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31)
제631화. 홈커밍 위크 (10)
활이 손에 익지 않아서 각도 조절을 잘못했다. 도현은 아쉬워하면서도 금방 미련을 털어내고 카인에게 활을 돌려주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보이는 상황에 이마를 짚었다.
“어때, 멋있지?”
“막 쏘고 싶은 욕구가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지 않아?”
네이선의 양어깨에 팔 한 짝씩 걸친 밀리나와 카인이 그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가운데에 낀 네이선은 가엾은 햄스터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침묵하던 도현이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얘들아, 그만 괴롭히고 놔줘.”
카인이 쩝, 입맛을 다셨다.
“에이, 아직 덜 꼬셨는데.”
그가 느릿느릿 떨어졌다. 밀리나는 미련이 남는지, ‘난 널 괴롭힌 게 아니야. 너한테 그 정도로 관심이 있지는 않다고. 알겠어?’라고 경고인지 변명인지 모를 것을 하고 있었다.
“밀리나.”
“아, 놓을 거야.”
밀리나가 혀를 찼다. 그녀는 완전히 손을 떼기 전 ‘내 말 이해했지?’ 하며 어깨를 짧게 쥐었다가 놓았다.
꼭….
꼭, 건들거리는 양아치 같았다.
네이선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카인과 무표정한 밀리나가 자연스레 도현의 뒤에 와서 섰다. 네이선의 창백한 낯이 도현에게 향했다.
“…그거 아니야. 뭘 생각했든 아니야.”
갑자기 부정하는 도현을 밀리나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대충 ‘쟤 왜 저래’ 정도일까? 도현은 터지려는 한숨을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또 와!”
정기 활동이 끝나고 도현이 네이선과 함께 부실을 나서자 카인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하하…. 네이선은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며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도현은 네이선과 함께 연습실로 향했다.
카인과 밀리나, 두 사람은 더 남아서 활쏘기 연습을 하다가 가기로 했다. 그들은 요즘 도현이 떠나기 전에 10m로 넘어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도현은 자박자박 걸으며 조용해진 네이선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 네이선. 부담스러웠지.”
“응? 아, 아냐. 괜찮아.”
“눈치챘겠지만, 우리가 부원 수가 부족해서….”
식사모의 경우, 희귀 식물을 구하지 않는 한 활동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양궁부는 예산이 많이 필요했다.
활부터가 비쌌고, 화살과 화살촉은 소모품이라 주기적으로 바꿔주어야 했다. 둘 뿐인 클럽에 지원해 주기엔 어려운 것들이었다.
“음, 그래서 적극적인 상태야.”
그리 말하는 도현의 표정은 조금 미묘했다.
‘왜 부원을 못 모았는지 알 것 같아….’
안타깝게도, 카인과 밀리나는 적극성과는 별개로 모집에 재능이 없었다.
“난, 난 괜찮아. 멋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 그럼 들어올래?”
“그건 좀….”
네이선이 곧장 대답하자 도현이 작게 웃었다.
“은근히 단호하네.”
“혹시 기분 나빴어?”
“아냐, 그런 건 아니….”
웃음기 어린 채 말하던 도현이 말끝을 흐렸다. 새카만 눈동자는 네이선이 아닌 앞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이들도 도현을 발견했다. 그중 한 명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라비니아.”
라비니아 로페즈.
부유한 로페즈가의 금지옥엽이자, 도현에게 클럽 가입을 제안했던 골든이글 멤버.
중간에 아이덴이 개입하게 되면서 클럽 건은 흐지부지하게 끝이 났었다. 의외인 건 라비니아가 별로 불쾌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도현을 마주칠 때면 먼저 아는 척을 해오고는 했다.
오늘도 그런 것뿐이었다.
그녀가 헤레이즈와 아이덴, 시몬, 레슬리까지 함께 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디 가는 길이야?”
“그냥, 연습실에요.”
“라비니아. 저놈이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이야?”
레슬리는 여전히 도현을 싫어했다.
그는 카페테리아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라비니아의 화를 샀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딴죽을 걸었다.
그때 라비니아가 손뼉을 쳤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너 전학 간다며?”
레슬리의 발언은 완전히 무시한 채였다. 뒤에서 씩씩대는 레슬리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도현만 응시했다.
“왜 가는 거야?”
“정확히는 돌아가는 거예요. 편입이 아니라 교환 학생으로 왔던 거라서요. 촬영 때문에 온 거니 끝난 지금은 돌아가야죠.”
“할이 아쉬워할 텐데.”
“딱히 그렇진 않아.”
떨떠름히 말한 헤레이즈는 도현과 눈을 마주치곤 눈꺼풀을 한번 깜빡였다. 도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골든이글과 있을 때는 이렇게 눈짓으로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는 편이었다.
“그렇구나. 그럼 언제 가?”
라비니아의 호기심이 길어질수록 아이덴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죽일 듯이 노려보는 레슬리도 그렇고. 어째서인지 골든이글과는 다 안 좋게 엮이는 거 같았다.
…음, 아니지. 헤레이즈는 제외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라비니아와도 딱히 나쁘진 않았다. 도현은 괜히 제게 화풀이하는 소년을 무시하며 라비니아에게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홈커밍 위크가 끝나면요.”
“그래? 파트너는 정해졌어?”
그녀의 물음에 도현이 피식 웃었다.
결국 라비니아가 보이는 관심은 이 정도였다.
“저는 8학년이라 파트너가 필요하지 않아요.”
“아, 그러니?”
“네.”
간단히 대답한 도현은 시선을 조금 돌려 당연하게 그녀의 옆자리에 선 시몬 맥어보이를 보았다.
