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7)
크리스마스 파티(2)
Beverly Hills Moms 촬영 때부터 이안과 함께 한 세 사람은 무대 위를 보며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환한 조명 아래 동선을 맞추고 경쾌한 밴드 반주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와, 이안 멋있다.”
“…난 별로. 쟤는 앞에 대본을 잔뜩 쌓아놓고 빈둥거리는 모습이 더 어울려.”
감탄하는 래리와 퉁명스러운 도로시의 평가. 다니엘은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맞아. 쟤한테는 저런 자리가 전혀 안 어울려.”
그러니까 왜 어울리지도 않는 일을 해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걸까.
다니엘의 원망을 듬뿍 받은 이안은 리허설을 마치고 무대에서 훌쩍 내려왔다.
“아일라 씨, 문제 될 거 없어 보이죠?”
“문제가 있으면 저기 밴드 분들이 먼저 지적을 했겠지. 슬슬 관객들이 입장하는 거 같은데 나는 가봐야겠네.”
“어라, 어디 가세요?”
도로시의 물음에 아일라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여기 있으면 방해될걸. 안전 문제도 있을 수 있고. 나는 편한 자리에서 보고 있을 게. 닉이랑 엘리엇도 그쪽으로 올 테고.”
“나도 슬슬 대기실로 가봐야겠다. 미리 말해뒀으니까. 혹시 무슨 문제 생기면 앞쪽 경호원을 불러. 무대 위 프레드를 불러도 좋고. 기타를 거꾸로 잡고 뛰어올걸.”
이안의 농담에 다니엘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라이의 정체 때문에 안 그래도 난리 날 텐데 이 소란에 한 몫 거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헛소리 말고 빨리 가시지?”
“알겠다고.”
안 그래도 관객들이 입장 중이라서 가려고 했다.
“이따가 무대 위에서 인사해줄게. 콘서트 재밌게 보고 있어.”
인사하는 사이 익숙한 R&B 반주가 흘러나왔다. 누가 들어도 스노우 레이크와 다른 스타일의 곡이 나오자 도로시는 재빨리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아아아- 안 들을 거야. 난 안 들려.”
발매도 안 된 곡을 이렇게 듣기 싫다며 노력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이안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이름이 적힌 대기실로 안내받았다.
바로 옆에는 RA-I라고 적힌 대기실이 보였다. 오늘 주인 없이 쓸쓸하게 있을 대기실이다.
좁지만 편안하게 꾸며진 대기실에 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기실 작은 모니터에는 인파가 몰리는 게 보였고 웅성거리는 소리는 기분 좋은 진동이 되어 울렸다.
그 장면을 보던 이안은 울리는 핸드폰을 봤다. 벤이었다.
-아직 시작 안 했지?
“곧 시작할 거에요. 파티는 어때요?”
-파티가 뭐 똑같지. 그나마 에반이 좋아하니 다행이야. 귀엽다고 찾아오는 사람 때문에 내가 무시당할 정도라니까?
콘서트장에 데려오기엔 에반이 너무 어려서 벤이 맡기로 했는데 괜찮다니 다행이다.
“오드리는요?”
-아, 감독님들이 너랑 하는 행동이나 말이 똑같다고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 데리고 이곳저곳 소개해주고 있어.
그렇게까지 똑같은가?
이안은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인맥을 잘 쌓고 있다니 다행이다. 콘서트에 따라오는 것보다 그녀에게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잘 하라고. 이따가 집에서 VOD로 네가 무대에 오르는 걸 함께 보기로 했거든. 아마 다들 기겁할걸.
샬럿은 물론이고 다니엘과 감독님들도 To J로 무대에 오르는 건 알아도 라이의 정체는 몰랐다.
돌아올 반응을 상상하며 벤은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영상을 찍는 건 잊지 마요.”
-안 그래도 촬영에 쓰는 카메라들도 빌려놨다고.
