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698)
제698화. 나의 우주 (1)
도현이 직접 만든 쿠키와 커피 차의 등장으로 인해 촬영장의 분위기는 한층 들떴다. 이브 날 촬영장에 끌려 왔다는 슬픔도 약간 수그러들었다.
“이거 찍어서 올려도 돼요?”
한 스태프가 한주애 감독에게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감독은 도현을 쳐다보았다. 도현은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촬영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부 퍼진 후다. 계속 숨기며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차라리 사진 몇 장 풀어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괜찮다는 사인이 내려오자, 한 스태프가 주춤거리며 도현에게 다가왔다.
“저, 그럼 같이 사진 찍어줄 수 있을까?”
도현의 합류가 비밀이었던 탓에 흔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유출을 염려한 것이다.
“그럼요.”
도현은 흔쾌히 수락했다.
“진짜? 고마워!”
스태프는 생각보다 더 기뻐했다.
커피 차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신나 했다.
도현은 멋쩍게 웃었다.
별거 아닌 일인데, 저렇게 기뻐해 주니까 꽤 민망했다.
“나도! 나도 찍을 수 있을까?”
“그다음에 나도 같이….”
슬금슬금, 사람들이 모였다.
도현은 민망함을 내리누르며 부드럽게 웃었다.
“원하시는 분은 다 찍어 드릴게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고작 이런 일에 기뻐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자, 이제 다들 집중해요. 빨리 찍어야 빠르게 퇴근하는 거예요. 다들 크리스마스까지 촬영장에 있고 싶은 건 아니죠?”
카메라 감독의 말에 장난스러운 야유가 나왔다. 그러자 카메라 감독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오늘은 빨리 끝내자고요. 나도 집 가고 싶으니까.”
그 말에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퇴근하고 싶은 건,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레디, 액션!”
이브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발레 학원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게시판 앞에 모인 아이들이 술렁였다.
STC 발레단 주니어 컴퍼니.
유성 재단의 산하 기관으로, 국립 발레단의 중학교, 고등학교 아카데미가 사라진 이후로 부상한 쟁쟁한 영재원 중에서도 경쟁률이 치열한 곳이었다.
입단 시험에 합격했을 시 얻는 메리트는 무료 수업뿐만이 아니었다. 대형 무대에서 STC 발레단과 함께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일찍이 무용수로서의 경험을 쌓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주니어 컴퍼니를 나온 이들은 STC 발레단에 입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탄탄대로로 한 걸음인 셈이다.
막 무용실에서 나오던 허우주와 한예지도 그것을 보았다.
초콜릿을 준 이후로, 한예지는 종종 허우주의 연습을 봐주었다. 허우주의 수업이 끝나고 한예지의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빈 시간. 그 시간이 어느 순간 같이 있는 것으로 굳혀졌다.
“뭔데? 비켜봐.”
허우주는 호기심을 참지 않았다.
그가 밀치자 여자애들이 밀려났다. 불쾌하게 찌푸린 미간에도 허우주는 신경 쓰지 않고 게시판에 붙은 공고만 보았다.
“발레단? 오디션?”
“사람을 밀치면 안 되지.”
뒤따라온 한예지가 한 소리 했지만, 허우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발레단이라니.
뭔가 멋있어 보였다.
“야.”
“밀친 애들한테 사과….”
“저 발레단 유명해?”
“…STC 발레단? 당연하지. 이번에 채희수 단장님이 새로 취임해서….”
이런저런 말은 필요 없었다.
허우주는 궁금한 것만 물었다.
“그러니까 대단한 곳이란 거지?”
“응, 대단한 곳이야.”
대단한 곳이라니.
심지어 그 말을 한 게 한예지였다. 허우주는 한예지의 발레 실력을 인정했다. 그런 이가 하는 얘기니 정말로 대단한 곳이리라.
허우주의 가슴께가 부풀었다.
“나도 저 오디션 볼 수 있어?”
“뭐?”
한예지는 반사적으로 허우주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십 대는 몸이 금방금방 적응하는 시기다. 그사이 허우주의 몸은 더욱 반듯해졌고, 자세도 좋아졌다.
하지만.
“네가?”
툭, 던진 말에 허우주가 울컥했다.
“왜! 내가 뭐!”
격한 반응에 한예지가 움찔했다.
“아니, 네가 열심히 하는 건 알지만…. 저건 정말 잘하는 애들만 지원하는 오디션이야. 너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래서? 지원 자격에 ‘잘하는 애만’이라는 건 안 보이는데?”
“저기. 발레 전공자만이라고 쓰여 있잖아.”
한예지가 손가락으로 지원 자격을 가리켰다.
중학교 1학년 이상 ~ 고등학교 2학년 이하의 발레 전공자.
그러나 명시된 자격에도 허우주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발레 전공자 기준이 뭔데? 나도 발레하는데?”
“아니….”
한예지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전공자라는 말만 있지 어느 기준으로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나누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보통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예중 예고 무용과 학생이거나, 몇 년간 발레를 해온 이들을 뜻하지 않던가?
다 차치하고.
적어도 발레를 배운 지 한 달도 안 된 허우주가 전공자가 아니란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나 허우주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봐, 나는 안 된다는 말 없지?”
