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70)
제670화. 파도와 같이 (18)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어둠이 내린 도로를 밝혔다. 자정이 지난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불규칙적으로 유리창을 때렸다.
“많이 피곤하지? 고생했어, 정말.”
빗줄기에 시선을 고정한 도현이 대답했다.
“전 기다린 게 전부인데요. 그리고 택시 타고 가도 괜찮은데….”
아기가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얼마 후.
서혜나는 늦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도현은 다시 병실로 들어가 그녀의 식사를 구경했다. 모든 일이 거의 마무리되니 도현이 병실에 들어가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조용히 대화를 나누다가.
– 내 정신 좀 봐. 벌써 새벽 한 시네. 도현이 얼른 집에 가야지.
시계를 본 서혜나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 집이요?
– 응, 아들 내일도 학교 가야 하잖아.
맞다, 그랬지.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도현은 병실을 둘러보았다. 특실이라 확실히 컸다. 보호자 침대도 보조 침대가 아닌 평범한 침대였다. 커다란 소파도 있었다.
저 소파에서 자면 될 거 같은데.
그리 생각함과 동시에 말했다.
– 그냥 여기서 자고 학교 갈게요. 시간도 늦었잖아요.
– 아냐, 병원은 불편해. 그리고 옷도 지금 입은 게 단데, 교복 입고 잘 수는 없잖아.
잠옷은 병원복을 빌리면 되고 하루 정도는 전날 입은 교복을 다시 입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도현은 더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 가장 힘들 사람은 서혜나였다. 괜히 그녀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 알았어요. 그럼 택시 불러서 타고 갈게요.
– 응? 택시라니. 아빠랑 가야지.
– 네?
– 아빠도 가야지. 너 혼자 집에 있을 수는 없잖아.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도현은 조금, 아니, 굉장히 황당해졌다.
– 저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 하루 이틀 정도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있어요.
– 엄마 눈엔 아직 아기….
– 아기는 방금 신생아실로 간 애죠.
도현은 의도적으로 말허리를 끊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단호하게 굴지 않으면 얼렁뚱땅 서혜나의 뜻대로 될 것이 뻔했다.
– 아빠가 엄마 옆에 있는 게 당연하잖아요. 저는 입원해 계시는 동안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있어요. 촬영 때문에 호텔에서 혼자 지낸 적도 많을걸요.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또박또박한 말투는 스피치 대회에 나가면 단숨에 일등 상을 타올 만큼 박력 있었다. 도현은 쐐기를 박기 위해 조력자를 찾았다.
– 그렇죠, 아빠?
– 어, 음….
그는 엄청난 갈림길에 섰다.
침대에 앉은 아내와 그 앞에 선 아들이 그를 따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 여보.
– 아빠.
아내와 아들이 그를 부르는 광경이라니.
평소라면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테지만, 그는 막다른 길에 내몰린 사람처럼 땀이 났다. 천신만고의 시간이 흐르고, 이장혁은 간신히 입을 뗐다.
– 도현이 말대로 하자.
희비가 엇갈렸다.
이장혁은 아내의 시선을 감당하지 못해 고개를 떨궜다.
– 도현이는 내가 집에 데려다주고 올게.
– 여보….
아련하게 말끝이 흐려졌다.
하지만 이장혁은 알았다. 생략된 뒷말이 ‘어디 돌아오면 보자’라는 경고라는 걸….
이장혁의 낯빛이 날씨만큼이나 흐려졌다.
“아빠도 피곤하시잖아요.”
“어?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집에 간 김에 옷이랑 물건 몇 개 챙겨 오려고. 엄마한테 연락받고 회사에서 급하게 병원으로 온 거라 아무것도 못 가져갔거든.”
겸사겸사 가는 거란 말에 납득했는지 도현이 조용해졌다. 툭, 두둑, 새벽 부슬비가 차창 위로 미끄러져 내렸다.
이장혁은 운전에 집중하면서 생각했다.
‘정말 다섯 시간이었지.’
도현은 다섯 시간이라고 말했고 그건 꼭 예언처럼 현실로 이루어졌다.
