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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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1)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다른 여자랑 팔짱을 낀 로맨스 코미디.
이건 가까이 봐도 희극이다. 물론 당사자는 전혀 아닌 듯했지만.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저기 로버트도 들어오네요.”
“저 사람은 며칠 전 파티에서 만났어요. 원래 이런 파티에 참석 안 하시던 분이 특별히 오셨는데 이쪽을 더 신경 써야 하지 않겠어요?”
아, 저건 글렀네. 진짜 콱 물려버렸다.
다른 장소라면 들러붙은 샬롯을 억지로라도 떼어낼 수 있겠지만 여긴 그녀가 호스트인 자선 파티장이다.
호스트면서 여자인 그녀에게 무안을 준다?
‘벤의 할아버지가 와도 못 이기지.’
슬픈 표정 한 번만 지어도 내일 가십지 1면은 벤과 샬럿이 담당할 게 뻔했다.
이안은 진땀을 흘리는 벤과 눈이 마주쳤고 소리 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러게 조심하라니까요.’
‘어떻게 좀 해봐.’
‘도와줄까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이 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이 대가는 톡톡히 받으리라 다짐하며 이안은 샬럿에게 한 발자국 내디뎠다.
“안녕하세요?”
“어머, 인사가 늦었네. 네가 그 마음씨 착한 아이구나?”
“저 누나랑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이안이 손짓하자 샬럿은 고개를 숙여 귀를 기울였다.
이안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막장 파티광 이미지도 슬슬 벗을 생각이잖아요. 괜히 인맥 하나 잃지 말고 놔주시는 게 어때요?”
“흐응.”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샬럿의 눈이 여우처럼 곱게 휘었다.
농염한 눈웃음을 친 샬럿은 벤과 낀 팔짱을 풀었다.
“로버츠 씨, 이 아이와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제가 보호자를 대신해서 온 거라서요. 혼자 보내긴 곤란한데요.”
“전 괜찮아요. 설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이안까지 거들자, 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귓속말로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도 이안이 보통 아이도 아니다. 아이들을 잔뜩 초청한 자선 파티에서 무슨 사고가 날 리도 없고.
“이야기 끝나면 바로 찾아오렴.”
“걱정하지 말고 재밌는 시간 보내세요. 금방 갈게요.”
벤이 떠나자 샬럿이 내민 손을 맞잡은 이안은 파티장에서 조금 외곽으로 이동했다.
근처에 수영장이 또 있는지 첨벙거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엿듣는 사람이 없는 곳까지 온 샬럿은 테이블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았다.
“아까 재밌는 말을 하더라? 무슨 뜻이니.”
“별 뜻 아니었는데요. 온갖 가십을 뿌리면서 막장 유명인 연기를 하는 건 슬슬 한계라고 느끼신 거 같아서요.”
“연기라.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할까?”
이안은 의자에 샬럿과 똑같이 다리를 꼬며 앉고는 그녀처럼 눈웃음을 쳤다.
“파티를 좋아하지만 원래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계산적인 성격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파티 참가로 수십만 달러씩 받는 것하고 파티에서 온갖 걸 홍보하는 수완 좋은 사업가라는 점이요? 아, 낮에는 사업에 몰두하고, 밤에는 파티를 즐기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기도 하죠.”
대답을 들은 샬럿은 명랑한 웃음을 터트렸다.
파티장에서 미친 짓을 할 때를 제외하고 얼마나 이렇게 경쾌하게 웃어보는지 모르겠다.
“벤 로버츠가 왜 널 옆에 끼고 다니는 줄 알겠다. 너 정말 재밌는 애구나. 혹시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니?”
“없는데요.”
“한 열 살만 더 먹었으면 날 유혹하는 줄 알았을 텐데 말이야.”
이안에게 성욕은 당연하고 물욕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사람 그 자체로 보는 눈길은 샬럿 마음에 쏙 들었다.
살포시 자리에서 일어난 샬럿은 이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줬다.
“아무리 나라도 페도필리아로 오해받는 건 싫으니까. 이만 갈까? 호스트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울 수도 없거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
“그러죠. 어느 파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다른 사람이면 골병들 정도로 파티에 참석하는 파티광이니 만나기 힘든 사람은 아니다.
