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4)
예상 외
초반에 노아의 악독한 면을 부각한다.
‘역시 악당이라면 쓰레기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팬들의 손발을 덜덜 떨리게 하려는 게 아니다.
케이틀린을 비롯한 작가진이 아무리 이안을 오냐오냐해줘도 프로다. 그런 허술한 생각으로 작품에 손을 대는 걸 허락할 리 없고.
이안은 수정된 대본을 바라봤다.
‘노아는 태생적으로 사연 있는 악역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어린 시절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지.’
시즌6 마지막에 충격적인 등장으로 놀라게 했지만 2시즌 동안 보고 3년 동안 숙성된 노아의 이미지를 단박에 지워낼 순 없는 노릇.
사연 있는 악역은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악역이 가지는 강렬함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노아는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럴 바에는 과감하게 조형하는 게 더 낫다.
“이 정도면 노아가 중점으로 나오는 4화 동안 팬들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를 긁어내긴 충분하겠죠?”
활짝 웃으며 묻는 말에 한 작가가 중얼거렸다.
“…뇌수까지 긁히겠지.”
노아가 바뀔 수밖에 없던 과거 이야기가 묻히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강렬한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었다.
‘하하하, 노아가 악역이라고? 사춘기인가 보네.’라며 가볍게 생각하는 팬들은 정신이 번쩍 들 테고.
대본을 파르륵 넘기며 쇼러너인 케이틀린은 이안에게 물었다.
“괜찮겠어? 악역도 처음인 배우에게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한 거 같은데. 연기하는 건 전 대본이 더 쉬울 거야.”
“바뀐 게 더 쉽지 않죠.”
총 16화로 구성된 이번 시즌은 철권통치로 생존자 집단을 지배하던 노아가 주인공 일행을 만나 심적인 흔들림을 보여줬고, 이 틈이 반란으로 이어져 몰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아가 악독하게 나올수록 옛 감정에 휘둘리는 연기는 섬세하게 이뤄져야 한다.
-조금 슬픈 표정을 짓는다.
-살짝 망설인다.
고작 이런 지문으로밖에 담을 수 없는 감정을 적절하게 풀어내는 건 배우가 할 일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으나.
“그래도 이 대본이 더 좋잖아요. 공포정치, 내부고발, 철저한 계급 같은 통제방식으로 이뤄진 집단이 얼마나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더 확실히 보여줄 수 있고요.”
얼핏 보면 주인공이란 불순물이 들어와 노아가 세운 왕국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나 고작 감정 흔들림으로 무너질 정도로 처음부터 부실했다는 뜻이다.
붙잡혀 와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끈끈한 유대감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는 주인공 일행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확고한 이안의 의지에 케이틀린은 짓궂게 웃었다.
“뭐 어쩌겠어. 이안이 저번에 후보로 그친 에미상을 이번에야말로 받겠다고 칼을 갈고 나왔는데 말이야.”
“오오오오! 이안을 에미상으로!”
“어쩐지 힘을 빡 주려고 작정했더니 역시 다 생각이 있었구나! 그래, 수상을 노리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작가들까지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놀리는 게 분명한 태도에 이안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번엔 후보로 안 그쳐야죠. 수상 소감으로 이름이 불리고 싶다면 지금부터 잘 하세요.”
“아이고, 우리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데 그럴까.”
“과자 좀 줄까?”
시끌벅적하고 웃음기 가득하다. 새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대본을 준비하던 평소 작가 방 분위기와는 확실히 다르다.
케이틀린은 이 분위기에 만족하면서 이안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넷플러스와 하는 작품이 곧 공개된다면서?”
“Melted Moonlight요? 네, 이번 주에 공개돼요.”
거기다가 원작자인 스텔라가 쓴 루의 외전도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다.
‘흥행이 괜찮게 될지는 모르겠네.’
한 5년 정도만 더 지났어도 별다른 걱정을 안 했을 텐데 아직 넷플러스는 북미에서만 큰 인기를 끄는 OTT 업체였다.
저번 달에 일본과 한국에 서둘러 진출했으나 생각보다 시원찮은 반응을 얻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걱정하게 만든 결과는 금방 받을 수 있었다.
-이안 군! 성공! 대성공이에요!
콘텐츠 수석인 수잔이다.
북미에서 성공을 두고 저렇게 기뻐하며 전화할 리는 없고 아마 목표하던 아시아에서 좋은 반응이 왔다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오, 그래요? 한국에서 잘 됐나 봐요?”
미국인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만큼 한국이 조국이라는 느낌은 없으나 한국계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만큼 한국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번에도 한국에서 잘 됐구나 생각할 때 돌아온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아뇨! 일본이요. 일본에서 엄청 잘 됐습니다!
***
로맨스로 여성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원작과 달리 Melted Moonlight는 남녀 구분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남자라면 판타지 액션으로 즐겁게 볼 수 있고 여성이라면 절절한 판타지 로맨스로 볼 수 있다.
