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85)
제685화. 찾아온 계절 (13)
천장을 보고 누워 있던 도현은 문득 검지를 감싼 악력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깊이 잠든 아기의 손이 느슨히 풀려 있었다. 이젠 도율이 도현의 검지를 잡은 게 아닌, 도현이 도율의 손바닥에 검지를 올려놓은 모양새가 되었다.
뺄까.
작고 말랑한 감촉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괜찮냐고 묻던 서혜나와 잠이 안 오는지 뒤척이던 이장혁이 잠든 후에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건, 이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몸은 미동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도현은 적당한 이유를 찾아내었다. 그러다가 또 깨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도율이 잠들었을 때부터 잦아든 감각은 이제 평범한 정보만을 받아들였다.
수면 상태에 빠진 세 사람의 고른 숨소리와 조용히 움직이는 초침. 그리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고요한 어둠.
…그래, 아늑함.
한때는 쓰러질 만큼 아팠으면서 지금은 아늑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자기혐오가 뒤따랐다. 안 좋은 버릇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전보다 괴로워하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 벌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현은 고동치는 자기 파괴 충동을 억눌렀다.
신체에 상처 입히고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리하여 죗값을 치르는 건 너무도 간단하고, 유혹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할 수 없었다.
그때, 검지가 올라가 있는 손바닥이 움찔했다. 잠꼬대인 거 같았는데, 무슨 꿈을 꾸는지 손을 둥글게 말아 쥐었다.
도현은 그것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젠 서로의 체온이 스며들어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도현은 여전히 온기가 화끈거리는 착각이 일었다.
왜일까.
아기가 보이는 맹목적인 애정은 도현 또한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를 복잡하게 하는 요소였다.
‘왜?’
맹목적인 애정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게 이상했다.
매니저 형한테는 아기를 떨어트릴까 무서워서 안아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짓인 건 아니지만, 온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도현은 저 애정이 낯설었다.
태어난 순간, 아니 그 전부터 나를 사랑하는 존재라니.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오직 나라는 이유로 조건 없이, 맹목적으로, 순수하게.
그건, 너무 편한 상상이 아닌가.
관계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처음 진과 니키와 친해질 때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형과 가까워질 때도 용기 내어 그의 병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 조그만 생명체는 도현이 옆에 있든 없든, 안아주든 아니든, 무한한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애정을 갈구했다.
너무 기적 같아서 차라리 함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도현은 아기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커다란 함정에 그대로 빠져버릴 거 같았다.
저 이해 못 할 애정만 거두어지면 대하기 편해질 텐데.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이기적인 생각을 하다가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뒤늦은 수마가 몰려오고 있었다.
* * *
커튼 사이로 들어온 실 같은 햇살이 눈꺼풀 위를 가로지르자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 후, 미간을 찡그리던 소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몇 번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살갗에 와 닿는 침구가 무척 부드럽고 푹신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침대도….
…침대?
벌떡!
깜짝 놀란 도현이 상체를 일으켰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건 영락없는 매트리스의 푹신함이었다. 도현은 상황 파악이 덜 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낯설고 익숙한 방.
분명, 어제 이불을 들고 찾아왔던 그 방이 맞았다. 다른 점이라면 아침이라는 것이고, 넓은 방에 도현 혼자라는 사실이며, 또 그가 침대에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왜 침대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는데,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조심조심 들어오던 이장혁은 도현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도현이 일어났네? 더 자지.”
“…제가 언제 침대로,”
“아, 아빠가 옮겼어. 바닥에서 자는 거 불편해 보이길래.”
스스로 기어서 올라온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들어서 침대로 옮기는데도 깨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야 하나.
도현은 잠귀가 밝은 편이었다.
원래도 예민한 성정인 데다가 잠에 깊게 드는 편이 아니라서였다.
그래서 더욱 충격스러웠다.
“아직 열 시밖에 안 됐어. 더 자도 돼.”
그제야 도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15분.
“…….”
심지어 이 시간까지 잤다고?
토요일 오전 10시라면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현은 평일이나 주말이나 차등을 두지 않고 한결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휴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제발 인간같이 굴라며 상당히 질려 했지만, 그게 도현이 삶에 충실히 하는 방식이었다.
“왜, 왜 안 깨우시고….”
너무 당황해서인지 탓하는 듯한 말투가 나왔다. 움찔한 도현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장혁은 이미 들은 후였다.
“어… 너무 피곤해 보이길래. 밤늦게까지 촬영하다가 왔잖아. 더 자면 좋을 거 같아서 안 깨웠어. 깨워주는 게 좋았을까?”
