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8)
폭탄(1)
라이의 세트 리스트는 Two Secrets, The Girl of Oz. 이 두 곡이며 후자는 도로시를 생각하며 쓴 곡이다.
비명과 함께 그녀가 쓰러질 때는 정작 주인공이 못 듣나 걱정했으나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렸다.
“둘이 라이라고? 정말? 아니야. 꿈일 거야. 내 크리스마스 선물이 이런 걸 리 없잖아.”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봐선 제대로 노래를 들었나 의심됐지만.
‘당장 무대 아래로 내려가 확인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이안은 마이크를 내리고 주변을 훑어봤다.
뜨거운 조명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관중들의 반응은 들끓는 용암 같았다. 귀가 터질 것 같은 함성에 토끼처럼 놀란 레이첼이 뒤로 숨는 게 느껴졌다.
“…바로 들어가면 안 될까?”
“그럼 집으로 못 갈걸.”
분위기만 봐선 무대 위로 안 뛰어 올라오는 게 다행이다.
“자자, 모두 진정들 하라고! 아직 애들이라니까?!”
유쾌한 목소리로 중재한 프레드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이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산타가 준 깜짝 선물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나보고 자본주의에 찌들었다고 실컷 욕해놓고 말이야.”
콘서트 게스트로 라이가 나온다는 게 알려지고 프레드는 욕을 참 많이 먹었다.
라이를 비판하다가 ‘라이는 신이야.’라며 하루아침에 반응을 바꾼 이유가 게스트 초청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나도 이해해. 라이의 정체를 알고 기겁했으니까. 욕하던 사람이 사실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식은땀이 나더라. 아무튼, 이안은 잘 알 테고. 이쪽이 더 궁금하겠지?”
이안이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놀랍지만 라이가 둘인 것도 놀라웠다.
아일라의 딸로서 기사에 종종 나왔기에 레이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무슨 역할을 했는지는 몰랐다.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든 곡을 작곡, 작사한 사람이야. 아, 한 곡 빼고. 라이 팬이라면 무슨 곡인지 다들 알겠지?”
“…닥쳐요.”
닉을 위해 쓴 곡이자 허술한 곡 구성으로 감성을 돋보이게 썼다고 칭찬받은 곡을 들먹이는 그에게 작게 욕을 내뱉었다.
낄낄 웃은 그는 이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들 듣고 싶은 말들은 많겠지만 말이야. 여긴 우리 콘서트야. 안 그래?!”
프레드의 외침과 함께 격렬한 드럼 소리가 울려 퍼졌고 불기둥이 치솟았다.
시선을 단박에 빼앗은 그는 기타를 집어 들고 말했다.
“바로 다음 곡으로 간다. We’re Liars.”
윙크하며 슬쩍 미는 손길에 이안은 레이첼과 함께 몸을 돌려 빠져나왔다.
여긴 신경 쓰지 말라며 손을 가볍게 흔드는 나오미와 눈인사를 하며 나오자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프로는 프로야.’
관중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고 콘서트를 이어나가니 말이다.
무대 뒤로 나오자 스태프들이 힐끔힐끔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라이의 정체에 놀란 건 이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총괄 감독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가왔다.
“망할 프레드가 어쩐지 꼭꼭 숨기더라니. 어휴, 수고 많았어.”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받으니 제대로 무대에서 내려왔다는 실감이 났다.
대기실로 복귀하니 어느새 왔는지 닉과 엘리엇이 흥분된 표정으로 반겨줬다.
“둘 다 완벽했어!”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평소 거드름 피우던 사람들이 기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아주 유쾌했거든요. 마음 같아선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말꼬리를 늘인 엘리엇은 손에 든 핸드폰을 흔들었다.
웅웅 울리고 있었다.
“벌써 난리가 나서 말이죠. 이 친구랑 저는 연말, 연초에 쉬지도 못하고 바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나중에 나눠야 할 거 같아. 진짜 바쁠 거 같거든.”
핸드폰이 발작을 일으키는 건 엘리엇만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에이전트인 닉에게 오는 연락이 훨씬 많았다.
“네 핸드폰도 만만치 않더라.”
“…그렇겠죠.”
그동안 인연을 쌓아온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그럴 거다.
둘을 배웅하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벌써 실시간으로 문자가 쌓이고 있었다. 넷플러스부터 invisible children 제작진처럼 업무로 알게 된 사람부터 학교 친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중에는.
-허니, 아무래도 우리 진지한 대화를 나눠야겠지? 응?
샬럿의 문자가 가장 신경 쓰였으나 애써 무시했다. 원래 매는 늦게 맞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특이한 점은 데미안과 감독님들의 연락이 없다는 점인데.
‘벤이 정보를 잘 막고 있나 보네.’