물론 동양인 남자가 꼬리를 아홉 개 달고 나온 모습이 낯선 미국인들이 영상을 봐야 그 매력을 느끼겠지만 넷플러스는 운이 좋았다.
“어라, 얘 걔잖아. 이안이었나.”
“맞네. 조연이라고 하더니 주연 드라마도 찍었나? 한 번 볼까?”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된 화제성은 빌보드 시상식을 앞두고 절정에 달한 상태였으니까.
연예계 뉴스에서 심심하면 재스퍼와 함께 얼굴을 비추는 게 라이였으니 호기심에라도 눌러본 사람이 많았다.
-Melted Moonlight! 넷플러스 공개 첫날 1위 달성!
-Melted Moonlight, 낯선 괴물과 영광과 어둠이 함께 있는 1920년대를 다룬 드라마.
처음부터 1위를 찍은 Melted Moonlight는 확고하게 그 순위를 지켜냈다. 작품에 만족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넷플러스의 수입 대다수를 차지하는 북미 지역에서 성공은 투자 성공을 의미했으나 관계자들은 기뻐하기보단 다른 곳에 시선을 뒀다.
“아시아쪽 반응은 어떻지?”
애초에 이 드라마를 제작한 이유는 아시아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추가하기 위해서였다.
첫 보고에서 관계자들은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한국의 가입자가 늘긴 했습니다만 가입률은 저조합니다. 대부분 불법적으로 보는 듯합니다.”
“…그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선 열불이 나지만 이미 예상한 일이다.
“대신 뉴스나 커뮤니티를 통해 우리 회사 이름이 꽤 많이 알려졌습니다.”
“홍보 효과를 얻었다니 일단 만족해야겠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넷플러스는 빅데이터 분석 등을 활용해서 해당 지역 선호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역 내 주요 회사들과 파트너쉽을 맺어 영향력을 확대하는 진출 정책을 사용했다.
이름값을 높였다는 점은 아쉽지만 만족할 성과였다.
“일본쪽은?”
“그쪽은 아시다시피 강자가 있잖습니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하긴 그렇긴 해.”
미국 온라인 쇼핑몰 회사에서 만든 프라임 TV가 일본에선 대세였다.
어쩔 수 없다. 콘텐츠 숫자도 밀리고 일본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훨씬 큰 시장을 위해 운영되는 곳인 만큼 가격도 저렴했으니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한 번 만든 콘텐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아시아 지역에 진출할 때 도움이 될 테니까.”
이게 초반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법이다.
-야, 우리 언제 또 실사화를 만들었냐? (여우불을 쓰는 구미호 사진)
└원작 만화가 뭐야? 배경은 서양인 거 같은데.
└언제 이런 실사화 영화가 만들어졌지?
빌보드 1위보다 애니메이션 1위에 더 관심을 갖는 오타쿠들은 이안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나 모두가 무지한 건 아니었다.
-뭐야, 이안이잖아. 이런 드라마도 찍었구나.
└이안?
└한국계 미국인이자 할리우드 배우 있어. 아, 이번에 빌보드 1위를 찍었고. 고등학생일걸.
└wwww 그걸 누가 믿어.
└응, 사실이야.
이게 왜 진짜임?이라는 반응을 보였던 이들의 반응은 금방 시들시들해졌다.
일본계도 아니고, 남자이며, 누가 봐도 스쿨 카스트 최상류 인물이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이렇게 순식간에 묻히려나 싶었으나 이 반응을 뒤집은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구미호로 코스프레한 이안) 얘는 우리 동료다!
└草草草草 왜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
└홍보 때문이겠지. 코믹콘인가?
└홍보 때문이라니. 진심을 무시하다니 (TellMe에서 루를 코스프레한 사진)
└wwwww 얼마나 진심인 거냐고!
두 장의 코스프레 사진은 오타쿠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 내적 친밀감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드라마는 어디서 볼 수 있는데?
└넷플러스라고 이번에 새로 오픈한 OTT 사이트.
일본인에겐 어색하지 않은 실사화와 코스프레한 이안의 사진까지 더해지며 관심을 끌었고 그 반응은 고스란히 넷플러스에게 전해졌다.
첫 오픈 후 바닥으로 내리꽂던 넷플러스의 관심도가 확 오르는 결과물이 나왔다.
수잔이 호들갑을 떨며 전화를 건 이유였다.
‘일본에서 잘 됐다, 라.’
좋은 일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얼굴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지.
그것까진 좋은데.
“꺄하하하! 이안,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도 코스프레를 했으니까 다음은 일본 코믹 마켓으로 가는 건 어때? 다들 엄청 환영할걸.”
“와, 이건 널 그린 그림 같은데. 근데 이안, 동인지가 뭐야?”
“…묻지 마.”
