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700)
제700화. 나의 우주 (3)
– 언제 도착해!
수화기 너머에서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까랑한 목소리 아래로는 어지러운 소음이 엉겨 있었다.
“집에? 아마도 삼십 분 뒤?”
– 그럼 핑퐁 노래방으로 와!
“노래방?”
주위가 시끄럽더라니. 노래방에 있어서 그랬구나.
– 우리 맨날 가는 노래방 있잖아. 알지?
주위가 시끄러운 만큼 서일준의 목소리도 커졌다. 통화 소리가 들리는지, 경찬호가 도현을 흘끔 쳐다보았다.
도현은 볼륨을 낮추며 대답했다.
“응, 알아.”
– 그리로 와!
“지금?”
– 어, 지금!
도현은 차분히 말했다.
“지금 아홉 시야. 도착하면 아홉 시 반이 넘고. 그리고 노래방은 열 시까지잖아.”
운영은 새벽까지 해도, 서일준이나 도현 같은 청소년은 10시 이후로는 출입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 그래서 안 온다고?
“시간이 늦었으니까.”
– 정말 안 온다고?
서일준은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물고 늘어졌다. 도현은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한 거절을 담아 말했다.
“나도 같이 놀고 싶지만, 시간이 많이 늦어서 그래. 오늘 말고 다음에….”
서일준이 같이 놀자고 불러주는 것 자체는 기꺼웠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도현은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기보다는 집에 가서 씻고 쉬고 싶었다.
그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 아, 안 올 거야?
소음 속에서도 그 음성은 놓칠 수가 없었다.
– 우리 지금 노래방인데….
도현은 침묵했다.
‘서일준….’
내가 그렇게 티를 많이 냈나? 대놓고 약점 잡을 만큼? 하지만 이런 건….
“…나도 갈까?”
무척 효과적이었다.
– 너 피곤하면 쉬어! 촬영장에서 바로 오는 거잖아.
“아니야. 차에서 쉬었어.”
방금까지 집에 가서 쉴 생각으로 가득했으면서,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말했다. 차 안에서 잠들었다가 막 일어났으니, 거짓말도 아니었다.
“핑퐁 노래방이랬지? 거기로 갈게.”
– 아, 응! 천천히 와!
“알았어. 일준이는?”
– 옆에 있는데….
– 흰둥이만 예뻐하는 더러운 세상.
도현이 픽 웃었다.
“그러라고 전화 바꿔준 거잖아.”
희운의 목소리에 흔들린 건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게 수작까지 부리며 도현을 부르려는 서일준의 장단에 맞춰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일준은 억울한 투로 말했다.
– 아니거든? 얘가 먼저 바꿔달라고 했어!
“뭐?”
설마, 희운이 그럴 리가….
– 이, 이따가 보자!
뚝.
도현은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경찬호의 질문에 정신을 차렸다.
“노래방 가려고?”
“…아, 네. 친구들이랑 놀려고요.”
“너무 늦은 시간 아니야? 부모님께 허락은 받았어?”
도현은 통금이 없었다.
그런 걸 두기엔 촬영 일정에 따라 귀가 시간이 들쭉날쭉할뿐더러, 도현 자체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알아서 빨리빨리 다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열 시 되면 노래방에서 나가야 해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집에 가는 건데…. 음, 그래도 여쭤볼게요. 잠시만요.”
잠시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던 도현은 금방 말했다.
“조금만 놀다가 들어오래요. 형. 죄송한데, 집 말고 노래방으로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집에서 별로 멀지 않아요.”
“괜찮아.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디라고?”
“핑퐁 노래방이요. 위치는….”
도현이 말하는 대로 내비게이션에 검색하면서, 경찬호는 남몰래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이랑 잘 지내는 거 같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다른 아이들처럼 놀지 못하고 촬영장에 출근한 게 내심 안쓰러웠더랬다.
그런데 노래방이라니.
중학생다운 일정이라서 웃음이 났다.
* * *
크리스마스이브의 노래방은 만석이었다.
“아! 여기도 꽉 찼어!”
“대기 얼마나 하래?”
“몰라. 사십 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노래방을 찾은 네 명의 고등학생이 탄식했다. 도현은 모자를 꾹 눌러쓰며 그 옆을 지나쳤다.
‘6호실이라고 했지.’
6호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문고리를 돌리려는데 그보다 먼저 문이 확 열렸다.
“아, 됐어! 귀찮으니까 콜라로 통일… 어?”
이유찬은 눈을 깜빡였다.
다음 순간 그가 왁, 하며 소리쳤다.
“이도현 왔다!”
“뭐? 이도현?”
단숨에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김병철이 희운의 어깨를 덥석 잡고 흔들었다.
“흰둥아, 네 집사 왔대!”
“누가 집사야!”
희운의 뺨이 약간 붉어졌다.
도현은 웃음을 흘리다가 이유찬이 열고 있던 문을 대신 잡아주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사이다로.”
“콜라로 통일이라고 미친놈아.”
* * *
그래놓고 사이다로 가져왔다.
‘착하기는.’
도현은 이유찬이 가져온 사이다를 마시며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마음속 Fantasy-”
앞쪽에선 김병철이 아이돌 노래를 열창 중이었다. 도현이 [구미호뎐>으로 NMC 시상식에 초청되었을 때, 축하 무대에 올랐던 걸그룹, 아이리스의 노래였다.
그가 잔망스럽게 웨이브하자 야유가 쏟아졌다. 그럴수록 김병철은 더욱 신나 했다.
“어우, 저 관종.”