죽이 척척 맞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엄청난 환호성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공연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고 함성을 들은 벤이 말했다.
-이따 콘서트 다 끝나고 보자.
“네.”
통화를 종료한 이안은 심호흡을 했다.
줄어드는 숫자를 따라부르는 외침은 어느덧 0이 됐고 치익- 하는 소리와 흰색 연기 기둥들이 솟아올랐다.
두두둥-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드럼 소리와 함께 환한 조명이 켜졌다.
콘서트가 시작됐다.
***
2, 3시간 공연에 10만원이 넘는 티켓값.
무대에 설치된 거대한 모니터가 없다면 가수가 보일까 의심되는 인파까지.
굳이 콘서트장에 갈 필요가 있나 고민하게 하는 요소는 많았으나 실제로 콘서트에 가면 이 모든 의심은 날아간다.
거대한 음향 장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웅장한 노래와 환호와 비명이 어우러진 관객들의 반응은 현장감이라는 이름으로 가슴을 옭아맸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공연은 겨울에 뜨거운 열기를 뿜었고 어두운 밤을 밝히는 조명에는 행복에 찌든 얼굴들이 보였다.
“어, 어떡하지. 곧 나가야 해.”
세트 리스트를 보는 레이첼은 두근거리는 심장에 손을 얹고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똑똑하는 노크에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며 이안은 일어났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오랫동안 준비해왔잖아. 그 시간을 믿자고. 먼저 가 있을 게.”
“으응.”
-프라이스 군. 나와서 준비하셔야 합니다!
대기실 문을 열자 공연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소리에 스태프들도 목청 높게 대화를 나눴다.
“라이는 아직도 대기실로 안 왔어?!”
“네!”
시끌벅적한 스태프들을 뒤로하고 무대 뒤쪽으로 서자 스노우 레이크 멤버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드럼을 열정적으로 두들기는 맥스와 키보드로 곡의 분위기를 이끄는 나오미 그리고 다른 악기들이 신나게 날뛸 수 있는 틀을 잡아주는 베이스의 월터.
마지막으로 핏발 선 목으로 기타를 치며 열창하는 프레드까지.
‘이게 본모습인가.’
촬영 때부터 봐온 푼수 같고 장난기 많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이 너무나 즐겁다는 게 생생하게 드러나는 얼굴은 이 밴드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를 깨닫게 했다.
부르던 곡이 마무리될 때쯤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새하얀 드라이아스가 바닥에 깔렸다.
프레드는 차오르는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여기에 올 정도면 영화는 다들 봤겠지? 그럼 무슨 곡이 나올지도 알겠네.”
-To J!
“맞아! 나보다 더 잘 나가는 나쁜 놈을 불러보자고!”
거대한 모니터에는 묘가 나타났다.
1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묘비를 화려한 꽃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찾아온 많은 이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이안이 바꾼 변화 중 하나였고,
활짝 웃은 프레드는 마이크를 움켜쥐었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헤이, 제이! 15년이 지났어. 언젠가 다시 보자는 약속도 못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그리움과 씁쓸함이 묻어나는 가사를 내뱉기 잠시.
곡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통통 튀는 키보드 소리와 기타 넥을 오가는 손가락은 슬픔을 유쾌함으로 뒤덮었다.
“헤이! 제이. 넌 스타가 됐어. 네가 좋아하는 포르노 잡지가 뭔지도 다 알 정도지. 네가 좋아하던 그녀도 널 알게 됐어.”
제이가 무덤에서 뛰쳐나올 가사였고 프레드다운 곡이다.
웃음을 머금으며 이안은 스태프가 내민 기타를 어깨에 멨다. 제이와 관련된 기억이 몸을 휘감았다.
통통 튀는 기타 리프를 치며 이안이 걸어 나오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헤이, 제이. 세상이 널 알게 됐어. 얼마나 까칠하고 재수 없었는지도 다들 알게 됐지.”
