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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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포스터
성탄절 뉴스로 전국에 있던 총기 난사 사건을 줄기차게 말하는 끔찍한 날.
산타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뒷골목을 이안은 미친 듯이 내달렸었다.
“허억… 헉.”
피를 토할 것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뜀박질 소리와 고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동양인 차별이 극심한 시기에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골목을 틀어막는 높은 벽을 만난 것도.
“Bullshit!”
막다른 길이었다.
짜증스러운 얼굴로 걸어오는 쓰레기들의 기세는 흉흉했고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힘차게 땅을 박차 옆쪽 벽에 튀어나온 부분을 붙잡았다. 손가락 마디마디 느껴지는 체중에 바로 벽을 박차고 반대쪽 벽에 매달렸다.
한 번에 오르기 힘든 벽을 오르는 캣 투 캣(Cat to Cat).
마지막으로 팔로 몸을 끌어올리는 반동을 이용해 정면에 높게만 느껴졌던 담벼락 끝을 붙잡았다.
다이노(Dyno)까지 깔끔하게 성공해서 벽에 오르자 쫓아오던 사람이 주머니에서 쇳덩이를 꺼내는 게 보였다.
쿠당탕-
구르듯 넘어간 벽 너머 쓰레기 더미에 이안이 처박혀 바동거릴 때 누군가 손을 붙잡고 끌어줬다.
쩔뚝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켜준 노숙자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주곤 말했다.
“역시 파쿠르도 배워두면 쓸만하지? 잘 도망쳤어.”
정말 케케묵은 기억이 지금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
‘그때 배웠던 게 이번 오디션 때 큰 도움이 됐던 탓이겠지.’
이안은 제법 두툼한 서류를 휘리릭 넘겼다.
애들이 봐서 뭐할 건데?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전문적인 용어가 버무려진 출연 계약서였다.
“로버츠 씨 덕분에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어요.”
“뭘 이 정도로 그러십니까?”
고마워하는 클로이에게 벤은 겸양을 떨었다.
드라마 출연이 확정됐다는 소식에 벤이 축하 명목으로 만든 자리였고 비싼 코스 요리에 낯설어하면서도 부모님과 할머니는 엄청 만족해했다.
친구 명목으로 레이첼과 아일라도 초대했지만 이 정도 욕심 채우는 건 귀여운 정도였고.
주변에서 뭔 대화를 하든 서류에 집중하는 이안 옆으로 벤이 털썩 앉았다.
“그렇게 봐서 알겠어? 내가 계약서를 봐줄 에이전트라도 소개해 줄까?”
“해봤자 표준 계약서잖아요. 아역한테 사기 계약서를 내밀 정도로 아코스타 캐스팅이 멍청한 회사도 아니고요.”
거기다가 할리우드에서 구른 세월이 있는데 아무리 두꺼운 계약서라도 제대로 파악 못 할 리가 없다.
혹시나 해서 공들여 봤는데 문제 될 게 전혀 없는 깨끗한 계약서였고.
비집고 틀어갈 틈도 없이 바로 거절당한 벤은 이안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파티장에서 일은 미안했다니까? 아직도 삐진 건 아니지?”
“누가 삐졌다고 그래요? 진짜 필요 없어서 그런 거라니까요.”
“말하는 게 진짜 삐진 거 같은데 뭘. 한 번 줘봐.”
누굴 진짜 애로 아나.
짓궂게 웃으며 계약서를 받아간 벤은 너스레를 떨었다.
“계약서에 문제가 없어도 에이전트가 필요한 법이야. 널 그쪽에서 그렇게 좋게 봤다며? 이럴 때 출연료를 올려받는 게 에이전트의 역할이거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이안이라면 출연료라는 말에 반응하리라 생각한 벤은 시큰둥 표정을 봐야 했다.
“이미 넉넉히 주기로 해서 굳이 욕심부릴 필요가 없거든요.”
“하, 받으면 얼마나 받는다고.”
휙휙 계약서를 넘기던 벤은 금액 부분을 보고 움찔했다.
“회당 3만 달러? 다른 언어로 연기하는 부분이 추가될 시 천 달러 추가?”
“괜찮죠?”
경력이 전혀 없는 신인에게 주는 출연료치곤 아주 높았다. 여기서 욕심을 더 부리면 과욕일 정도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지 모르겠지만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제작자의 의지가 계약서에 묻어났다.
“도대체 가서 뭘 했길래 이런 계약서를 어떻게 받아왔어? 프로듀서라도 꼬셨냐?”
“글쎄요. 그냥 벽에 오른 것밖에 없었는데요.”
꼬신 건 모르겠고 벽에 오른 모습에 연신 굿을 남발하며 손뼉을 치는 프로듀서의 모습은 조금 미친 것 같긴 했다.
‘이 드라마가 기억에 없는 것도 조금 찝찝하고.’
원랜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학대하는 위탁 가정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못 봤을 수도 있지만, 규모가 꽤 큰 드라마였다.
이 정도라면 배우 생활하면서 봤을 법도 한데 전혀 기억에 없었다.
‘당장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
생각보다 드라마가 너무 재미없어서 중간에 캔슬됐을 가능성도 있고.
