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49)
제649화. 홈커밍 위크 (28)
헤레이즈는 골치가 아팠다.
“그러니까 이 밤에 찾아온 이유가….”
“응,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뭐가 고맙, 아니. 다음 날 말한다는 선택지는?”
“고려하긴 했는데, 역시 지금 말하고 싶어서. 내일은 가야 할 곳도 있고…. 그리고 헤레이즈, 넌 이 시간에 안 자잖아.”
헤레이즈는 그의 수면 시간과 갑작스러운 방문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었지만, 꼬투리를 잡아 시비 걸지는 않았다.
‘눈동자가 깨끗해.’
저 상태의 도현은 보통 말이 통하지 않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헤레이즈가 옆으로 비켜섰다.
그는 타인을 방 안에 들이는 걸 끔찍이 싫어하지만, 그래도 이도현은 참아 줄 만했다. 그는 반원숭이나 다름없는 또래 소년들 사이에서 특출나게 위생 관념이 좋은 편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헤레이즈는 상대가 더럽든 청결하든 제 방에 남을 들일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쟤가 너무 제멋대로라 그래.’
쫓아내면 또 어떤 골 때리는 짓을 할지 몰랐다.
그렇게 합리화한 헤레이즈는 벽에 비스듬히 기댔다.
“그래서 뭔데?”
본디 기숙사는 2인 1실이었다.
9학년 남학생 수가 홀수라서 뒤늦게 입학한 헤레이즈가 방을 홀로 쓰긴 하지만, 방 구조 자체는 두 명을 위해 구성되어 있었다.
도현은 헤레이즈가 쓰지 않는, 빈 침대에 가서 앉았다.
“헤레이즈, 넌 연기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어?”
“너 자꾸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려고 묻는 거야.”
헤레이즈는 탐탁지 않은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으나, 답을 돌려주긴 했다.
“딱히, 없어. 신시아처럼 가업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도?”
“나중에는 생길지도 모르지. 지금은 없어. 연기에만 집중해도 벅차.”
너 같은 괴물을 따라가려면.
헤레이즈는 뒷말을 굳이 내뱉지 않고 질문했다.
“너는 있나 보지?”
딱히 대단한 추측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이 밤에, 갑자기 고맙다며 찾아와서 저런 걸 묻고 있는데 모르면 머저리였다.
하지만 헤레이즈는 표정 관리에 힘써야 했다.
‘이도현이 연기 말고 집중하는 게 있다고?’
그가 가졌던 ‘이도현’의 정의가 살짝 무너진다.
“연기랑은 조금 다른 의미긴 하지만…. 응, 있어.”
“…뭔데?”
헤레이즈는 벽에 기댔던 등을 뗐다. 자신이 한밤의 침입자에게 솔깃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궁금했다.
“너도 본 적 있어.”
“내가?”
“이끼를 위한 연주회를 할 때 너도 같이 있었잖아.”
이끼 키우기는 아니겠고….
“바이올린?”
정답이라는 듯 섬세한 눈매가 둥글게 휘었다.
“맞아.”
답을 맞혔지만, 헤레이즈는 더욱 아리송해졌다.
바이올린이 그렇게 중요했다고?
도현의 바이올린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연주를 들을 때 여러 번 경악했으니까. 하지만 그다지 특이하게 여기진 않았다.
[Freak!>을 촬영할 때도 드럼에 진심으로 열중해 프로 드러머에게서 감탄을 샀다. 그런 도현이었으니, 베니스 상까지 탄 이력이 있는 영화를 위해선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적어도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정도는 넘어섰겠지.’
그렇게 시작한 바이올린이 제법 잘 맞아 취미 정도로 연주하는 줄 알았다. …뭐, 그렇다기엔 실력이 취미 수준을 벗어났지만.
원래 그런 애니까.
하나를 시작하면 집요하게 달려드는.
생각을 정리한 헤레이즈가 물었다.
“그러니까 진로 고민이었다고?”
“진로 고민?”
도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꼭, 놀란 사람처럼.
“…이게 진로 고민이야?”
무슨 멍청한 질문이지?
헤레이즈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 한국에선 중학교 2학년이라며. 내년에 3학년 되고.”
“응.”
“그럼 고등학교 들어가는 날도 멀지 않았단 거 아니야.”
도현이 다니는 학교에 관해서는 몇 번 들어본 바가 있었다.
그가 물어본 건 아니고, 주로 신시아나 로즈마리가 도현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을 때 옆에 있어서 자연스레 듣게 되었다.
그 탓에 그 학교가 TBLS처럼 7학년부터 12학년까지 통합된 시스템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즉, 도현은 입학할 고등학교를 정해야 했다.
“딱 진로 고민할 시기네.”
“…….”
헤레이즈는 자신이 특별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상대가 도현이라는 점에서는 그도 몹시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래서 저 놀랍다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는 얼굴이 더 놀라웠다.
아니지. 쟤는 배우니까 그럴 수도 있나? 배우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으면,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해본 적 없을 수도….
거기까지 생각한 헤레이즈가 고개를 내저었다.
“난 네 진로 상담은 못 해줘. 그런 건 애초에 선생님을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음, 나도 그건 기대 안 해. 너한테는 고마워서 찾아온 거야. 네 덕분에 내가 욕심이 많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거든.”
