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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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2)
기본적인 자음 모음부터 여행 갔을 때 자주 사용할 법한 일상적인 대화까지.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한글을 하나하나 적었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글자가 귀엽게 생기긴 했어.”
동그라미와 네모 그리고 각진 기호로 이뤄진 한글은 그림처럼 보였다. ‘ㅎ’만 해도 모자 쓴 사람 같았고.
‘스위스’라는 글자가 두 개의 산 사이에 창을 든 사람이 서 있는 거 같다는 스위스 사람도 봤을 정도다.
숨 돌릴 겸 고개를 든 이안은 방 한쪽에 마련된 컴퓨터와 캠코더에 설렌 표정을 짓다가 벽을 통통 두들겼다.
얇은 벽이 느껴졌다.
‘뭘 찍을지 고민만 하고 방음을 생각 못 했지.’
새벽에 연기 연습했다가 벌어진 사건을 생각하면 악기 칠 엄두가 안 났고 결국 결정된 콘텐츠가 한국어였다.
“아니야, 좋게 생각하자. 오히려 좋잖아.”
배우는 어떤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지가 중요한데 어딜 가든 똑똑하다는 이미지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여겼다.
공붓벌레나 오타쿠를 뜻하는 너드나 긱로 여겨지는 것만 조심하면 되는데…
“너드 같은 이미지를 쌓기엔 갑자기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달까.”
이안은 인터넷 세상을 부유하는 영상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생이 같은 이미지는 초장부터 글렀다.
미국은 성폭력과 청소년 사건을 제외하곤 재판 과정이 중계되는 나라이며 TV 중계는 물론이고 컴퓨터로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찍어둔 영상이 증거물로 채택됐을 때는 외부로 공개되는 걸 각오했었다.
‘그래 봐야, 짧은 이슈 거리로 넘어갈 줄 알았지.’
하지만 그건 인터넷의 광기를 과소평가했던 거였다.
-Oh! WWE, 지금 뭐 하는 거야?! 레슬링계를 다시 살릴 유망주가 바로 저기 있잖아! 당장 링으로 끌고 와!
└그것참 좋은 생각인 거 같아 🙂 by WWE 공식계정
└아니, 이게 왜 진짜인데!
-너희들 너무 드롭킥에만 관심 두는 거 아니야? 진짜는 그 뒤에 있다고! (대충 데구루루 구르는.gif)
└lol! 아름다운 앞구르기야. 미대륙을 횡단할 수도 있겠는데?
└이제부터 ROFL(바닥에서 웃으며 데굴데굴)의 밈은 저거다!
└Oh! Rolling boy!
-너희들 그거 알아? Dropkick boy가 전에 거지꼴을 한 벤 로버츠에게 콘도그를 주면서 유명해진 꼬마라는 걸?
└상냥하면서 강력하다니. 이거 완전히 친절한 이웃이군?! 새로운 히어로가 여기 있어!
└난 그 변기솔 같은 콘도그로 벤의 목구멍을 쑤실 때부터 알아봤다고! 그놈이 쩐다는 걸!
재밌는 떡밥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는 사이버 망령은 그 영상을 밈으로 만들어 물고 뜯고 맛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반인이었으면 모를까 이미 벤과 콘도그로 얼굴이 팔린 적이 있었기에 열기는 쉽게 꺼질 거 같지 않았다.
‘좋게 생각하자. 적어도 인지도는 얻었잖아?’
다시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졌고 베이비시터 역할로 소피아가 소환되긴 했지만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똑똑
어찌 됐든 지금 생긴 시간을 알차게 소화하기 위해 손을 바쁘게 놀리던 이안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겠니?”
“네, 무슨 일이에요? 할머니.”
소피아는 핸드폰을 내밀었다.
“클로이에게 허락받고 전화를 했다는데 캐스팅 디렉터라고 하더구나.”
클로이에게 연락할 캐스팅 디렉터라면 한 명밖에 없었다.
아무 일 없이 안부 연락 차 전화할 성격이 아니란 걸 잘 아는 이안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캐스팅 디렉터인 아델리아 아코스타라고 하는데 기억하고 있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어쩐 일인가요?”
-내가 배우에게 연락할 일이 하나밖에 더 있겠니. 오디션을 봐야 하는데 볼래?
