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03)
로맨스
12일간 이어진 칸 영화제는 폐막식과 함께 끝이 났다.
중간에 소동이 있긴 했지만 온갖 말썽이 다 일어난 작년을 생각하면 무탈하게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수상작들이 발표됐고 희소식이 전해졌다.
-그랜드 라인, 각본상 수상 쾌거!
폐막식까지 남은 만큼 수상 가능성은 있어도 보수적인 칸의 특성을 생각하면 크게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예상외였던 만큼 더 기뻤고 감독인 준혁은 이안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그 자리에 함께 못한 아쉬움을 한참을 토로할 정도였다.
물론 논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예상외의 수상. 선정에 이안 프라이스의 영향은 없었나?
-평론가들, 영화제에서 일어난 극적인 일이 영향을 줬을 수도…
폐막식 당일 날까지 수상작을 고민하는 심사위원은 선정 과정에서 많은 요소를 생각한다.
“이건 너무 얄팍한데, 이건 유행을 따르는 거 같고.”
“이 장면들은 베낀 거 같은데. 특히 이 장면은 오마주를 넘었어.”
이런 온갖 말을 주고받으며 살벌하게 작품을 평가하는데 작품 내적으로만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심사위원들은 전부 반미주의자야. 미국인이 없는 것부터 이상하다 싶었지. 아주 수상을 막기 위해 악을 쓰더라고.”
“미는 작품이 선정되도록 물밑 정치는 기본이죠. 표 계산에 견제까지 다들 머리가 깨질 것처럼 고민하니까요.”
“난 심사위원단을 아홉 머리의 짐승이라고 불렀죠.”
영화제가 끝나면 이런 후일담이 나올 정도로 선정은 정치적으로 이뤄진다.
이런 논란이 생기는 건 당연했고 위원장이 나와 직접 부정했다.
-그랜드 라인은 훌륭하게 인간을 그려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혁명, 투쟁, 시위, 파업 등 현실의 많은 걸 생각하게 했죠. 네, 물론 그 배우가 영향을 주긴 했습니다. 훌륭한 연기로 말이죠.
그래도 해명에 논란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이례적인 선택이라 의심이 됐던 거지 영화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수상 논란은 어느 시상식에나 있어. 나만 해도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받고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으니까.’
동정표, 장애인 우대 같은 말이 한동안 공공연히 돌아다녔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 정돈 별거 아니다.
무심하게 기사를 넘기는 이안의 머리에 무거운 손이 올라왔다.
“야,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니까. 내가 너 대신 기자를 상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고마워요. 그래도 좋은 일에 한몫한 거잖아요.”
“그러니 도와줬지. 그나저나 웬일이냐. 네가 순순히 고맙다고 하고?”
평소라면 ‘제 덕분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고맙죠?’라며 장난을 쳤을 텐데 벤은 의외라는 듯이 이안을 봤다.
“제 멘티의 일인데 고맙다는 말 정돈 어렵지 않죠.”
“아, 맞다. 연기를 가르쳐주고 있지?”
“몰랐는데 아무래도 난 교육에 소질이 있나 봐요.”
잠시 멈칫한 벤은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딜런, 네 아들이 원래 이렇다니까?”
“내가 뭐가 어때서요?”
“대본을 잔뜩 읽게 하는 게 무슨 교육이야. 그럼 과제만 잔뜩 던져주는 교수는 명교수냐.”
이 사람이 뭘 모르네.
벤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교육은 사람에 맞춰서 해야죠. 상대가 벤이었으면 저도 이렇게 안 해요.”
“응? 이 녀석 보게. 걔가 그렇게 잘 따라오든?”
“적어도 태도 만큼은 만점이죠. 그렇죠?”
이안의 물음에 벤과 맥주를 마시던 딜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는 망설여졌다. 안 좋은 선택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니 일을 맡기기도 불안하고 이안에게 상처 주는 일이 발생할까 걱정됐으니까.
‘괜한 걱정이었지.’
적어도 지금까진 그랬다.
“일도 열심히 하고 괜히 가게에서 추파 던지는 사람들 때문에 사무 쪽으로 일을 옮겨줄까 했더니 사람 관찰하기 좋다고 매장에서 일하겠다고 하더군. 이안, 네가 시킨 일이니?”
“연기도 사람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배우가 될 생각이라면 사람을 피해서 좋을 것도 없고요. 이게 딱 좋은 멘토와 멘티 사이 아니겠어요?”
콧대를 세우는 모습에 벤은 고개를 내저었다.
스승과 제자는 닮는다고 하더니 레이첼이 여자 이안을 만나고 왔다는 말을 한 이유를 알겠다.
