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2)
토론토 영화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와 더불어 새근새근한 숨소리가 함께 들렸다.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는 에반의 숨소리였다. Melted Moonlight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 소홀했던 탓에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두꺼운 커튼을 쳐서 어두워진 공간에서 책을 읽자니 벤이 지적했다.
“어둡게 책보면 눈 나빠진다.”
“안 나빠져요. 눈이 더 피곤해질 수는 있어도 시력 저하랑은 관계없거든요. 핸드폰처럼 빚을 내는 전자기기라면 모를까.”
“너 잘났다.”
아니, 미운 40대인가.
퉁명스러운 벤의 대답에 이안은 한심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정작 말 안 들을 나이인 에반은 이렇게 순한데 아빠란 사람은 왜 이러나 모르겠네요.”
“…에반이 순하다고? 너한테나 순하지 얘도 보통 고집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봐야 실제로 본 적이 없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일이나 해요. 언제까지 백수로 있을 거예요?”
“누가 백수야. 휴식 시간인 거지.”
“프리랜서가 일을 안 하면 백수죠.”
“그럼 너는? 너도 아무 스케줄이 없잖아.”
“전 학생인데요. 보시다시피 지금 공부 중이잖아요. 불만이면 다시 학교에 다니던가요.”
능글맞은 대답에 벤은 이안의 머리를 거칠게 털었다. 말싸움으론 질 게 뻔하니 할 수 있는 복수는 이뿐이었다.
“백수라기엔 나도 스케줄이 있어. 안 그래도 곧 토론토로 가야 하거든.”
“토론토요? 아, 그 버디물.”
올 초에 촬영했으니 편집 기간 같을 걸 따졌을 때 개봉할 때가 됐다. 주목도가 높은 영화제인 만큼 홍보를 위해 출품할만하지만.
“왜 안 말해줬어요?”
영화제까지 열흘도 안 남았다. 출품이 갑자기 결정된 것도 아닐 테고 진즉에 잡힌 일정을 이제야 말해준다고?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원랜 공작새랑 토론토에서 짠하고 등장할 예정이었다고.”
“…와.”
방심하고 있다가 토론토에서 이 두 사람의 깜짝 방문을 당할 뻔했다고?
그나마 칸은 각오라도 하고 참여했지 토론토에선 그것도 아니었다.
“놀라게 해주려고 데미안이 패트릭에게 프레드의 번호까지 받아서 준비했는데 다 망쳤잖아.”
“이 인간들이?”
벤, 데미안, 프레드.
토론토에서 이 삼인방과 함께 있는 상상을 해봤다.
-처음 사귀는 친구에겐 선물은 안 줄 수 없지. 다들 인형 하나씩 받아 가라고.
-오! 훌륭한 친구로군. 그럼 나는 내 친구가 소중하게 여겼던 잡지를 공유하도록 하지!
-이 공작새, 망할 놈아. 당장 이 인형 안 치워?! 가족사진을 둘 곳이 없잖아.
너무나 현실성 있는 풍경에 이안은 털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토론토로 안 가는 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
9월로 접어들었고 이안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여름 방학 기간이 끝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 봐야 아는 얼굴이 많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어차피 베벌리힐스의 공립학교니 보던 얼굴을 또 보게 되는 게 당연했다.
중학교 때처럼 이안 곁으로 우르르 모이는 애들이 많다는 뜻이다.
“어? 진짜 조기 졸업을 하려고?”
“응, 학교 다니면서 배우 일을 하기엔 걸림돌이 좀 많잖아.”
“그래도 4년을 다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엄마가 고등학교가 4년인 건 앞으로 대학 4년을 잘 보낼 수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라고 했어.”
맞는 말이긴 하다. 수강 신청부터 전공 선택까지 고등학교도 대학교와 시스템이 비슷했고 그만큼 수업도 전략적으로 들어야 했다.
