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6)
크리스마스 파티(1)
인간의 이해는 경험에 기초한다.
레이첼처럼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힘든 이유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공감각으로 보는 세상이 어떤지 가늠할 수 없지. 아멜리아 때처럼 환상으로 직접 체험을 해본 것도 아니니까.’
다만 Two Secrets를 처음으로 함께 불렀을 때 큰 심경 변화가 생긴 건 눈치챌 수 있었다.
노래 부르는 것에 묘한 거부감을 드러내던 모습이 그날 이후로 사라졌으니까.
-레이가 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더라니까?
아일라가 호들갑 떨며 전화를 했을 정도로 큰 변화였다.
이때부터 콘서트 무대에 오르는 건 라이의 정체를 밝히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졌고 이안과 아일라는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소심한 아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무대에 서려고 할지 몰라. 다신 이런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가수가 될지 말지는 본인 선택에 맡기되 가능성은 열어주고 싶으신 거죠?”
“응. 솔직히 말하면 가수가 행복하기만 한 직업은 아니거든?”
아일라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토킹 피해, 지독한 안티팬, 평론가의 혹평, 새 앨범의 압박 등 힘든 점을 나열하면 끝도 없었다.
그런데도 돈 욕심이 크지 않은 그녀가 지금까지 가수 활동을 계속해오는 이유는 이 모든 걸 감수할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내가 부르는 노래에 열광하고 함께 호흡하는 경험은 그 어떤 경험으로도 대체할 수 없어. 딸이 나와 같은 경험을 즐겼으면 하는 건 역시 욕심일까?”
“욕심이랄 것까지 있나요.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은 똑같잖아요. 첫 무대를 최대한 좋은 경험으로 남기는 거요.”
“그렇지?”
제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이안을 보며 그녀는 웃었다.
벤에겐 미안하지만 역시 그가 가장 잘한 일은 이안을 소개해준 일이었다. 새삼 그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기술적인 건 내가 최선을 다해 다듬을 게 심리적인 건 네게 부탁해도 될까? 그동안 그 아이를 바꿔온 건 내가 아니라 너였잖니.”
“최대한 노력해볼게요. 라이가 훌륭한 발판이 될 수 있도록요.”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쓰러지지 않게 자전거 뒤를 붙잡은 손은 언젠가 놔줘야 한다. 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녀가 성장할 때까지 보조했던 라이는 퇴장할 때가 됐지.’
둘은 결론을 이렇게 내렸고 각자 맡은 역할을 다 했다.
성큼 다가온 콘서트 일정을 앞두고 레이첼과 나누는 대화도 이 일의 연장선이었다.
“팝스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니 너무 어렵잖아. 내가 너처럼 뛰어난 연기자도 아니고.”
테이블에 축 늘어져 찰랑거리는 금발은 마치 수확을 앞둔 황금빛 밀밭처럼 보였다.
처량하게 올려보는 푸른 눈동자엔 자신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연기라고 해서 특별할 거 있나. 누구나 연기를 하며 살잖아.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까지 갈 필요도 없이 거짓말도 연기지.”
“…난 거짓말 안 하는데?”
“어렸을 때는 했을걸. 혼나고 안 하게 됐겠지. 안 그래? 그리고 도로시에게 라이라는 걸 숨기고 있는 것도 연기잖아.”
“으으… 도로시. 미안해.”
어느덧 성큼 다가온 크리스마스.
평생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친구를 떠올리니 양심이 아파 왔다.
“무대를 망치는 게 더 도로시에게 미안할 일일걸.”
“…이안은 양철 나무꾼이야. 마음이 없어.”
“나에게 라이는 하나의 페르소나거든. 이안이 아닌 라이로서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그 결과가 누군가에겐 충격과 공포로 찾아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6살이면 세상의 쓴맛을 느껴볼 만한 나이지 않나.
“내가 요즘 Quiver를 하는 건 알지?”
“응. 연습하면서 가끔 답변 다는 걸 봤으니까.”
몇 번 보고 말았다. 역시 가명을 써도 이안은 이안이구나. 이런 감상만 나왔으니.
그래도 답변 수준은 높은데 과제 내주듯 대본을 잔뜩 소개하는 통에 교수라고 불린다는 것까지도 알았다.
“내 정체를 밝혔다면 나이, 인종, 학벌 등 온갖 색안경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쓰고 반응했을걸. 그런 면에서 제이 안은 내 의견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는 가면이지. 너도 그런 가면을 쓰는 거야.”
“나도?”
“응. 부끄럽고 소심한 모습은 잠시 라이라는 가면에 맡겨. 그게 정말 힘들다면 날 보고. 그날 무대 위에는 혼자 있지 않을 테니까. 그걸 위해 계속 팝스타가 되는 상상을 해왔잖아.”
이안은 손을 뻗었고 레이첼은 조심스럽게 손을 맞잡았다.
