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71)
제671화. 파도와 같이 (19)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잠이 덜 깼나.’
도현은 멍하니 생각했다.
이상하게 머리가 잘 굴러가질 않는다고.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오 분쯤 그렇게 있다가 눈을 떴다. 그러나 여전히 몽롱했다.
…일단, 일어나자.
이러다 학교에 늦으면 큰일이었다. 화장실로 가서 씻고 나오는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샤워하는 도중 문득문득 멍해져서였다.
어떻게든 씻는 걸 마무리하고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아침마다 풍기던 음식 냄새가 없었다. 부모님 두 분 다 병원에 계시니 당연했다. 그런데 왜 두 분이 병원에….
아, 그렇지.
나 동생 생겼지.
그 사실을 되새기느라 또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을 땐 분침이 한참 멀어져 있어서 요리하는 대신 시리얼을 꺼내서 간단하게 먹었다.
등굣길은 낯설었다.
원래 이렇게 하늘이 밝았던가?
이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가?
동생은 지금 자고 있을까?
교문이 원래 왁자지껄했던가?
사이에 이상한 의문이 하나 끼어들었지만 인지하지 못했다. 냇물에 동동 뜬 나뭇잎처럼 생각의 흐름이 이끄는 대로 향했다.
그러다 교실에 들어서고.
텅 빈 평소의 풍경이 아닌, 시끄러운 교실을 마주했을 때.
저를 바라보는 갈색 눈동자와 마주한 후 한 박자 늦게 바이올린을 떠올렸을 때.
도현은 깨달았다.
상태가 이상하다.
* * *
“역시 …인가.”
도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X 됐다!’
일 학년은 새파래졌다.
제 식판에 있었던 스파게티가 살포시 올라간 소매를 보며 무표정한 낯으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2학년 선배, 그것도 이도현은 충분히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패닉에 빠져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쏟아냈다. 같이 당황해 있던 친구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선 속사포처럼 말했다.
“야, 야. 내, 내가 휴지 가져올게.”
그리고 후다닥 달려갔다.
사고 친 일 학년은 그의 친구가 급식실에 비치된 휴지를 허둥지둥 가져오는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못 보고…!”
얼마나 화가 났으면 대답을 안 하는 거지? 물론 나였어도 화났겠지만….
침묵이 길어질수록 심장 박동이 거세졌다.
‘나 이제 찍힌 건가?’
어렸을 때부터 자극적인 매체에 전 뇌는 미래를 차르륵 펼쳐냈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죄송하다는 말로 다 되면, 세상에 법은 왜 있고 판사는 왜 있겠니?
– 그, 그런….
– 꿇어.
– !
그리고 이어지는 경고….
– 전교생에게 알린다. 앞으로 얘한테 말 거는 사람은 같은 취급을 받겠다는 소리로 이해하겠어.
그렇게 고립되어 쓸쓸하게 혼자 급식실에 밥을 먹으러 오게 되고….
‘…헉, 안 돼!’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혼자 밥 먹는 건 안 된다. 원래 이맘때 아이들은 혼자 밥 먹으면 세상이 두 쪽 나는 줄 아는 법이었다.
그는 비참한 심정으로 무릎의 힘을 풀었다. 그래, 차라리 선배가 꿇으라고 할 때 꿇어야….
“응? 아…. 가져다줘서 고마워.”
“아, 아, 아닙니다!”
휴지를 건네받은 도현이 옷에 묻은 것을 대충 닦아냈다. 면발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일 학년의 심장도 철렁했다.
대충 정리한 도현이 얼음처럼 굳어 있는 소년을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의아하다는 듯이 깜빡여졌다.
“왜 그렇게 서 있어?”
뭐지? 당장 꺼지라는 뜻인가?
아니면 급식을 쏟은 주제에 눈치 없이 두 발로 서 있느냐는 소리인가? 지금이 꿇을 때인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멍청히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그, 쟤가 도현이 너한테 미안하다고….”
일 학년은 그를 알아보았다.
이도현만큼은 아니더라도 유명한 선배였다. 그와 절친하다던, 정희운이었으니까.
“아아.”
고개를 끄덕인 도현이 눈썹을 찡그렸다.
“미안, 정신이 없어서 대답을 못 했네. 괜찮아. 가봐.”
“네?”
“옷이야 세탁하면 되지. 미안해할 거 없어. 아,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다니고.”
와장창!
상상 속 막장 전개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 학년은 오히려 당황스러워졌다. 이렇게 간단하게 용서해 준다고?
“저, 세탁비는….”
“됐어. 겨우 이것 가지고.”
“그, 그럼 혹시 얼룩이 안 지워지면….”
“새로 하나 사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듯한 말투.
일 학년은 눈을 찌푸렸다. 분명 저기 선배가 서 있을 텐데 빛밖에 안 보였다.
그사이 도현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미안. 난 화장실 다녀와야겠다. 너희는 먼저 먹고 있어.”
“괜찮겠어? 같이 가줄까?”
“화장실에?”
도현은 재밌는 소릴 들었다는 듯 매가리 없이 픽 웃더니 작게 ‘휴라면 이랬을 거 같은데….’ 하고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시선을 든 그가 이유찬에게 웃음기 어린 투로 말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엄마.”
그리고 말처럼 떠나버렸다.
“…….”
“…엄마?”
2학년 무리는 단체로 얼이 나갔다.
제일 넋 나간 건 이유찬이었다.
“나? 엄마? 내가? 엄마? 저? 이도현? 이?”
모든 단어에 물음표가 붙었다.
희운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멀어지는 등이 더 급했다.
“나, 난 같이 갔다 올게!”
“어어, 흰둥아!”
“먼저 먹고 있어!”