‘그냥 학점만 채우고 조기 졸업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런데도 많은 학생이 4년을 채우는 이유는 대입에 그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수업으로 4년을 꽉꽉 채운 학생을 대학교에서 더 선호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래도 일단 조기 졸업으로 방향을 잡고 하려고.”
“이안이면 조기 졸업을 해도 괜찮으려나.”
“그럴걸. 누굴 걱정해. 우리나 열심히 해야지.”
바쁜 연기 생활에도 수업에 버거워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이안이니 학생들은 그러려니 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학교 친구들만 한 건 아니었다.
“으음… 선배로서 말하자면 4년을 채우지? 대학교는 안 갈 거야?”
“글쎄. 잘 모르겠는데. 너희는?”
“우린 다 갈 거야. 그렇지?”
도로시의 물음에 다니엘과 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드라마 스쿨을 생각하고 있어. 원하는 대학교는 다들 다르지만.”
“드라마 스쿨이라.”
이름 그대로 연기를 배우는 곳이다.
줄리아드, 예일, 뉴욕, USC, UCLA 등 유명한 학교는 동문만 봐도 얼마나 질 좋은 수업을 제공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드라마 스쿨이 아니라 일반 학과로 진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대학 생활을 한 번 경험해보면 좋잖아. 마음에 안 들면 중퇴하면 되고.”
“그래, 중퇴가 아니더라도 졸업을 천천히 하는 것도 방법이지. 배우 중에는 연기랑 학업을 같이 해서 15년 동안 학교에 다닌 사람도 있잖아.”
“와… 15년을 어떻게 다녀. 지금까지 다닌 기간보다 더 길잖아. 나라면 절대 못 했을 거 같은데.”
이런저런 말을 내뱉긴 했지만 셋이 하고자 하는 말은 알겠다. 굳이 시간 타령하며 기회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니까.
이안은 옆에서 공부 중인 오드리를 봤다.
“오드리는 대학 생각 없어요?”
“가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가더라도 모든 걸 끝내고 갈 생각입니다.”
적어도 피해자들 문제까진 해결하고 가겠다.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말에 이안은 학교 문제는 일단 접어뒀다.
‘배우 일보단 Holy Love의 제작자 일 때문에 조기 졸업을 하려는 거였는데.’
그럼 2년 조기 졸업을 해야 한다.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자신이 있지만 학교 측에 양해를 구하던가 다른 방식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일단 제작사 설립부터 이것저것 알아보고 진행해야겠지만 말이다.
학교 수업과 대학 이야기를 하던 도로시는 이안에게 물었다.
“그보다 레이는 어디 갔어?”
“아, 레이. 아일라 씨의 콘서트장에 갔어. 일종의 현장체험이랄까.”
“맞다! 레이는 작곡가를 준비하고 있지. 콘서트를 따라다니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네.”
물론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나랑 같이 무대에 올라야 하니까 나름의 준비를 하는 거지.’
스노우 레이크 공연에는 최소 만 명 이상이 모일 거다. 반에서 발표도 잘 못 하던 레이첼에겐 상상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질 인파였다.
그래서 아일라를 따라다니며 최대한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이안, 나는 영상으로 하면 안 될까? 굳이 무대에 오를 필요는 없잖아.
-영상이 안 되면 큰 박스에 들어가 있는 건 어떨까. 차라리 안 보이면 편할 거 같아.
-아니면 안대라도…
어림도 없는 소리를 문자로 보내곤 했다.
당연히 거절이다.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계속 피하게 되는 법이니 실수를 하더라도 부딪혀 봐야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이안을 다니엘이 툭툭 쳤다.
“야, 토론토 영화제 상황이 올라왔거든?”
“그러고 보니 오늘이 개막이었나. 근데 왜?”
스노우 레이크나 벤과 데미안이 나오는 버디물인 Crossfire, 둘 다 시사회는 영화제 중반쯤에 있다.
개막일도 잊을 정도로 분명 자신과 관련된 일이 없다. 다니엘이 내민 핸드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 벤이랑 데미안 씨 아니야?”
“…어?”
나오는 건 벤과 데미안이 나오는 짧은 영상이었다.
