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2)
빌보드 가수
화려한 무대를 꾸미기 위해 음지에서 수백 명이 노력하는 것처럼 스타를 찬란하게 빛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하나 꼽자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지만 대표적인 이들은 에이전트, 퍼블리시스트, 매니저다.
셋의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있으나 각자 특징이 있다.
‘우리 애가 이렇게 대단합니다! 아니, 생각하시던 이미지가 아니라고요? 그럼 이 친구는 어떻습니까?’라며 먹이를 달라고 삐악거리는 병아리들을 일단 팔고 보면 에이전트.
‘팬에게 F-word를 썼다고요? 감탄사였겠죠. 우리 스타가 기부를 자주 하는 거 아시죠? 절세 목적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섭섭합니다.’ 지랄견 같은 스타가 빛나도록 금박을 씌우면 퍼블리시스트.
무명 신인을 발굴해 부모의 마음으로 성장시키기도 하고, 소수의 인원에 집중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레드카펫 같은 인생을 설계해주면 매니저다.
요약하자면 양적인 실적만 채우면 에이전트, 포장에만 신경 쓰면 퍼블리시스트, 꼭 필요한 일을 하게 도와주는 사람이 매니저다.
매니저인 스티븐은 이런 자부심을 품고 고객인 스타를 대할 때 부모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특히 벨라처럼 직접 발굴한 스타라면 더욱.
‘그래, 부모… 부모의 마음으로.’
되새길수록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진짜 부모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등짝이라도 후려칠 수 있었을 테니까.
속마음과 달리 언제든 파랑새가 되어 떠날 수 있는 고객님에게 내뱉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벨라? 꼭 보라는 오디션은 안 보고 하는 일이 이거였니?”
“제이 안이라는 사람이 신경 쓰인다고 했잖아요.”
“그래, 신경 쓰일 수도 있지. 너 말고도 신경 쓰이는 사람도 많을 테고.”
Quiver에서 제이 안이 대본 빌런으로 불리며 컬트적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누가 봐도 연예계 쪽 관계자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상할 정도로 업계에 빠삭한 인물이지.’
대본 추천을 늘어놓는 괴인이 가끔 흘리는 말은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업계 전반에 폭넓은 지식을 가진 것도 모자라서.
‘그 영화가 왜 망했냐고요? 편집할 때 감독 의견이 철저히 배제됐기 때문이죠. 프로듀서랑 많이 싸웠나. 비슷하게 망친 영화 대본 10가지를 추천해드리죠.’
이런 답글이 올라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감독이 불평을 토해내며 감독판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영화 뒷사정까지 알 정도로 인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의 머리통에 갑자기 도끼를 왜 던지니. 네가 바바리안이야?”
벨라는 흑갈색 머리를 묶으며 무신경하게 답했다.
“그렇게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이 정체를 숨기는 게 수상하잖아요. 둘 중 하나겠죠.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거나, 할 생각이거나. 허먼 같은 인간들이 아직도 득실거리는 거 알잖아요.”
“알지. 돈 있고 인맥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망할 리 없으니까. 좋아. 제이 안이 네가 상상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치고 네 행동도 올바르다고 보자. 근데 너 이러다 다친다?”
“다친다고요?”
“너보다 집안부터 재력까지 잘난 샬럿도 엄청난 준비 끝에 단번에 허먼 목을 날려서 성공한 일이야. 이렇게 어중간하게 들추면 너만 피 봐.”
스타는 돈과 인기를 한 번에 움켜쥔 이들이고 가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막무가내로 행동하곤 한다.
스티븐이 볼 때 벨라는 죽을 수 있는 전쟁터에 팬티와 도끼만 들고 달려가는 야만인처럼 보였다.
그에겐 슬픈 일이지만 그녀는 싸우다 죽어야 발할라로 떠날 수 있다고 믿는 전사와 같았다.
“이 자리에 전 많은 경쟁을 이기고 올라왔잖아요. 많은 사람이 간절히 바란 자리에 올랐으니 그 영향력을 최대한 선하게 써야죠. 이게 사회적 책임이잖아요.”
“그랬구나.”
우리 벨라는 이미 적의 수급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명예로운 여전사였구나.
엎지른 물을 닦을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녀의 태도에 스티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요즘 이안 프라이스가 그렇게 잘 나간다는데 그쪽 매니저 자리나 알아볼까. 착하다고 소문이 난 만큼 너랑 달리 사고도 안 칠 텐데.”
“원하면 할 수는 있고요?”
그러게 말이다. 됐으면 이러고 안 있지.