힘을 줘 일으킨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네가 쉽게 몰입하지 못 하는 건 옷 때문이 아닐까?”
“…옷?”
청바지에 후드티.
수수한 복장도 타고 난 외모를 가리진 못했으나.
‘너무 평소랑 똑같은 옷차림이야. 이러니 가수가 된 자신을 쉽게 상상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복장이 연기 몰입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잘 알았다.
“안 되겠다. 도움을 구해야지.”
“어… 도움?”
“네 스타일을 바꿔줄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믿고 맡겨도 좋아.”
이안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
“허니, 옷 타령을 하길래. 나랑 데이트라도 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긴 다리를 꼰 샬럿은 얼굴엔 불만이 드러났다.
공연 준비한다고 전화도 좀 소홀하긴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데이트라. 크리스마스에 시간 돼요?”
“흐응, 무슨 밴드 콘서트에 게스트로 올라간다고 했지. 나도 너무 가고 싶었는데 연말에는 빠질 수 없는 파티가 너무 많아서 아쉽네. 다음에 시간 내줄 거지?”
“로티가 원한다면야.”
“좋아. 약속한 거야.”
샬럿은 약속의 증표라는 듯이 초콜릿 하나를 이안에게 물려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쁜이. 오랜만이네.”
“아, 안녕하세요.”
둘 다 이안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만큼 안면은 있었지만 어색한 인사처럼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원인을 따지자면 소심한 레이첼이 화려한 샬럿을 은근히 피했기 때문이다.
“갈수록 예뻐지는 거 같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다니기 너무 아쉬울 정도로 말이야.”
꽃이 피듯 웃는 샬럿의 표정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했고 레이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머릿속에 경고등이 잔뜩 울렸으나 허리를 휘감는 손을 피하진 못했다.
“뺙!”
“허리도 얇고. 피부도 좋고. 음… 나랑 같이 패션에 대해 배워볼까.”
“아, 아니…”
“가자. 이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다녀오세요.”
휘적휘적 흔들리는 손을 아련하게 보며 레이첼은 그대로 끌려갔다.
-벗기고 보니 더 괜찮은데?
-꺄악.
-어떤 옷이 좋을까나. 푹 파인 것도 괜찮지? 적당한 노출은 여성의 무기야.
연이어 들리는 비명을 무시하며 이안은 가져온 가방을 열었다.
“오랜만에 실컷 대본이나 볼까. 시간은 오래 걸릴 거 같으니까.”
대본을 펼치자 어느새 처량한 목소리가 아스라이 사라졌다.
겨울이었다.
***
자신감은 연습에서 온다.
이안과 레이첼이 쉴 틈 없이 연습을 거듭하는 사이 시간은 부쩍 빠르게 지나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스노우 레이크 콘서트의 관심은 커졌다.
-스노우 레이크 LA 콘서트 북미 극장 곳곳에서 생중계.
스크린 하나가 아쉬운 크리스마스 시기에 영화를 밀어내고 콘서트가 생중계될 정도로.
엄청난 경쟁률에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보통 영화보다 2배 넘게 비싼 표를 기꺼이 구매했으나 이조차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망할! 극장 수 좀 늘려달라고! 왜 표를 산다는데 자리가 없냐고.
└그 스크린들도 영화를 쥐어패고 뜯어낸 거야.
└내 알 바냐. 이건 생중계라고! 암표라도 사야 하나.
└응, 암표도 거의 없어.
-콘서트가 끝나고 바로 VOD 판매한다더라.
└기사도 안 보고 VOD가 나올 때까지 참는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망할 동생놈이 스포일러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어떡하지?
└묻어. 머리만 남겨놓으면 되잖아.
└lol, 아주 좋은 생각이군.
라이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을 함께 경험하고 싶다.
애인 혹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은 기꺼이 몸을 움직였다. 이안의 집에 모인 이들도 그랬고.
“이안! 어떡하지. 벌써 너무 떨려.”
도로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중한 표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첫 싱글부터 지금까지 라이에게 푹 빠져 지냈던 그녀로선 긴 기다림을 보답 받는 순간이었다.
설렘과 불안으로 거실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요동치는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이안, 나도 너무 떨려.”
다니엘이다.
같은 말이라도 의미는 달랐다.
예정된 파국을 기다리는 불안감은 표를 잡은 집게손가락이 덜덜 떨리는 것으로 표현됐고.
이안은 주짓수로도 생존을 확신하지 못하는 다니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괜찮아. 그게 없어져도 표는 다시 구해줄 테니까.”
“…와, 너무 고맙네.”
입과는 달리 다니엘은 눈으론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도 이번만 잘 이겨내면 돼.’
괴물로 변할 도로시를 이번만 막아낸다면 이젠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보는 이안의 가족들에게 물었다.
“세 분은 함께 안 가세요? 이안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이잖아요.”
“너무 요란한 곳은 가고 싶지 않구나. VOD로 나오면 그때 보면 되겠지.”
