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71)
제71화. 표류 (13)
분명 몸에 비해 사이즈가 큰 바이올린인데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능숙해 보였다.
미아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미아는 바이올린 전공은 아니었지만, 음악을 전공한 만큼 고가의 악기와 저가의 악기를 구분할 정도의 식견은 됐다.
‘저거 혹시…?’
미아는 자신이 한 생각에 놀라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비싼 라인은 몇억을 호가할 정도인데, 아이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부유한 집안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라지만, 그건 좀 정도를 넘어섰다.
미아가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데, 그 순간 선명한 바이올린 음색이 퍼져 나갔다.
‘!’
미아는 방금까지 했던 생각을 모조리 잊어버렸다.
단조로웠던 피아노 위에 바이올린 선율이 얹어지자, 연주가 순식간에 풍성해졌다.
선율이 너무 부드러워서 귀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앞에 맑은 하늘과 바람에 물결치는 초록 들판이 펼쳐졌다.
부드러우면서 사랑스러운 바이올린 연주가 선명하게 외치고 있었다.
이건 [봄>이라고.
뒤에 있는 벽화와 움직임 자체로도 시선을 빼앗는 우아한 쇼맨십 그리고 듣기 좋은 연주가 함께 펼쳐지니, 정말로 봄의 향취가 코앞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피아노 소리가 점점 멎어가고, 바이올린이 새소리를 지저귀었다.
미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다른데?’
미아가 알고 있는 비발디의 [사계-봄>과 전개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는지, 새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직접 편곡한 건가?’
이런 [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미아가 의아해하는 사이.
드륵-
문이 열렸다.
미아는 그제야 자신이 진의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이었다.
치이이잉-!
공기를 찢어버릴 것 같은 사나운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좌중을 압도하는 강렬한 음색!
몸을 살짝 뒤로 기울인 채 앞으로 걸어 나오는 진의 왼손이 줄 위를 시원하게 슬라이딩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시작된 왼손의 화려한 트릴!
이어서 오른손까지 손가락으로 줄을 눌렀다 뗐다 하는 태핑을 펼치며 현란하게 줄 위에서 춤을 췄다.
몰아치는 음색에 미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당혹스러운 와중에, 딱 한 가지 생각만이 선명했다.
‘잘하잖아!’
통기타를 연주할 때도 손가락 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물을 만난 망둑어 같았다.
진의 손가락이 줄 위를 폭주 기관차처럼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모두가 진에게 시선이 빼앗겼을 때.
도현이 활을 부드럽게 내리그었다.
귀에 직격하는 일렉 기타 음 사이로 바이올린의 가녀린 음색이 천천히 파고들었다.
‘이건….’
미아가 눈썹을 모았다.
마치, 폭군 같은 일렉 기타에 바이올린이 저항하는 것 같았다.
봄이 갑작스럽게 난입한 무뢰한에게 칭얼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나의 계절이라고.
그러나 봄의 목소리는 너무 미약했다.
새싹이 고개를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고, 새들이 지저귀다가 숨을 죽이기를 반복했다.
그에 신이 난 폭군이 더욱 활개를 쳤다.
진이 피크를 쥔 손을 탁 튀겼다.
무심하게 던진 손에서 알 수 없는 멋이 느껴졌다.
순간, 미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저건 [겨울>이잖아!’
비발디 [사계-겨울> 3악장.
그렇다.
진이 연주하고 있는 것은 [겨울>이었다!
땅이 녹길 바라지 않는 겨울이 자리를 틀고 앉아 진상 짓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봄이 물러나는가.
모두가 작아진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이었다.
다다단 다란
다다단 다란
멈춘 줄 알았던 피아노 소리가 합류했다.
괜찮아, 힘을 내!
할 수 있어!
피아노가 바이올린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에게 조명이 집중되면서 일렉 기타의 볼륨이 줄어들었다.
혹독한 겨울바람이 잦아들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대화에 집중했다.
미아는 저도 모르는 사이 손을 꼭 쥐었다.
세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속절없이 빨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밀턴은 아래로 내려간 안경을 추켜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진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부모의 기대가 부담이 될까 봐 쉬쉬하고 있었지만, 로테와 밀턴 둘 다 나중에 그쪽 길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을 만큼 진의 재능은 아주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저 아이는 대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알까.
지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저 작은 아이의 연주에서 거장의 모습이 보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 것인가.
밀턴조차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단순히 재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재능이라면 수백, 수천 번은 같은 궤적을 그린 것 같은 저 아름다운 각도가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정말 저게 재능 덕분이라면.
세상에 다시없을 악마의 재능이었다.
파가니니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밀턴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을 느꼈다.
연주는 계속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대화를 방해하듯이 일렉 기타가 끼어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이올린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피아노의 지원에 힘입어, 점점 몸을 부풀린 봄이 푸른 하늘을 펼쳤다.
그렇게 시작된 바이올린 속주!
거칠고 사납기까지 한 음색이 한계를 모르고 빨라지자, 밀턴의 입이 벌어졌다.
수많은 [봄>을 들어봤다.
그러나 이토록 폭력적인 [봄>은 난생처음이었다.
겨울이 자리를 비키지 않으면 한 대 칠 기세였다.
이 순간 교실 안에 있는 사람 중 여기가 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봄에 주춤하던 겨울이 결국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그리고.
격렬하게 휘몰아치던 봄이 다시 잔잔해졌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양, 새침을 떨며 새소리를 지저귀고, 맑은 샘 소리를 흉내 내었다.
“푸핫!”
“픕!”
점잖게 바이올린을 켜는 도현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서서히 잦아들고.
