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77)
제677화. 찾아온 계절 (5)
컷 사인이 나오자마자 도현의 표정이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분위기가 달라진 채였다. 처음, 촬영장에 와서 반듯이 인사할 때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저 단정치 못한 머리카락 때문일까? 아니면 접은 건지 만 건지 모르게 돌돌 만 소매 때문에?
아니다. 도현은 분장을 마치고 왔을 때도 저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하고서도 한 치의 의심 없는 ‘이도현’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연기.
‘이 정도라고?’
연나은은 입을 작게 벌렸다.
그녀는 모델로서 자주 활동했지만, 배우로서는 경험이 적었다. 뛰어난 배우와 마주하는 일도 그만큼 드물었다.
그래서 방금 본 광경이 무척 얼떨떨하게 느껴졌다. 연기가 아니라 무슨 마술 쇼를 본 느낌이다.
그러나 그녀의 심정이 어찌 되었건 촬영은 재개되었다.
“못 두겠다니….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네요.”
허윤주의 목소리 끝이 떨렸다.
누가 보아도 말을 이해하였으나 부정하고 싶은 기색이었다.
범준의 엄마라고 이런 말을 하고 싶을 리가 없다. 애 키우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그리고 허윤주가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 말이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른 학부모들이 매번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는 허윤주의 눈치를 보느라 쉬쉬하고 있으니, 그녀라도 나서는 수밖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우주 엄마. 이편이 우주한테도 나을 거예요. 홈스쿨링하면서 우주도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우주 엄마도 여유를 가져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여유라니.
그럼 돈은 누가 벌어온단 말인가.
그리고 우주는….
“당장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인 건 알아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요. 우주 엄마도 맨날 이런 식으로 학교에 오는 거 힘들잖아요.”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
그러나 그 모든 문장이 허윤주를 막다른 길로 내몰고 있었다.
“그리고….”
내내 침착하게 얘기하던 여성이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주저 끝에 결국 말을 꺼냈다.
“우주 엄마도 아시잖아요.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허윤주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벌렸다. 그러나 결국 그대로 다물었다.
그녀는 끝내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엄마, 엄마?”
앞서가는 허윤주의 뒤를 허우주가 종종 쫓아갔다. 엄마아, 화났어? 묻는 목소리가 눈치 보듯 조심스러웠다.
허윤주는 대답 없이 걸었다. 그러자 허우주가 투덜댔다.
“아, 나 진짜 억울하다니까? 그 재수 없는 새끼가….”
허윤주가 우뚝 멈추자 찔끔한 허우주가 ‘새끼는… 새 새끼, 강아지 새끼, 쥐 새끼’라고 하며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오후 세 시. 초가을 바람을 타고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실려 왔다. 공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자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허윤주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왁자지껄 웃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햇빛 때문일까? 유난히 눈이 너무 부셨다.
깜빡, 눈꺼풀을 움직인 허윤주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온갖 것에 새끼를 붙이던 허우주도 그 뒤를 따라갔다.
“그 지랄 맞은 새끼가 날 화나게 하잖아. 나한테 먼저 내 머리가 병신이라 아빠가 도망갔다고 했다고! 그걸 가만둬?”
내용과 달리 그다지 분노한 기색이 없는 표정과 말투.
사실 허우주는 조금 신난 상태였다. 아무것도 몰라서는 아니다. 그 또한 교무실에서 나눈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알았다.
다만.
‘그까짓 학교. 어차피 짜증만 나.’
수업은 답답했고, 선생님은 재수 없었으며, 애새끼들은 매번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매번, 매번.
좆같은 학교, 불이나 나라지.
속으로 저주를 퍼부은 허우주가 싱글싱글 웃으며 엄마 뒤를 졸졸 따를 때였다.
“어.”
“응?”
“어, 가만두라고.”
허우주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그렇게 말해?”
“…그럼?”
휙, 허윤주가 뒤로 돌았다.
“그럼 뭐라고 할까?”
그녀는 차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언성을 높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말이 길어질수록 음정이 높아졌다.
“어? 뭐라 그래, 그럼. 네 심기 거스르는 말 할 때마다 죽어라 패라고? 그렇게 패니까 속 시원하고 좋아? 이젠 너보고 학교도 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마음에 들어? 네가 원하던 거야? 그래?”
“화났어?”
“화?”
차라리 화가 난 거면 좋겠다.
그러나 허윤주의 눈앞에 있는 건 그녀의 감정 따위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막막해.’
회사도 교육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회사는 퇴직해야겠지만, 열심히 발품을 팔면 집에서 할 만한 부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정규 수업 대신 아이를 가르치기도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가장 큰 문제는 그녀 앞에 준비된 시련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들. 허우주.