장난스럽게 손 키스를 날린 샬럿이 손님들을 만나기 위해 떠나자 이안은 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와줬으면 잘 하고 있기라도 하지.’
겁먹고 엄마 뒤로 숨은 아이와 난처한 표정을 짓는 아일라 올슨.
얼마나 벤의 앞날이 가시밭길인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이안을 구세주라도 여기는 것처럼 벤은 손을 크게 흔들었다.
“이안! 여기다. 여기! 빨리 왔네?”
“그냥 가벼운 잡담만 하고 온 것뿐이니까요 안녕하세요. 이안 프라이스라고 합니다.”
정중한 인사에 아일라도 반갑게 인사했다.
“아일라 올슨이라고 해. 여기는 내 딸인 레이첼 그레이스.”
엄마를 닮은 금발의 아이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가 눈을 마주치자 휙 하고 머리를 숨겼다.
아일라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보다시피 수줍음이 많거든. 친구 좀 사귀라고 데려왔는데 쉽지가 않네.”
“이안, 네가 학교에서 인기가 엄청 많다며. 네 부모님이 자랑하시던데.”
“어머, 그런가요?”
이래서 머리 누런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배신을 하다니.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아일라가 보자 이안은 곤란함을 느꼈다.
‘나도 애들이 왜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친해지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돌아오기 전에는 아이와 전혀 인연 없는 얼굴로 살아왔다.
굴에 숨은 토끼 같은 레이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턱이 있나.
‘에라, 모르겠다.’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이안은 좀 떨어진 의자에 앉아 휘파람을 불었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휘파람 소리에 아일라는 빙그레 웃었다.
그녀의 대표곡인 Goodbye Sweetheart였으니까.
풋풋한 사랑을 했던 소녀의 마음이 휘파람이 되어 잔잔하게 떠다녔다.
“와, 예쁘다.”
고개를 빼꼼 내민 레이첼은 빈 하늘을 보며 감탄했다.
겁이 많은 소동물처럼 슬금슬금 다가온 레이첼은 어느덧 옆에 앉았고 이안은 놀라지 않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또 듣고 싶은 거 있어?”
“어, 음… Sometimes I’m Happy? 이번엔 노래로.”
이번에도 아일라의 노래였고 다행히 알고 있었다.
원곡은 격렬한 안무를 동반한 경쾌한 곡이지만 원곡대로 부르기 힘드니 방향을 바꿨다.
“나는 때론 행복해. 무지개가 뜨는 짧은 순간만큼. 네가 없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탓이겠지.”
잔잔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레이첼은 허공을 홀린 듯이 바라봤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이안은 그저 담담히 노래를 불렀다.
짝짝짝-
변성기가 오지 않은 미성으로 노래가 끝맺음하자 레이첼은 소란스럽게 손뼉을 쳤다.
“괜찮았어?”
“응!”
언제 낯가림을 했냐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첼에게 이안은 조심히 물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
“혹시 뭐가 보이니?”
그래, 아일라 올슨의 딸인 레이첼 그레이스.
풍문처럼 흘러가는 말로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살짝 주저하며 아일라의 눈치를 보던 레이첼은 이안의 귀에 속삭였다.
“엄마가 나는 소리를 빛으로 볼 수 있대. 근데 이상해. 원래 소리는 반짝거리는걸?”
얼핏 들은 소문이 사실이었다.
‘정말 공감각이 맞네.’
훗날 아일라에게 제2의 전성기를 준 작곡가 딸이 소리를 눈으로 본다는 소문이 맞았고 아이의 이상한 행동도 이해됐다.
“그렇구나. 엄청 아름답겠다.”
거짓말한다고 비난하던 또래 친구들과 달리 쉽게 인정해주는 이안을 보며 신났는지 레이첼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상하게 생긴 게 더 많은걸. 못 생기게 일그러진 것. 시커멓게 칠해진 색이 더 흔해.”
“그럼 나는?”
“엄청 예쁘긴 했는데.”
잠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던 레이첼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이상한 게 있었어.”
“이상한 거?”
레이첼은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뻗어 이안의 얼굴을 만졌다. 찰흙을 만지듯 조물거린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별로 안 딱딱한데. 왜 그렇게 불렀지?”
“딱딱하다고?”
“응, 얼굴을 별로 안 쓰는 거 같았어.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아!”