그렇게 봄이 세상을 지배했다.
* * *
진은 연주를 끝내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니콜라스와 도현의 합주를 들으면서 문밖에 서 있을 때, 심장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하마터면 박자를 놓칠 뻔했다.
식은땀이 난 손바닥을 계속 옷자락에 문지르기를 몇 번.
문을 열고 등장한 순간.
자신을 보고 놀란 사람들의 표정에 진은 손끝이 찌릿해지는 걸 느꼈다.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홀로 주목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 재밌어!’
진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어디선가 시작한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진이 넓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만약, 사람들이 더 많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박수친다면?
나를 보고 열광해 준다면?
세상에.
“도리도리! 진!”
니콜라스가 활짝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잘했어!”
니콜라스가 양손을 쫙 펴서 위로 올렸다.
짝!
진과 도현이 니콜라스의 손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손을 마주친 세 아이가 봄꽃보다 더 싱그럽게 웃었다.
그 직후.
세 사람의 주변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와글와글 몰려들었다.
도현이 갑작스럽게 몰린 사람들에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홍수에서 도현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헉!”
완전히 얼이 나가서 세 아이를 보고 있던 미아가 기겁했다.
‘카메라가 꺼져 있었어!’
진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촬영하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난감한 얼굴로 허둥지둥하는 미아를 본 줄리아가 말을 걸었다.
“미아 선생님. 뭔가 문제라도 있어요?”
“촤, 촬영을 못 했어요!”
“예?”
“카메라가 꺼져 있는 걸 지금 확인했어요. 아, 이걸 어째.”
“다, 다시 한번 확인해 봐요. 혹시 켜져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영상 목록에 저장된 게 없어요. 안 찍혔나 봐요.”
두 선생님의 얼굴에 당혹과 함께 낭패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방금 전 연주는 델마 아카데미 역사에 길이길이 남겨야 할 역사적인 연주였다! 그걸 널리 퍼트리지는 못 할망정 촬영조차 하지 않다니….
미아와 줄리아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학부모들에게 혹시 촬영하신 분이 계시는지 물었다.
그러나 줄리아가 사전에 영상이 올라온다고 공지한 것 때문인지 촬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그때였다.
“저….”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인상 깊은 한 젊은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제가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이 있는데, 혹시 이거라도 보내 드릴까요?”
“!”
미아의 눈이 커졌다.
“그, 니콜라스만 확대해서 촬영한 데다가 조금 흔들렸는데…. 아, 음질도 그다지 좋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필요하시다면.”
“네! 부탁드려요!”
미아가 나르샤의 손을 덥썩 잡았다.
‘엄마한테 보내려고 찍은 건데, 이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나르샤가 그런 생각을 하며 싱긋 웃었다.
* * *
“그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나도 배우고 싶다! 엄마 나 바이올린 배울래!”
도현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서 눈이 핑핑 도는 중이었다.
음악회가 끝나고 천천히 전시회를 구경하며 담임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인데, 사람들은 모두 DJ-N 조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적당히 해야 했는데.’
도현이 뒤늦게 후회했다.
진의 스파르타 연습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열심히 연주해 버렸다.
비록 육체는 도현의 것이라지만 실력 자체는 형의 것이니,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당연했다.
도현이 아이들에게 휩싸여 자기반성을 했다.
쩔쩔매는 도현을 서혜나가 굳은 낯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 밀턴이 다가왔다.
“도현의 연주가 정말로 훌륭하더군요.”
“아, 밀턴 씨.”
서혜나가 금방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진의 기타 실력이야말로 엄청나던데요? 진이 들어온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하하. 그건 저도 놀랐습니다.”
뭔가 숨기는 듯하더니, 이런 서프라이즈를 준비 중이었을 줄이야.
[사계-봄>을 록으로 만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딸의 기행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부모의 생각을 뒤집고 앞서 나갔다.
“그런데, 혹시 바이올린을 배운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다 보니 그리 오래되진 않았죠. 그러고 보니 음악 평론 일을 하신다고….”
서혜나가 뭉뚱그려 대답한 후 주제를 조금 돌렸다.
“네. 음악 칼럼이나 라디오, TV 음악 방송 기획 같은 일을 다양하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저 아이 바이올리니스트로 키우실 생각이신가요?”
“바이올리니스트요?”
서혜나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도현이는… 연기를 할 것 같아요.”
“영화를 찍었다는 이야기는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쪽 업계 사람으로서 듣는 귀는 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봤을 때 도현은 천재예요.”
밀턴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만약, 도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주를 들려준다면, 누구든 프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라고 생각할 겁니다. 두 자릿수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연주를요! 오, 신이시여. 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저는 도현을 보며 니콜로 파가니니가 떠올랐어요.”
서혜나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음악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그녀라도 파가니니는 알고 있었다.
“파가니니가 9살에 첫 연주회를 했다는 거 아십니까? 그때 파가니니를 발견한 사람들의 기분이 이럴까 싶군요. 감히 말하건대, 기적과도 같은 재능이에요.”
냉정하고 이지적이었던 얼굴에 흥분이 차올랐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밀턴은 수많은 연주자의 연주를 들어왔다.
가능성 있는 연주자를 알아보고 발굴해내는 것도 그가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이만큼 빛이 나는 재능은 그의 삶을 통틀어 두 번째로 보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던 비르투오소, 수많은 작곡가의 뮤즈이자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희성이었다.
천재는 공통점이라도 있는 걸까?
왜 이제야 떠올렸을까 싶을 정도로 정희성과 연주 스타일도 흡사했다.
‘세상에 두 번째 천재가 등장한 건가?’
밀턴이 헛웃음을 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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