이제껏 도현이 보여준 기현상은 꽤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장혁은 ‘신기하네’ 내지는 ‘역시 우리 아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처럼 가볍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처음으로 아들이 말한 ‘비현실성’이 기적에 가깝다는 걸 실감했다.
그때 침묵하던 도현이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응?”
“그 애는 정상이에요.”
“…….”
“혹시 불안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거예요. 정상이고 건강해요.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확언하듯 말하는 목소리에 이장혁의 심장이 조여들었다.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심호흡한 끝에 태연히 답했다.
“말해줘서 고마워.”
“별거 아니에요.”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도현은 느긋했다.
도현은 본래 그 존재감과 달리 기척이 흐린 편이었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옅었다. 반사적으로 이장혁은 옆쪽을 흘깃했다.
안전벨트는 잘 채워져 있었다.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 검은 끈이 도현을 현실에 붙여놓고 있는 거 같았다.
“혼자 있기 무서우면 안방에서 자도 돼.”
“…….”
도현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진심이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이장혁은 아들이 그의 정신을 조금 의심하는 걸 알아도 헛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면 통화 걸어도 돼. 영상 통화도 좋고.”
“…자장가라도 불러 주시게요?”
“그럴까?”
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 안 무서워요.”
약간 어이없다는 기색에 이장혁이 웃음을 흘렸다.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니 도현이 옆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도현이는 정말 겁이 없는 거 같네.’
도현이가 뭘 무서워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밤이나 어둠도, 혼자 있는 것도, 벌레도 안 무서워했다. 그러면 공포 영화도 잘 보려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직접 물어보았다.
“친구들이랑 공포 영화 봤을 땐 별로 무섭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래도 피가 튀기는 잔인한 장면이 보기 좋진 않았어요.”
상상되었다.
아이들이 공포스러운 장면에 질겁할 때 무표정하게 ‘음, 잔인하네.’ 하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을 하얀 낯이.
“그날 밤에 잠 잘 잤어?”
“못 잘 이유가 있어요?”
“보통은 무서워하지.”
도현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런가요?”
“응. 아빠도 그랬어.”
소년은 잠시 긴 속눈썹을 팔랑였다. 그러다 천천히 말했다.
“그럼 아마 체질 때문인 거 같네요.”
“체질?”
“네, 전 많은 게 보이거든요. 이렇게 어두운 밤도….”
도현이 눈을 깜빡했다.
그뿐인데 무언가 달라진 거 같았다.
“더 보려고 하면, 보여요. 온갖 색으로 찬란하고, 빛나고….”
찰나였다.
아주 짧은 찰나가 지나고 도현은 돌아왔다. 멎었던 빗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비는 전부터 끊임없이 내렸는데도, 이제야 그게 인식되었다.
“…어떤 느낌인데?”
“무서운 게 낄 틈 없이 아름다워요.”
늦은 밤이라 그런가. 아니면 엄청난 일이 지나간 후라서 기운이 빠진 걸까. 도현이 평소보다 훨씬 솔직한 느낌이었다.
“도율이는 무슨 색인지 아세요?”
아니, 확실히 솔직했다.
“무슨 색인데?”
“복숭아색이요. 분홍빛이 도는데 살구색도 섞이고. 흰빛도 있고.”
“예쁘겠네.”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예뻐요.”
“그럼 너는 무슨 색이야?”
“전… 하늘색인데.”
도현이 차창 밖을 보았다. 하늘을 보는 모양새였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하늘은 당연히 어두컴컴했다.
“밤하늘 말고, 새벽이 지난 아침의 하늘이랑 비슷해요.”
이장혁은 앞으로 종종 아침에 하늘을 올려다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아빠는?”
“엄마는 보랏빛이고 아빠는 연한 주홍색, 오렌지랑 레몬이 섞인 거 같은….”
빗소리 위로 잔잔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대화는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멈췄다.
이장혁은 안방으로 가서 옷가지랑 세면도구를 챙겼다. 아내가 부탁한 것들도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 나오니 잠옷으로 갈아입은 도현이 주방에 서 있었다. 이장혁은 소년에게 다가갔다.
“정말 괜찮겠어?”
“네. 얼른 가보세요.”
