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6)
이유 모를 변화
invisible children 뒤에 붙은 7이란 숫자.
살벌한 시청률 경쟁을 버텨내며 새겨진 나이테는 이 드라마가 많은 우여곡절을 극복했다는 상징과 같았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하에 촬영을 진행해도 사건·사고는 언제나 일어나는 법이니까.
“소품 대여를 안 해놨다고? 누구야?! 누가 맡은 일이야?!”
“제이콥 조연출의 일입니다.”
“그 낙하산? 왜 그놈한테 일을 맡겨?! 어디 갔는데?!”
“…연락이 안 됩니다.”
모든 촬영 현장에 꼭 있다는 낙하산이 사고를 치고 도망치기도 했었고.
“찰리 씨, 언제 도착… 네? 사고요?! 헉, 테오씨도 같이 입원했다고요?! 비상! 우리 스케줄 다시 짜야 해요!”
“으아아악! 살려줘!”
사고로 급하게 촬영 일정을 재조정해야 해서 스태프들이 머리를 움켜쥐게 만든 일도 있었다.
지금까지 촬영하며 생긴 일을 늘어놓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많지만, invisible children 제작진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모두 같은 걸 꼽을 거다.
-아역 추락 사건.
한 아이와 드라마의 생명을 동시에 끊어낼 뻔한 대형 사고.
이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걸까 이안이 출연 조건으로 내건 고사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잿가루가 된 축문을 털어내며 이안이 말했다.
“저 혼자 해도 상관없다니까요.”
종교적 이유로 대다수는 서서 기도를 했으나 쇼러너부터 배우, 스태프할 것 없이 참여한 탓에 이안은 오히려 민망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하는 일인데 당연히 참여해야지. 혹시 아냐. 또 위험한 일을 막아줄지.”
“그럼! 우린 히어로를 믿고 있다고.”
스태프와 왁자지껄 떠든 마일즈는 이안의 얼굴을 살폈다.
볼에 만든 긴 흉터 덕분에 앳된 얼굴이 조금 성숙해 보였다.
“그래도 흉터라도 있으니까 좀 볼만하네.”
“어허, 손으로 만지려고 하지 마요. 이거 분장하는 데 오래 걸렸다고요.”
“야, 나도 분장 실컷 해봤어. 좀비 분장보다 오래 걸리겠냐.”
좀비처럼 손이 많이 가는 특수분장은 빨라도 한 시간, 한층 흉측하게 만들면 세 시간도 넘어간다.
근데 이건 마일즈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것도 만만치 않거든요. 매번 같은 위치와 모양으로 흉터를 만드는 건 시간이 많이 든다고요.”
“그래그래.”
설렁설렁 대답하며 마일즈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에 동경을 심어준 사람은 이안이었다. 엑스트라가 아닌 배우로 함께 작품에 참여한다니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장난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 고사를 다시 할까?”
“왜요?”
“저 돼지 머리가 아니라 네 사진을 올려놓고 하는 게 더 효과 있을 거 같거든.”
뭔 정신 나간 소리인가 했는데.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이야.”
“사진이 아니라 직접 앉혀놓고 하죠.”
“우리의 히어로한테 하는 거라면 나도 절을 할 수 있지.”
호응하며 달려드는 스태프들을 피해 이안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고향에 돌아온 이안을 위한 환영 인사였다.
유쾌한 시간이 지나고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얼굴에 길게 그어진 흉측한 흉터처럼 살벌한 눈이 카메라 앞에 빛났다.
***
철커덩
발을 묶고 있던 묵직한 쇠사슬이 풀렸다. 사람들은 겁먹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생존자 무리의 보금자리.
호텔을 배경으로 총검이 장착된 총을 든 노아가 서 있었다.
“끄어어어…”
발밑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남성을 무심하게 내려본 노아는 검의 방향을 아래로 돌려 내리찍었다.
핏물이 튀고 신음이 멈췄다.
차갑고 경멸하는 눈빛이 두려움이 떠는 자들을 훑고 갔다.
“배신하지 마라. 혼자 살기 위해 도망치지 마라. 이상이다.”
매몰차게 몸을 돌린 노아는 호텔로 걸음을 옮겼다.
총을 들고 경례를 취하는 경비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통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시대에 개인적으로 전기를 사용한다는 건 권력을 상징했다.
“오셨습니까?”
인사를 건넨 여성은 조심스럽게 노아의 상의를 벗겼다. 흉터로 얼룩진 몸에는 새로운 상처가 있었다.
도망자를 잡기 위해 움직이다 생긴 상처였다.
약을 바르는 손길을 무시하며 노아는 라스베이거스 풍경을 내려봤다.
황폐해진 도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앙카, 구역 정리 상황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하수도 개척 상황은 더딥니다.”
“…어쩔 수 없지.”
무미건조했던 노아의 표정에 살짝 감정이라는 게 스쳤다.