저 아이가 다시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그 어디도 아이를 반겨주는 곳 없고, 아이가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못할까 봐. 그게 제일 속을 답답하게 했다.
본래라면 허윤주는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학교로 보냈을 것이다.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든 적금을 털어 거금의 합의금을 내든. 무엇을 해서든.
– 우주 엄마도 아시잖아요.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하지만 그 목소리.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이기적인 마음에 제동을 걸었다. 우주에게 얻어맞고 엉망이 된 아이 얼굴이 가슴을 따끔따끔 찔렀다.
이런 양심은 오래전에 마모된 줄 알았는데, 그러나 한구석에 숨을 죽이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나 보다.
긴 숨을 내쉰 허윤주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차 타.”
“화났냐니까?”
“안 났으니까 타.”
“엄마는?”
“담배 한 대 피우고.”
“나도 줘!”
“허우주. 오늘 저녁은 탕수육 먹으려고 했는데, 지금 안 타면 안 사줄 거야.”
“치사하기는.”
툴툴거리면서도 순순히 조수석에 탔다. 허우주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그만큼 효과적이었다.
허우주가 창문에 손가락을 끄적이며 놀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기서 관심을 떼고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역시 금연은 삼 일을 넘기지 못하는구나. 자조하며 담배를 한 모금 물었을 때였다.
“아, 우주 어머님!”
그녀가 황급히 담배 케이스에 담배를 비벼 껐다. 뒤로 돌아 손에 있던 것들을 가방에 마구잡이로 욱여넣은 후,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큼, 흠, 헛기침을 뱉은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담임 선생님.”
차 속에 있는 허우주가 마구 비웃는 게 보였지만, 허윤주는 못 본 척했다.
“아직 안 가셔서 다행입니다.”
선생님은 급하게 달려온 티가 났다. 그가 숨을 고르는 동안 허윤주는 조마조마하게 물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예, 우주는 혹시….”
“차 속에 있어요.”
그제야 선생님은 창문에 귀를 딱 붙여서 뺨이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진 허우주를 발견했다. 놀랐는지 어깨가 조금 움찔했다.
그는 하하, 어색하게 웃은 후 말했다.
“저, 어머님. 잠시만 저쪽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우주에 관한 얘기입니다.”
허윤주가 거절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차와 조금 떨어진 곳.
“홈스쿨링 얘기라면 저는 할 말이 없어요. 우주는 학교에 다녀야 해요.”
허윤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기적인 마음이란 건 안다. 그녀와 아들을 도와주려는 선생님을 힘들게 한다는 것도.
하지만 이것 말고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제가 집에 있으면 돈은 누가 벌고, 또 중학교 때 배웠던 것들은 이제 기억도 안 나는데 어떻게 우주를 가르치겠어요?”
“어머님.”
“우주랑 집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저, 어머님. 이해합니다.”
허윤주가 멈칫했다.
우주의 담임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다.
학교의 골칫거리나 다름없는 허우주를 맡아 억울할 법한데도, 최대한 허우주가 학교와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효과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간 우주를 지도하는 걸 포기한 선생님이 수없이 많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고마움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저도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무척 힘들어요. 우주도 점점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학업 태도도 나아지고 있었는데….”
“그럼 우주를 쫓아내지 않으면 해결되겠네요.”
“쫓아내는 게 아닙니다. 어머님, 약속드릴게요. 제가 범준이 어머님을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우주도 제 학생입니다. 저도 우주가 이런 식으로 떠나길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학부모님들의 항의가 너무 많아서 저도….”
윙윙,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이명처럼 울렸다.
“…그러니까, 한동안 홈스쿨링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얼마 동안이요?”
허윤주가 물었다.
“한동안이 얼마 동안인데요?”
“혹시, 학업 중단 숙려제에 대해 아세요?”
“…….”
“최대 7주까지 숙려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그동안 위(Wee) 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원래 학교 규칙 위반으로 출석이 정지되면 제외 대상인데 범준이 어머님께서 그 부분은 양보해 주셔서요.”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비뚤어진 생각에 허윤주가 제 얼굴을 쓸었다. 손끝에서 희미한 담배 향이 풍겼다.
“그 이후는요?”
“이후에 학교로 돌아온다면 학업을 지속하는 거고, 학업을 중단하게 되면 정원 외 관리 대상이 되어 학적 처리를 하게 됩니다. 상담에 결석하지 않으면 생활 기록부에 남지도 않아요.”
“…….”
“그리고 어머님.”
그의 눈은 연민과 안타까움, 동정으로 차 있었다. 그녀에겐 익숙한 눈빛이었다.
“어머님도 한번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우주에게 학교보다 홈스쿨링이 더 잘 맞을 수도 있어요. 저도 많은 학생을 봐왔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꼭 다른 애들과 똑같이 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에요.”
그 말이 귀에 오래 울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