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95)
제95화. 한 여름, 폭풍 (4)
아람과 스태프를 따라가던 도현은 강이든과 눈이 마주쳤다.
일 초 정도 흐르고.
“잘 부탁드려요.”
“그래.”
도현의 담백한 인사에 턱을 살짝 끄덕인 강이든이 도현을 스쳐 지나갔다.
‘신기한 사람이야.’
도현이 그리 생각하는데 아람이 도현의 귀에 속삭였다.
“오, 오빠. 강이든 배우님이랑 친해?”
“오늘 처음 봤어.”
“그래?”
아람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편의점 앞.
도현과 아람이 두 손을 맞잡은 채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들의 어깨가 위축되어 있다.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야! 거기!”
편의점 주인의 신고를 받고 나타난 강이 경찰차에서 내려 아이들을 부른다.
자신을 부르는지 모르는 아이들은 주변만 두리번거린다.
달려오던 강이 신경질을 내며 소리친다.
“어이, 거기! 꼬맹이 둘!”
이때, 도현의 시야에 위치한 조연출, 정가현이 신호를 보냈다.
도현이 어깨를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두 아이의 시야에 한 경찰이 들어온다.
“컷! 오케이!”
오케이 사인이 났다.
도현은 아람을 살피는 것도 잠시 잊고, 스타일리스트에게 머리카락을 정돈받는 강이든을 보았다.
다르다.
분명 방금 전에 인사를 나눴던 사람이었다.
사람에게는 특유의 목소리가 있기 마련이었는데, 분명 인사할 때와 같은 목소리지만 달랐다.
인사를 나눌 때 그의 목소리는 심중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털털하고 귀찮음 많은 성격이 드러났다.
그뿐 아니라 묘하게 송곳 같은 예민함과 날 선 느낌까지 받았다. 실제로 작중 강은 불면과 신경과민으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겨우 두 마디의 대사에서….’
도현이 감탄했다.
그것도 잠시.
“다음 장면 갑니다!”
곧이어 촬영이 이어졌다.
도현은 심호흡을 한번 하며 잡생각을 지워냈다.
“레디, 액션!”
슬레이트가 내려갔다.
머리를 싸매며 했던 분석도, 해석도. 지금은 모두 잊어야 할 때다.
도현의 표정이 달라졌다.
* * *
강이든은 저보다 한참은 조그만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반질반질한 검은 정수리와 주눅 든 얼굴. 겁먹은 소동물을 연상시켰다.
송아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아이가 아프다고 칭얼거렸다.
화들짝 놀란 송하가 손에 힘을 느슨하게 풀며 송아를 짧게 달래곤, 다시 강이든을 쳐다보았다.
‘강’은 그 경계심 어린 태도가 우습지만, ‘강이든’은 그렇지 않았다.
신호가 떨어지자 바로 낯빛을 바꾼 저 아이가 흥미로웠다.
그래도 지금은 강이니까.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후, 숨을 내뱉었다. 내려다보는 자세가 삐딱하다.
“꼬마야, 부모님은 어디 가셨어?”
헝클어진 머리카락. 건들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못마땅함이 담겨 있는 눈빛.
경찰복만 아니었으면 어디 뒷골목에서 어린아이를 상대로 겁을 주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송하의 경계심이 더욱 올라간다.
송하가 느슨하게 풀었던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큰 키의 강을 올려다보는 검은 눈동자에는 경계와 불안이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앙다문 입술이 꽉 닫힌 아이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경계만 사자 강이 아이씨,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숨을 한번 쉬더니 허리를 조금 굽히며 인위적으로 다정한 목소리를 짜낸다.
“엄마 잃어버렸어? 길 잃은 거야?”
얼굴에는 가식적인 미소가 올라온 채였다.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가 그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대본대로라면 대답이 돌아와야 할 때.
그러나.
주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도현이 되레 아람을 제 뒤로 숨긴다.
‘나쁘지 않네.’
강이든은 당황하는 법 없이 능청스럽게 연기를 이어갔다.
아이가 물러난 만큼, 한 발짝을 더 내딛는다.
“응?”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로, 양 눈썹을 들어 올리며 아이를 재촉했다.
