그건….”
도현이 그의 손에 들린 명단을 보며 말하자 아론이 대답했다.
“공연자 명단.”
“아, 그렇군요. 거기에 제 이름을 적는 건가요?”
“그래. 내 팀에 들어올 거야.”
“…네?”
그 황당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지, 아론은 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이름이?”
“이도현이요. 미국식으로는 도현 리. 근데 저, 마이어스 씨.”
“스펠링이 D, O, H, Y, U, N. 이게 맞나?”
“네, 맞아요. 근데 마이어스 씨?”
“자, 옆에 사인하면 돼.”
“…….”
도현은 떨떠름한 눈으로 명단을 보았다. 거기엔 도현의 이름이 고풍스러운 필체로 적혀 있었다. 소년이 가만히 있자 아론이 안 하고 뭐 하냐며 재촉했다.
“그…. 마이어스 씨 팀에 들어가는 건 확정인가요?”
“다른 팀은 이미 꽉 찼어. 애초에 악기 연주하는 팀은 두 팀밖에 없거든.”
“아.”
“아니면 혼자 하려고?”
“아니,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냥 무슨 팀인지라도 간략하게 알고 싶어서요.”
축제 같은 느낌이라면 도현도 혼자 연주하는 것보단 같이 연주하는 게 더 좋았다. 그편이 분위기와 잘 어우러질 테니까.
다만 아무것도 모르고 휩쓸리듯 사인을 하게 되는 게 거부감 들었을 뿐이었다.
아론은 그런 도현의 얼굴을 보더니 따라오라고 말하며 등을 돌렸다. 도현은 엉겁결에 그를 따라갔다. 그는 아까부터 들락날락하던 방문을 열었다.
‘단순히 쉬는 방은 아니구나.’
나무로 된 책상에는 골동품과 수리 도구 같은 게 늘어져 있었다. 그 옆에 놓인 돋보기에, 도현은 평소 아론이 이 방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그는 도현을 책상 쪽이 아닌, 뒤편에 있는 소파 쪽으로 데려갔다. 얌전히 그 뒤를 따라가던 도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소파에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앉아 있었는데, 척 보기에도 무척 고풍스럽고 값져 보였다. 그리고 도현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반도네온?”
“호오?”
아론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도현을 보았다.
“보통은 잘 모르는데.”
“흔히 볼 수 있는 악기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건…. 조금 옛날 거 같네요.”
반도네온을 찬찬히 살펴보던 도현이 말했다. 그러자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리얼 넘버가 앞쪽에 있지.”
“그럼 불규칙 반도네온이겠네요?”
“그런 것도 아냐? 맞아, 음계가 제멋대로인 편이야.”
반도네온은 왼쪽에 33개, 그리고 오른쪽에 38개, 총 71개의 키가 있는데, 그 배열이 음계순으로 되어 있지 않았다.
최근에 생산되는 반도네온은 ‘규칙 반도네온’이라고 해서 음계순으로 배열하는 개량을 거쳤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오래된 모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상당히 연주하기 까다로운 악기였다.
“내 할아버지께서도 수집가셨지. 그분이 과거에 사두어서 진열장에 넣어놓은 걸 내가 졸라서 꺼낸 거야. 악기는 연주하라고 존재하는 거지 구경하라고 있는 게 아니니까.”
반도네온이 수집가들의 수집 목록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역사가 꽤 깊었다.
반도네온은 19세기 초, 독일에서 교회 음악을 위해 휴대용 오르간으로 만들어졌고, 이민자들의 손에 들려 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처음 반도네온을 접한 사람들은 당연히 반도네온도, 심지어는 악보를 볼 줄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반도네온을 연주할 수 있었다. 반도네온의 악보가 음표가 아닌 기호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악보에 적힌 기호와 버튼 위에 있는 기호를 하나씩 대조해 가면서 연주했다.
그렇게 반도네온은 아르헨티나에 전파되었다.
