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29)
제629화. 홈커밍 위크 (8)
양궁 클럽의 상황은 이례적이다.
부원과 클럽 활동 공간이 존재하는데 여전히 ‘임시’의 딱지를 떼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 그랬다. 이대로는 축제 관리를 담당한 선생님을 찾아가도 허가가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교장실로 갔다.
“부스를 열고 싶다고요?”
자초지종을 들은 마샤는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드리웠다.
그리고 허락이 맥없이 떨어졌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이렇게 간단히요?”
“그러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게 아닌가요? 학생의 기대는 충족해 줘야죠. 기획서를 작성하는 대로 가져와요. 명단에 올려줄게요.”
세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샤에게 차를 한 잔 얻어 마시고는 교장실을 나왔다.
아이들을 배웅한 마샤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다정하기도 하지.
원해서 맡은 자리가 아닌 만큼 대충 해도 탓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도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행하고자 했다.
마샤의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서건 새로이 부원이 된 아이들을 위해서건, 그걸 다정함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쉬워지겠어.”
마샤의 역할은 품 안에서 아이들을 보호했다가 때가 되면 보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어쩔 길 없이 아쉬워지고는 했다.
“네 말이 맞았네. 이렇게 간단할 줄이야.”
카인의 말에 밀리나가 동감했다.
두 사람은 본래 스미스 선생님을 찾아가려고 했다. 그가 축제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교장실로 가자고 말했다.
그 결과, 속전속결이었다.
도현이 작게 미소했다.
“뭐든지 최고 권력자를 찾아가는 게 제일 빠르니까.”
밀리나는 도현이 영화에 종종 나오는, 흉계를 꾸미는 인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인은 그조차도 멋있어 보이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은 걸으며 기획서를 어떻게 작성할지 논의했다.
하지만 조금 뻔한 일이었다.
“양궁부가 축제 부스에서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어. 양궁 체험밖에 없지. 아, 과녁별로 점수 매겨서 상품 주는 것도 추가하면 참여율이 높지 않을까?”
카인의 의견에 도현과 밀리나, 두 사람 다 동의했다.
“그럼 점수를 어떻게 매길지, 어떤 상품을 준비할지만 정하면 되겠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카인은 유명 축구 선수의 친필 사인이 그려진 축구공을, 밀리나는 유용한 교양서적이나 세미나 관람 표를 주장했다. 도현은 겉보기엔 예쁜데 딱히 값어치는 없는 것들로 구성하자고 했다.
“어차피 심심풀이로 체험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 딱 그 정도로, 가벼운 심정으로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구성하면 좋을 거 같아. 인형 뽑기 기계가 수요가 있는 게 그 인형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 기분을 낼 수 있기 때문인 것처럼.”
그렇게 상품은 값어치는 없지만 겉보기에 예쁘고 축제를 추억하기 좋은 것들로 결정됐다.
논의는 적당히 빈 교실에 들어간 후 계속 이어졌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엔 시곗바늘이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밀리나가 말했다.
“좋아. 오늘 얘기한 것들로 정리해 볼게. 혹시 기획서 제출하기 전에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 있어?”
카인과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정리해서 제출하고 알려줄게. 이의 없지?”
“응.”
긍정한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돌아갈 때였다. 그런데 카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서 괜히 미적댔다. 그 이상한 행태를 보던 도현이 먼저 물었다.
“왜 그래?”
“큼, 네 촬영이 끝났다니까 하는 말인데.”
“응? 응.”
“우리가 원래는 임시였지만… 아니, 지금도 사실 임시지만. 그래도 축제 부스까지 여는 클럽인 건 맞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정식 활동을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데….”
도현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그가 말하는 ‘정식 활동’이란 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기적인 모임을 하자는 건가?
“어떤 활동을 말하는 거야?”
“양궁부니까 당연히 모여서 활을 쏘겠지. 그런데 내가 말하는 건 이게 아니라, 음, 너도 알다시피 다른 클럽에 새로운 부원이 들어오면 기존 부원들이 이것저것 알려주잖아? 물론 우리는 신생 클럽이라 다 같은 기수이긴 해도….”
그는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다가 멈추었다. 스스로 두서없다 느꼈는지 잠깐 민망한 표정을 짓던 카인이 본론을 꺼냈다.
“혹시 우리한테 활 쏘는 법을 알려줄 수 있어?”
‘우리’라는 말을 정확히 인식하기도 전에 밀리나가 말했다.
“나도 너한테 배우고 싶어.”
“…….”
일순 검은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그 동요를 오해한 밀리나가 떠오른 생각을 고스란히 언어로 옮겼다.
“사실 너는 우리를 뽑은 후 지금까지 한 게 없잖아. 신입생한테 홍보하는 것도 나랑 쟤가 했지. 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임시 부장이면서.”
그녀가 툭툭 뱉는 말이 도현의 가슴께에 콕 꽂혔다. 깜짝 놀란 카인이 밀리나를 말렸다.
“그, 그래도 오늘은 쟤가 먼저 말 꺼냈고….”
“아니야, 카인. 괜찮아. 밀리나 말이 맞아.”
도현은 자신을 변호하려던 카인을 제지했다.
사실이 그랬다.
양궁 클럽은 ‘임시’라는 딱지 탓에 한 번도 정식 활동을 한 적이 없다. 또한 클럽으로 개설될지 방과 후 활동으로 전환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초청된 강사도 없다.
즉, 저 두 사람은 내내 방치된 것이다.
도현은 당혹스러운 심정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동안은 어떻게 했어?”
“그냥…. 부실 가서 활 좀 구경하다가 화살도 한번 보고…. 몇 번 시위에 걸어서 쏴보려다가 잘 안되길래 포기를….”
