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76)
제676화. 찾아온 계절 (4)
도현은 아까부터 인사하고 싶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고민은 짧았다.
“한예지 역할 배우분이시죠? 반가워요. 이도현이에요.”
“저, 저를 아세요?”
“네.”
설마 긍정의 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연나은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선이 무척 깔끔하고 우아한 느낌을 풍기는 얼굴이라 바보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감독님이 미리 말씀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영상 몇 개를 찾아봤어요. 콩쿠르 영상이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제 영상을 보셨다고요?”
불신 어린 물음이 돌아왔다.
도현은 순순히 답해주었다.
“네, 라일락 요정이랑….”
보았던 것들을 읊자 눈이 커졌다.
진짜라는 것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진짜로 제 무대를….”
“네, 아주 멋졌어요.”
연나은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이도현이 상대 배우인 것도 모자라서 그에게 ‘무대가 아주 멋졌다’와 같은 칭찬을 듣고 있는 이 상황이.
그러나 현실이었다.
“그, 감사합니다….”
이게 뭐라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운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가와서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도현은 그게 무척 익숙한 사람처럼 당황하지도 않고 차분하게 대답해 주었다. 문득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쿵쿵 뛰었던 심장이 식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무대에서 도망치듯 내려와서 여기에 서 있으면서.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주제에 저 애와 같이 연기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은 씨, 컨디션은 괜찮아요?”
“아! 네!”
퍼뜩 고개를 든 연나은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한주애는 그녀를 보고 ‘다행이네요’ 한마디를 하고는 다시 모니터 앞에 가서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라서, 무언갈 안 건지 아니면 그냥 타이밍이 좋았던 건지 헷갈렸다.
연나은은 우울한 생각을 몰아냈다.
‘뭐든 해보려고 온 거잖아. 그러니까 해야지.’
다짐하는 눈빛이 비장했다.
* * *
촬영 준비가 모두 끝났다.
첫 촬영은 진세희였다.
그녀가 차에서 다급히 내려 학교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여는 것까지가 첫 번째 장면이었다.
도현은 옆으로 빠져 있었다.
그런 도현에게 경찬호가 작게 물었다.
“분위기가 조금 붕 떠 있지?”
“저 때문인가 봐요.”
정확한 자기 객관화였다.
우쭐함이나 피곤함 같은 감정 없이, 그저 촬영장의 분위기를 분석하는 것처럼 건조했다.
그래, 이게 바로 경찬호가 아는 도현의 모습이었다. 두 달 된 아기를 한번 안아주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아니라.
픽 웃은 경찬호가 말했다.
“뭐, 여태 비밀로 했고 첫날이니 어쩔 수 없겠지.”
도현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막 시작하는 촬영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경찬호도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했다.
그리고.
“레디, 액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을 지켜보던 검은 눈동자에는 점점 이채가 스며들었다.
차에서 내려 교무실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사는 없었다. 오로지 행동으로만 연기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부산스러운 분위기라면 더욱 집중하기 어려울 텐데도, 진세희는 해냈다. 그녀의 연기에 붕 떴던 촬영장 분위기가 점점 본래 있어야 할 위치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 그래도 배우분들의 실력이 아쉽진 않을 거예요.
한주애 감독의 말대로였다.
해당 장면 촬영은 세 번의 반복 끝에 마무리됐다.
진세희의 연기에 실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모니터를 유심히 바라보던 한주애가 디렉팅을 추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도현의 차례가 되었다.
한주애가 도현에게 시선을 주었다.
“촬영 들어가도 괜찮겠어요?”
“네, 괜찮아요.”
“세희 씨가 촬영한 장면 다음부터 바로 이어서 갈 거예요. 복도를 지나서 문을 여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문 여는 타이밍은 이쪽에서 지시해서 알려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도현의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맞은편에는 진세희보다 조금 더 나이대가 있어 보이는 여성과 도현 또래의 소년이 앉아 있었고, 옆쪽, 테이블의 세로 면에 있는 일인용 소파에는 남자 배우가 앉아 있었다.
도현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한 한주애는 다른 배우들에게 자세한 디렉팅을 시작했다.
“재우 씨는 세희 씨가 들어오기 전까지 자리에 앉아서….”
도현은 그녀의 방식을 파악했다.
그녀는 자세하고 꼼꼼한 디렉팅으로 촬영을 이끌어갔다.
마지막으로 모니터로 다른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한주애가 입을 열었다.
“레디,”
숨소리 없이 고요한 순간.
이 순간은 언제나 도현을 설레게 했다.
길게 심호흡하고 눈을 떴다.
“액션!”
먼지가 부유하는 교무실.
기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검은색 소파가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일인용 소파가 있었는데, 그곳에 앉은 남자는 오른편에 있는 여자의 눈치를 보았다.