“물론이죠!”
합격하면 좋겠지만 기회를 받았다는 게 중요하다.
생각보다 입소문이 빠른 업계이기 때문에 보통 기회는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법이다.
“따로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작품 오디션인 만큼 맨땅에 헤딩하는 건 아닐 테고 원하는 캐릭터에 맞게 연기를 하려면 사전 정보가 필요했다.
잠시 고민하던 아델리아는 답변을 줬다.
-음, 운동 좀 하니? 도망치는 상황이 많을 텐데.
“도망이요?”
참 쉬운 질문이다. 남들보다 험악한 동네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한 탓에 도망은 생활이었다.
체력보단 기술이 좋달까?
진짜 생존을 위해 갈고닦은 실력은 추격 장면으로 스턴트맨 역할도 해봤을 정도다.
“못 하진 않죠.”
이안은 여유롭게 웃었다.
***
‘invisible children’의 스태프들이 안전요원들과 바쁘게 움직였다.
정식 촬영도 아닌 오디션에 불과했지만 여러 스태프가 필요할 정도로 이번 오디션은 규모부터가 남달랐다.
넓은 체육관에 안전한 매트로 여러 장애물과 지형이 꾸며져 있었고 체육관 외곽에는 여러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아역들을 평가하고 훗날 홍보에 쓸 비하인드 영상을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아역을 뽑는 게 아니라 스포츠 선수를 뽑는 거 같군.”
프로듀서의 농담에 감독은 동의했다.
“우리 아역 중에 나중에 유명한 스포츠 선수가 나올지 누가 압니까?”
“그것도 재밌겠군. 로번, 오디션을 볼 아역들은 다 왔나?”
배우와 엑스트라 관리를 책임지는 세컨 조연출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직 서너 명이 안 왔습니다.”
“그래? 그럼 전부 탈락시켜.”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만?”
“불이익이 갈 수 있으니 되도록 빨리 오라고 공지했잖아. 가뜩이나 아역이 많아서 촬영이 팍팍한데 지각하기라도 해봐. 답도 없다고.”
미국 엔터 산업은 혹사를 막는 조치가 잘 되어 있다.
주 5일 촬영이 기본이고 연장 촬영도 스태프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추가 수당을 받는 건 당연했고.
아역의 경우 나이별 노동 상한선이 세분되어 있고 invisible children에 주로 나오는 아역의 나잇대인 9세에서 16세 미만은 최대 5시간이 한계였다.
아역이 많은 촬영 스케줄을 방송사에서 걱정했을 정도이니 시간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오디션을 시작할 테니까 아역들을 전부 데려오고.”
“알겠습니다.”
조연출이 떠나자 프로듀서는 냉정한 자세로 오디션 시작만을 기다리는 아델리아에게 말했다.
“우리도 꼼꼼히 확인하겠지만 되도록 아역들 사이에서 중심이 될 수 있는 아이를 먼저 찾아주게나.”
아역들과 촬영할 때는 구심점이 되는 아이가 있는 게 굉장히 중요했다.
아직 경험이 적은 아역들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일이 많았고 분위기를 이끌어줄 같은 아역이 있는 게 가장 좋았다.
‘그런 아이가 있다면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꼭 뽑아야지.’
개인별 운동 능력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넓은 체육관을 빌려 단체로 오디션을 보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그런 아이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프로듀서에게 아델리아가 살짝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제 일은 벌써 끝난 거 같군요.”
“응?”
아델리아를 따라 고개를 돌렸던 프로듀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정말 그렇군.”
아직 오디션이 시작도 안 했는데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서 지친 아이가 보였다.
오디션 보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일한 동양인.
“이안 프라이스라. 추천을 못 받았으면 섭섭했을 뻔했군.”
그리 말한 프로듀서는 간절히 바랐다.
제발 몸치만은 아니기를.
***
과거로 돌아온 지 석 달 남짓. 아직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두 개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는가?
‘그리고 애들은 날 왜 좋아하는가?’
이쯤 되면 진지하게 애들용 페로몬이 몸에 흐르지 않나 고민이 됐다.
이곳에 와서 특별히 뭘 한 것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인종차별을 한 아이를 참교육해준 것밖에 없었는데.’
