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 Child Actor to a World Star RAW novel - Chapter (99)
제99화. 한 여름, 폭풍 (8)
승마가 끝나고 도현은 당근을 조랭이의 입에 물려주었다.
와작. 와작.
낯을 가리지 않고 곧바로 받아먹는 조랭이에, 도현이 말의 목덜미를 몇 차례 쓰다듬었다.
“이제 가자, 도현아.”
도현의 눈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렇다고 여기서 천년만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갈기를 길게 쓰다듬었다.
“안녕.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조랭아.”
툭.
조랭이의 머리가 도현의 어깨를 건드렸다.
“조랭이가 인사해줬나 보다!”
이장혁이 굉장히 좋아했다. 도현도 정말인가, 하는 표정을 짓다가 곧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였든 아니든, 덕분에 아쉬움을 조금 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도현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내며, 차에 올라탔다.
“야시장 들러서 먹을 거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서 먹자.”
아침부터 부랴부랴 챙겨서 비행해 온 터라 더 돌아다니기에는 피곤했다.
“집에도 수영장 있잖아. 거기서 물장구치면서 먹으면 되지.”
“그거 좋은 생각이네!”
확실히, 바다를 보며 수영장에서 저녁을 먹으면 멋있을 것 같았다.
도착한 야시장은 굉장히 번잡하고 시끄러웠다. 이장혁이 주차할 곳을 찾느라 세 바퀴나 빙빙 돌아야 했을 정도였다.
“저기 아이스크림 판다. 도현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네.”
도현의 입에 한라봉 맛 아이스크림이 물려졌다.
도현은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야시장을 구경했다.
이런 시장에 온 것은 처음이라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모두 신기했다.
도현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곧 그게 의미 없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가장 끝 쪽에부터 줄을 선 이장혁과 서혜나가 점포를 클리어하듯이 하나하나 전부 구매한 탓이었다.
도현은 말려야 하나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그걸… 전부 다 사는 거예요?”
“남으면 버리면 되지. 여기까지 와서 아끼느라 먹고 싶은 걸 안 먹을 순 없잖아.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결국, 도현은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며 손에 하나둘씩 늘어나는 봉지를 나눠 들었다.
나중에는 서혜나와 이장혁이 찢어져 따로 구매했다.
그렇게 사다 보니 금방 한 시간이 흘렀다. 줄이 너무 길어서 기다리는 데 오래 걸린 탓이었다.
털썩.
세 사람이 뒷좌석에 봉지를 내려놓았다.
차 안에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후. 힘들었다. 이제 더 돌아다닐 힘도 없어.”
서혜나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 샀네. 줄이 너무 길어서 적당히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에이. 줄이 긴 곳이 맛집인데, 포기하면 안 되지.”
그 또한 맞는 말이었다.
점포 중에서 유독 사람이 몰린 곳이 있었는데, 이장혁이 그냥 가자는 걸 서혜나가 어르고 달래고, 도현이 물끄러미 쳐다봐서 기어코 구매에 성공했다.
서혜나가 뿌듯한 표정으로 한가득 쌓인 음식 봉지를 보다가 말했다.
“이제 빨리 집에 가자! 음식 냄새 맡으니까 배고픈 것 같아.”
“그래, 그래.”
이장혁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다시 차의 뚜껑이 열렸다.
세 가족이 탄 차가 제주도 밤거리를 신나게 달렸다.
집에 돌아온 세 사람은 가볍게 씻고, 수영복을 입은 후 수영장에 들어갔다.
도현은 조금 황당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영장 삼면을 음식이 둘러싸고 있었다.
먹으려면 헤엄쳐 가서 집어 먹고, 다른 거 먹고 싶으면 또 헤엄쳐 가야 하는 웃긴 상황이 펼쳐졌다.
서혜나가 낄낄 웃었다.
“이렇게 먹으니까 되게 재밌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는 엄마를 보다가 도현도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도현아! 이거 맛있어! 이거 먹어봐!”
첨벙, 첨벙!
“도현아! 이것도 맛있다!”
촤아악. 첨벙!
…조금 힘든 것 같기는 했다.
‘이게 바로 똥개 훈련인가?’
자연스럽게 한국 단어를 떠올리는 도현이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첫날 밤이 저물었다.
* * *
다음 날.
아침에 해변가를 거닐고, 게와 문어가 올라간 해물 라면으로 점심 식사까지 마친 세 사람은 현재 비자림에서 청량한 공기를 맡는 중이었다.