평소에는 한없이 가벼운 강의 캐릭터성을 보여주는 우습고 괴상한 표정이다.
송하가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굴리다가 마지못해 작게 대답한다.
“아뇨, 길 안 잃었어요.”
“그럼 왜 혼자 돌아다녀?”
강이 송하의 눈높이에 맞춰 다리를 쪼그리고 앉았다.
한순간에 두 사람의 사이가 좁혀진다.
강과 송하의 눈이 마주친다.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본 강이든은 아까의 생각을 정정했다.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꽤 재미있었다.
“가출한 거야? 혹시 집에서 엄마 아빠랑 무슨 일 있어? 엄마 아빠가 혹시 꼬마 친구를 아야, 하게 해?”
“아뇨! 엄마 아빠는 저 안 때려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곧바로 부정한다.
흐음, 강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그럼 왜 여기 동생이랑 둘이 있는 건데? 어린애 둘이 돌아다니면 부모님이 걱정하신다.”
강의 말에 송하가 입술을 살짝 씹었다. 속눈썹이 바르르 떨리며 초조함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때였다.
강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손에 들린 건 핸드폰이었다.
“부모님 연락처 알아?”
말하면 바로 전화를 걸 기세였다. 송하가 다급히 강의 팔을 잡았다.
“안 돼요! 엄마 아빠한테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경찰 아저씨, 제발요.”
팔이 붙들리자 불에 덴 사람처럼 움찔했던 강이 이어진 말에 눈썹을 비틀었다.
“아저씨이?”
말꼬리를 늘어트린 강이 눈매를 확 좁혔다.
“누가 아저씨야, 아저씨는? 나 아직 이십 대거든?”
송하가 눈을 깜빡였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얼굴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죄, 죄송해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표정을 해석하자면 ‘뭐야, 이 이상한 아저씨는’ 정도가 될 것 같았다.
“앞으로는 조심해라, 꼬마야. 내가 착하니까 넘어간다!”
강이 혀를 쯧쯧 차며 한 번만 봐준다는 식으로 말했다. 누군가 보았다면 나이 먹고 꼴값 떤다고 한 대 때렸을 얼굴이었다.
이상한 것을 보듯 묘하게 찡그린 어린아이와 어깨를 쫙 편 채 의기양양해하는 다 큰 남자.
우스꽝스러운 촌극 같은 장면이 만들어졌다.
“컷! 오케이!”
컷 소리가 나자, 두 사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너….”
강이든이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바스트 샷으로 한 번 더 갑니다!”
“음.”
도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강이든의 등을 보았다.
방금 말을 걸려던 거 아니었나?
감독의 지시가 떨어지자, 깔끔하게 뒤를 돌아 가버린다. 그 전환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도현이 눈을 깜빡이다가, 아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은 괜찮아?”
“응. 대사가 거의 없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안 무서워.”
확실히 이번 장면 촬영은 아람에게 부담이 덜 가는 장면이기는 했다.
송하와 송아를 중심으로 촬영했던 어제와 달리, 송하와 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람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조금 재밌는 것 같기도 해.”
아람의 말은 진심이었다.
어제 촬영 이후.
이상하게도 카메라 앞이 전처럼 무섭지가 않았다. 어쩌면 마주 잡은 손 때문일지도 몰랐다.
도현도 그 모습을 보고 따라 웃다가, 작게 말했다.
“그래도 힘들면 말해야 해.”
“알았어!”
아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같은 장면을 다른 앵글로 반복해서 찍은 후 촬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 * *
“그래서.”
강이 삐딱하게 팔짱을 꼈다. 눈빛이 상당히 불손했다.
“부모님께 연락은 하지 말아달라.”
끄덕끄덕.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다.”
끄덕끄덕.
“그런데 이유는 말 못 한다?”
끄덕끄덕.
“아우, 확! 애만 아니면 진짜!”
강이 뒷골이 당긴다는 듯이 목을 잡았다. 고개를 좌우로 틀어 스트레칭을 하며 마음을 다스린 강이 다시 송하를 보았다.
“꼬마야. 형이 그리 한가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렇게 떼를 쓴다고 들어줄 수가 없어요. 안 그래도 복잡해 죽겠는데….”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닌 듯, 강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면 다크서클도 내려와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실제로 강은 며칠째 잠도 잘 못 자며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된 건 한 달 전, 밤교대 근무 때 취객을 제압하면서부터였다.