아까 아역들이 모인 대기실에서 있던 일이었다.
“와, 너 영어 진짜 잘한다. 언제부터 배웠어?”
동양인은 미국인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 하는 인종차별.
하는 사람도 이게 문제라는 인식을 거의 못하기에 미국에 사는 동양인이라면 지겹게 듣는 말이다.
그랬기에 이안은 방긋 웃으며 답변을 해줬다.
“언제부터 배웠냐면 时值9年前(때는 9년 전) 両親と会った日からだった(부모님과 만난 날부터였어).”
갑자기 튀어나온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에 당황한 아이에게 홍차 냄새가 짙게 나는 포쉬 발음을 갈겨줬다.
“내 국적은 미국이고 처음 배운 언어는 영어였다는 뜻이야. 알아들었니? 다음부턴 조심해줬으면 좋겠네.”
애를 상대로 너무 열을 냈나 싶어 반성하던 이안에게 상대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여줬다.
“와아! 또 말해주라!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야? 제대로 못 알아들었어!”
“나도 알려줘!”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좀비처럼 달려드는 애들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그나마 나이가 되는 애들은 안 달라붙어서 다행이지.’
머리 한두 개는 큰 애들까지 달려들었으면 실신했을지도 몰랐다.
시작도 전에 진이 다 빠진 이안은 아이들과 함께 프로듀서 앞에 섰다.
“오디션이라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단다. 우리는 지금부터 Tag game을 할 거야.”
갑자기 오디션에서 술래잡기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이상해하면서도 좋아했다.
푹신한 매트로 꾸며진 체육관은 뛰어놀기 딱 좋아 보였으니까.
“일단 나잇대로 팀을 나눌 거고 술래는 제비뽑기로 고를 거란다. 어때 어렵지 않지?”
살면서 술래잡기를 안 해본 아이는 없으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아이, 승부욕을 불태우는 아이, 사춘기가 와서 유치한 방식이라며 불만을 가진 아이까지.
제각각인 반응을 살피며 이안은 이번 오디션을 속으로 평가했다.
‘꽤 좋은 방법이야.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놀이 방식이면서 원하는 지구력과 순발력들을 평가할 수 있을 테니까. 덤으로 개인 성향도 확인할 수 있고.’
경쟁이 붙다 보면 성향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법이니까.
단체로 아역을 평가할 때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만 해도 벌써 힘든데.’
놀 때만큼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애들하고 같이 뛰어다니라고?
진짜 실신한 상태로 집에 돌아갈지도 몰랐다. 살기 위해 체육관을 살피던 이안은 어느 한 곳을 보며 눈을 빛냈다.
“몸부터 풀고, 제비뽑기할까?”
안전을 위해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시킨 프로듀서는 제비뽑기를 진행했고 이안은 원하던 쫓기는 역할을 뽑았다.
모든 역할이 배정되자 프로듀서는 출발 신호를 줬다.
“와아아아아!”
아이들의 목소리와 뛰어다니는 소리가 정신없이 울렸다.
-치직, 2번 구역에 아이들이 뒤엉키지 않도록 주의 주세요.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요원들도 바쁘게 뛰어다녔다.
특별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나 살피던 프로듀서는 중요한 한 명 안 보이는 걸 깨달았다.
‘그 애는 어디 갔지?’
피부색만 봐도 눈에 띄어야 할 아이가 안 보였다.
아이를 찾기 위해 눈을 굴리던 그의 귀에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스태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체육관에 원래 있던 실내 클라이밍 체험장이 있었다.
아무리 초보자용이라도 아이가 오르긴 힘든 탓에 무시하고 있었는데…
‘저게 무슨.’
벽에 박힌 홀드들을 타고 순식간에 클라이밍을 오르는 동양인 꼬마가 보였다.
말릴 틈도 없이 3m 높이 도착점에 오른 아이가 벽에 걸터앉아 하품하는 걸 보고 프로듀서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런 능글맞은 모습을 보니 딱 떠오르는 배역이 있는데?”
“신기하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홀로 거리를 자유롭게 누비고 장난기가 많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노아 역할로 딱이야.”
invisible children에서 신 스틸러가 될 거라 모두가 예상하는 그 역할의 주인을 드디어 찾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