문제는 왜 저기 있는지 모를 게 하나 있다는 점이다.
-이 자식은 왜 또 데려왔어!
-꾸엑!
거리 한복판에서 깃털을 활짝 펼친 공작새와 대치 중인 벤과 웃음기 가득한 데미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영화의 조연이잖아. 당연히 홍보도 같이해야지!
-안 해! 너희 둘이 하라고!
질색하는 벤의 외침을 끝으로 영상이 끝났고 다니엘이 물었다.
“홍보 이벤트야?”
“…그런 거로 하자.”
흥행은 잘 될 거 같아서 다행이다.
같이 안 간 건 더 다행이고.
***
데미안이 공작새를 키우고 있다는 건 꽤 잘 알려졌다.
SNS는 물론이고 칸에서 인형까지 뿌리며 공작새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제에 공작새를 데려온 건 파급력부터가 달랐다.
-벤 로버츠, 데미안 메이어 주연 Crossfire. 조연은 공작새?
-Crossfire 레드카펫을 밟은 공작새. 활짝 웃는 데미안과 인상을 찌푸린 벤.
-Crossfire 감독, 촬영장에선 벤도 공작새를 좋아했다. 오해하지 말 것.
이미 에일리언 헌터로 호흡을 맞춘 두 톱스타가 코믹 액션을 찍는다고 해서 Crossfire는 많은 관심을 받은 상태였다.
거기다가 공작새의 출현은 한 차례 더 관심을 끌었고.
-Crossfire를 보고 왔다. 공작새가 왜 영화제까지 참여했는지 알게 됐다.
└엄청 웃기더라. 영화제 첫날에 찍힌 영상도 영화 홍보였겠지?
└당연하지. 영화를 패러디 한 거 같던데.
-벤과 데미안이 또 버디물을 찍었으면 좋겠다.
└다음엔 처음부터 공작새까지 껴서 찍으면 되지. Crossfire 2가 나오면 그렇게 될걸.
└흥행에 성공하면 가능할지도?
훌륭한 버디물이라며 호평을 받았다. 물론 Crossfire 2 이야기가 나오자 벤은 질색했지만 말이다.
토론토에서 호평을 받은 영화는 Crossfire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기대작으로 불렸던 Crossfire에 비하면 스노우 레이크는 엄청난 기대를 받은 작품은 아니었다.
밴드는 유명하지만 록의 인기가 시들시들해지는 상황이고 주연 배우도 유명한 이들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시사회 이후 나온 반응은 달랐다.
-스노우 레이크. 성장, 슬픔, 훌륭한 음악. 세 가지의 완벽한 하모니.
-스노우 레이크 팬들조차 잘 몰랐던 제이. 그 이름만으로 보기 충분한 영화.
-프레드, 지금의 영화가 나오는데 이안의 역할이 컸다.
스노우 레이크의 탄생 자체가 영화 같았고 안타까운 제이의 죽음은 그걸 더욱 돋보이게 했다.
영화는 바로 높은 평점을 기록했고 이 호응은 바로 결과로 나타났다.
“네?”
-제대로 들은 게 맞아! 스노우 레이크는 관객상 2등, Crossfire는 3등이야.
들뜬 벤의 음성에 이안은 놀랐다.
관객상은 관객들이 직접 투표해 선정되는 상으로 토론토 영화제에서 대상에 해당했다. 관객이 보고 좋다고 평가한 영화인 만큼 대부분 크게 흥행하고 비평가들 평조차 좋은 편이었고.
2등, 3등이면 후보에 머물렀다는 말이지만 절대 작은 의미는 아니었다.
-진짜 미쳤냐. 직접 참여한 영화는 2등이고 괜찮다고 추천해준 영화가 3등이란 걸 사람들이 알면 너한테 달러를 다발로 들고 찾아올걸. 영화 좀 골라달라고 말이야.
“저도 이 정도로 잘 될 줄은 몰랐는데요.”