술 취한 중년 남자 하나 제압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냐마는, 문제는.
– 야, 야! 선우강! 내가 힘 쓰지 말랬지!
제압하려고 하자 선임이 그를 뜯어말린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순간,
– 에이씨!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취객이 그 틈을 타 강을 뒤로 떠밀었고, 그대로 전봇대에 머리를 박았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결국, 가벼운 뇌진탕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였다.
자꾸만 머릿속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앞에 이상한 환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에 찾아가서 항의했지만, 검사 결과는 이상 무.
결국, 다시 일선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짜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생겼다.
– 제가 안 그랬어요! 제가 왜 그런 걸 훔쳐요!
– 저, 저! 가방에서 물건 나오는 걸 다 봤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거짓말이야!
– 하, 거참. 다들 진정하시고. 일단 앉아 보세요.
억울한 얼굴로 소리치는 여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어깨를 잡은 순간이었다.
지지직-
전파음과 함께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가 이지러졌다.
그리고.
강은 보았다.
한 남성이, 초조한 얼굴로 눈치를 보다가 때마침 지나가는 여성의 가방에 물건을 넣고 나가는 걸!
장면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경찰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여자는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 …거, CCTV 확인 좀 합시다.
CCTV를 보는 내내 강은 다리를 달달 떨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강이 본 기억 그대로, 같은 일이 펼쳐졌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실적도 좋아져 선임이 칭찬하는 일까지 생겼지만, 강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뭐 잘못된 거 아닌가, 어디 국가 연구 시설에서 잡으러 오는 거 아닌가, 갑자기 외계인이라도 들이닥치는 거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고 무엇보다.
– 선우강이! 우리 에이스 왔네! 허허허!
자꾸만 그에게로 일이 몰렸다!
귀찮고 골치 아픈 일들이 자꾸 제 앞으로 떨어지니, 대충 살다 가는 게 목표인 선우강에게 괴상한 능력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보여도 안 보인 척, 알아도 모른 척을 시작한 지 며칠째.
한창 날카로워진 상태에 미아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너 내가 부모님 연락처 못 알아낼 줄 알아? 어? 그냥 좋게 좋게 가려고 이렇게 친절하게 묻고 있는 거잖아.”
내용만 보면 어디 깡패 같은 말투였다.
“자, 꼬마야. 너한테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
척!
강이 주먹을 내밀었다.
“하나. 부모님 연락처를 말한다.”
손가락 하나가 펴졌다.
“둘. 집에 돌아간다.”
또 하나가 펴졌다.
“셋. 여기서 이러고 있는 이유를 말한다.”
강이 세 손가락을 송하의 눈앞에 흔들었다.
“뭐 고를래? 이야, 선택지가 세 개나 있네!”
“경찰 아저….”
“형!”
“형. 저는….”
“다른 대답은 필요 없어. 숫자만 골라!”
송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손가락을 뚫어져라 보던 송하의 눈이 점점 발갛게 달아오르고. 이내 눈물이 차오른다.
“어, 어? 야! 울지 마! 왜 울라 그래!”
강이 당황해하며 허둥지둥했다.
그때, 내내 뒤에 숨어 있었던 송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조그만 볼을 부풀리며 강을 노려보는 표정이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다.
“우리 오빠 괴롭히지 마!”
“허어….”
강이 억울하다는 듯이 입을 뻐끔거렸다.
“전, 저는….”
송하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쯧쯧 혀를 차며 강을 보았다.
강은 억울해 죽을 것 같았지만, 일단 애를 달래려고 몸을 굽혔다.
“야. 울지 말고…. 우리 대화로 하자. 대화로.”
“숫자만, 끕, 고르라면서….”
“아니! 누가 그래! 자자, 그만 울고. 뚝! 뚝 하자, 뚝!”
아이를 울린 것에 크게 당황한 강이 그동안 접촉을 삼갔던 것도 잊고 송하의 어깨를 잡았다.
그때였다.
지지직-
익숙한 소리와 함께, 환영이 눈앞에 가득 찼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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