이안이 벨라보다 더 한 폭탄인 걸 모르는 스티븐은 Quiver를 불태우고 있는 제이 안의 제시한 내기를 봤다.
-올해 유니버스에서 10억 달러를 넘는 작품 세 개가 나온다는데 내 정체를 걸지. 넌 뭘 걸래? 대본으로 과제 폭탄이라도 맞아 볼래?
요약하면 이쯤이다.
“그래서 이 내기를 받을 거야?”
“당연하죠. 내가 이길 가능성이 훨씬 크잖아요.”
맞다.
10억불은 세계구급 대박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만 성공한 진기록이고 지금까지 그런 작품은 스무 작품 내외고.
그중 셋이 한 해에, 그것도 유니버스 스튜디오에서 나온다고? 한 번도 그런 영화를 내놓은 적이 없는 곳인데?
허무맹랑하다. 너무 허무맹랑한 제안을 해서 더 위화감이 느껴졌다.
“말려도 할 거지?”
“겁먹고 도망치는 게 이상한 내기잖아요. 져도 대본을 읽어봤자 얼마나 읽겠어요. 이게 맞으면 교수님이라고 꼬박꼬박 부를 생각도 있어요.”
승리를 자신하는 그녀를 보며 스티븐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경고를 했다.
“그래, 네가 이기길 바라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진짜 네가 이 내기에서 지면 큰일이거든.”
“왜요?”
“이런 자신을 품을 정도로 유니버스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잖아. 네가 패배하면 상상도 못 할 거물이란 의미이기도 하지. 넌 감당 못 할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꼴이 된 거야.”
살벌한 경고가 벨라에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할 거예요.”
얼마나 괴물 같은 인간인지 확인을 해보자. 벨라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콜을 외쳤다.
***
“유니버스랑 관계가 있냐고요. 있죠.”
“무슨 관계?”
“주주요.”
헛기침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뭐,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주면 아주 긴밀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벤은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괜찮아요. 잘 될 거예요.”
2015년은 흥행만 따졌을 때 미국 영화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속편, 리부트 등의 힘이라도 결과는 그랬다.
이안의 자신감에 벤은 그러려니 했다.
‘흥행하는 작품을 고르는 눈이 얼마나 좋은지 이번에 제대로 평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얼추 비슷한 수준으로만 맞춰도 주변에서 ‘오오, 이것이 바로 동양의 신비?!’ 이딴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떠받들어줄 거다.
그만큼 영화 흥행이란 하늘에 달린 일이었고 그걸 맞추는 사람은 고대부터 칭송받아 왔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스노우 레이크는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더라. 수상 가능성도 크게 쳐지는 중이고.”
“프레드가 엄청 잘난 척하더라고요.”
무덤에 있는 제이도 지겹게 듣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에 벤은 이상하다는 듯이 봤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이다.
참여한 영화가 후보에 오른 건 기뻐할 일인데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별로였다.
“왜 남우조연상 후보에 못 올라서 그래?”
후보 발표 전에는 제이 역을 맡은 이안이 후보에 오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쉽게도 실패했지만.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냥 뭔가 생각이 나서 그랬어요.”
이안은 옥상 테라스에 팔을 걸쳤다.
눈을 감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노숙자에서 배우로 성공을 증명하는 순간 박수가 쏟아졌고 감격한 마음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처음 느낀 감상은 하나였다.
‘생각보다 가볍다.’
4kg이 안 되는 무게. 온갖 멸시를 견디는 고행 같은 시간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무게였다.
자존심을 세우는 재스퍼도 자기만의 정의로 행동하는 벨라도 그동안 듣고 경험한 것에 비하면 귀여울 따름이다.
오스카 이야기를 꺼내니 과거가 떠오른 이안은 괜한 생각을 털어냈다.
속에서 올라온 감정을 능숙하게 지워내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음악상을 받고 프레드가 잘난 척할 걸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요. 수상 이후에 절 붙잡고 계속 귀찮게 할걸요.”
“하하하, 네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 관심은 필요 없어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만 잔뜩 꼬이나 모르겠네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안의 귀에 큰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 빨리 내려와! 생일 주인공이 어딜 이렇게 돌아다녀?!
도로시의 외침을 들은 벤은 이안의 어깨를 툭 쳤다.
“내려가자. 널 언제까지 붙잡고 있냐고 혼나겠다.”
계단을 내려가자. 그동안 친하게 지내온 많은 사람이 보였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집 안에서 이안은 방긋 웃었다.
3월 1일.
길거리에서 퀴퀴한 냄새와 함께 맞이했던 16살 생일날은 이렇게 따뜻하게 변했다.
새삼스러운 느낌과 함께 발을 디뎠다.
