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9)
폭탄(2)
세상일은 원래 마음 같지 않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이안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았다.
소피아의 생일을 갔다가 가족을 전부 잃은 일도, 위탁 가정에서 학대를 받다 노숙자가 된 것도, 연기에 빠져 배우가 된 것까지 전부 예상하지 못한 연속이었으니.
‘그냥 인생을 다채롭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감내해야지.’
영화 한 편을 찍더라도 돌발 사건이 얼마나 자주 생기는가.
빌보드 차트를 질주하는 Two Secrets 정도면 정말 유쾌한 서프라이즈다. 한 가지 문제를 빼고.
“음… 이번 앨범이 끝이라고 그냥 발표할까요?”
“한 번 해봐. 무슨 꼴을 당할지 궁금하네. 물론 나라면 안 하겠지만.”
이안은 얄밉게 웃는 벤을 발로 밀어냈다. 진짜 도움이라곤 하나도 안 되는 인간이다.
‘어떡할까.’
수십 년 동안 정글 같은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으며 쌓아온 경험으로 지금까지 괜찮은 선택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안 갔다.
“왜 높냐고.”
이안은 빌보드 핫 100차트에서 36위에 올라 있는 Two Secrets를 봤다. 다시 봐도 순위가 달라지지 않았다.
빌보드 핫 100차트는 음원 판매, 스트리밍, 라디오, 위튜브 등을 합산해서 순위를 매기는 메인 차트다.
전 세계에서 이곳에 이름을 올리는 게 목표인 가수는 수두룩한 곳이고.
‘36위라.’
이곳저곳에서 떠드는 것치곤 조금 낮네? 싶을 수 있겠으나 이맘때쯤 차트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 캐럴들을 생각하면 절대 낮은 순위가 아니다.
저번 주에 87위로 처음 차트인 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게 순위 높은 게 불만이면 저 영상이라도 올리지 말았어야지.”
TV 화면에는 저번 주에 올라간 따끈한 위튜브 영상이 보였다.
파티를 끝내고 데미안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스노우 레이크의 콘서트를 VOD를 보는 장면이었다.
프레드와 함께 To J를 부른 이안이 연기 속으로 사라지자 사람들은 TV에 관심을 금방 거뒀다. 시선도 안 주자 영상을 찍고 있는 벤이 운을 뗐다.
-곧 라이의 정체가 밝혀지겠네?
-아, 그 사람? 그다지 관심 가진 않는데. 내가 팬도 아니고.
심드렁하게 대꾸한 데미안이 술을 마시는 사이 라이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안개를 뚫고 가수가 튀어나왔다.
-푸흐읍!
-꾸에엑!
데미안은 입에서 분수를 뿜었고 그걸 맞은 공작새는 기겁하며 깃털을 펼쳤다.
화려한 깃털로 TV를 가리는 공작새를 밀어낸 데미안은 눈을 끔뻑였다.
-이, 이안?!
-으응? 한 곡 더하는 거였니.
-…라이라고 하잖나. 어쩐지 핸드폰도 못 보게 하더니만.
데미안은 물론이고 감독님들조차 몰랐던 기색.
이안 위튜브에 이안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올라간 두 번째 영상이었고 조회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꺄하하하! 이안! 공작새!”
TV 앞에서 방방 뛰는 에반이 최근 가장 좋아하는 영상이기도 했고.
패러디와 비슷한 리액션 비디오가 쏟아질 정도로 Two Secrets 인기에 한몫하는 영상이니 벤이 저런 말을 할 만했으나.
“도로시를 위해서라도 올려야 했다고요.”
이건 라이를 얼마나 철저하게 숨겼는지 느낄 수 있는 영상이다.
이 영상이 없었다면 도로시는 라이 팬이라면서 눈치도 못 챘냐고 엄청 놀림 받았을 거다.
“차라리 무대 위에서 발표하지 그랬냐.”
“그랬으면 무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을 걸요.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콘서트장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고 뉴스에 나왔겠죠.”
“지금은 만 명 수준이 아닐걸.”
…그러게 말이다.
이안은 핸드폰으로 라이의 기사를 훑어보는 레이첼을 봤다.
“레이, 넌 어떤 게 나은 거 같아?”
“나? 음… 굳이 발표할 거 있어? 그냥 앨범을 안 내면 되잖아.”
“다음 앨범을 계속 기다릴 사람들에게 미안하잖아. 배우 활동을 하면서 언제 앨범을 내냐는 질문도 꾸준히 받을 테고. 나중엔 너랑 불화설까지 나올걸.”
불화설로 끝나면 다행이지. 불쏘시개를 만드는 타블로이드지라면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를 찍어낼 게 뻔했다.
“모르겠다. 순위가 높아지는 건 일단 좋은 일이잖아. 그렇지?”
“응! 사람들이 노래가 엄청 좋대!”
배시시 웃는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그냥 좋게 생각하자.’