VOD를 보면서 경악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걸 보니 아주 흡족하다.
“…우리 잘 한 거 맞지?”
“응, 잘 했어. 후련했지?”
“그건 모르겠고.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 우리가 부르는 노래랑 사람들의 함성이 합쳐질 때 엄청 예뻤거든.”
“그래?”
“응!”
얼마나 예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에게 이번 일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건 잘 알겠다.
대기실에 앉아 무대 경험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자니 앙코르곡을 마지막으로 콘서트가 끝이 났다.
여운에 잠겨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중을 모니터로 보고 있자니 요란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라이! 둘 다 존나 끝내줬어!”
“첫 무대 같지 않던데. 리허설이 없을 때는 엄청 걱정했는데 말이야. 여차하면 무대 위로 뛰어올라 수습할 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얘들이 너희 같은 줄 알아?”
밴드 멤버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기실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머리가 산발이 될 정도로 빠르게 달려온 도로시였다.
“이안, 레이첼!”
“…으으.”
오즈가 아니라 지옥에서 돌아온 도로시는 흉악한 분위기를 풍겼다.
용케 경비에게 붙잡히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닌가. 경비도 피했나.’
그 정도의 분위기였다.
“다니엘하고 래리는?”
“하, 다니엘? 지금쯤 바닥에 뒹굴고 있을걸.”
…저런. 괴물을 막기엔 주짓수로는 불가능했나 보다.
침을 꿀꺽 삼킨 이안은 서둘러 녹음한 음성을 틀었다.
-도로시, 우리는 정말 친구지?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안과 레이첼은 내 친구지!
-우리 우정 변치 말자.
-당연하지!
선명하게 녹음된 음성에 그녀가 멈칫하자 이안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것 봐. 우리는 친구잖아. 그렇지? 일단 대화로 풀어보는 게 어떨까.”
맹수를 진정시키듯 느릿한 말로 타이르는 상황에서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제이가 가지고 있던 포르노 잡지를 끌어안은 프레드였다.
“제이, 비록 죽음이 우리 사이를 갈라놨어도 우린 친구지? 그럼! 우리 우정은 변하지 않을 거야.”
“…맞아. 죽어도 친구는 친구지.”
프레드, 망할 인간.
성큼성큼 다가오는 도로시는 공포였고 레이첼이 옆에서 파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어디를 맞아야 덜 아플까 고민하며 이안이 침을 꿀꺽 삼켰을 때 아일라가 들어왔다.
“다들 여기 있었구나. 아, 도로시. 라이 기사에 너도 있더라?”
“…저요?”
“응, 여기.”
도로시는 아일라가 내민 핸드폰 화면을 봤다. 쓰러진 자신의 사진이 보였고 그 밑에는 짧은 기사 내용이 보였다.
-라이의 인사를 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한 소녀가 실신했다.
눈을 비비고 봐도 내용이 변하지 않았다.
“꺄아아악! 너무 싫어! 아니야! 아니라고!”
진저리치며 싫어하는 도로시의 모습에 이안은 깨달았다.
역시 흑역사의 끝은 박제였다.
***
-속보, 라이의 정체 이안 프라이스와 레이첼 그레이스로 밝혀져.
처음 이 기사 제목을 본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만우절도 아닌데 이런 장난을 치네.’
‘어휴, 다른 기사처럼 그럴듯하게 올리던가.’
콘서트 중에 이미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낚시성 기사가 여럿 올라왔으니 말이다.
또 속냐는 생각에 무시하려고 했으나 비슷한 제목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이제야 사람들은 진실을 깨달았다.
-미친, 진짜라고? 만우절이 아니라 이안이 라이야?
└lol! 4월 1일은 아직 멀었다고! 진짜야!
└아니, 목소리가 다르잖아?
└이안은 성우도 했잖아. 그런 거 아니겠어?
-근데 레이첼 그레이스는 누구야?
└아일라 딸이잖아! 이안하고 친한 거로 유명하고!
└걔가 작곡하고 작사를 했다는데? 얘네들 나이가 몇이냐.
└15살일 걸.
└OMG. 나는 그때 뭘 했나 모르겠네.
-라이의 얼굴이 뭐라고? 누가 못 생겨서 숨겼을 거라고?
└아아, 판사님. 전 죄가 없습니다. 제 손이 그랬습니다.
└전 제 강아지가 그랬습니다. 전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아니, 이안은 반칙이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고.
정체가 공개된 것만으로도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VOD 판매와 뮤직비디오 공개가 이뤄지자 폭발했다.
Two Secrets의 뮤직비디오는 이안과 레이첼이 지금까지 음악 활동을 하며 찍어놓은 영상과 사진을 편집해서 만들었다.