레이첼의 말에 이안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지금처럼 근육을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발성에 얼굴 근육이 차지하는 부분이 큰 걸 생각하면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게 당연했다.
‘물론 그 차이는 미세하겠지. 아무도 이걸 지적한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그렇기 단번에 이걸 잡아낸 레이첼이 더 놀라웠다.
이런 사람을 부르는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너 천재구나?”
“내가?”
“그래, 너 진짜 대단하다.”
또래 사이에서 항상 이상한 아이 취급받던 레이첼에겐 처음으로 받은 인정이다.
볼이 빨갛게 상기된 그녀는 엄마 뒤로 후다닥 달려가서 숨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지만 이게 부정적인 반응이 아니란 건 모두가 알았다.
감격한 아일라는 환한 얼굴로 물었다.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겠니?”
“얼마든지요.”
이안은 흔쾌히 동의했다.
빛나는 재능과 함께 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
***
메이저 방송국들이 새로운 쇼를 검토하는 매년 여름이 엔터 산업의 중심지가 가장 바쁜 시기다.
새로운 쇼를 들고 방송국 문을 두들긴 프로듀서들은 피치(pitch)를 하며 방송국 고위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바쁘고.
에이전시는 쇼에 배우를 넣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캐스팅 디렉터는 괜찮은 배우들을 추려 제작사에 제안한다.
아델리아가 프로듀서와 감독을 마주한 이유도 배우를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받은 명단을 면밀하게 살펴보던 둘은 같은 곳에서 멈췄다.
“이안 프라이스. 영상으로 보여줬던 그 소년이 맞죠?”
“그렇습니다.”
이번 드라마는 소재 특성상 아역이 많이 필요했고 아델리아가 자신 있게 내민 아역 중 하나였다.
‘분명 연기 실력은 출중했지.’
너무 출중해서 주변 다른 아역이 주눅 들지 않을까 걱정될 수준이다.
아마 이게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아무 고민 없이 뽑을 정도였지만.
“쉽지 않네. 안 그래?”
“맞습니다. 우리 드라마는 아역이라고 해도 몸을 쓰는 부분이 꽤 많으니까요.”
감독은 이번에 제작하는 드라마 대본을 봤다.
‘invisible children’ 좀비의 공격성이 아이에겐 떨어지는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를 그린 드라마였다.
숨어 사는 어른들과 그들을 위해 식량을 구하려고 고생하는 아이들과의 이야기가 중심이고.
‘아이는 언젠가 어른이 되고 자신을 부양해줄 아이가 필요하게 되지. 마치 우리의 현실처럼.’
아이를 하나의 자원으로 생각하고, 출산율을 고민하는 사회를 꼬집는 주제 의식이 숨어 있는 이유였다.
이 드라마 특성상 좀비와 추격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다.
“동양인이라는 편견을 제외해도 체구가 좋지 못 해. 우리가 지금 모으는 아역은 기본적으로 운동 실력이 좋은 이들이지 않나. 액션의 태가 살아야 하니까.”
7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갈 텐데 훈련해도 크게 변하긴 힘들었다.
“일단 확실히 픽스할 수 있는 배우들부터 계약을 진행하고 말해준 아역은 조금만 더 고민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아델리아는 아쉽지만 일단 동의했다. 제작사가 원치 않는데 억지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무실을 나가려던 아델리아는 붕붕 울리는 핸드폰을 들었고 걸음을 멈췄다.
급하게 온 연락을 해결하나 싶어 신경 쓰지 않는 두 사람을 향해 아델리아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이안 프라이스의 가장 큰 문제가 액션 부분이 맞습니까?”
“그렇지. 근데 그건 왜 또 묻는 건가?”
의아해하는 프로듀서에게 아델리아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촬영장에서 잘리고 한량 짓이나 하는 동생 놈이 호들갑을 떨며 보내준 영상이 보였다.
-커헉!
지붕에서 뛰어내려 깔끔하게 꽂히는 드롭킥.
밤인 듯 어두웠지만, 집에서 흘러나오는 빛 덕분에 상대를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프로필로 본 이안 프라이스가 확실했다.
“…진짜 본인이 맞나?”
“그렇다고 합니다. 재판 중에 나온 영상이라는데.”
“재판?”
아델리아는 본인도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액션은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습니다.”
프로듀서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