완곡한 거절에 다니엘은 아쉬움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속 타는 마음도 모르고 도로시와 여유롭게 대화 중인 이안이 보였다.
“이안, 정말 미안한데. 나중에 라이의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럼. 얼마든지 가능하지. 이번에 나오는 4집 앨범에 사인을 추가하면 되지? 다른 앨범도 준비해줄까?”
“와아아! 이안! 진짜 너랑 친구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럼 우린 평생 친구잖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꼴은 감탄만 나왔다.
‘예전에 도로시가 배우가 아니면 사기꾼이 됐을 거라고 했나.’
미안하지만 틀렸다. 배우이자 사기꾼이 됐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자니 문이 열리며 가벼운 발걸음이 들렸다.
“레이첼?!”
고개를 돌린 도로시는 깜짝 놀란 얼굴로 레이첼에게 달려갔다.
외투 안으로 배꼽이 드러나는 크롭티가 보였다. 누군가는 고작? 이라고 할 수 있으나 평소 그녀의 옷차림을 생각하면 파격 그 자체였다.
“어쩐 일로 이런 옷을 입었어? 역시 너도 이번 콘서트가 기대됐구나!”
“으응…”
시원한 배를 살짝 가린 레이첼은 어색하게 웃었다.
복장은 어색하고 도로시를 보는 건 양심에 찔렸다. 혼란을 느끼는 레이첼 뒤로 아일라가 나타났다.
“치마도 항상 무릎보다 길게 입던 애가 이렇게 입으니 어울리지 않니.”
“네! 아일라 씨도 같이 콘서트에 가신다고 하셨죠?”
“응, 관객으로 다른 사람 무대를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거든. 거기다가 이렇게 특별한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아일라의 답변에 도로시는 활짝 웃었다.
유명한 팝스타가 좋아하는 가수에게 이렇게 관심을 둔다니 기쁜 마음이 물씬 들었다. 마음 같아선 라이가 어떤 점이 좋은지 쏟아내고 싶지만 꾹 참았다.
“시간이 됐으니 빨리 움직이자.”
“네!”
기다리던 콘서트가 코앞이니 말이다.
서둘러 밖에서 대기 중인 차에 몸을 실었고 바로 콘서트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다들 제각각으로 행동했다.
라이를 본다는 마음에 설렌 마음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도로시와 능청스럽게 대답을 받아주는 이안.
레이첼은 죄책감을 느끼며 도로시의 옷차림을 살펴줬고 어쩌다 보니 공범이 되어버린 다니엘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래리만 해맑게 창밖을 봤다.
“도착했다.”
콘서트장이 될 경기장이고 입장 규모는 만오천이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주차장엔 꽤 많은 차가 보였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이안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와!”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무대에서 가볍게 연주를 하며 호흡을 맞춰보는 스노우 레이크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안을 알아본 이들이 손을 붕붕 흔들었다.
“이제 왔어?!”
“안 늦었죠?”
“당연하지. 잘 왔다. 목이나 좀 풀고 있어 To J를 한 번 맞춰봐야 할 거 아니야.”
프레드와 이안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한 사람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라이의 녹음을 담당했던 엔지니어 토니였고 가장 먼저 발견한 아일라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고생시켜서 미안해, 토니.”
“뭐 상관없어. 표를 구할까 했는데 돈이 굳어서 다행이지.”
라이의 시작을 함께 했던 만큼 토니에게도 이번 콘서트는 큰 의미가 있었다.
오히려 마지막에 한 손 거들 일이 없었다면 섭섭했을 뻔했다.
“레이. 슬슬 가자. 공연에서 음향 조정하는 걸 보고 싶다면서.”
“네!”
“어라. 레이, 어디가?”
사정을 듣지 못한 도로시에게 레이첼은 미안함을 말했다.
“이분은 나랑 잘 아는 음향 엔지니어이신데 공연에서 사용하는 음향 장비를 가르쳐주신다고 해서 말이야.”
“아… 아쉽다. 라이가 공연할 때는 올 수 있지?”
“…으응. 아마?”
오긴 올 거다. 위치가 무대 위라서 그렇지.
미안함을 애써 숨기는 레이첼에게 이안은 입모양으로 말했다.
‘잘 해보자. 팝스타처럼 알지?’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토니를 따라 서둘러 사라졌고 목을 가볍게 푼 이안은 무대 위로 올랐다.
“도로시. 무대 가장 앞에 있을 거지?”
“당연하지!”
정신 건강을 위해선 되도록 멀리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뒤로 가라고 해도 말을 안 들을 테니까.
다니엘이 옆에서 잘 챙겨주길 바라는 수밖에.
“자, 받아!”
프레드가 휙하고 던진 마이크를 받은 이안은 무대 위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곧 가득 채워질 넓은 공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 딱 좋은 장소네.’
깜짝 선물을 주는 산타가 된 이안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