오타쿠의 친구라는 타이틀과 함께 2차 창작물의 장작이 되게 된 이안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본 예능에서도 소개됐지만 괜찮다. 부끄러워하면 처형당하게 될 뿐이니.
이안은 바닥을 뒹굴며 웃는 도로시에게 말했다.
“이번에 스텔라 작가님이 쓰신 외전이 엄청 잘 팔리는 거 알지?”
The King of Prison.
감옥에 갇힌 루가 나오는 외전이면서 발매와 동시에 엄청난 부수를 팔아치우고 있는 책이었다.
드라마화된 Melted Moonlight와 발매 시기를 맞춘다는 홍보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잘 하면 그것도 드라마로 나올 수 있겠지?”
“하, 안 보면 되거든.”
이미 라이로 한층 더 성장한 도로시는 코웃음을 쳤으나 이안은 조소를 지었다.
안 보면 그만이라고?
“에반이 아역으로 나와도 안 볼 수 있을까.”
“…윽.”
“엄청 실망하겠지? 도로시는 어디 갔냐고 찾을 거야. 그럼 나는 우리 드라마를 보기엔 너무 바쁘다고 말해주면 되겠지?”
“…나쁜 놈아. 캐스팅이 끝나고 협박을 하라고.”
“왜, 그냥 가능성만 말한 건데.”
도로시가 던지는 쿠션을 피하며 웃던 이안은 달력을 봤다.
invisible children 촬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그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곧 빌보드 시상식인데 기분이 어때?”
“그냥 그런데.”
시상식이 처음도 아니고.
배우가 아니라 가수가 모인 게 차이일뿐 특별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물론 이건 이안이고.
“으으으, 시상식. 가야겠지?”
일본 내 반응을 보며 애써 시상식을 외면하던 레이첼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부담이 되겠지만 어쩌겠는가.
‘레이첼에겐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이안과 달리 레이첼은 음악을 놓지 않을 테니까. 가수로 활약하든 지금처럼 작곡가로 활동하든 이번에 만날 인맥은 큰 도움이 될 거다.
소심하게 구는 레이첼을 힐끔 본 도로시가 이안에게 속삭였다.
“근데 괜찮아? 재스퍼인가 그 사람 독이 잔뜩 올랐던데.”
“그건 이해해줘야지. 엄청 놀림 받고 있잖아.”
제 손으로 경쟁자를 키워준 꼴이니 속이 안 쓰리겠는가.
SNS로 불평을 쏟아내는 건 얼마든지 이해해줄 수 있다.
“아무튼, 만나면 조심해. 되도록 마찰 일으키지 말고.”
“내가 무슨 코뿔소냐. 들이박고 보게.”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으나.
“…아니었어?”
“막무가내잖아. 맨날 사고치고.”
“양심이 없어.”
왜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사춘기인가.’
요즘 애들은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
빌보드 뮤직 어워드.
빌보드지의 주관으로 이뤄지는 시상식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관심을 받는 시상식이다.
그리고 이번 시상식은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었다.
-빌보드 톱 소셜 아티스트 상. 수상자는 과연 누가 될까?
유서 깊지도, 의미가 크지도 않은 상이지만 수상을 독식한 재스퍼에게 강한 경쟁자가 생겨났다.
이걸 어떻게 참겠는가.
둘의 대결 구도 이번 시상식의 핵심 중 하나였고 빌보드도 이걸 잘 아는지 입장 순서를 둘이 붙여놨다.
차에서 내리자 셔터가 터져나왔다.
먼저 내린 이안은 능숙하게 손을 뻗었고 단아한 드레스를 입은 레이첼이 조심스럽게 걸어나왔다.
둘이 합쳐 라이.
충격적인 진실을 준 두 사람은 레드카펫을 밟았고 앞서서 움직이던 재스퍼가 기자와 대화 중인 모습이 보였다.
계단 아래서 내려보는 재스퍼는 기자의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은 당연히 제가 타겠죠. 이안은 솔직히 가수보다 배우잖습니까.”
가수도 아니다.
단 한 주였으나 빌보드 1위까지 찍은 이안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이안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었고 한 컷에 둘을 함께 담았다.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 없는 기묘한 라이벌 관계.
기자들은 숨죽여 어떤 대화를 나눌지 주목했고 이안이 손을 뻗자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때리나?’
‘손가락 욕을 할 지도 몰라.’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봤으나 이어진 행동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고마워요!”
이안은 재스퍼의 손을 붙잡고 환하게 웃었다. 붕붕 흔드는 손은 기쁨과 반가움이 가득했다.
‘가수가 아니라 배우라니 뭘 좀 아는 친구였네.’
이 속마음을 모르는 재스퍼와 기자들은 입을 떡 벌렸다.
‘…날 이렇게 엿 먹인다고?’
‘호오, 역시 이안도 보통 성격이 아니야. 이렇게 프레임을 잡다니. 재스퍼만 나쁜 놈 같잖아.’
오해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