프레드와 이안은 뜨겁게 느껴지는 조명 아래서 눈을 마주쳤다.
-헤이, 제이!
“넌 스타가 됐어. 넌 얘처럼 안 생겼는데 말이야.”
프레드의 애드리브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안과 프레드가 To J를 부르며 분위기가 절정에 달할 때 무대 뒤에선 난리가 났다.
“아직도 안 왔다고?!”
“네! 대기실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망할!”
콘서트 총괄 감독은 욕설을 내뱉었다.
‘설마 라이가 나온다는 게 거짓말인가.’
아니다. 프레드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어도 그런 대형 사고를 칠 정도는 아니다. 거기다가 라이의 음반사 사장까지 직접 콘서트에 오지 않았나.
“설마 도망쳤나.”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4집까지 얼굴을 꼭꼭 숨긴 사람이니까.
얼굴도 번호도 모르는데 잡아 올 수도 없다. 생중계까지 하는 콘서트인데 라이가 안 나온다면.
‘안 돼. 이 다음은 지옥이야.’
대규모 환불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는 그에게 한 스태프가 뛰어왔다.
라이의 에이전트와 음반사 사장에게 보냈던 스태프였고 숨을 헐떡이는 그에게 다급히 물었다.
“뭐라고 했어?”
“이, 이미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있다고?”
어디에 있단 말인가 To J가 막바지로 향하는 사이 그는 주변을 빠르게 훑었고 한 사람에게 눈이 꽂혔다.
그래, 갑자기 끼어든 외부인이 있었다. 왜 처음부터 의심하지 못했나 자책까지 하며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라이 씨! 이렇게 모른 척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상대를 훑어봤다. 한숨이 나왔다.
‘외모는 기대 이하인데 어쩔 수 없지. 차라리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오던가.’
팬들이 기대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찾은 게 어딘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는 말을 이었다.
“빨리 나갈 준비를 하세요. 이름이 토니라고 하셨죠?”
“어, 저기. 저요?”
당혹감 가득한 목소리에 총괄 감독은 흠칫 놀랐다.
라이 특유의 고운 가성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아닌가요?”
“아닌데요.”
“푸흡.”
고개를 돌리자 예쁜 소녀가 웃음을 겨우 참는 게 보였다. 귀가 빨갛게 변할 정도로 민망함을 느낀 그는 노랫소리를 듣고 펄쩍 뛰었다.
“어, 어떡합니까?! 노래가 끝나갑니다.”
“포그! 일단 예정대로 포그를 깔아.”
지시에 따라 바닥에 깔리는 드라이아이스와 달리 무대 전체를 새하얗게 만드는 안개가 나왔다.
연달아 진행된 곡에 지친 기색으로 스노우 레이크 멤버들이 빠져나오자 총괄은 빠르게 다가갔다.
“프레드! 라이는. 라이는 어딨어?! 바로 다음 곡인데 안 보인다고.”
“라이?”
웃음기가 가득한 되물음.
지금 얼마나 급한 상황인데 자신 마음도 모르고 여유를 부리는 꼴이 화가 났다.
한 마디 쏘아주려는데 게스트인 이안 옆으로 아까 본 소녀가 다가갔다.
“고생했어. 자 여기.”
“땡큐.”
후드티를 받아 입은 이안은 기타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어?”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안 갔다.
왜 이안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지? 막아야 하는데 너무 태연한 멤버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프레드는 총괄 어깨에 팔을 걸치며 활짝 웃었다.
“짜잔, 서프라이즈.”
총괄은 입을 떡 벌렸다.
***
무대 위에 깔린 자욱한 안개와 꺼진 조명.
베일을 휘감은 듯한 무대 위로 모니터가 반짝였다.
-Two Secrets.
세트 리스트에서도 숨겨졌던 라이의 곡 제목이 나타났고 웅성거림이 번졌다.