주 하나가 나라 크기인 미국의 음악 시장에는 엄청난 숫자의 인디와 로컬 음악이 분포되어 있고.
그중 운 좋은 소수만이 메이저 음반사의 배급망과 라디오의 선택을 받아 전국구로 오를 수 있다.
뛰어난 실력이 있다고 해도 운이 없다면 성공하기 힘든 시장이고 라이의 성공은 복합적인 요소가 운 좋게 결합한 일이다.
‘그래, 운이 좋았다는 건 잊지 말아야지. 운은 질투하기 쉬운 요소니까.’
4집 앨범이 마지막이라고 밝힌다? 단순히 팬들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성공을 질투하는 가수뿐만 아니라 말없이 축하해주고 부럽다고 생각한 가수들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줄 수 있다. 이건 감당 못 할 역풍이 되어 돌아올 게 뻔했고.
“발표는 조금 미뤘다가 우회적으로 말해야겠네요.”
“언제?”
“두 달쯤 뒤요? 그때면 invisible children에서 노아가 등장할 테니까요. 배우 활동 때문에 다음 앨범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넌지시 말하면 되겠죠.”
invisible children 촬영 이후에는 Holy Love 제작도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관심도 흐지부지될 게 뻔했다.
“솔직히 말해서 36위에서 올라봐야 얼마나 오르겠어요.”
“이안, 데자뷔 같아. 그때도 훅 꺼질 관심이라며.”
레이첼의 지적은 뼈아팠으나 그때의 오판과 지금은 달랐다.
“아니야, 닉이랑 엘리엇도 나랑 같은 의견이라고. 36위도 대단한 일이고 더 올라가도 20위대로 보고 있거든.”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쉽게 내려오지 않는 캐럴들만 생각해도 위를 뚫고 올라가긴 쉽지 않았다.
‘20위권이면 큰 문제는 없겠지.’
솔직히 최상단에 있는 곡이나 기억하지 대다수는 ‘그런 곡이 있던 거 같기도 하고.’ 정도로 넘어가는 순위다.
나중에 틈을 봐 조용히 물러나도 큰 문제가 안 생길 거다.
“그런가?”
“응. 닉은 몰라도 엘리엇은 음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이잖아. 그런 사람 판단이면 믿을 만하지. 왜 아쉬워?”
“아니! 더 오를 수 있다는 말이잖아. 엄청 좋지.”
좋다니 다행이다.
다음에는 듀엣이 아니라 그녀 혼자 올라갈 길이니까.
사실 찝찝한 점이 하나 있었다.
엘리엇이 20위대가 한계라고 했으나 이건 전제 조건이 붙었다.
-새로운 이슈 거리가 더해지지 않으면 그 정도가 한계일 겁니다.
에이, 설마 여기서 무슨 일이 또 터질까.
이미 밝힐 거 다 밝힌 상태인데 말이다.
***
콘서트가 끝나고 일주일이 넘게 연락 두절이 됐던 도로시는 무서운 얼굴로 찾아왔었다.
“야, 또 숨기는 거 있으면 다 말해.”
마침 집에 찾아온 에이든은 그 모습을 보고 ‘소설을 뜯기 위해 찾아온 이안과 오드리 같았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마지막 기회라고 엄포를 늘어놓는 통에 이안과 레이첼은 최대한 많은 걸 알려줬다.
라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연기 연습실 지하에서 곡을 녹음해왔다는 사실까지 온갖 걸 말했을 뿐만 아니라.
이안은 Quiver에서 제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까지 알려줬다.
제이 안의 활동을 본 애들의 반응은 전부 똑같았다.
“이건 누가 봐도 이안이네. 굳이 말해줄 필요도 없었을 거 같은데.”
대본 빽빽하게 추천해주는 기행.
이안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눈치채기 쉬운 정체였다.
“이해할 수가 없네. 왜 눈치를 못 챌까.”
마음을 풀고 이안의 집에 놀러 온 도로시는 Quiver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안인 걸 맞추는 게 그렇게 어렵나?”
“이안이 라이인 걸 모른 너도 마찬…”
“닥쳐! 죽어!”
괜한 소리를 꺼내는 다니엘을 쿠션으로 입막음한 도로시는 머리를 거칠게 쓸었다.
“라이는 모를 만했잖아. 변성기까지 왔는데 그걸 어떻게 맞춰. 거기다가 레이첼은 작곡할 줄 아는 것도 꼭꼭 숨겼고.”
“으응… 미안.”
“뭐, 됐어. 이미 지난 일이야.”
사과까지 받은 일을 계속 질척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깔끔하게 넘긴 도로시는 이야기를 다시 Quiver로 향했다.
“교수니 뭐니 하니 웃기잖아. 다큐에서도 쟤가 대본을 엄청 좋아하는 건 이미 나왔잖아. 거기다가 제이 안이라니. 너무 뻔하게 지은 가명인데 왜 이안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지?”