여자애들이 질색했지만, 내심 재미는 있는 듯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넌 노래 안 불러?”
사이다만 홀짝이고 있으려니 희운이 물었다.
“응, 나는 별로. 너 불러.”
“왜?”
“아까 차에서 쉬었다고 했잖아. 그게 잠들었던 거라 아직 좀 나른해. 그리고 구경하는 게 더 재밌어.”
도현은 노래방에 오면 빼는 편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으로 부르는 편도 아니었다.
“근데 너희는 이렇게 만난 거야?”
“우리?”
“응, 내가 생각했던 조합이랑 달라서.”
“그거 얘네들이 무단 침입 한 거야.”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던 한설아가 서일준을 콕 집어 손가락질했다.
크리스마스라 기분을 낸 건지, 한설아는 평소보다 멋을 낸 모습이었다. 청바지에 무스탕, 그리고 머리에 쓴 비니가 모범생 같은 단정한 외양과 의외로 잘 어울렸다.
“무단 침입?”
“응. 우리가 먼저 와서 놀고 있었는데 쟤네가 침입했어.”
“진짜! 갑자기 쳐들어와선 같이 놀자고 했다니까?”
서일준이 씩 웃었다.
“응. 대신 줄 서줘서 고맙고~”
“아, 존나 얄미워!”
“미친. 양심 어디에 두고 왔냐.”
금세 투덕거리기 시작하는 친구들에 도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웃는 게 재수 없다는 이유로 노래 한 곡을 강요당했다.
도현이 한 곡을 부르고, 이후로도 두 곡 정도가 지나갔다. 그러니 열 시였다. 그들은 뭉그적대다가 청소년을 쫓아내려고 나온 주인아저씨에게 쫓겨났다.
“아, 이제 어디 가지.”
서일준이 뱉은 말에 도현이 물었다.
“어디 가냐니?”
“노래방에서 쫓겨났잖아. 이제 어디서 노냐.”
“집에 가야지. 벌써 열 시잖아.”
“뭐? 진심이야?”
“응.”
“크리스마스이브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나이는 열다섯인데.”
“너 방금 왔잖아!”
“그래서?”
“와…. 아니, 형님답기도 하고.”
그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어느새 옆에서 걷고 있던 최민지가 말을 걸었다.
“도현아, 집에 갈 거야?”
“음, 아무래도. 일찍 들어가겠다고 약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데, 최민지가 불쑥 제안했다.
“그, 그럼 같이 갈래? 나도 이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래?”
“아, 그럼 나도… 으붑!”
조심스레 끼어들던 희운이 당황해 뒤를 돌아보았다. 희운의 입을 틀어막은 한설아가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우린 더 놀자. 민지는 통금 있고 도현이는 일찍 들어간다고 약속했다니까 먼저 보내고….”
“아니, 너희도 집에 가야지.”
도현이 정정하자 한설아가 눈에 힘을 주었다. …왜?
“둘이 가.”
“다 같이….”
“둘이 가라고.”
원래 저렇게 기백 넘쳤던가.
떨떠름하게 한설아를 응시하던 도현은 문득, 아이들 사이에서 감도는 기류가 미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는 거 같은데, 이 자리에 도현이 있다는 걸 까먹은 게 분명했다.
잠시 침묵하던 도현이 말했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는 마.”
“알았어. 걱정하지 마! 희운이도 내가 열한 시 전에는 책임지고 집에 보낼게! 데려다줄게!”
“네, 네가 날 왜 데려다줘!”
“아.”
무심코 말을 뱉은 한설아가 뒤늦게 귀를 붉혔다. 도현은 풋풋한 소년, 소녀를 보고 헛웃음을 뱉다가 최민지를 돌아보았다.
“집 방향이 어디야?”
최민지가 수줍게 손가락을 폈다.
“나는 저쪽….”
도현과 같은 방향이었다.
도현은 자연스럽게 웃었다.
“그래? 나랑 같네. 같이 가면 되겠다.”
도현은 옆에서 음흉하게 웃으며 옆구리를 찔러대는 서일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일준아, 나 먼저 갈게.”
“바쁘네, 바빠~”
“그렇게 바쁘진 않은데.”
“그으래?”
기분 나쁠 정도로 실실거린 서일준은 도현을 보내주었다. 평소라면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을 텐데, 시원할 정도로 빠른 포기였다.
타박, 타박.
두 사람의 발소리가 엇박자로 겹쳤다.
그 침묵이 버거웠는지 최민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 오늘 촬영 잘했어?”
“촬영? 응. 잘했지. 일찍 끝난 덕에 너희랑 놀았잖아.”
“놀았다기엔 너무 짧은 시간 아니야?”
“뭐, 그렇긴 한데.”
짧게 웃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가게에서 흘러나온 색색의 조명 빛이 무채색 옷을 물들였다. 도현은 캐럴 가사를 들으며 과거의 기억을 곱씹었다.
티타임이었지.
“저, 도현아.”
“응?”
“그게….”
최민지는 말을 꺼내놓고 안절부절못했다.
고개는 깊이 떨궈진 지 오래였다.
도현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안 그러면 좋겠는데.
“저, 있잖아….”
“응.”
불현듯 최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적당한 채도의 갈색 눈동자 위로 전구 빛이 어른거렸다.
찰나, 화제를 돌릴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긴장과 설렘, 불안과 체념, 그리고 간절함이 묻어나는 얼굴은 그런 식으로 피하기에 적절치 않았다.
결국 도현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소녀를 마주 보았다.
“나, 나 너 좋아해.”
도현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