사방에 울창한 나무가 솟아 있었고 어딜 봐도 초록색이었다.
심지어 아침에 가볍게 비가 내려 진한 풀 냄새가 났다.
“이게 삼림욕이구나….”
이장혁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풀숲에서 나오는 상쾌한 공기가 온몸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느낌이었다.
도현도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맑은 공기가 들어오자 머릿속이 맑게 개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느긋하게 산책로를 걸었다.
“이렇게 놀러 나오니까 좋다, 그치?”
서혜나가 은근한 어투로 말했다.
“네. 정말 좋아요.”
“그럼 앞으로도 자주 나올 거지?”
“…….”
“응?”
“…네, 그래요.”
많이 답답하셨구나.
어쩐지 미안함이 드는 도현이었다.
그들은 주변 명소를 몇 군데 더 둘러보고, 야시장에서 음식을 사 먹었던 전날과 달리 유명한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 요리를 시켜 먹었다.
그 후에는 루프탑이 있는 카페로 가서 바다를 구경하며 음료를 마셨다. 밥을 다 먹었는데도 신기하게 달달한 디저트는 꿀떡꿀떡 잘만 넘어갔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몹시 만족스러워서 세 사람 모두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떠올랐다.
이변이 생긴 건 다음 날이었다.
비행기 예약은 오후 네 시였다.
그 전에 나가서 조금 놀다가 공항으로 갈 요량으로 짐을 싸던 때였다.
지이잉-
도현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주머니를 더듬어 핸드폰을 꺼낸 도현의 눈이 순식간에 크게 뜨였다.
도현이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리암!”
도현의 외침에 짐을 싸던 서혜나와 이장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도현은 부모님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리암, 무슨 일이에요?”
도현이 다급히 물었다. 누가 봤다면, 큰일이라도 난 사람 같아 보일 정도였다.
– 이도현.
도현이 움찔했다.
리암이 자신의 풀 네임을 부른 적이 있던가?
도현의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현의 눈에 긴장이 차올랐다.
뭔진 몰라도,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았다.
– 됐어….
“네?”
– 됐다고!
“그러니까 뭐가요!”
도현이 답답함에 통화음을 키웠다.
–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었다고!
“…네?”
– 그것도 경쟁 부문이야! 크하하핫! 경쟁 부문이라고! 이런, 미친!
도현이 멍하니 뒤를 돌았다.
서혜나와 이장혁이 넋이 나간 얼굴로 도현을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 것 같았다.
도현이 조금 멍청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누가요?”
– 누구긴 누구야! 우리지! 우리 영화가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었다고! 어? 베니스 영화제 말이야, 베니스!
“세상에….”
도현이 한 말이 아니었지만, 도현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어 주었다.
침착, 침착하자.
도현이 애써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확실, 확실한 거예요?”
– 그럼! 나도 믿기지 않아서 물구나무 자세로 확인해 봤는데, 맞더라!
“대체 언제 출품한 거예요? 아니, 왜 지금까지 말도 안 해줬어요!”
생각해보니 억울했다.
그 중요한 일을 왜 비밀로 한 것인가?
– 그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미친 척하고 한번 해봤는데 이게 될 줄이야. 아니, 될 것 같긴 했다만….
그 무책임한 말에 도현의 입이 벌어졌다.
– 아무튼, 베니스다, 베니스! 비경쟁도, 오리종티도 아니고 경쟁! 경쟁 부문!
도현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날듯이 기뻐하는 리암을 보니 심상치 않은 일인 것 같았다.
– 다 네 덕분이다. 네가 내 행운의 신이야! 집에다가 네 사진이라도 걸어놓고 뽀뽀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건 참아주세요.”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떫은 말투에도 개의치 않은 리암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의 리암이라면 도현이 무슨 말을 하든 웃을 것 같았다.
실제로 도현이 한마디 할 때마다 리암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숨만 쉬어도 좋다고 박수 칠 기세였다.
– 언제 만날 수 있냐? 지금은 다른 사람들한테도 소식을 전해야 해서, 다음에 시간 잡고 만나면 좋겠는데.
“제가 지금 한국이라서요.”
– 뭐? 한국? 언제 거길 간 거야.
리암의 목소리에 어리둥절함이 묻어났다.
“한 달 정도 됐어요.”
– 그렇게나? 언제 돌아오는 거냐?
“예정대로라면, 한 달 후요.”
