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46)
제646화. 홈커밍 위크 (25)
[미안. 잘 막아보려고 했는데 사진을 찍어 간 사람이 있는 거 같아.]오전 9시.
10시에 시작될 클럽 부스를 준비하느라 부실에 와 있던 도현은 문자를 확인했다. 피어스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피어스에게서 문자가 온 것으로 보아 셀린은 바쁜 것 같았다.
가벼이 상황을 짐작한 도현이 핸드폰을 톡톡 두드렸다.
[안녕, 피어스. 영상은 없지?]클럽 활동 기록 차원에서 무대를 촬영하기는 했다. 하지만 별일이 없는 한 영원히 부실 책장 한편에 잠들어 있을 예정이었다.
명예 부원이니 뭐니 해도, 완전히 부원인 건 아니니까.
[어. 사진이 전부야.] [그럼 괜찮아.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무대에 집중해.]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돌아왔다.
[고맙다. 저녁에 보자.]도현이 미미하게 웃었다.
저녁엔 연극부의 무대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도현이 빠진, 그들이 진정으로 준비했던 온전한 무대를.
“뭐 해?”
“그냥.”
도현이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제 무대 사진이 돌아다닌다길래.”
“맞아! 그거!”
카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안 그래도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현이 아침부터 너무 바빠 보여서 잠깐 미루긴 했지만.
생각해 보아라.
같이 점심 먹으러 가려다가, 활을 잘 쏠 거 같은 이름의 예비 부원이 다급해 보이길래 너그러운 심정으로 도현을 양보했다.
물론 너그럽기만 한 건 아니고 사심도 조금, 아주 조금 있었다.
그들이 기대한 소식은 파릇파릇한 신입이었다.
하지만 들려온 소식이 뭐였던가?
옥수수구이를 우물대던 두 사람은 도현이 연극에 섰다는 얘기를 접하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냥, 어쩌다 보니?”
“뭐? 그게 뭐야.”
불친절한 설명 탓에 시선이 따가웠다.
도현이 손가락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손끝에 어설프게 가려진 입매는 웃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정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 일단 나도 네이선이랑 부실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도현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 말해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현은 양궁부원이고, 카인과 밀리나 입장에서는 부장 비스름한 애가 갑자기 다른 부에 가서 활개를 치고 온 거니까.
음, 그러니까….
“축약하자면, 빈자리를 메워준 거야.”
“…너무 축약했는데?”
하하, 도현이 웃었다.
“그게 전부인걸. 그냥 네이선을 도와줬다고 생각해.”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거 티 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더 물어보기를 포기했다.
뭐 어쩌겠는가?
친분이 있어서 도와줬다는데.
물론 도와달라 했다고 당일 무대에 오르는 담대함은 여러모로 떨떠름하긴 했다. 쟨 대체 뭐 하는 애지. 간이 철판으로 되어 있나? 그냥 없는 거 아니야? 등등….
그러나 그것도 곧 수그러들었다.
‘그래, 쟤니까.’
도현과 붙어 다니며 그들은 놀라움을 여러 번 경험했다.
활을 영화 촬영을 위해서 배우기 시작했다든가, 그럼 적당히 자세만 잘 잡으면 될 텐데 기어이 주니어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의 실력을 쌓은 거라든가.
밀리나는 문득 도현을 보았다.
그는 어제와 달리 하얀 체육복을 위아래로 걸친 채였다. 흰색의 긴바지와 지퍼 달린 겉옷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겉옷의 지퍼는 끝까지 올린 상태였다.
밀리나와 카인도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밀리나는 지퍼를 열었고 카인은 겉옷을 허리춤에 묶었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
이는 오늘 아침에 도착한 양궁부원 활동복이었다.
오전 아홉 시면 그리 이른 시각은 아니었다. 충분히 푸른 기를 걷어낸 햇살이 활동복 수량을 확인하는 도현의 등을 덮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햇살 탓에 반짝거렸다.
기록부에 무언가 적은 도현이 몸을 일으켰다.
“수량은 맞네. 나중에 더 필요하면 추가로 주문하면 되겠다.”
밀리나는 저 기록부에 부실의 모든 물품이 정리되어 있고, 또 어느 주기로 이를 바꿔주어야 하는지,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 좋은지까지 다 쓰여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도현이 이 학교에 온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어렵사리 기억해 냈다.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저 애가 학교에서 가지게 된 의미나 입지를 생각한다면 더욱이.
이젠 카페테리아에 가면 골든이글과 묘하게 거리를 둔 테이블에 자신의 무리와 앉아 있는 도현의 모습이 일상이었다. 레슬리와 종종 시비가 걸리는 모습도, 그를 흠모하는 몇몇 학생들이 몰래 승마장에 구경하러 가는 것도.
하지만 밀리나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토록 사소한 일까지도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이 정도 흔적도 남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녀는 네이선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녀 역시 도현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해 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무대 사진이 돌아다닌다는 건?”
“응, 어제 촬영 금지했는데도 찍어 간 사람들이 있었나 봐.”
“그래도 괜찮은 거야?”
“뭐…. 연극부가 조금 곤란하긴 하겠지만.”