기가 막혀서 침묵하는 걸 동의로 이해한 허우주는 으스댔다. 한예지는 그를 막막하게 응시하다가 간신히 물었다.
“지원할 생각이야?”
“엉.”
“진짜로?”
“뭐, 불만 있냐?”
껄렁하다.
한예지는 허우주의 성격이 불같고 고집이 세다는 걸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와 말다툼하는 대신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럼 일단, 원장 선생님이랑 상의해 보는 게 어때?”
“원장님?”
“응. 선생님은 오디션에 대해서도 잘 아시니까.”
떠넘기는 거였다. 원장 선생님이 이런 초보 중의 초보를 그런 오디션에 내보낼 리가 없으니.
“그럴까?”
그런 속셈을 모르는 허우주는 솔깃했다.
그리고.
“…오디션?”
끄덕.
“우주, 네가 나가고 싶다고?”
끄덕끄덕.
원장실 안.
그곳에는 원장과 한예지, 허우주 세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허우주가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걸 한예지가 허겁지겁 따라온 거지만.
한예지는 속으로 대비했다.
이제 원장 선생님이 허우주를 막을 터였다. 그때 허우주 반응이 얌전하기만 할 것 같진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
침묵이 길어졌다.
‘왜 말씀이 없는 거지?’
한예지는 원장을 흘깃 보았다.
‘어떻게 달랠지 고민하는 중이신 건가?’
예상 가는 이유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많이 힘들 텐데?”
“!”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상상과는 달랐다. 알겠다고 긍정한 건 아니지만, 부정이라고 치기엔 은근한 뉘앙스였다.
“선생님?”
원장은 한예지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우주를 보면서 차분히 말했다.
“네 생각보다 더 힘들 거야. 시간은 한 달밖에 없고, 그사이에 준비하려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발레만 해도 부족할 거란다. 물론, 네가 진지하게 합격하고 싶은 게 아니라 경험 삼아 나가보고 싶은 거라면 다를 테지만….”
“전 진지해요!”
“그러니? 그럼 무척 힘들 거다.”
경고는 경고의 의미로서 별 효용이 없었다. 오히려 허우주의 청개구리 심보와 호승심만 자극하는 꼴이 되었다.
“할 수 있어요!”
호전적으로 외치는 허우주를 보며 한예지는 정신이 얼얼해졌다.
아니, 대체 왜?
“그래. 네 의사는 알겠다. 하지만 지금 받는 수업으로는 부족할 텐데, 수업을 늘리는 건 네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너도 알지? 집에 가서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오도록 하렴. 나머진 그 후에 얘기하자.”
허우주도 그쯤은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인 소년이 말했다.
“당장 허락받고 올게요. 야, 나 간다.”
인사인지 통보인지 모를 말을 던진 허우주는 원장실을 나가버렸다.
입장만큼이나 막무가내인 퇴장이었다.
“…선생님.”
한예지가 원장을 불렀다.
머릿속은 무척 어수선했다.
‘사실 쟤가 엄청난 천재인 걸까?’
원장 선생님이 한예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오디션을 허락한 건지도 몰랐다.
그때, 원장이 물었다.
“예지야. 너는 생각 없니?”
“네?”
“발레단 오디션 말이야.”
“저는….”
한예지는 어물거렸다.
“나는 너라면 충분히 입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네 의사가 궁금하구나.”
“…모르겠어요.”
“왜? 좋은 기회잖아.”
“그건 알아요. 하지만….”
말끝을 흐리던 한예지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왜 쟤보고 오디션을 보라고 하신 거예요? 쟤는….”
뒤늦게 ‘허우주 발레 천재설’을 떠올리며 망설이는데, 원장이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럴 실력이 안 되지. 실력이라는 단어도 거창해. 쥐뿔도 없는 상태니까.”
신랄하기까지 한 평가에 한예지가 더 놀랐다.
“네? 그러면 왜….”
“본인이 하고 싶어 하잖니. 나는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막아본 적이 없어.”
“그래도!”
“예지야, 넌 정말 오디션에 나가기 싫은 거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예지는 벌어진 입을 닫았다.
원장은 다시금 물었다.
“허우주랑 같이 준비해도?”
한예지가 눈가를 찌푸렸다.
“걔랑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 나는 예지 네가 우주를 가르쳐줄 때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
한예지는 말문이 막혔다.
가르쳐주는 걸 언제 봤던 걸까?
“예지야. 나는 우주가 너한테 좋은 자극제가 되리라고 생각해.”
“…제가 가르치는 걸 좋아해서요?”
“아니, 서로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어서.”
원장은 최근, 한예지가 무언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한예지가 슬럼프로 고생하고 있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것과 다른 무언가였다. 문득문득 파도의 파편처럼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것.
그리고 무용실에서 허우주한테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한예지를 보았을 때, 확신했다.
허우주에게는 넘치는 열정과 모험심이. 한예지에게는 숙련된 실력과 재능이 있다.
“수업 시작할 시간이구나. 이만 가서 몸 풀고 있으렴. 오디션은 천천히 고민해 보고.”
한예지의 낯이 복잡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