“글쎄. 사람들의 말처럼 글에서 연륜이 느껴져서 그런 거 아닐까.”
글에는 생각보다 많은 게 담긴다.
쓰는 단어와 표현, 예시, 심지어 문장 기호까지. 이 모든 걸 종합하면 상대의 나이와 학식 같은 걸 예측할 수 있고.
제이 안이 괜히 교수 혹은 오랜 업계 관계자로 평가받는 게 아니었다.
“언제 밝혀질지 구경하는 재미는 있잖아.”
“보니까 시끄럽긴 하더라.”
실명을 요구하는 Quiver 사이트는 제이 안을 두고 의견이 대립하는 중이었다.
-사이트 요구에 따라 실명을 밝혀야 한다.
-아니다. 실명을 요구하는 건 질 좋은 답변을 위해서다. 실력을 증명한 이상 실명을 꺼낼 이유는 없고 이건 익명성의 올바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둘 다 그럴듯한 이유였고 사이트의 시스템과 엮인 일이니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물론 본명을 쓰는 게 훨씬 이득인 사이트에서 가명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고 온갖 추측도 쏟아졌다.
-사실 제이 안은 엄청난 업계 거물일지도 몰라. 그래서 함부로 본명을 못 드러내는 거지.
-지금 계약상 쉽게 언론에 못 나오나 보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켰던 인물이 아닐까?
온갖 추측이 떠돌며 시끄럽게 되자 Quiver 운영진 측에서 직접 요청을 해왔다.
-가명이 아닌 실명을 사용해주실 수 있을까요?
운영 정책상 정지시킬 순 있으나 제이 안의 답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함부로 결정할 순 없었다.
물론 이안은 개인 사정이 있다면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준 상태였다.
이야기는 실명제와 익명성의 장단점에 관한 토론으로 뻗어가는 중이고.
“쟤가 알아서 하겠지. 안 그래?”
다니엘의 물음에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아서 할게. 정지되면 어쩔 수 없지.”
정지되면 아쉽긴 하겠지만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익명성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가뜩이나 라이로 시끌벅적한 상황에서 새로운 땔감을 던져주고 싶지도 않고.
벌써 나오기 시작한 invisible children 시즌7의 대본을 집중해서 보던 이안은 핸드폰이 울리자 고개를 돌렸다.
“닉?”
혹시 라이와 관련된 스케줄이 또 생겼나 싶어서 바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일이 생겼어. 혹시 재스퍼 브라이언트라고 알아?
“알죠.”
모르기엔 너무 유명하다.
영국 출신으로 어린 나이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유명한 남자 가수다. 뭐 단순히 인기 있는 가수라면 다행이겠는데.
‘팬만큼 헤이터도 미친 듯이 많은 가수지.’
곱상한 외모와 엄청난 인기. 둘 다 안티팬을 만들기 충분한 요소였으나 억울하다고 하기엔 사건 사고를 너무 많이 일으켰다.
할리우드 악동이라고 불린 샬럿도 그가 벌인 일과 비교하면 요조숙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근데 그 사람이 왜요? 라이를 두고 이상한 소리라도 했나요.”
라이에게 욕설을 박았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다.
유명인에게 전 부인을 들먹이며 음란한 말로 조롱하는 일까지 있던 인물이니까.
-음… 비슷하지.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이라고 있거든. 알고 있어?
“잘은 모르겠는데 무슨 상인지는 알겠네요.”
-빌보드 시상식에서 팬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몇 안 되는 상이야.
“그런데요.”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2011년 첫 수상 이후 재스퍼가 독식해온 상이거든. 근데 알다시피 헤이터가 엄청 많잖아.
“그렇죠.”
-그래서 이번엔 다른 사람을 선정시키겠다고 벼르는 사람들이 꽤 있단 말이야.
여기까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인데…
-이번에 라이가 엄청 이슈가 되면서 라이를 밀어주자는 의견도 쏟아지고 있거든.
“그게 되겠어요?”
그렇게 쉬운 일이면 진즉에 자리를 뺏겼을 거다.
-우리도 그래서 그냥 신경을 안 썼어. 재스퍼가 입을 열 때까진 말이야.
“…네?”
***
-하? 라이? 날 밀어내고 그놈이 상을 타는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뭔 병신 같은 소리야. 가수도 아닌 인간이 왜 아티스트 상을 타.
잘 생긴 남자가 질문을 던진 기자를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해보라고 해봐. 후보에도 못 오르고 고향으로 돌아가겠지만 말이야. 뭐? 미국인이라고? 얼굴만 봤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치워.
재스퍼라면 충분히 할만한 말이다.
가수에 크게 미련도 없고 과거에 당해온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비하면 저런 은근한 비하는 상처가 되지도 않았다.
평소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망할 놈아. 왜 땔감을 던지고 난리야.”
이안은 빌보드 순위를 봤다.
Two Secrets은 찬란하게 12위에 빛나고 있었다.
인간 폭탄이 계획을 망쳐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