도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뻐근한 목을 풀고선 말했다.
“이제 나갈까? 슬슬 부스에 가야지.”
카인과 밀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각자 박스 하나씩 들고 부실을 나섰다.
도현은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얀 햇빛이 꽤 강렬했다. 하지만 그만큼 따뜻한 온기에 찡그렸던 눈가가 금방 느슨히 풀렸다.
날씨가 좋았다.
오늘은 순조로울 거 같았다.
* * *
하지만, 세상만사가 언제부터 뜻대로 돌아갔던가.
천막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설치할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오전 10시가 되어 야심 차게 천막을 걷었을 때도 아마 괜찮았을 것이다.
“도현!”
“여기 봐줘요, 르옌!”
“이도현! 내 왕자님! 너 보려고 여기까지 왔어!”
탁!
스르륵.
열었던 천막이 도로 닫혔다.
“…….”
“…….”
“…….”
셋만이 남은 천막 안에 침묵이 흘렀다.
누가 순조롭댔지?
나인가? 나야?
얼이 나간 도현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데, 밀리나가 미묘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 왕자야?”
도현이 정색했다.
“그럴 리가.”
왕자라니. 어렸을 때나 들어본 별칭이었다.
즉, 도현은 모르고 있었다. 한국 외의 나라에서 팬들이 그를 ‘Ice prince’, ‘Snow prince’ 같은 말로 지칭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선 호칭은 그의 차가운 분위기 때문이었고, 백설 공주의 짝퉁 같은 별명은 그의 배역, 르옌 누바라의 머리카락이 하얗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도현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카인이 비명처럼 외쳤다.
“괜찮다며!”
그에게 멱살이 잡힌 도현이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나도 괜찮을 줄 알았지….
물론 무책임한 소리란 걸 알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제 무대 사진이 화제가 된 거면 연극부에 몰리는 게 맞을 텐데….
“으음….”
“어떻게 할 거야, 이제!”
탈탈 털리면서도 도현은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뭔가 있다. 내가 간과한 뭔가가 있어.
그런데 그게 뭐지?
도현은 시선만 도륵 굴려 닫힌 입구를 응시했다. 살짝 열린 틈새 사이로 시장통처럼 북새를 이루는 바깥이 보였다. 이런 비슷한 풍경을 본 적 있었다.
그러니까, 여름 방학에.
“…아.”
짧게 신음한 도현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카인은 지금 느긋하게 핸드폰이나 볼 때냐며 그를 구박했지만, 도현은 꿋꿋하게 할 일을 했다.
그리고.
“…찾았다.”
“찾아? 뭘?”
도현은 말없이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카인은 멱살과 핸드폰 중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호기심에 못 이겨 핸드폰을 선택했다.
“나도 같이 봐.”
밀리나는 카인 옆에 붙어 조그만 화면을 보았다. 도현은 조금 슬퍼졌다. 구겨진 종이봉투처럼 땅에 떨어진 자신에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때, 밀리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거.”
다음 순간, 핸드폰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 토니, 잘했어!
– 엄마!
청량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무척 훈훈한 동영상이었다.
초반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잡아준 소년의 얼굴이 무척 잘생겼다는 점과 아이가 명중에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아이와 엄마의 귀여운 포옹까지.
거기까지만 해도 네티즌이 좋아할 만한 요소는 충분히 갖췄다. 금방 입소문을 타서 쇼츠로 여기저기 날아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그 잘생긴 소년이 할리우드 배우다. 심지어 전통 복식으로 보이는 강렬한 곤룡포를 입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나 예능 촬영이 아니라 학교 축제에서 찍혔단 게 정점을 찍었다.
유명한 배우의 소탈한 모습이라니!
그것도 아이의 양궁을 도와주는 훈훈한 모습!
거기에 도현의 배역인 르옌이 궁수라는 점까지 합쳐지면, 오늘 같은 화력이 완성된다.
도현의 차분한 설명을 들은 밀리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네 탓이라는 거잖아.”
“…….”
반박할 수 없었다.
밀리나가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저 사람들이 너 있는 거 봤으니 도망치기도 그렇지?”
“응….”
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남은 이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그럼 오늘은 어떻게든 해보고, 내일부턴 나랑 카인 둘이서 부스 운영할게.”
“미안해.”
“됐어. 어쨌든 홍보는 넘치게 된 거 같으니까. 너무 넘친 게 문제지만.”
도현은 할 말이 궁하여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고요하지 않은 침묵이 찾아왔다. 물론 이유는 바깥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이었다.
천막이 들썩거렸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천을 걷고 안에 들어올 거 같았다. 세 사람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렸다.
카인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할 수 있겠지?”
도현도, 밀리나도 대답해 주지 못했다.
* * *
쿡.
로즈마리가 나뭇가지 끝으로 흰 덩어리를 찔렀다. 미동이 없었다.
그녀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죽었네.”
“…살아 있어.”
칫. 혀를 차는 소녀에 헛웃음 지은 도현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늘어난 옷하며,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느라 붙은 풀잎까지. 아침만 해도 단정했던 몰골이 엉망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니, 안 물을게.”
헤레이즈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건들지 말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