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65)
제665화. 파도와 같이 (13)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미르의 모든 행동을 ‘아, 그래서’라는 서두를 붙여 이해했을 테니까.
심지어는 도현에게 친근하게 굴던 행동까지도 의미심장하게 보았을 것이다.
“잠시 거실에 계시겠어요?”
“예?”
뜬금없는 말에 경찬호가 되물었다.
“식사를 다 하신 거 같으니 차를 내올게요. 과일 좋아하세요?”
한주애의 말에 경찬호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치우시려고요? 그럼 저희가 도울게요.”
“괜찮아요. 대접도 변변치 않았는데 그런 일까지 부탁드릴 순 없죠. 금방 차를 내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부드러운 거절에 경찬호는 더 말을 얹지 못했다. 두 사람은 어정쩡한 식사를 끝내고 거실 소파에 앉아 한주애를 기다렸다.
경찬호는 묘하게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주방 쪽을 한 번, 그리고 이제는 조용해진 방 쪽을 한 번 흘깃거렸다.
그와 달리 도현은 천천히 집 안을 구경했다. 잘 정돈된 집 안 곳곳에 블록이나 장난감이 보였다. 아이가 사는 집이구나 싶었다.
내부를 훑던 시선은 미르가 툭툭 치다가 야구 방망이를 빼앗겼던 진열장에서 멈췄다. 전시된 것들을 유심히 살피던 도현은 불쑥 말했다.
“저 미르 보고 올게요.”
“뭐? 지금?”
“네.”
“많이 화난 거 같던데….”
도현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용해졌잖아요.”
“으음.”
그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도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가 자신의 매니저이긴 하지만 행동을 제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도현에게는 명분도 있었다.
“구경시켜 준다고 했으니까요.”
“…말려도 안 들을 거지?”
도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끄응, 짧게 신음한 경찬호가 말했다.
“그럼 감독님께 말씀부터 드려.”
“아뇨, 괜찮을 거예요. 어차피 만나게 해주려고 부르신 걸 테니까.”
도현은 덤덤히 대답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저 없이 미르의 방으로 향했다.
경찬호는 종잡을 수 없는 소년의 뒷모습을 황망하게 보았다. 예의 바른가 싶다가도 가끔은 막무가내이니, 도대체 어느 쪽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사이, 방문 앞에 멈춰 선 도현이 문을 두드렸다. 똑똑, 하는 짧고 간결한 소리가 울렸다. 너머에서 꾸물대는 기척이 느껴지자 도현은 다시금 노크했다.
벌컥!
문이 크게 열리며 퉁퉁 부은 얼굴이 보였다.
엄마가 달래주러 왔으리라 생각했던 아이는 의외의 인물을 마주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현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안녕. 네가 구경시켜 준대서 왔어. 내가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미르의 입이 벌어졌다.
아이 또한 그 대사가 익숙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다음에는 조금 웃음을 참는 얼굴이 됐다.
“그게 뭐야.”
미르가 웃은 적 없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입을 꾹 다무느라 볼살이 삐죽 나와 있었다.
도현이 조르듯 말했다.
“왜, 네가 놀자며.”
“…나랑 놀 거야?”
“응.”
“뭐 하고?”
“글쎄….”
도현은 방 안을 흘깃 보았다.
“그림 그릴까?”
방바닥에는 아이가 마구잡이로 낙서하고 있던 종이가 있었다.
“형 그림 잘 그려?”
“완전 화가지. 내 그림 보려고 사람들이 줄도 섰어.”
“거짓말!”
킥킥 웃은 아이가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선 바닥에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종이 하나를 쭉 내밀었다.
“그럼 그려봐!”
“놀라지 마.”
도현은 종이 앞에 앉아 주변에 굴러다니는 색연필 하나를 손에 쥐었다. 미르는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키득거렸다. 엉망인 그림을 보고 한껏 비웃을 준비를 마친 채였다.
그러나 색연필이 종이 위를 대여섯 번 오갔을 때, 미르의 입은 떡 벌어졌다.
“이, 이거….”
“이게 뭔지 알아?”
“알아!”
“진짜로? 그럼 맞춰볼래?”
