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5)
게스트
라이 팬들이 Big Sound Records에 갖는 마음은 오묘했다.
얼굴 없는 가수인 라이가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된 건 음반사의 훌륭한 홍보 능력 덕분이다. 라이의 노래가 좋다고 자부하는 팬들도 이건 인정했다.
가수의 뜻에 따라 지금까지 정체를 잘 숨겨준 것도 대단하지만.
-…Big Sound Records, 이 독한 놈들. 한 번쯤은 실수해줄 수 있잖아.
라이의 정체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앨범 발매 일정 정도는 유출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떻게 4집이 나올 때까지 한 번을 실수 안 했다.
-포기해. CEO인 엘리엇 포스터가 아직도 직접 관리한다더라. 업계 사람들도 그 말을 듣고 알아내는 걸 바로 포기함.
이번 4집으로 Big Sound Records와 라이의 계약이 끝난다는 건 진즉에 알려진 일이다.
다음 계약을 노리기 위해 움직였던 이들은 엘리엇이라는 이름에 행동을 멈췄다. 업계 거물이기도 하고 허술하게 움직일 인물이 아니니까.
이 소식을 들은 라이의 팬들은 Big Sound Records이 입을 열 때까지 애타게 기다릴 뿐이었고.
-라이의 4집 앨범 THE SECRET이 2015년 1월 5일 발매될 예정입니다.
Big Sound Records이 공식으로 올린 글에 환호성을 질렀다.
-다들 봤어? 라이 4집 일정이 나왔다고!
└누가 해킹하거나 한 건 아니지?! 공식 맞지?
└정식으로 기사까지 올렸더라. 확실해.
-앨범 이름만 봐도 정체를 공개할 예정인 거 같지?
└그렇겠지. 이미 예고했던 일이잖아.
└기대랑 걱정이 함께 된다. 지금까지 숨긴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난 라이가 어떤 사람이라도 좋아. 노래만 듣고 팬이 됐거든.
애석하게도 팬만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재밌는 일이 없나 돌아다니던 하이에나들이 달려들기 딱 좋은 일이었으니까.
-어휴, 얼마나 잘난 얼굴이길래 지금까지 숨겼는지 한 번 확인이나 해보자.
└꺼져, 남의 축제에 끼어들지 말고.
└축제요? 장례식이 아니고요? R.I.P.
└라이 팬, 개 같이 오열하기까지 D-80일!
4집 발매 소식과 함께 커뮤니티만 시끄러워진 게 아니라 기자들도 열심히 손가락을 놀렸다.
-정체를 밝히는 라이, 엘리엇의 마법이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전문가들 ‘라이는 정체를 밝히는 게 악수가 될 수 있어.’
팬들의 간절함과 인간의 악의가 뒤섞여 노이즈를 만들어냈고, Big Sound Records의 은근한 푸쉬까지 더해지자 이슈는 덩치를 금방 부풀렸다.
관심받기 좋아하는 가수 중에는 SNS에 라이에 관해 자기 생각을 쓰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로.
음악계는 라이에 관해 하루가 멀다고 떠들었지만 이안은 그저 노트북 앞에 앉아 손가락을 까딱였다.
-으아아악!
“흐음, 이게 연기라면 오스카겠지?”
비명이란 강렬한 감정 표현이다. 그런 만큼 듣는 사람은 상대를 유심히 살피게 되고.
하지만 게빈에겐 소리뿐만 아니라 표정, 몸짓까지 모든 곳에서 진정성이 넘쳤다. 보자마자 공포를 느꼈다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편집 프로그램을 만지작거리며 찍은 영상을 살피던 이안은 레이첼이 작게 웃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영상이 꽤 재밌게 뽑혔지?”
“그렇긴 한데 그것 때문에 웃은 게 아니야. 사이가 참 좋다고 생각해서 웃은 거지. 저렇게 무서워하면서도 같이 봐주시잖아.”
“이게 우리 추억이니까.”
게빈과 함께 무서운 영화에 푹 빠져 지냈던 시간.
둘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고 게빈도 그때가 떠올라서 동의해줬을 게 뻔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가 좋긴 해. 나는 감독님이 부탁하면 출연료 없이도 영화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걸.”
만약 에일리언 헌터가 망하고 과거처럼 반강제로 은퇴하게 된 상태라고 해도 기꺼이 참여했을 거다.
비록 그게 배우 경력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해도. 물론 샬럿, 벤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마음이었고.
“영상은 언제 올릴 거야?”
“내가 직접 해보려고 했는데 편집자를 구하는 게 나을 거 같네. 아마 몇 주 걸릴걸.”
올해 게빈의 영상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 영상은 내년에야 찍어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연습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약속이 잡혀 있던 프레드였다.
“라하고 이! 둘 다 잘 지냈어?!”
“프레드야말로 잘 지냈어요?”
“잘 지냈다기엔 엄청 바쁘다. 다른 애들은 여기 오지도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아?”
바쁘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지 지친 기색은 역력했으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만큼 스노우 레이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앨범 성적이 좋던데요.”