한때 여러 생존자가 몸을 숨겼던 터전이 좀비가 우글거리게 된 이유는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었으니까.
비앙카는 살짝 망설이다가 물었다.
“혹시 옛 친구들을 생각하십니까?”
몸을 휙 돌린 노아는 여성의 입가를 움켜쥐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멋대로 내 속마음을 평가하지도 말고. 알겠어?”
비앙카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칠게 손을 풀자 그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꺼져.”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홀로 남은 노아는 손을 내려봤다. 아까 튄 핏물이 손에 더러운 얼룩처럼 남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상징과 같았다.
업무를 보고 있던 노아의 방문을 누군가 노크했고 허락을 받고 한 남성이 들어왔다.
“보스, 습격입니다.”
“그래?”
몸을 일으켜 창밖을 보자.
호텔 쪽으로 달려오는 좀비들이 보였다. 저 미친 공격성이 생존자들이 지상이 아닌 지하에 보금자리를 꾸린 이유였다.
외투를 입고 팔에 보호구를 낀 노아는 아래로 내려갔다.
밑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캬아아아악!
“밀리지 마! 누가 쐈어?! 총알은 최대한 아끼란 말이야!”
철창과 두꺼운 나무판자로 이뤄진 바리케이드는 거칠게 흔들렸고 그걸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막았다.
파각!
“히이익?!”
판자를 뚫고 나온 좀비의 팔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자 어른 한 명이 기겁하며 몸을 물렀다.
지지하던 사람이 물러나자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바리케이드가 흔들렸다.
“막아! 이 개자식아! 안 막아?!”
창을 찔러넣으며 지휘자가 소리쳤으나 이미 겁에 질린 사람은 뒷걸음질 쳤고.
뒤에서 나타난 노아는 그자를 걷어찼다.
“커헉!”
바닥에 나뒹구는 사람의 머리를 그대로 짓밟은 노아는 반쯤 무너진 바리케이드 위로 치솟은 좀비에게 총검을 찔러넣었다.
-캬악! 캬아아악!
입이 꿰뚫린 상태로도 머리를 들이미는 공격성.
노아가 이젠 완전히 어른이 된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도 그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힘을 줘 총검을 빼낸 그는 자유를 얻고 덮치려는 좀비의 눈에 총검을 다시 박아넣었다.
얼굴에 검붉은 피가 튀었고 노아는 자신에게 밟혀 뭉개진 얼굴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을 질질 끌어 바리케이드 앞에 집어 던졌다.
“또 도망치면 밖으로 던져 버려.”
“알겠습니다!”
노아는 몸을 돌려 급조한 망루에 걸터앉아 전투를 내려봤다.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전투를 이어갔고 수십 마리의 좀비가 쓰려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아는 자신을 경호하는 친위대에게 말했다.
“저 둘은 병사로.”
“감사합니다!”
지목당한 두 일꾼은 감격한 얼굴을 했다. 노아가 만든 잔혹한 왕국에서 가장 먼저 죽어 나가는 건 일꾼이었다.
외부로 물품을 구하러 갈 때 미끼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이들이니까.
“그리고 저 셋은 하수도로 보내.”
“…자,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턴 열심히…”
희미한 조명에 의지해 좀비 소굴이 된 하수도를 개척하는 건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기겁하며 외쳤으나 겨눠진 총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치워.”
노아의 명령과 함께 셋은 하수도로 질질 끌려갔다.
사나운 맹수 같은 눈빛이 주변을 훑자 사람들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촬영용 드론은 하늘에 떠올라 15층 높이의 폐호텔 주변을 풍경을 비췄다.
노아가 만든 왕국의 모습이었다.
“컷!”
경쾌한 감독의 외침과 함께 스태프와 배우들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고작 인사와 같은 장면인데 숨 막히게 진행됐고 흘릴 수 있는 건 감탄사밖에 없었다.
‘맞아. 원래 연기를 엄청 잘 했었지.’
‘…잊고 있었네. 그때도 괴물 같았는데 지금은 오죽할까.’
대본리딩 때 연기를 참 살벌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그때는 오히려 힘을 빼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만큼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연기는 대본리딩 때보다 더 날카롭게 준비된 모습이었다.
스태프는 순수하게 감탄사를 흘릴 수 있었지만.
“야, 살살 좀 해라. 우릴 발연기처럼 보이게 하려고?”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배우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마일즈의 불평에 이안은 환하게 웃었다.
“에이, 다들 잘 할 거예요.”
“…구박이나 하지 마.”
앓는 소리에 웃는 이안 옆으로 케이틀린이 다가왔다.
“비싼 출연료가 아깝지 않았어.”
“돈값은 해야죠. 안 그래요?”
솔직히 말해서 돈 욕심은 별로 없다. 이안의 삶에서 돈은 배우 생활을 이어가게 해주는 수단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이게 출연료를 적게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결과물의 가치를 짓밟는 멍청한 행동이니까.’
거기다가 돈의 필요성도 생겼다.