“…그게 고마울 일인가?”
“고마울 일이지.”
도현은 고민했다.
경험과 교류를 채울 방법을.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타임 리밋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곳에는 헨리와 볼테르가 없기 때문이었다.
도현이 미국에서 사귄, 음악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동료.
그런 존재가 한국엔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정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감추고 숨기고 숨을 죽여서. 드러나길 원치 않아 홀로 방에 틀어박혀서.’
이유가 없진 않았다.
바이올린이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형의 것으로 남들에게 으스대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영혼이 정착하기 전에는 그랬다는 소리였다.
‘지금은 아니야.’
달랐다. 그런데 이전과 똑같이 사고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그게 너무 습관이 되어버린 나머지 기존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작은 틀 안에 가둬두려고 했다.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쿠키 틀에 반죽을 욱여넣는 것처럼.
아니, 이 경우엔 스스로 쿠키 틀에 들어가서 별 모양으로 몸을 맞췄던 건가.
아무튼.
도현은 한국에서 음악적 동료를 만든다는 선택지를 완전히 제외하고 있었다. 깨닫고 나니 이렇게 얼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현은 한국에 가서 오케스트라부에 들 생각이었다. 가연 예중의 오케스트라부는 무척 수준이 높으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헤레이즈의 말을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
그의 말대로 도현은 곧 중학교 3학년이 된다. 고등학교 때 무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였다.
도현은 그 고민에 결론을 내렸다.
‘음악과로 진학하자.’
아주 급진적이고 브레이크가 나간, 어쩌면 정신도 조금 나간 거 같은 결론이었으나 도현은 흡족했다.
헤레이즈 말이 옳다. 지금은 진로를 고민하는 시기다. 그 말은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볼 시기라는 뜻이었다.
중학교 3년은 연기과에서 지낼 테니, 고등학교 3년은 음악과에서 지내도 좋지 않을까?
‘원래 학교는 배우러 가는 거니까.’
도현이 가연 예중에 진학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교외 활동에 너그러운 곳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같은 재단에서 설립한 가연 예고도 마찬가지였다.
듣기로, 피아노 전공을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탈주하겠다며 갑자기 연기자로 데뷔한 선배도 학교를 잘 다니다가 졸업했다고 하고.
음악을 전공하며 배우 활동을 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거다.
그러니까 남은 일 년 동안 입시를 준비하고, 고등학교 때 음악과에 들어가면 어떨까?
학교에서 콩쿠르를 권유하면 곤란해지겠지만….
‘…뭐, 거절하면 되겠지?’
설마 억지로 내보내기야 하겠는가. 한국은 개인의 자유의사가 존재하는 민주주의 사회였다. 도현은 시민 자유 개념을 믿어보기로 했다.
대책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머리가 맑아진 도현은 거기까지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이 결론을 내린 순간부터 불안정한 미래에 한 발을 내딛게 되었고, 원래 미래는 닻 없는 조각배 같은 거였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뒤집힐 결론을 내려버린 도현은 후련하게 웃었다.
* * *
“…그렇게 된 거예요.”
볼테르는 말없이 눈앞의 소년을 보았다.
몇 주 전, 이 집을 도망치듯 나갈 때까지만 해도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창백했던 낯이 이제는 활력으로 차올랐다.
“…….”
그는 노회한 인사였고, 상대가 아무리 애어른 같다고 해도 어린아이 속내 정도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참이나 코빼기도 안 비출 때부터 짐작했다. 아이가 그의 말을 순순히 듣지는 않으리란 것을 말이다.
“볼턴이 한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게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빨리 갈 거라면, 느리게 가는 게 좋아요.”
소년이 볼테르를 응시했다.
이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단단한 눈빛으로.
“한 가지 색채로 물들지 않게 많은 경험을 해볼게요. 그래도 여전히 그늘을 벗어날 수 없으면, 그때는 볼턴의 말을 따를게요.”
그런데 이런 결론을 가지고 올 줄이야.
– 어떻게 해야 제 음악이 될 수 있죠?
역시 아이는 빨리 큰다.
그렇게 불안한 눈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묻던 아이가 금방 소년이 되어 나타났다. 아직은 풋내 나는 애송이지만.
“나설 생각이 없지 않았느냐?”
도현이 까만 눈을 깜빡였다.
“알고 계셨네요.”
“너 같은 아가의 속내도 모를까.”
“아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던 도현이 말했다.
“아직도 나서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바이올린을 켜는 이유는 제 음악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음악가의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서니까요.”
도현이 웃었다.
“그러니까, 그거 때문이에요.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니까.”
도현은 우선순위를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도, H도, 형과 비교하면 모두 빛을 잃고 퇴색되었다.
“다시 찾아와도 반겨 주시겠어요?”
“네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 정도는 들고 와야 할 거다. 아니면 내쫓을 거니까.”
불친절한 대꾸에 도현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볼테르는 늙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정도는.
저 애가 다시 방문하기 전까지는 있어야겠지.
은퇴한 그에게 작은 즐거움을 준 어린 음악가에게 보답은 해야 할 터이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