“티라노사우루스야!”
도현이 놀라워했다.
“어떻게 알았지?”
“난 공룡 다 알아!”
“진짜? 그럼 이것도?”
도현의 손이 슥슥 움직였다.
뿔 두 개가 날카롭게 돋아난 공룡이 점차 모습을 갖춰갔다. 도현은 그림을 그리면서 혼잣말인 척 중얼거렸다.
“이건 모르겠지?”
그 혼잣말을 들은 미르가 흥분하여 외쳤다.
“트리케라톱스잖아!”
“뭐야, 왜 이렇게 잘 알아?”
도현의 놀란 얼굴에 미르가 우쭐한 낯으로 밝게 웃었다. 도현은 다시금 대단하다며 추켜세워 주었다.
물론 정말로 놀라진 않았다. 애초에 공룡을 그린 것도 진열장 안에 나열된 공룡 피규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중학생의 치밀함을 모르는 초등학생은 잔뜩 신이 나 재촉했다.
“다른 것도 그려봐! 다 맞힐 수 있어!”
“그래?”
도현이 묘하게 웃고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방금까지 그렸던 두 공룡과 다르게 무척 작은 사이즈. 그리고 어딘가 굉장히….
“풉, 웃기게 생겼어.”
“웃기게 생겼다니. 너 이 공룡 몰라? 치키노사우루스잖아.”
진지하게 대답한 도현이 그 옆에 닭을 그리자 미르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흐악학, 세상에 이런 공룡이 어디 있어. 완전 엉터리야!”
“흠, 그럼 미르가 알려줘. 내가 아는 공룡은 이것밖에 없단 말이야.”
“좋아, 색연필 줘봐!”
도현은 자연스럽게 색연필을 떠넘겼다.
그리고 도현이 걱정되어서 따라왔던 경찬호는 문밖에서 그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미묘함이 섞여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평범해 보여.’
도현과 공룡을 그리며 노는 미르는 평범해 보였다. 아니다. 평범이란 말보다는, 지극히 어린아이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다 그릴 때까지 보지 마!”
“응. 눈 감고 있을게.”
“오래 걸릴 수도 있어. 그래도 절대 눈 뜨면 안 돼!”
“알았어. 다 그리면 알려줘.”
미르는 몸까지 틀어서 철통 방어를 한 채 그림을 그렸다. 도현은 저도 모르게 옅은 웃음을 흘리다가, 느껴지는 인기척에 스륵 눈을 떴다.
매니저 형이 보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가 느낀 인기척은 한주애의 것이었다. 도현은 무어라 말하려다가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멈추었다.
“끝! 이제 눈 떠도 돼.”
“…그래? 눈 뜰게.”
도현은 막 눈을 뜬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르가 그린 그림을 보고 크게 탄식했다. 추상화인가?
중학생의 냉정한 평가를 모르는 초등학생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고슴도치 하나를 짚었다.
“이건 케찰코아틀루스야.”
“와, 이거 날개야? 날 수도 있어?”
“응! 이 날개를 펼치면 10m나 돼!”
“그렇게 크다고?”
과장된 반응이 미르의 마음에 쏙 든 거 같았다. 새카맣고 반짝이는 눈동자는 무엇을 말해도 진실해 보이는 추가 효과를 주었다. 미르는 더욱 신이 나 제 그림을 소개했다.
“이건 파라사우롤로푸스야.”
“머리 위에 저건 뭐야? 볏?”
“이건 개미 더듬이 같은 거야. 신호를 주고받을 때 써.”
“잘 아네. 근데 이거 봐. 치키노사우루스랑 닮은 거 같은데?”
“아니야! 파라사우롤로푸스가 훨씬 멋있어!”
도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비슷한데….”
“아니라니까! 봐봐! 이건 길이가 1m나 되고….”
아웅다웅, 실랑이가 오갔다.
그들의 투덕거림이 끝난 건 한주애가 방에 들어왔을 때였다.
이미 그녀가 온 것을 알고 있었던 도현은 놀라지 않았지만, 미르는 깜짝 놀라 굳었다. 미르가 불안하게 눈을 굴릴 때였다.