도현은 잠깐 마른세수했다.
“…아니에요.”
내가 못 깬 걸로 누구를 탓하는 것도 웃겼다. 조심스레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을 밟으니 더욱 진한 자괴감이 일었다.
“더 안 자려고?”
“네, 이따 나가야 해서요.”
“언제?”
“열두 시요.”
“그럼 지금 아침 먹어야겠네. 아, 씻고 나서 먹을 거니?”
“아마도….”
“그럼 맞춰서 준비해야겠다.”
말투가 어딘가 미묘했다.
고개를 기울이던 도현이 물었다.
“두 분은 아침 드셨죠?”
“아니, 아직.”
“네?”
“너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어.”
대체 언제 깰 줄 알고 그랬다는 말인가.
어이없는 한편 늦게 깬 건 자신이라서 할 말도 없었다. 도현은 결국 빨리 씻고 나오겠다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이 자리를 떴다.
방으로 돌아오자 더 어이없었다.
새 이불과 베개가 침대에 고이 접혀 있었다. 그제야 바닥이 깨끗했던 걸 떠올렸다. 바닥에서 썼던 건 세탁하는 모양이었다.
“…….”
이랬는데도 안 깼다고.
도현은 제 머리라도 깨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씻고 나오자 주방에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겼다. 버터와 설탕의 단내. 역시나 테이블을 보니 프렌치토스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도현이 나왔어?”
서혜나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딱히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투라서, 쭈뼛대던 도현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컨도 먹을 거니?”
“아니요.”
“그래, 그럼 아빠 것만 구워야겠다.”
곧이어 베이컨의 기름지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도현은 자리마다 물잔을 놓으며 물었다.
“도율이는요?”
“응, 도율이는 먼저 밥 먹고 지금은 이모님이 봐주고 계셔.”
아침엔 안 울었던 걸까?
다행인 일인데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그때, 서혜나가 불현듯 웃었다.
“우리 도율이는 천잰가 봐.”
“네?”
그녀가 제법 팔불출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다.
“아침에 네가 푹 자고 있으니까 조용히 하는 거 있지?”
“그럴 리가요.”
도현은 부정했다.
누가 자니까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걸 알 나이가 아니었다.
“진짜인데?”
도현은 장난으로 알아듣고 픽 웃었다. 그렇게 넘기니 서혜나도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사이 잠깐 정원에 나갔던 이장혁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공중전화 부스만 한, 작은 온실에서 키우는 방울토마토 몇 알이 들려 있었다.
그 온실은 도현이 기숙 학교에 가 있는 기간 동안 생겼다.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는 몰랐다. 다만 돌아왔을 때 정원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장혁은 방울토마토를 깨끗이 씻어 각자 접시에 올려주었다. 한 사람당 세 알밖에 없는 조그만 방울토마토는 우스웠다.
콩알만 한 게, 꼭 누구를 닮았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대화를 나누며 식사했다.
밤에 도현이 찾아온 것도, 늦잠을 잔 것도 아무도 화제로 삼지 않았다. 도현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다.
그 기행이 마치 일상인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양가감정이 느껴지는 아침 식사 이후 도현은 방으로 돌아와 채비했다. 다 챙기고 보니 11시 30분이었다.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도현은 주저 없이 밖으로 나섰다.
약속 장소는 그날 대화를 나누었던 돌계단이었다. 계단으로 향하던 도현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건지, 이미 그곳에 갈색 머리의 소년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희운도 도현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람이 찬 건지, 아니면 바깥에 오래 있었던 건지, 뺨이 조금 붉었다.
멈췄던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가니 소년이 물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도현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너는?”
“난….”
희운은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독촉하는 눈빛에 못 이겨 솔직하게 말했다.
“원래 오늘은 집에 안 있어.”
엄마는 이 날이면 희운을 볼 때 유독 괴로워했다. 차가운 낯 아래 숨긴 고통은 어린아이조차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깊고 짙었다.
그래서 희운은 최대한 엄마의 눈에 안 띄게 일찍 밖에 나가서, 늦게 돌아왔다. 평소보다 늦은 귀가에 처음에는 어디 갔었냐고 묻던 엄마도 나중에는 스윽 쳐다보고 말았다.
“…말하면, 일찍 왔을 텐데.”
“이미 일찍 왔잖아.”
그렇게 얘기하며 웃는 얼굴에 도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빨개진 귀 끝을 발견하고 눈가를 찡그렸다.
“일단 가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