‘아주 복제품을 만드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야, 넌 목표가 뭐냐?”
“목표요?”
“그래, 명예나 돈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 욕심은 더 없잖아. 너 또 연기만 할 수 있으면 만족한다고 말하려고 했지?”
“…진짜인데요.”
명예?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면 된다. 돈은 출연료랑 투자 수익을 합쳐서 천만 불이 넘으니 간절하지도 않고.
오스카 남우조연상도 결국 안 좋은 결과만 남겼으니 상도 크게 욕심나지 않았다.
‘배우가 연기만 할 수 있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벤을 바라보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연기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나. 너야말로 게빈 감독님을 불러서 엑소시스트라도 해야 한다니까. 목표가 없으면 여유라도 가져봐. 너 말고 다른 애들을 생각해서 말이야.”
“다른 애들을요?”
“너랑 꾸준히 만나는 애들 말이야. 이젠 오드리인가 그 사람도 포함되겠지. 솔직히 친구라곤 하지만 네 영향을 크게 받고 있잖아.”
이안은 잠시 고민해봤다. 별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단순히 성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기엔 평소 생활방식까지 비슷하다.
“맞지? 걔들한텐 네가 등대 같을걸. 성과도, 실력도 믿고 따라갈 만하잖아. 근데 이대로 가면 넌 아니어도 걔들이 지쳐 나가떨어질걸.”
“에이, 뭘 그렇게까지 돼요.”
“아닐걸. 레이에게 들었는데 다니엘인가 걔만 해도 대본과 오디션을 붙들고 산다며. 너처럼 말이야. 나중에 그러다가 삐딱하게 나간다?”
벤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성공하면 다행이다. 노력이 보답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사람은 수두룩하게 봤다.
약으로 죽은 다니엘의 처참한 모습이 문득 떠오른 이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어떡하라고요.”
“여유롭게 좀 지내. 평생 할 연기 생활 숨 좀 돌려도 괜찮잖아. 돈도 많겠다 재밌는 취미를 만들어도 좋고 정별로면 여자라도 만… 아니다. 이건 말고.”
잠시 고민하던 벤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 관심이 가는 게 없으면 영화 투자라도 해보던가. 대본 보는 눈도 괜찮고 독립영화처럼 자본이 적게 들어가는 작품이면 손해를 봐도 부담이 적잖아.”
“투자라.”
“돈은 쌓아둬서 뭐하냐. 네가 파티를 열고 돈을 펑펑 쓸 것도 아니고.”
흥미롭긴 하다.
재밌게 봤던 영화가 바뀐 미래 때문에 나오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중이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성공한 작품이 투자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는 흔했고.
“투자로 경험을 쌓고 나중에 프로듀서 역할까지 자연스럽게 넘어가도 좋고. 안 그래?”
“그렇긴 하죠.”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은 많다. 10대에 프로듀서 자리에 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벤이 절대 무리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니란 뜻이다.
“한 번 생각해볼게요.”
“잘 생각했어. 널 도와줄 사람이야 주변에 널렸잖아. 감독님들에게 유망한 감독을 소개받을 수도 있고 배우도 우리가 물어다 줄 수 있거든.”
막상 말을 하면서도 벤은 생각보다 현실성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사람이 많으니 마음만 먹으면 프로듀서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잘 되면 내 덕이라는 건 잊으면 안 된다? 괜찮은 배역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알려줘야 하고.”
“헛소리는. 그런 말 할 거면 오디션이나 봐요.”
투자.
이안은 핀잔을 주면서도 새롭게 떠오른 화두를 생각했다.
***
칸 영화제가 끝나고 개봉한 그랜드 라인은 이안의 홍보 일정을 대폭으로 줄였다.
가장 힘을 쓴 한국 홍보는 영상으로 해결했고 북미 개봉도 LA에서 있던 시사회와 언론 인터뷰에만 참여했다.
칸 영화제의 성과 덕분인지 그래도 영화 흥행은 순조로웠다.
-그랜드 라인, 국내 개봉 보름 만에 700만 돌파!
-북미 박스오피스 10위권. 상영관 확대 예정! VOD 서비스 수익도 기대 중.
감독의 유명세가 있는 한국은 폭주 기관차처럼 관객을 모았고 상영관을 붙잡고 있는 형태로 온몸을 비틀면서 결국 천만 턱걸이에 성공했다.
천만이라는 상징적인 숫자에 환호한 건 당연했고 한국에선 천만 영화배우로 이안이 올라갔다.
‘한국이 아니라서 실감은 안 나지만.’
그래도 미국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천만이라는 숫자가 적진 않았다.
“와, 한국 시장이 크다고 듣긴 했는데 신경 쓸 만하네.”