“영화의 도움까지 받았는데 앨범이 잘 안 되면 밴드를 때려치워야지. 일단 시간이 없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
“좋죠.”
새 앨범 홍보와 콘서트 준비로 숨 막히는 일정을 소화하는 그가 직접 찾아올 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다.
“2주 뒤에 LA 콘서트 게스트가 공개될 거야. 공연이 한 달 반 정도 남았을 때지. 정체를 밝힐 순간이 다가왔는데 기분이 어때?”
“프레드는 첫 앨범을 내고 정체를 공개했을 때 어땠는데요.”
“말도 마라. 다들 반응을 차마 못 보겠다고 술을 진탕 마시고 쓰러졌다니까? 제이가 있었다면 병신 같은 짓 좀 적당히 하라고 욕했을걸.”
거침없는 제이 성격이라면 그랬을 거 같긴 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엄청 후련했어. 너희도 비슷하지 않겠냐.”
“그럴지도 모르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요.”
“직접 경험해보고 후기나 알려달라고. 아무튼, 콘서트 이야기로 돌아와서 너희는 무대 경험이 없잖아. 거기다가 리허설도 힘들고.”
무대 경험은 둘째치고 정체가 드러날 수 있어 리허설이 힘들다는 건 치명적이다.
음향 엔지니어가 소리를 듣고 세팅해야 하는데 그것도 못 하고 조명 감독이 동선을 미리 기록하는 것조차 안 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요?”
“동선은 최대한 안 움직이는 방향으로 잡는다고 해도 음향은 괜찮겠어?”
음향이라.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지 고민하던 이안은 레이첼에게 시선이 닿았다.
“레이, 그때 네가 한 번 확인해볼래? 우리 곡은 너만큼 아는 사람이 없잖아.”
“나?”
“응, 나는 To J를 스노우 레이크랑 같이 부를 예정이거든. 내 목소리는 그때 확인하고 Two Secrets는 반주만 틀어도 리허설이 될까?”
“…모르겠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 애매하다.
긴가민가해 하는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안은 말을 이었다.
“토니 씨에게 부탁해서 같이 보면 괜찮지 않을까. 거기다가 일을 배우는 중이라고 하면 콘서트장에 네가 돌아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안 볼 거 아니야.”
라이 앨범을 담당하는 음향 엔지니어 토니는 아일라와 함께 일할 정도로 베테랑이니 부족한 점을 잘 채워줄 거다.
거기다가 설령 음향 문제가 생각만큼 잘 안 되더라도 후자 이유만으로 충분히 시도할 만했고.
“알았어. 그 전에 엄마 콘서트가 하나 있으니까 그때 한번 확인해보면 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을 거야.”
철저하게 준비해도 문제가 생기는 콘서트에서 불안한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체가 먼저 드러나면서 이벤트를 망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좋아, 리허설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그럼 우리 무대 경험이 부족한 친구들을 위해 특강부터 시작해볼까.”
호기로운 프레드의 말에 둘 다 집중했다.
레이첼은 말할 것도 없고 이안도 무대 경험이라곤 시상식이나 학교 단상 정도밖에 경험해본 적이 없다.
“공연의 핵심은 그 열기에 몸을 맡기는 거야. 너희처럼 경험이 별로 없을 때는 무대 위에 오르면 아무 생각도 안 들거든. 돌처럼 굳기 싫으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거지.”
“예를 들어서요.”
프레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손에 든 기타를 바닥에 내려찍는 퍼포먼스도 좋고 상의를 벗어 던지는 것도 좋지. 반응이 끝내준다니까. 이게 바로 록 스피릿이거든.”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들었다.
“아, 나오미 씨. 여기 프레드 좀 수거해 주세요.”
-또 헛소리했구나. 알겠어.
긴말이 필요 없었다.
***
나오미에게 바쁜 애들 귀찮게 하지 말라면서 프레드는 끌려갔고 시간은 흘렀다.
레이첼과 듀엣을 연습하던 이안은 두 눈을 감았다.
‘공연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어차피 연기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야.’
연기는 배우만 하는 게 아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하는 안무부터 표정까지 모든 게 연기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지금까지 라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바라는 라이는 어떤 모습일까. 불안하고 겁먹은 모습은 아니겠지?”
“응.”
“우리는 무대에 오를 때만큼은 팝스타가 되어야 해. 그땐 레이첼과 이안이 아닌 라이로 오롯이 서야지.”
이안은 무대를 오르듯 한 발자국 내디뎠다.
“팝스타는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오를까. 팬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자리라서 설레겠지? 솔직히 너도 설렐 거야.”
“조금은 그래.”
“라이 팬이라고 해야 제대로 만난 건 도로시가 끝이잖아. 도로시가 엄청 많다고 생각해봐.”
무대 아래로 도로시가 잔뜩 있다고 순간 생각한 레이첼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스노우 레이크 팬들이 더 많겠지만 분명 우리가 누군지 궁금해할걸. 그때 우리가 등장하면 어떻게 반응할까.”