저를 부르는 김병철에게 짧게 외친 후 도현을 따라갔다.
‘역시 이상해.’
오늘따라 도현의 상태가 이상했다. 짐작되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동생, 도율이랬나.’
단순히 동생이 태어난 것에 신경이 쏠린 거면 다행이지만, 그렇다기엔 태도가 너무 수상했다. 혹시라도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긴 거라면….
희운은 입술을 깨물곤 화장실에 들어갔다. 쏴아아, 물소리가 들렸다. 도현이 세면대 물을 틀고는 팔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러면 와이셔츠까지 다 젖잖아!”
희운이 재빨리 말렸다.
“…아.”
“재킷을 벗고 씻어야지!”
도현이 고개를 주억였다.
“응, 그러네.”
‘역시 이상해!’
정말 적응 안 되고 낯설었다.
도현이 느릿느릿 재킷을 벗었다.
재생 속도를 0.5 정도로 맞춰놓은 거 같은 빠르기였다. 희운은 저런 움직임을 본 적이 있었다. 동물마당에 나오는 나무늘보가 딱 저랬다.
‘속 터져!’
속으로 비명을 내지른 희운은 재킷을 빼앗았다. 그리고 도현이 무어라 말할 새 없이 박박 씻어버렸다.
평소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행동이었지만, 왜인지 오늘은 이래도 될 거 같았다.
봐, 지금도 뭐라고 하기는커녕 멍하니 구경하고 있잖아.
“자, 다 씻었어. 축축할 테니까 다 마를 때까진 입지 말고.”
도현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소매가 축축하게 젖은 옷을 멀뚱히 보다가 툭, 말했다.
“착하네.”
희운의 말문이 턱 막혔다.
왜 자꾸 저렇게….
그러나 도현의 말이 이어지자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착하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뭐?”
“어떻게 머리카락도 곱슬이지.”
“잠깐, 너….”
“정말, 누구 동생인지.”
훅, 가까이 다가왔다.
입꼬리가 은은한 웃음기를 머금고 위로 올라갔다. 검은 눈동자는 투명한 보석을 마주한 까마귀처럼 반짝반짝했다.
“귀여워 미치겠어.”
“…….”
인지 부조화가 왔다.
지금 이도현이 나더러 귀엽다고… 아니, 미치겠다고, 아니, 귀엽다고… 근데 이미 미친 거 같은데.
뇌가 꽈배기처럼 꼬였다.
그 와중에도 도현의 입술이 다시 벌어지는 건 보였다. 희운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 도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불시에 입이 막힌 도현이 의아한 듯 눈썹을 들썩였다.
희운은 이제 경악을 넘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술 같은 거 마신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희운이 짧게 숨을 뱉었다.
“…일단, 나가자.”
점심은 넘겨야 할 거 같았다.
이 상태의 도현이 급식실로 돌아가는 건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닌 거 같으니까.
도현은 희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얌전한 태도였다.
도현은 반항 없이 희운이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으나,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희운은 인적이 적은 벤치에 다다랐을 때 발걸음을 멈췄다.
“…후우, 너.”
“응.”
“너, 그니까….”
“응.”
주제넘은 질문 아닌가, 하는 망설임이 잠깐 일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둘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더 우세했다.
“어제, 그렇게 갔잖아.”
“그랬지. 미안해. 널 두고 가서.”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 그 후에! 그 후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해서!”
“그 후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도현이 탄성을 뱉었다.
“동생이 태어났어.”
“자, 잘 태어났어?”
“응, 건강해. 정상이야.”
‘정상’이라는 단어에 희운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건강하다는 말만 귓가에 콕 박혔다.
“다행이다…. 그럼 어머니는?”
“생각보단 괜찮으신 거 같아.”
절로 숨이 터져 나왔다.
오전 내내 걱정으로 속을 끓였던 희운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정말 잘됐다.”
“응, 잘됐지.”
“그럼….”
네 상태는 왜 이러는데?
반사적으로 뱉을 뻔한 걸 속으로 꿀꺽 삼켰다.
그때, 도현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바이올린 보여주는 거 생각보다 늦어질 거 같아. 오늘도 병원에 가봐야 해서….”
“괜찮아. 저번에 말했잖아. 나는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그래도….”
눈꼬리가 축 내려갔다.
속상한 표정을 짓던 도현이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럼, 같이 갈까?”
“나? 내가 왜?”
“그야 너도 내 동….”
“동?”
동, 뭐?
그 순간 도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길게 쓸어내렸다.
“…하, 미안. 아직 제정신이 아니라서.”
희운은 놀랐다.
알고 있었다고?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잘 안되네.”
“왜 그런 거야?”
도현이 시선을 피했다.
“그냥…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희운은 알아서 이해했다.
갑자기 동생이 태어나서 많이 놀랐고, 또 그렇게 달려갔으니 잠도 잘 못 잤겠지. 어쩌면 꼴딱 새웠는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도현의 기행이 이해되는 것도 같았다. 아주 조금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너 점심은 어떡하게.”
“아, 지금 들어가기엔 좀 늦었고….”
고민하던 희운이 물었다.
“매점 갈래?”
그러자 도현이 낯빛을 굳혔다. 그리고 엄하게 추궁했다.
“너 설마, 평소에도 그렇게 대충 때우는 거 아니지?”
“…….”
“응? 말해봐. 평소에 어떻게 먹는데? 왜 이렇게 마른 거야? 혀….”
“혀?”
“…혀, 씹은 거 같아서.”
혀 씹은 사람치고 아주 멀쩡한 발음이었다. 어디 발음 교본에 음성으로 실어도 될 거 같았다.
희운은 시선을 회피하는 도현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직은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