케이틀린의 눈짓에 이안은 보폭을 맞춰 이동했다.
“네가 알아봐달라고 한 건 알아봤어. Holy Love였나. 네가 제작할 드라마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스태프들이 있더라.”
“팀원을 뺏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요.”
“괜한 마음 쓸 거 없어. 어차피 여기서 경력을 쌓은 경력으로 더 높은 직책을 맡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거기다가 시즌 끝나면 원래 스태프들이 많이 바뀌는 법이야.”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내 입김이 어느 정도 닿는 스태프들이 필요했는데. 다행이네.’
invisible children의 스태프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함께 할 프로듀서는 구했어? 잘 구해야 한다. 이 바닥 사람 중에 못 믿을 사람이 잔뜩인 거 알지?”
“잘 알죠.”
Holy Love 제작을 직접 하려는 이유가 뭔가. 오드리도 있지만 사기꾼 같은 프로듀서들이 계속 꼬인 탓이다.
특히 학교와 일정 때문에 많은 일을 상대에게 맡겨야 하는 만큼 믿음직한 사람을 골라야 했다.
“그래서 괜찮은 사람은 구했어?”
“두 명으로 좁혔어요. 한 명은 쇼러너도 아는 분이에요. 조슈아 씨거든요.”
도로시, 다니엘, 래리를 만난 Beverly Hills Moms의 쇼러너였다.
케이틀린의 소개로 만난 인연이었고.
“그래? 저번 작품을 망치고 때려치운다고 하시더니만.”
“하하하, 저도 이야기는 들었어요. 엄청 하소연하시던데요. 운이 나빴죠.”
아무리 드라마를 잘 만들어도 주연 배우가 사고를 치면 답도 없는 법이다.
“조슈아 씨가 도와주면 든든하잖아요.”
“경력이 엄청 많으신 분이니까. 욕심부리실 나이도 아니고.”
일단 사람 됨됨이는 믿어도 됐다.
“다른 한 명은?”
“쇼러는 잘 모를 걸요. 영화 쪽 사람이거든요. 올리버 워커라고 감독 일을 하다가 프로듀서로 전향했던 분이에요.”
벤과 처음 만났던 Sucker punch의 감독이다.
감독으로서 실력은 뛰어난 사람이지만.
‘역시나 프로듀서로 전향하고 쫄딱 망했지.’
어쩔 수 없다. 작품을 기획하는 능력이 떨어졌으니까.
“일단 두 분 중 한 분에게 맡기려고요.”
“뭐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다음 시즌에는 경쟁자인가?”
“에이, 무슨 경쟁자예요. 시청자층부터가 다를 텐데. 같은 방송사도 아니고요.”
아직 방송사를 정하진 않았으나 고수위 드라마를 주로 하는 HMO에는 방영되기엔 Holy Love의 수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도 알고 있는 내용일 거다. 그러니 스태프까지 연결해줄 정도로 도와주지.
‘그나저나 프로듀서라.’
아직 확실히 결정을 못 내렸으나 드라마쪽에 잔뼈가 굵은 조슈아 쪽에 조금 더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올리버를 버리기엔 아깝고.
지금 고민 중인 건 올리버를 통해 영화에 직접 투자해볼까 하는 거였다.
미래엔 성공하지만 당장은 제작비를 못 구해 허덕이는 작품들이 있다. 바뀐 미래 때문에 제작이 불발되는 작품도 있고.
좋은 작품이 못 나오는 건 배우로서 아쉬운 일이니 관심이 갈 수밖에.
‘일단 촬영에 집중해야지.’
그건 급하지 않으니 말이다.
***
촬영 일정이 이어지고 이안은 이상한 걸 느꼈다.
“로버트 씨, 이거 좀 옆으로 치우면 안 돼요?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
“응? 그러지 뭐.”
소품 하나가 거슬려 치워달라고 했더니.
-꽈당!
“아이고, 엉덩이야.”
“운 좋네. 좀만 옆으로 넘어졌으면 엉덩이가 네 옆에 있는 소품에 찍혔을걸.”
소품을 치운 덕분에 넘어진 사람이 별로 안 다치지 않나.
“저 조명 조금 이상한 거 같은데요.”
“응? 뭐가? 어라, 이 나사가 왜 풀렸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신경 쓰이는 걸 말한 것들이 묘하게 들어맞았다.
한두 번이면 그냥 우연이겠지 하고 넘어가겠는데 굳이 말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까지 맞아들어갔다.
‘이전처럼 섬광을 본 것도 아닌데 말이야.’
큰 사고를 예견하게 해주는 섬광과 달리 촉이 예민해졌다.
이유 모를 변화가 왜 생겼는지는 몰라도.
“…이안이 진짜 히어로처럼 초능력이 있나?”
“동양의 신비일지도 몰라.”
스태프 입부터 막아야겠다.
이러다가 이안님 축지법 쓰신다 같은 이야기가 나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