***
시간은 흘러갔다.
팔로워가 천만이 넘어갈 때까지 미친듯한 성장세를 보여준 SNS 계정은 재스퍼의 팬과 안티팬의 콜로세움이 됐고.
Two Secrets가 기어코 빌보드 3위까지 올라 업계 관계자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말 저한테 운전을 배우시겠습니까?”
“브레이커가 마커스에게 배우라던데요. 걱정하지 마요. 저 운전 잘 해요.”
“정말입니까? 언제 배웠습니까?”
“꽤 됐죠. 게임으로 배웠어요.”
이안의 집에 그 흔한 게임기 하나 없는 걸 아는 마커스가 거짓말하지 말라며 기겁한 해프닝이 있기도 했고.
신인에서 단번에 주연으로 발탁된 오드리가 인터뷰에서 말끝마다 이안을 붙이면서 극성팬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으나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하지만 인생은 투쟁 연속이고 평화로운 시기는 언젠가 깨지는 법이다.
“오, 이안 프라이스. 영화는 아주 재밌게 봤어요.”
“보기 힘든 얼굴을 여기서 보네. 반가워요.”
“하하하, 노래가 아주 좋던데요.”
레드카펫을 밟은 이들이 모이는 미국에서 가장 찬란한 시상식.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이들이 입장 순서와 드레스 경쟁 등으로 유치한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곳.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고 이안은 웃는 낯으로 많은 이들을 만났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만났던 사람도 있고 배우 활동을 할 때는 이미 사라져 버린 사람도 있다.
확실한 건 친분을 다지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만 봐도 그때와 다른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그게 비록 지금 받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나눠 받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배우와 가수를 넘나들며 큰 인기를 끄는 스타가 없는 건 아니나 이렇게 이른 나이에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빌보드 3위에 오른 건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으나 성공 앞에 수단의 정당성은 무시되는 게 이 세계다.
레드카펫을 밟았을 때 쏟아진 뜨거운 셔터 세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옛 기억이 떠올라 감회에 젖었던 것도 벤과 데미안이 자신들의 영화 자리로 이안을 데려가려다가 제지당한 것도 다 좋았다.
-주제가상 축하드립니다. 스노우 레이크의 프레드 켈리!
호명에 기뻐하며 무대에 오른 프레드가 마이크를 잡기 전까지.
“고맙습니다. 하늘에 있는 제이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전해야겠군요. 친구 팔아서 이 자리에 섰으니까 말이죠.”
제이를 얼마나 놀렸는지 아는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감사한 마음을 줄줄이 늘어놓던 프레드의 시선은 자신에게 꽂혔을 때 이안은 깨달았다. 입에 걸린 미소는 장난기가 가득하다고.
입을 틀어막고 싶으나 무대는 너무 멀었고 그는 제지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제이를 잘 표현해준 이안, 너무 고맙다. 가수인 내가 오스카에서 상을 탔으니 너는 빌보드에서 상을 타라. 걔한테 꼭 이겨, 알겠지?”
걔.
재스퍼 브라이언트를 일컫는 말인 걸 모를 수 없었고 빌보드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사람들에게 재차 일깨워줬다.
미국 시상식에서 이런 돌발 발언은 언제나 나오는 일이니 괜찮았다. 사회자가 이상한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곳인데 오죽할까.
다만 숨 고르기를 하던 버서커들을 깨우기엔 충분했다.
-그래, 이안이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아야지!
-어딜 배우가 우리 재스퍼의 자리를 뺏어?!
왈왈꽥꽥 콜로세움이 된 SNS가 불타오르는 4월 초 빌보드는 예정된 발표를 했다.
-빌보드 후보 공개. 논란의 톱 소셜 아티스트 상 후보로 재스퍼, 이안 둘 다 포함돼.
선정 기준은 모르겠지만 빌보드 시상식 관심을 끌어모으는 땔감으로 쓰겠다고 결정한 건 확실했고.
10위권으로 떨어졌던 Two Secrets가 또다시 꿈틀거렸다.
하지만 꿈틀거린 건 지렁이가 아니라 승천하는 용이었다.
“…왜 1위냐.”
“그러게.”
1년은 52주.
한주라도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가수가 머리를 부여잡고 천문학적인 홍보비를 뿌려대는 영광스러운 자리.
‘이게 왜 내 손에 있을까.’
이안은 레이첼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어쩌다 1위를 했지?”
“그러게.”
안 되겠다. 자동응답기가 된 레이첼은 망가진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급하게 잡힌 인터뷰에서 이안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반갑습니다. 빌보드 가수인 이안 프라이스 씨. 겸업으로 배우를 하고 계신다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