둘 다 괜찮게 흥행한 영화긴 했지만 관객상을 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스노우 레이크야 내 도움에 대본이 많이 바뀌어서 그렇다 치고.’
도대체 Crossfire는 어떻게 마개조를 했길래 3등까지 받았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엄청 보고 싶었는데 이젠 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겸손하긴. 제작사 차리면 투자도 같이 해보는 건 어떻냐. 내가 투자할 게.
-나도!
“헛소리하지 말고 영화제나 잘 끝내고 와요.”
영화 투자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돈을 벌고 싶어서는 아니다. 바뀐 미래 때문에 사라질 영화를 위해서였지.
‘두 영화가 원래보다 더 잘 됐다는 뜻은 반대도 가능하다는 뜻이지. 실패할 수도 있는데 투자는 무슨.’
돈으로 잘못 엮이면 좋은 관계도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소중한 관계인만큼 괜한 빌미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알았다고.
-재미가 없어. 재미가.
투덜거리며 둘이 연락을 끊자 뒤이어 프레드에게 연락이 왔다.
-야!
“축하해요. 2등이라면서요.”
-우리랑 제이 이야기를 담은 건데 2등은 당연하지. 나는 대상까지도 기대했다고.
-퍽이나. 방방 뛰면서 좋아하던 걸 직접 봤는데 무슨.
-닥쳐!
민망한 듯 소리치는 목소리에 이안은 작게 웃었다.
“그거 말해주려고 전화했어요?”
-그것도 있고. 이번 영화를 보기 위해 내 팬들도 많이 왔단 말이야. 근데 벌써 이야기가 돌더라. 제이의 기타 소리.
“그래요?”
프레드가 라이에 대해 워낙 많이 떠들어서 직접 앨범을 들은 사람이 많으니 눈치챈 사람들이 나올 거로 생각했다.
-아직은 비슷한데? 정도야. 혹시 모르니까 알아두라고.
“고마워요.”
통화를 마친 이안은 대본을 툭 올려놨다.
“이제야 좀 보겠네.”
이안은 대본 표지에 적힌 제목을 손으로 훑었다.
invisible children.
아역으로 데뷔하게 해준 그리운 제목이었다.
***
invisible children 촬영장에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직 시즌6이 방영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촬영은 벌써 막바지였다. 족히 반년 가까이 일정을 당겨서 촬영했다는 뜻이다.
스태프와 배우 모두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해서라고 이미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고.
“떨어지는 시청자가 걱정되긴 했나 보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건 모두 알고 있잖아. 바꾸는 게 쉽지 않아서 그렇지.”
중요한 건 승부수를 어떻게 던지냐는 거다.
쇼의 존폐를 건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공공연히 말할 때 한 스태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노아가 있을 때는 시청률 걱정은 없었는데.”
“그때가 전성기긴 했지.”
평론가나 시청자들도 노아가 빠진 게 타격이 컸다는 건 모두가 인정했다.
“그래도 이안이 잘 나가니 다행이지. 안 그래?”
“잘 나가는 게 당연하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던 아이였는데 말이야.”
“아쉽긴 해. 조금 더 같이 촬영하면 좋았을 텐데.”
가볍게 이안을 두고 이야기를 꺼내는 스태프들 사이로 누군가 끼어들었다.
“그래요? 잘됐네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고개를 휙 돌린 스태프들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키도 훌쩍 크고 어릴 때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안!”
“정말 이안이잖아! 아니, 언제 이렇게 컸어?!”
“아니, 잠시만 그것보다 아까 한 말은 무슨 뜻이야?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진심으로 반겨주는 스태프들을 향해 이안은 방긋 웃었다.
“구원투수로 올라왔다는 뜻이죠. 시즌7에서 잘 부탁해요.”
쇼러너와 방송사가 꼭꼭 숨겨둔 비밀병기를 깨달은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
-invisible children에 노아가 돌아온다? 이안 프라이스 복귀 확정.
공식 기사에 팬들은 환호를 질렀다.
이때만 해도 환호가 비명으로 바뀔 줄은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