어린 레이첼은 연필을 물며 가사를 고민하다가 카메라를 보곤 화들짝 놀라며 가사를 몸으로 가렸고, 이안은 작은 키에 맞춰 마이크 높이를 조절했다.
노래가 진행될수록 성장하는 둘의 모습은 보는 사람이 흐뭇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마지막 장면에는 수많은 관중 앞에서 듀엣곡을 부르는 둘의 사진으로 긴 여운을 만들어냈다.
뮤직비디오는 둘이 라이라는 명확한 증거였고 위튜브 조회수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위튜브, 인플루언서, 기사, 뉴스할 것 없이 라이에 대해 떠들어대며 관심을 부풀렸고 반대로 에이전트인 닉은 피곤함이 찌들었다.
-와, 이 인간들은 연말에 휴가도 안 갔나. 인터뷰부터 토크쇼 출연 요청까지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예상한 일이잖아요.”
이안과 라이.
이 둘은 각각 떼어놓고 보면 할리우드와 음악계에서 그렇게 파급력 있는 존재는 아니다.
이안은 공개된 주연 작품이 없는 아역이고 라이는 빌보드 중하위권에 오른 게 최고인 가수니까. 하지만 이 둘이 합쳐지는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둘의 화학 작용은 폭탄이 됐고 연예계 뉴스를 도배했다.
-알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지금은 버틸만 한데 사람들이 휴가 복귀하면 더 심각할 거 아니야.
“힘내요. 이번 기회에 에이전트로 이름을 알려놓으면 좋잖아요.”
-이름을 알리기 전에 돌이나 안 맞으면 좋겠다. 대부분 거절이잖아.
어쩌겠는가. 지금 쏟아지는 일정을 잡다 보면 invisible children 촬영도 제대로 못 할 텐데.
‘오죽하면 케이틀린이 출연 확인 전화를 했을까.’
물론 모두 거절할 순 없으니 몇 가지 중요한 일정은 소화해야겠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줘요. 관심은 이렇게 타오르다가도 훅하고 꺼지는 법이잖아요.”
라이의 정체가 공개되는 건 대형 폭탄이긴 한데 미국 연예계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법이다.
적당히 관심을 받다가 시간이 흐르면 이 열기도 가라앉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 이런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이안, 정말 진정되는 게 맞을까?”
“그렇지 않을까…?”
이안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빌보드 차트를 봤다.
자신 없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치솟지?”
라이의 4집 앨범 THE SECRET의 곡들이 차트에서 질주를 시작했다.
***
라이의 팬과 업계 관계자들이 라이를 두고 하는 말이 항상 있었다.
-곡은 참 좋은데…
트랜디하면서도 특유의 맑은 가성으로 유니크함을 뽐내는 게 라이 곡의 특징이다.
우연히 들었다가 빠져들었다는 이야기가 많을 정도로 훌륭한 곡들이나.
-우리 라이가 얼굴만 보여줬어도 이 정도가 아닐 텐데.
-진짜 승부는 얼굴 공개 이후라고 봐야지. 우리 가수라면 진즉에 설득해서 얼굴 공개를 했을 거야.
얼굴 없는 가수로 앨범을 내는 것보다 차라리 뚱뚱하고 볼품없는 모습이라도 드러내는 게 낫다.
비하 받을 수 있는 외모를 자신 있게 말하며 큰 인기를 끄는 가수들도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 나름이란 뜻이다.
숨긴 얼굴이 얼마나 큰 걸림돌이었는지 4집 앨범이 톡톡히 보여줬다.
-라이 4집 앨범 완판. 물량 없어 난리.
-Big Sound Records, 성원에 감사하며 최대한 빨리 4집 앨범을 준비하겠다.
이미 높은 수요를 예상하고 찍어낸 초도물량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4집 앨범이 가진 특별한 의미에 라이의 팬들이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이안의 팬들도 합세했다.
이뿐이면 모르겠는데.
-뭐? 라이의 작사 작곡이 레이첼이라고?
└이번엔 듀엣곡까지 들어가 있다고!
└이건 사야지!
오랜 아일라 팬들은 사진으로 레이첼의 성장을 봐왔다. 안타까운 사고로 친아빠가 죽고 슬퍼하는 모습까지 말이다.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앨범 구매로 나타났다.
거기다가 이슈가 되면서 한 번 구매해볼까 싶은 사람까지 붙으니 초도물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를 끈 건 앨범 판매만이 아니었다.
라디오 진행자들은 라이의 정체라는 재밌는 소재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곡도 자주 틀어졌다.
위튜브? 그건 이미 말할 것도 없고.
이 모든 게 종합되어 나타난 결과가 미친 듯이 치솟는 핫 100 차트였고 이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 이번 앨범이 끝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거 말해도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을 꺼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가늠이 안 갔다.
이안은 핵폭탄 스위치를 든 심정을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