이 사실은 탱고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었는데, 본디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생겨나, 플루트나 기타로 연주되었다. 그만큼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 자리를 반도네온이 차지하며, 지금 우리가 아는 멜로디의 탱고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하여 반도네온은 아르헨티나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문제는, 정작 반도네온이 만들어진 국가인 독일에서는 반도네온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거지.’
결국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독일의 반도네온 제조 공장이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아르헨티나에는 반도네온을 만드는 곳이 아무 데도 없는 상황이었다.
희소가치를 지니고, 심지어는 그 만듦새가 무척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반도네온은 자연스레 수집가들에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반도네온을 골동품 수집하듯 사 가면서 아르헨티나 내의 반도네온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법안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아마, 이 반도네온도 그렇게 수집되어 넘어온 거 같았다.
“반도네오니스트셨군요.”
“그렇게 거창하게 불릴 정도는 아니야.”
반도네온은 하모니카에 주름 막을 붙여서 손으로 연주할 수 있게 한 악기라고 이해하면 쉬웠다. 하모니카는 입으로 숨결을 불어 넣는다면, 반도네온은 손으로 숨결을 불어 넣는다.
진열장에서 골동품 취급을 받던 악기가 아론의 손에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연주할 곡은 탱고겠네요?”
“그래.”
“제가 바이올린을 켜니까 팀에 넣으신 거고요.”
“맞아.”
아론이 물었다.
“요즘 젊은 애들은 탱고 음악을 늙은 사람의 음악이라고 싫어하던데. 너도 그런 편이냐?”
“아니요. 지금 아론 씨를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쁜걸요.”
도현이 눈꼬리를 접으며 환하게 웃었다.
“명단에 사인할까요?”
* * *
“오스카, 오래 기다렸어요?”
조수석에 타며 미안한 기색으로 묻자 오스카가 고개를 저었다.
“별로.”
그래도 도현은 죄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명단에 이름만 적으면 될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십 분 가까이 흘러버린 것이다.
“괜찮다니까. 그나저나 뭐 하고 온 거야?”
“마을에서 축제를 연다고 해서요. 공연에 참여하려고 명단에 이름을 적고 왔어요.”
“축제? 공연?”
“기부의 밤이라는 행사래요. 그냥 마을 사람들끼리 즐기는 가벼운 무대고요.”
“뭐, 그래. 그런 건 괜찮긴 한데…. 뭘 하려고?”
“바이올린이요.”
“아.”
오스카가 깨달은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Thirteenth’를 들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도현이 제법 능숙한 연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괜찮네.”
“괜찮아요?”
“응. 심지어 기부의 밤이라며? 기부 행사면 네 이미지에 플러스면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니거든. 이런 마을 행사면 소박한 이미지도 생길 테고.”
“음, 그런 목적은 아니지만….”
“겸사겸사. 좋은 게 좋은 거지.”
도현은 결국 ‘그렇긴 하죠.’라고 말하며 웃어버렸다. 오스카가 차를 뒤로 빼내어, 학교로 향하는 도로에 진입하면서 물었다.
“그럼 뭘 연주할 건데?”
“탱고 음악인데….”
“탱고?”
그가 의외라는 투로 말했다.
확실히, 열셋의 소년이 하기엔 의외인 곡 선정이긴 했다. 도현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곡인지는 아직 몰라요. 기존에 있던 팀에 제가 들어가게 된 건데….”
도현이 명단에 사인하자, 아론은 연습 날짜와 시간만 알려주고는 도현을 내쫓았다.
곡명이고 뭐고 물을 새도 없었다.
“그, 말씀을 안 해주셔서요.”
“그게 뭐야.”
오스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가끔은 허당 같다니까.’
오스카는 도현이 들었더라면 억울함을 느꼈을 법한 생각을 하며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차가 속력을 내며 학교로 통하는 길에 들어가자 눈앞에는 도로와 나무밖에 없었다.
“그럼 연습은 언젠데?”
도현은 이 질문만큼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목요일이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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