– 흐음…. 그러면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통화로 하고. 그러면….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도현이 긴장한 찰나.
– 이탈리아로 두 번째 여행 갈 준비나 해라, 꼬마야!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나중에 연락하자!
뚝.
전화가 끊겼다.
도현이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를 멍한 눈으로 보았다.
어이없어서 화도 안 났다.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혼란에 가득 찬 눈으로 고개를 드는데, 도현보다 더 혼란스러워 보이는 부모님이 있었다.
“그러니까….”
서혜나가 운을 띄웠다.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됐다고?”
누군가에게 묻기보다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경쟁 부문에?”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파티, 파티다!”
“비행기표 취소해!”
“진정하….”
“어이구, 우리 도현이!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우리 아들!”
도현의 목소리는 지금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비행기표 취소하면 숙박은 어떻게….”
“아들.”
서혜나가 갑자기 진정했다.
“물론, 갑자기 숙소를 잡으려면 힘들긴 하겠지만….”
하겠지만?
“돈만 있으면 어려운 일도 쉬워지는 법이란다.”
세상의 진리를 알려주는 서혜나였다.
“회사는요?”
“우리 아들이 큰일을 해냈다는데, 그게 중요하니? 정 뭣하면 남편만 먼저 보내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같이 축하할 거야!”
도현은 부모님을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도현도 지금 심장이 쿵쿵 뛰어서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 상태인 건 마찬가지였다.
결국, 도현은 감정의 손을 들어주었다.
“초, 초청이래요!”
도현이 뒤늦게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그래, 그래! 우리 아들!”
“베니스 영화제요!”
“오구오구! 장하다, 내 새끼!”
“그것도 경쟁 부문이요!”
“아이고! 세상 사람들! 우리 아들 잘난 것 좀 보세요!”
세 가족이 서로의 팔을 잡고 방방 뛰고 돌고, 온갖 난리를 쳤다.
그 때문에 기껏 정리했던 짐이 다시 무너졌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오늘은 죽어라 노는 거야!”
“네!”
“옛썰!”
그들이 진정하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이성을 되찾은 도현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지만, 다행스럽게도 서혜나와 이장혁은 모른 척해주었다.
그들은 근방의 가장 가까우면서도 좋은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짐만 침대 위에 던져두고 나와 원래 가려던 해상 액티비티 장소로 이동했다.
신나게 보트를 타고, 또 신나게 먹고, 제주도의 명소 이곳저곳을 쏘다닌 후 저녁이 되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피자, 피자!”
“방금 주문했어!”
“치킨은?”
“그건 지금!”
“떡볶이는 내가 시킬게!”
잠시 후.
연이어 배달이 도착하고.
그들은 널찍한 호텔의 테이블을 놔두고, 굳이 바닥에 음식을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치킨, 피자, 떡볶이, 스파게티 등등… 온갖 음식들 가운데에서 존재감을 자랑하는 건 단연 우뚝 솟은 초코 케이크였다.
직접 케이크 맛집까지 차를 타고 달려가 사 온 케이크였다.
“자, 그러면. 도현이의 영화제 입성을 축하하며!”
“축하하며!”
챙-
맥주 캔과 음료수 캔이 부딪혔다.
“도현아, 얼른 초 불어!”
“네!”
후-
입김을 싣자, 이리저리 이지러지던 촛불이 꺼졌다.
“축하해, 도현아!”
도현이 민망해하면서도 기분 좋게 웃었다.
“일단 케이크부터 한 입 먹어야지! 자, 포크!”
“안 잘라요?”
“케이크는 퍼먹는 게 제맛이야! 먹어, 먹어!”
도현이 포크로 케이크를 눌렀다. 진한 다크초코 크림과 그 안에 푹신한 시트가 포크에 쿡 찔려 딸려 나왔다.
합!
입 안에서 달콤 쌉싸름한 초코의 향이 퍼짐과 동시에 시트가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녹았다.
시트 안에 겹겹이 발린 오렌지 잼이 진한 초코 향이 물리지 않도록 상큼함을 더했다.
세상에 이런 음식이 존재하다니.
도현의 뺨이 감동으로 인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하하. 도현이가 케이크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맛있었다.
“먹고 싶은 만큼 먹어! 오늘은 먹고 죽는 거야!”
“네!”
도현이 포크로 케이크를 크게 한 번 더 떴다.
확실히, 케이크는 퍼먹는 게 맛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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