“그래…. 아, 내일 학교 끝나고 병원으로 올 거니?”
“가야죠.”
“알았어. 그때 연락해.”
그 후로 이장혁은 집 안에 있는 먹을 것들을 알려준 후, 도현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그는 도현을 돌아보았다.
“도현아.”
“네?”
“우리한테 찾아온 첫 번째 축복은 너야.”
도현이 멈칫했다.
이장혁은 그런 아들을 한번 꼭 안아주고선 떠났다. 띠리릭,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울렸다.
도현은 집 안에 홀로 남았다.
정적 속에 서 있다가 발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온기는 너무 빠르게 퍼졌다가, 또 너무 빠르게 식는다. 꾸물꾸물 이불속에 들어가 목 위까지 덮었다. 눈빛은 선명했다.
도현은 이불 속에 감춰진 손을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래서, 사랑인가?
눈매가 모호하게 좁혀졌다. 용수철처럼 의문이 튀어나왔다.
이게 사랑이라고?
몇 번 입 안으로 곱씹다가 느릿하게 생각했다.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손가락에 남은 감촉이 신경 쓰였다. 아직도 뜨끈함이 머무는 것처럼 조금 간지럽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모르겠다. 도현은 눈을 굴려 방 안을 살폈다. 보이는 건 없었다. 그래도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였다. 눈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꿈이 개입하지 않은, 깊은 잠이었다.
* * *
아침부터 희운은 가방을 부랴부랴 챙겨서 학교로 달려왔다. 어제 일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했을 때 실망했다. 교실 안에 도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일찍 왔나 봐.’
그렇게 실망을 추슬렀다.
그러나 아이들이 한둘씩 등교하고, 반 아이 중 3분의 1이 도착할 때까지도 도현은 보이지 않았다.
자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등교 안 하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일이 있으니까. …설마, 어머니가 어디 안 좋으신 건 아니겠지. 걱정이 스멀스멀 번졌다.
그러나 조례 십 분 전.
“어! 이도현?”
평소처럼 반듯한 도현이 등장했다. 아이들이 금방 도현의 주위를 둘러쌌다.
“무슨 일이야, 지각을 다 하고?”
“스케줄 있었어?”
조례 십 분 전이면 지각은 아니었지만, 도현의 빠른 등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그렇게 말했다.
도현은 가만히 서 있다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아니, 없었어. 그냥 늦은 거야.”
“그냥 늦었다고? 네가?”
“응.”
이유찬이 믿기 어렵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도현은 그 얼굴이 웃긴지 슬쩍 웃었다.
…근데, 왜 이렇게 맹해 보이지?
무심코 생각한 희운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휙 저었다. 세상에, 맹하다니. 이도현이 맹하다니?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절대로!
“누가 읽을까…. 흠, 그래. 우리 도현이가 읽어볼까?”
아이들은 내심 나긋나긋,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리길 기대했다. 그러나 침묵이 길어졌다.
선생님도 의아하게 도현을 볼 때였다. 드디어 꾹 닫힌 입술이 열렸다.
“…죄송합니다. 어느 부분인지 모르겠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도현을 향했다. 도현은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뿐인데 꼭 비 맞은 수국처럼 처연해 보여서 선생님은 얼떨결에 ‘어어, 그럴 수도 있지. 다음번에는 집중해라.’ 하고 넘어갔다.
…그래! 선생님 말씀처럼 한 번쯤은 집중 못 할 수도 있지. 그러니 절대로….
“헉, 이도현!”
“아.”
체육 시간에 날아온 공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도현이 탄식했다. 그리고 꽤 큰 소리가 났던 뒷머리를 살살 매만졌다.
으아, 아프겠다. 아, 아니지.
아무튼, 절대로…!
“아니 그래서 걔가… 헙!”
“헐, 미친.”
식판을 들고 친구랑 떠들며 걷다가 상대와 부딪힌 일 학년이 경악했다. 도현은 교복 재킷에 묻은 음식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
“…죄, 죄송합니다악!”
급식실 안의 시선이 모조리 이쪽으로 쏠렸다. 하나같이 경악을 품고 있었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텐데….
희운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 버렸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