그는 도현과 한 마디도 섞어본 적 없음에도 여러모로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를 볼 때면 반사적으로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을 장난감처럼 여기던 모습이.
그게 무척 충격적이었던 탓일까?
도현은 아직도 그 상황을 잊지 못했다. 그 기억은 도현의 교우 관계와 학교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 광경을 보았기에 헤레이즈와는 다른 선택을 한 거니까.
도현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헤레이즈는 라비니아를 보고 있었다,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라비니아는 누구와 파트너를 할까?
라비니아, 시몬, 헤레이즈. 세 사람의 분위기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혹시 헤레이즈는 라비니아를 좋아하는 걸까? 딱히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데….
‘…관심 두지 말자.’
도현은 생각을 끊어냈다. 남의 연애사에 끼는 건 한 번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헤레이즈는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는 명석한 소년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라비니아.”
도현이 이만 가보겠다고 말하려던 찰나였다.
“승마 클럽은.”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도현은 상대를 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덴은 멀쩡해졌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흠 없이 완벽했다. 그가 평소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자 소문도 점차 가라앉았다.
“축제에 참여하기로 정했을까?”
“…아니요.”
“아아. 말 때문인가.”
대답을 듣자마자 이유를 짐작한 아이덴이 가늘게 웃었다. 대답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는 아이덴은 기숙 학교 학생들이 아는 아이덴 커티스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쉽겠네. 마지막인데.”
“괜찮아요. 양궁부가 참여하거든요.”
“아하.”
아이덴은 본인이 말을 걸어놓고는 예의상이었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굴었다. 도현은 대화가 마무리될 때라는 걸 깨닫고 목을 짧게 까딱였다.
“할 일이 있어서요.”
“응. 또 봐.”
라비니아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다. 도현은 웃음으로 화답한 후 네이선을 챙겨 그들을 지나쳤다.
레슬리가 슬쩍 발을 내미는 유치한 짓을 했지만, 신발 앞코를 약하게 밟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뒤에서 욕설을 퍼붓는 것을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도현은 자신을 향하는 욕설에 어깨를 움찔거리는 네이선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속으로 짐작했다.
이게 그들과 마주하는 마지막이리라는 것을.
* * *
9월 13일.
“엄마, 저기!”
홈커밍 주간은 학교에서 개최하는 축제 중 가장 긴 행사였다. 늘 단단히 닫혀 있던 철문을 열고 외부인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호수 아래 지어진 명문 학교는 꽤 유명해서, Bower Lake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근처 마을 사람들도 놀러 왔다.
그리고 올해는 유난히 북적거렸다. 이 학교에 패스파인더의 주연들이 다닌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손짓한 곳에는 늘씬한 소년이 서 있었다.
아이의 보호자는 탄식했다.
“토니, 형 누나들 옷 좀 봐. 멋있지 않니?”
그들의 복장은 국적을 딱 집어서 말할 수 없이 독특했다. 검은 옷을 위아래로 입고 워커를 신었으며, 가슴과 팔에는 검은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바지에는 주머니가 많이 달려 있었다.
현대적인 듯 판타지적인. 히어로 영화의 활잡이나 패션에 관심 많은 젊은 사람들이 입을 법한 옷이었는데, 그걸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건 위에 걸친 화려한 장포였다.
어느 나라의 복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동양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중 소년은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붉은색 장포를 걸친 채였는데, 소매 아래로 받쳐 입은 검은색 티가 언뜻 보였다. 그녀가 소년과 눈을 마주친 건 다음 순간이었다.
소년이 눈매를 둥글게 휘었다.
“체험하고 싶나 봐요.”
“어, 네?”
여자는 반사적으로 말을 더듬었다. 소년은 개의치 않으며 허리를 조금 숙였다. 거기엔 ‘우와’ 하며 입을 벌린 아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아들분이요. 아들 맞죠? 관심 있는 거 같아서요.”
아. 나 말고 토니 말하는 거였구나….
여자는 민망함에 볼이 조금 붉어졌다. 큼, 헛기침한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아들 맞아요. 토니예요. 토니, 형한테 인사해.”
“안녕하세요!”
“그래, 토니. 안녕. 혹시 활 쏴보고 싶니?”
“네!”
소년은 잠시 동의를 구하듯 여자를 쳐다보았다.
“괜찮을까요?”
“어, 위험하지만 않으면….”
“장난감 활 코너도 있어요. 레크리에이션용 활과 화살을 사용해요. 토니가 다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 그렇다면….”
여자는 홀린 듯이 소년을 따라갔다.
소년을 따라간 부스에는 멀리서도 눈에 띄었던 두 사람이 다른 손님을 상대하고 있었다. 여자애는 짙은 남색의 장포를, 남자애는 금색의 장포를 걸친 채였다.
“양궁부인가요?”
“네. 맞아요.”
“이 옷은 어느 나라 건가요?”
그녀의 질문에 토니가 쓸 활을 고르던 도현이 멈칫했다.
그리고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한국이요. 제 또 다른 고향이기도 해요.”
“한국이었구나! 옷이 너무 멋있어서 멀리서도 보이는 거 있죠?”
도현은 더더욱 민망해졌다.
‘그냥 체육복 입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손님 몰이가 안 된다며 ‘화려한 복장!’, ‘그 누구보다 화려한 복장!’을 강력히 주장한 두 사람 때문에 국적 불명의 차림새가 되었다.
그들이 위에 걸친 건 곤룡포였다.
이것도 채택된 사연을 말하자면 말이 길어졌다. 어찌 되었건 가장 화려한 것을 찾아내었다는 게 핵심이었다.
표정을 갈무리한 도현이 어린 소년을 보며 활짝 웃었다.
“자, 토니. 네가 쓸 활이야. 잡아볼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