“미르, 이리 와.”
한주애가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굳어 있던 미르가 거짓말처럼 달려가 안겼다. 재밌게 놀아주던 도현은 어느새 뒷전이었다.
“엄마랑 내일 공룡 박물관 갈까?”
“응!”
모자의 화해는 쉬웠다.
한주애는 도현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미르의 기분이 풀린 데에는 도현의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 숙제해야겠다. 내일 놀려면 오늘 해야지. 미르 월요일에 학원 가잖아.”
“으으….”
“내일 미르가 좋아하는 떡볶이도 먹자.”
“완전 좋아! 떡볶이!”
미르가 스스로 책상 앞에 앉았다.
“우리 미르, 숙제도 미리 하고 대단하네.”
“그러게요. 아주 어른스럽네요.”
한주애의 칭찬에 경찬호가 눈치껏 맞장구쳤다. 뿌듯해하던 미르는 뒤늦게 도현을 보았다.
“아, 공룡 아직 덜 알려줬는데….”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숙제 다 할 때까지 거실에 있을게. 다시 알려줘.”
제법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는지 미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조심스레 방을 나왔다.
한주애는 주방에서 새로 차를 내왔다. 차가 식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도현은 미안해졌다.
“저 때문에 번거로워졌네요.”
“뜨거운 물로 우리기만 하는 거라 괜찮아요. 그리고 우리 미르를 놀아 줬잖아요.”
한주애가 경찬호와 도현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다가 느지막이 말했다.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는데.”
경찬호도 동의했다.
놀아준 것도 놀라운데, 그렇게 평범하게 어울려줄 줄은 몰랐다.
도현은 담담히 말했다.
“어리잖아요.”
어린아이가 혼자 토라져 있는데 가만히 놔두는 건 도현의 성정에 맞지 않았다. 오지랖일지 몰라도, 혼자 둘 수가 없었다.
“ADHD 때문이 아니라 어려서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한주애는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난 내 아들이 ADHD를 가졌단 걸 부정하지 않아요. 미르는 작년에 학교에서 친구에게 폭행을 가했어요. 축구를 하다가 감정이 과격해져서요. 감사하게도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미르를 용서해 줬지만, 저는 미르를 그대로 둘 수 없었어요. 병원에 데려가 약물 치료를 시작했죠. 그러지 않으면 미르가 주변을 상처 입힐 테고, 주변은 미르를 외롭게 만들 테니까요.”
그녀가 물었다.
“도현 씨는 ADHD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도현은 아직 ADHD에 대해 깊게 공부하지 못했다. 그럴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하지만 책 몇 권 정도는 TBLS에 있을 적 이미 읽었고, 그때부터 한 생각이 있었다.
“현대 사회라서 질환으로 취급받는다고 생각해요.”
ADHD를 지닌 사람의 비율은 상상보다 더 높다. 그렇게 많은 수의 사람이 가진 특징이라면, 이어진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들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주변의 변화에 예민하고, 채집보다는 사냥을 즐기고, 사냥할 때 머뭇거리지 않고 나설 줄 알았을 테니까. 그들은 무리의 중요한 인재였을 거다.
그러나 세상은, 문화는, 윤리는 너무 빨리 발전했다. 그래서 간극이 생겨난 게 아닐까.
…뭐,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고.
도현이 ADHD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누구나 이상하고 꺼림칙하다고 손가락질하던, 문명이 아니라 세계에 어울리지 않던 시절이 도현에게 있었으니까.
그러니 솔직히, 도현의 눈에는 미르가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친구를 폭행한 건 문제 행동이 맞지만, 약물 치료를 시작한 덕분인지 폭력성은 많이 줄어든 거 같고….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때, 한주애가 말했다.
“많이들 오해해요. ADHD면 문제가 많고 이상할 거라고…. 하지만 누구나 성향이 있잖아요. 그건 지극히 일부일 뿐이에요. 생각보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면이 많거든요.”
담백한 투로 말하던 한주애가 불현듯이 웃었다.
“도현 씨가 우주를 맡아줘서 다행이에요.”
처음으로 보이는 편안한 웃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