이안은 방금까지 함께 있던 공간에 홀로 발을 디뎠다. 예민해진 귀는 관중이 웅성거리는 목소리를 쏙쏙 잡아냈다.
불안, 기대, 흥미. 온갖 감정이 느껴졌고 몇 달 동안 귀에 박히도록 들은 R&B 반주가 흘러나왔다.
이안은 입을 열었다.
“Hello, it’s me.”
-꺄아아악!
라이 특유의 목소리와 함께 조명이 켜졌고 안개 위로 실루엣이 비치자 비명과 함성이 들렸다.
“놀라지 말고 두 가지만 들어줄래?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이야.”
앞으로 걸어나갈수록 안개가 옅어졌다.
제 역할을 못 하게 된 안개를 지나 이안은 밝은 조명 아래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가수가 아니야. 라이도 내 이름이 아니지. 혹시 너무 놀랐니?”
지독한 정적.
거대한 모니터에 이안의 얼굴이 떡하니 나왔으나 누구 하나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입을 뻐끔거리는 도로시를 힐끔 본 이안은 노래를 이었다.
“친구도 모르게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이지. 라이로 노래를 부른 사람? Yes, it’ me.”
-으아아악! 뭐야? 진짜 이안이라고?!
괴성과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자, 이안은 검지를 입술에 댔다.
제목은 두 가지 비밀이다. 이걸 깨닫고 소란을 가라앉힌 사람들에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지 마. 두 번째 비밀을 말해줄게. 사실 우린 하나가 아니라 둘이야.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
이 목소리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도로시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녀에겐 너무나 익숙했다.
“Hello, it’s us. 우리는 라이야.”
이안 옆에 선 레이첼은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안은 물론이고 옆에선 여성은 누가 봐도 소녀였다.
‘노래를 이안이 불렀고, 거기다가 둘이면서 나이는 저렇게 어리다고?’
쏟아지는 정보에 관객이 패닉에 빠지든 말든 노래는 이어졌다.
“놀라지 마. 너희가 상상한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가 둘이라도.”
“우리는 라이야. 너희를 만나기 위해 드디어 이 자리에 섰지.”
아름다운 화음이 울렸다.
어째서 이제까지 이안 혼자서 노래를 불렀나 아쉽게 들릴 정도로 훌륭한 듀엣이었으나 사람들은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슨 가사가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혼란을 느끼는 사이 노래가 끝이 났다.
넓은 무대 위에 함께 선 둘은 한 사람을 봤다.
메두사라도 만난 것처럼 굳어 있는 도로시였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레이첼이 손을 작게 흔들며 말했다.
“라이의 ‘라’. 레이첼 그레이스야.”
“라이의 ‘이’. 이안 프라이스고. 만나서 반가워. 우리 둘이 라이야.”
두 사람의 미소를 본 도로시는 정신이 깨어났다.
‘둘이 라이라고? 진짜?’
드디어 현실을 깨달은 그녀의 머릿속에 지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동안 둘 앞에서 라이에 대해 떠들었던 말들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꺄아아아아악!”
높은 하이톤 비명과 함께 도로시가 쓰러졌다.
지옥을 경험한 듯 넋 나간 표정에 이안은 당혹감을 느꼈다.
‘어라, 한 곡 더 들어야 하는데.’
도로시는 마법 대륙이 아니라 지옥으로 끌려간 듯했다.
***
콘서트가 생중계된 극장.
라이의 정체가 이안과 한 소녀라는 게 밝혀지곤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다.
“미쳤냐고.”
기자들은 서둘러 노트북을 두들겼다. 라이가 이안이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게 뻔했다.
신속, 정확.
기자가 가져야 하는 본분에 따라 서둘러 기사를 올렸다.
『-속보, 라이의 정체 이안 프라이스와 레이첼 그레이스로 밝혀져.
(사진)
라이의 인사를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한 소녀가 실신했다.』
연예계를 뒤집을 속보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