“…….”
도현이 애석한 침묵에 잠겼다.
카인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랑 얘 둘이서 해보려고 책도 뒤적거렸는데, 쉽지 않더라고. 네가 하는 것처럼은 절대 안 되더라? 막 너처럼 휘익, 탁! 멋있게 과녁을 꿰뚫고 싶은데.”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잠시 어떻게 얘기할지 가늠하던 도현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하루에 한 시간. 주 5회, 어때?”
“하, 한 시간? 그것도 매일?”
“주말을 빼니까 매일은 아니지.”
카인이 당황으로 눈가를 찡그렸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다고? 갑자기?”
“…일단은 활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니까. 시위를 당기려면 근력도 필요하고. 가장 빠른 방법은 꾸준하게 하는 거야.”
도현이 차분하게 말했다.
“힘들겠지. 알아. 나도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이런 일정을 제안하지는 않았을 거야. 내 말은, 내가 여기에 계속 있을 수 있었다면 말이야.”
밀리나가 미간을 좁혔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나중에 부담스럽다거나, 힘들다고 말할 거면 차라리 지금 얘기해.”
도현이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내가 너한테 신뢰를 주지 못한 건 알겠어.”
“아니, 뭐. 그 정도까진….”
“네 말대로야. 난 그동안 양궁부원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했어. 나태하게 굴었다고 생각해. 솔직히, 한심하네.”
“…그렇게까지?”
밀리나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평소 성격대로 쏘아붙인 그녀는 도현이 억울해하거나 불쾌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진 건 자기 고백이었다.
“그래서 내가 덜 한심하도록 너희가 도와주면 좋겠어. 이제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거든. 그래 줄 수 있을까?”
카인이 어떡하냐는 눈빛으로 밀리나를 보았다.
그때 조곤조곤 말하던 도현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의 새카만 눈동자는 형광등에 반사되었음에도 다른 색이 섞여 들지 않았다.
부드럽고 단호한 시선에 밀리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도현은 의견을 물은 게 아니었다. 어차피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녀의 망설임이 녹아내렸다.
“좋아.”
도현이 화사하게 웃었다. 어딘가 흡족한 낯빛이었다.
* * *
“아, 네이선!”
반가움이 깃든 목소리에 네이선이 뒤를 돌아보았다.
복도 창문 너머로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도현이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에 빛과 그늘이 번갈아 졌다. 네이선의 얼굴에도 화색이 번졌다.
“도현.”
도현이 상쾌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디 가는 길이야? 도서관?”
“으응. 이 책을 반납하러….”
“무슨 책인데? 아, 그거. 나도 읽을까 고민하던 건데. 어때?”
“아, 안 읽어봤어? 재밌는데….”
“그래? 그럼 나도 읽어 봐야겠다.”
그들은 복도 중간에 멈춰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네이선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엄청 편안해.’
쌍둥이인 셀린과 달리 네이선은 사람을 사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다. 낯가림이 심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화려한 소년과 빠르게 가까워진 게 신기했다.
게다가.
“그, 대본 있잖아. 조금 수정했거든. 그래서, 어, 괜찮다면… 한번 볼래?”
도현이 눈을 반짝였다.
“진짜? 봐도 돼?”
“응. 봐주면 좋겠어….”
도현은 좋은 독자였다.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 봤던 경험 덕분인지 종종 네이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네이선은 대본을 수정하고 도현에게 보여주는 것에 중독되었다.
알치는 그러다가 대본을 빼 가면 어떡하냐고 성을 냈지만, 네이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작 내가 쓴 건데.’
그걸 빼 가서 어디에 쓰겠는가.
네이선은 자신의 대본이 채택된 것에 셀린의 쌍둥이라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셀린이 연극부의 부장이니까, 부원들이 네이선의 대본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여 준 것이다.
알치가 그토록 초조해하는 이유도 대본이 믿음직스럽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의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말이다.
맞아, 알치도….
네이선은 방금 한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네이선? 무슨 고민 있어?”
“…아, 아니. 알치 때문에.”
도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이선은 걱정을 덜지 못한 낯으로 말했다.
“알치가, 너무 열심이라….”
“열심히 하면 좋은 거 아니야?”
“조금 과하게 열심히 해서….”
“아.”
도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게. 그건 좀 문제네. 적당히 컨디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호, 혹시 네가 말해줄 수는….”
“음, 미안. 그건 어려울 거 같아. 그 애가 내 오지랖을 반길 거 같진 않아서.”
네이선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이 조금 난처하게 물들었다.
리허설 이후로도 연극부와 도현은 종종 마주쳤다. 가끔은 같이 간식을 먹으러 가거나, 피드백 요청에 응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알치는 족족 딴지를 걸어 부원들을 난감하게 했다.
“알치가 널 싫어하는 건 아니야. 그냥 요즘 예민해져서 그래. 우리도 주의는 주고 있는데….”
“알아. 나쁜 애라고 생각하지 않아. 무엇보다 연기에 진심이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도현이 도리어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일 리가 없잖아?”
네이선은 이 친구도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대본은 지금 가지고 있어?”
네이선이 당황했다.
“지, 지금은 없어.”
그러나 도현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럼 내일 가져올래? 너만 괜찮다면 그때 볼게. 나도 지금은 가야 할 곳이 있거든.”
네이선의 얼굴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그는 이 시간에 종종 바삐 걸어가는 도현을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사실 마주칠 때마다 도현은 늘 할 일이 있었다. 그가 가끔가다 연극부를 위해 내어주는 시간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네이선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 가는데?”
도현이 눈매를 휘었다.
“클럽 활동하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