“엄청 놀랄걸.”
“소리도 제대로 못 낼지도 몰라. 정적이 가득한 곳에서 우리 둘이 노래를 부를 수도 있겠지. 고개를 내리면 떡 벌린 입이 보이고.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수많은 사람이 놀랄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는 거다.
이안은 레이첼이 무대에 오를 때만큼은 팝스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이미지를 잡아갔다.
집중하며 이미지를 쌓아 올리고 있을 때 문자 한 통이 왔다.
-기사 올라갔다.
프레드에게 온 연락이고 그걸 본 레이첼은 심호흡을 했다.
“확인해본다.”
“응.”
원하는 기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스노우 레이크 LA 콘서트의 게스트로 라이?! 충격.
-진짜 콘서트에 라이가 모습을 드러내나. 쏠리는 관심.
-예매를 미루던 스노우 레이크의 LA 콘서트. 충격 소식과 이틀 후 예매.
4집이 나올 때 TV나 뮤직비디오에서 모습을 드러내겠지.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던 라이 팬들은 이 소식에 깜짝 놀랐다.
-진짜 라이가 스노우 레이크 콘서트에 나온다고?!
└미쳤냐고! 왜 이걸 진즉에 안 알려줬어?! 바로 티케팅에 들어간다.
└게스트 보려고 오는 잡것들은 꺼져봐. 1년 동안 이 콘서트만 기다렸다고!
└닥쳐! 우린 4년 넘게 기다렸거든?! 다른 도시로 가서 보던가! 우린 이거 하나야!
-프레드가 갑자기 태세를 바꾼 이유를 깨달았다. 진즉에 계획된 일이었나.
└하긴 그렇게 욕을 하더니 갑자기 신이라면서 헛소리를 주절거릴 때부터 알아봤다.
└그래서 티케팅 안 할 거임?
└미쳤냐. 당연히 해야지. 되팔아도 짭짤할걸.
└개 같은 암표. 제발 가격 좀 적당히 팔아라. 벌써 얼마나 오를지 걱정된다.
-기다려봐. 지금 K팝 팬들에게 티케팅 방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아아, 그들은 지금까지 어떤 전쟁을 치러온 걸까.
└LA가 끝이야? 다른 지역은 없나.
└다른 지역은 없다고 이미 못 박아놨더라.
└티케팅이 실패할까 봐 벌써 손발이 덜덜 떨려온다.
벌써 티케팅을 두고 아우성이다.
원래 스노우 레이크 팬과 라이를 처음으로 직관하려는 라이 팬 거기다가 암표상과 기자까지 붙으니 티케팅 지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 준비해야겠지?”
“…응.”
“자, 연기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해보자.”
침을 꿀꺽 삼키며 레이첼은 다시 이안을 따라 했다.
어쩐지 오드리가 어떤 느낌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
“으아아아앙!”
서러운 울음을 터트린 도로시는 이안의 옷을 붙잡았다.
“실패라고!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시도했는데도 실패했다고!”
“경쟁이 엄청 심하더라.”
“페이지! 페이지만 안 나갔어도 성공했을 텐데. 프레드, 이 나쁜 인간. 도대체 서버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글쎄.
티케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몰라도 프레드가 서버 관리를 하진 않았을 거 같은데.
괜한 사람에게 원망을 쏟아낸 도로시는 이안은 노려봤다.
“너도 콘서트에 나온다며. 왜 진즉에 안 알려줬어?!”
“NDA야.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니까?”
“…그래도 귀띔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그럼 컴퓨터라도 더 좋은 거로 바꿨을 텐데.”
울상을 짓던 도로시는 이안이 웃자 울컥했다.
진짜 이 녀석은 인간의 마음이 없다. 여자가 이렇게 서럽게 우는데 웃는다니.
잔소리를 내뱉기 위해 입을 뻐끔거릴 때 이안은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자, 전에 약속했던 선물이야. 코믹콘에 같이 가면 정말 좋아할 선물을 준다고 했잖아.”
“…어?”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조심히 열어봤다.
아무리 다시 봐도 티켓이 맞다. 그것도 그렇게 바란 LA 콘서트 티켓.
“진즉에 너희 건 얻어놨지. 다니엘, 여기 네 것도 있어.”
“…난 크리스마스에 바쁜데.”
“너희 아버지한테 이미 일정 확인 다 끝났어. 잘 놀고 오라고 하시던데.”
…아버지.
다니엘은 애증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며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도로시와는 다른 의미에 떨림이었다.
둘 사이의 묘한 분위기를 눈치 못 챈 도로시는 팔짝 뛰며 말했다.
“꺄아아악. 이안, 너무 좋아! 역시 넌 내 최고의 친구야!”
“그 마음은 평생 안 변할 거지?”
“물론이야! 진짜 평생 친구 하자.”
“녹음기 앞에 한 번만 더 말해주라. 아, 레이첼도 포함해서.”
“얼마든지!”
결국 녹음까지 받아낸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생존 수단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