“인구 5천만이라며. 반복해서 본 사람이 있겠지만 무슨 천만이 나오냐.”
에일리언 헌터 홍보를 위해 함께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가 거대한 중국 시장을 노리는 영화를 하나둘씩 내놓고 있지만 한국 시장에 소홀해진 건 아니었다.
이번 에일리언 헌터의 홍보 일정에 한국이 포함되기도 했고.
“진짜 제가 같이 안 가도 돼요?”
“요즘 기술도 좋은데 영상으로 해결하면 되지. 필요하면 영상 통화라도 걸게.”
한 달이 넘었는데 굳이 이렇게 배려해줄 필요는 없다.
의아하다는 듯이 보던 이안은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혹시 다들 같은 방 쓰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죠?”
“…에이, 설마 그렇겠어? 기껏 이틀 머물고 오는 일정인데 말이야. 공작새 녀석 짐 검사는 해야겠지만.”
“하, 네 가족 타령하고 감독님의 수상쩍은 물건이 더 문제지. 감독님은 이번에 한국 간 김에 한국 샤먼에게 좋은 물건을 받아온다고 했잖아요.”
“크흠, 그냥 보고만 올 거네.”
이 사람들은 어쩌면 좋을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걱정하며 보낸 것과 달리 프로답게 한국 일정을 잘 소화해냈고 에일리언 헌터2도 좋은 성적으로 흥행몰이를 시작했다.
-에일리언 헌터2, 500만 돌파. 이안 효과일까?
-1편 못지않은 2편. 1편 이상의 흥행을 거둘 듯.
-게빈 데이비스 감독,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3편은 없을 것.’
게빈은 이번에는 절대 안 된다는 듯이 이를 꽉 깨물고 3편은 없다고 말해야 할 정도였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이안!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휠체어에서 눈을 감고 다소곳하게 인사하는 아멜리아와 자신감 있게 웃는 에이든.
과거에 봤던 불안하고 어두운 안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이안은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요. 오는 데 어렵진 않았죠?”
“어려울 게 뭐 있겠어. 기껏해야 걸어서 십 분도 안 걸리는데.”
“베벌리힐스로 이사 오니 어때요?”
“좋지. 산책하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주변 이웃도 친절하더라. 잘 이사 온 거 같아.”
두 사람이 인세를 모아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사였고 장소는 베벌리힐스였다.
버는 소득이 있는 만큼 심심치 않게 강도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기존 장소에서 살기는 힘들었으니까.
물론 이안이 있다는 점도 컸다.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부모님도 다시 결합해서 잘 지내셔. 너한테 꼭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더라.”
“그 인사는 그만큼 지겹게 들었어요. 전화할 때마다 말했잖아요.”
“그 정도로 고맙다는 거지.”
장난스럽게 웃던 그는 이안 뒤쪽으로 나오는 여성을 보고 흠칫하며 물었다.
“혹시 애인?”
“아뇨, 말했잖아요. 오드리 데이에요. 연기 연습 때문에 잠시 와 있어요.”
“아! 그분.”
“오드리 이쪽은 Melted Moonlight의 작가분들이에요.”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온 둘은 이안이 내준 다과를 받았다.
에이든은 떨어진 곳에 앉아서 수북이 쌓인 대본을 정신없이 보는 오드리를 힐끔힐끔 봤다.
‘도토리를 모아 놓은 다람쥐 같은 건가.’
마치 쌓아놓은 것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듯이 대본을 보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둘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평소랑 똑같지. 안 그래?”
“네, 제가 이야기를 만들고 오빠는 대신 써주죠. 통화로 할 때랑 달리 직접 만나서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으니 더 좋지만요.”
아멜리아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잘됐네.’
시력은 없지만 환상에서 본 것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에이든이 얼마나 그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걸 썼는데요.”
“으음… 아직 제대로 마무리 지은 건 없어요.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거라서요.”
“왜? 그거 있잖아.”
에이든의 말에 아멜리아는 놀란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며 흠칫 놀랐다.
그걸 왜 말하냐면서 어깨를 타다닥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데 그래요?”
“…음. 말하면 안 될 거 같은데. 아멜리아에게 허락을 받아야 해서 말이야.”
“궁금한데 말해주면 안 될까?”
이안의 부탁에 귀까지 빨갛게 변한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곤 작게 끄덕였다.
허락을 받자 에이든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지 모르겠네. 널 모델로 고등학교 이야기를 썼거든. 조금 찐한 로맨스가 들어가서 그런가.”
로맨스.
이안은 흥미롭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내놔요.”
그런 이안 옆에 손이 하나 더 펼쳐졌다.
“줘요.”
여자 이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