여자의 옆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심하게 쥐어 터진 듯, 얼굴 여기저기 부은 모습으로.
맞은편 소파에도 소년이 앉아 있었다. 입술 주변이 터지고 머리에 까치집이 진, 마찬가지로 한바탕 소란을 피운 모습이었다.
홀로 앉은 소년, 허우주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푹 몸을 기댔다. 몸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려, 머리가 소파에 닿아 있는 상태였다.
그 불량한 자세에 여자의 시선이 닿았다가 금방 떨어졌다. 못 볼 걸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시시해.
속으로 불평한 허우주는 타깃을 바꾸었다. 새로운 타깃은 여자의 옆에서 움츠려 있는 소년이었다. 시선을 받은 소년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씨익, 보란 듯이 입꼬리를 올린 허우주가 팔짱 낀 상태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가운뎃손가락이었다.
울컥한 소년, 강범준이 무어라 말을 하려던 때였다.
벌컥!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교무실 안에 들어온 여성이 가쁜 숨을 고르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우주는….”
허우주는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던 손을 활짝 펼쳤다.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실제로 허우주는 엄마를 반기고 있었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리는 이 상황이 심심하고 지겨워 죽겠으니까!
하지만 여자, 허윤주는 웃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 제일 먼저 아들의 터진 입술이 들어왔다. 붕붕, 난리가 난 머리카락도.
그다음으로는 아들보다 더 울긋불긋해져, 단풍처럼 물든 소년의 퉁퉁 부은 얼굴이 보였을 땐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그런 허윤주를 안타깝게 응시하던 선생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주 어머님. 자세한 상황은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예요. 그, 일단 이쪽에 와서 앉아주세요.”
“그래, 엄마. 여기 앉아. 여기.”
팡팡.
허우주가 제 옆을 두드렸다.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혼자만 아무 상관 없다는 것처럼 태연하고 천진했다.
허윤주는 입술을 한번 깨물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로 걸어갔다.
그리고 허우주의 말처럼 앉는 대신 허리를 숙였다. 반듯하게 숙인 허리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속에서 허윤주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울렸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제 잘못입니다.”
회사에서 담임 선생님에게 온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암담함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얻어맞은 얼굴을 마주하니 속이 턱 막히고 팔이 덜덜 떨렸다.
“우주 어머니, 일단은 앉으시고….”
놀란 선생님이 제지하였으나 허윤주는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죄송합니다.”
“뭐야, 왜 엄마가….”
“조용히 해, 허우주.”
허우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상황에 맞지 않게도, 토끼 같은 얼굴이었다.
그때였다.
“고개 들어요.”
내내 조용히 있던 여자가 말했다.
범준의 어머니였다.
“급하게 온 거 같은데, 서 있지 말고 앉고요.”
차분한 말투에 망설이던 허윤주가 소파에 앉았다. 낯빛에 약간의 기대가 스며들었다.
혹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우주 엄마도 알 거예요. 이거 한두 번 있는 일 아니잖아요.”
“네, 죄송합니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툭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사과했다. 그녀도 사과가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과거가 이젠 까마득했다. 자존심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애를 학교 보내기가 무서워요. 또 이렇게 맞아서 다쳐 올까 봐.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허윤주는 면목이 없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주저하다가 말했다.
“병원비는 꼭 드릴….”
허윤주의 말은 도중에 끊겼다.
“됐어요. 깽값도 아니고. 우리 애 맞은 걸로 뭘 받고 싶지 않아요.”
차가운 말에 선생님이 당황한 낯으로 말렸다.
“저, 범준이 어머님. 화나신 마음 알겠지만, 조금만 진정하세요. 제가 들어보니 두 아이가 다툰 게 범준이가 먼저….”
“알아요. 나도 귀 있고 다 들었어요. 제 아들은 제가 혼낼게요. 하지만 누구랑 부딪칠 때마다 주먹이 나가는 게 정상인가요? 거슬릴 때마다 때리고 보는 게 맞아요?”
중재해 보려던 담임 선생님도 말문이 막혔다.
허우주가 이런 사고를 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에 쌓여가는 학부모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요즘은 정말 아슬아슬했다.
“정말 죄송….”
“그놈의 죄송은 됐고요. 우주 엄마. 이번 일은 넘어갈게요. 학폭위, 그런 거 안 열어요. 병원비 물어내라고도 안 할 거고요.”
“…그, 그러면.”
“대신 저 애 학교 보내지 마세요.”
“네?”
허윤주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꽂혔다.
“우주 엄마. 나는 이해해 보려고 했어요. 우주 엄마도 노력하는 거 아니까, 저도 우주가 학교에서 잘 지내길 바랐어요. 그런데 더는 우리 아들이랑 같은 공간에 못 두겠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