“그럼 노동허가증은?”
미국에서 아역 활동을 하려면 노동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출생증명서와 만족스러운 학교 출석과 성적 그리고 건강증명서가 필요했다.
제발 문제가 생겼길 바라는 듯한 벤을 향해 이안은 방긋 웃었다.
“제가 학교 성적이 워낙 좋아서요. 쉽게 발급해주던데요?”
진짜 첫 아역 도전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개입할 여지가 없었고 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애 같지 않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숙한 맛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 이안.”
“응?”
벤과 치열한 공방전이 끝나자 수줍게 엄마에게 붙어 있던 레이첼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다른 언어로 연기한다는 건 뭐야? 영어 말고도 할 줄 아는 말이 있어?”
“이것저것? 아, 이걸 안 말해줬구나.”
이안은 딜런에게 핸드폰을 빌려서 위튜브로 들어갔다.
Pryce’s Room이라는 단순한 이름의 채널에 들어가자 이안의 얼굴이 나왔다.
“짜잔, 구독과 추천 부탁할게.”
“와아! 이게 뭐야?”
“내가 직접 찍은 영상이지. 지금은 한글만 가르치지만 나중엔 다른 언어도 추가할 거야.”
첫 번째 영상을 켜자 이안이 직접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왔다.
두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아일라는 앞에 할머니인 소피아를 앉혀놓고 가르치는 모습이 제법 재밌었는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벌써 이런 것도 찍고 대단한데? 그렇지?”
“응!”
레이첼은 아일라의 옷을 몇 번 잡아당기곤 작게 속삭였다.
“나도 위튜브 해보고 싶어.”
“정말?”
아일라는 정말 놀랐다. 너무 소극적이라 걱정이 큰 레이첼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것도 많은 사람이 보는 위튜브인데.
“이런 거 말고 노래 부르는 거.”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할까?”
다른 사람이라면 돈 주고도 얻기 힘든 기회였지만 레이첼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안이랑 같이 할래.”
가능할지 눈으로 묻는 아일라를 향해 이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이 없는 날이라면 얼마든지 어울려 줄 수 있었다.
이안은 계약서 더미 옆에 놓인 대본을 봤다.
invisible children의 포스터 촬영과 대본리딩만 하면 본격적인 촬영 시작이고, 구경꾼에 불과했던 Sucker punch 촬영장과 달리 진짜 배우로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설렘을 가득 담아 해맑게 웃었다.
***
머리가 헝클어졌다.
더러운 넝마 같은 옷을 걸친 이안의 얼굴에 검은 분칠이 더해졌다.
“와하하, 잘 어울린다!”
지금 누가 할 소리를.
이안은 분장실 겸 대기실에서 활기차게 웃는 애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노숙자 쉼터에서 뛰노는 애들도 저것보단 나은 꼴인데 그것도 재밌다며 방방 뛰어다녔다.
“자, 호명하는 애들은 이리 오렴. 헨리, 오웬, 카터…”
포스터 촬영을 위해 호명된 아이들이 빠져나갔다.
드라마에서 애들은 여러 생존자 무리에 속해 있었고 같은 무리끼리 묶여서 떠나자 어느새 대기실엔 혼자 남게 됐다.
너무 자주 봐더 너덜거리는 대본을 살피던 이안을 스태프가 불렀다.
“미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지?”
“아니에요. 제 차례죠?”
애들 데리고 포스터 촬영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스태프 얼굴만 봐도 알겠다.
촬영 세트장에 가자 막바지 촬영을 위해 자세를 잡은 아이들이 보였다.
“이, 이렇게 맞나요?”
“그래 거기에 무서운 좀비가 있다고 상상해줄래?”
초록색 크로마키 앞에서 연기하는게 영 어색해 보였다.
하긴 성인 배우들도 덧칠된 CG를 상상하며 연기하는 건 힘들어 했다. 이러려고 배우가 됐나 회의감도 엄청 들고.
찍어도 만족스럽지 않은지 머리를 긁적이는 사진작가의 모습에 이안은 슬그머니 움직였다.
“응?”
“얘들아, 잘 봐봐.”
어깨를 뻣뻣하게 고정했고 발끝을 안으로 모았다.
기괴하게 비틀린 마네킹 같은 모습.
침을 꿀꺽 삼키는 아이들을 향해 이안은 허리를 활처럼 휘며 눈을 희번득 뜨고 소리쳤다.
“캬아아악!”
“으아아악?!”
찰칵!
소스라치게 놀라는 아이들의 비명과 셔터 소리가 함께 울렸다.
“Good job! 방금 그 표정 아주 좋았어! 진짜 좀비에게 물리기 직전 같았는걸?”
농담과 함께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사진작가는 이안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배우 생활에서 좀비가 차지한 비중이 컸던 이안에겐 익숙한 연기였다.
“진짜 무섭잖아. 말이라도 해주던가!”
“맞아! 우리가 언젠가 복수할 줄 알아!”
“어허, 촬영이 쉽게 끝났다고 고마워해야지. 뭐라고 하면 쓰나.”
아이들의 타박을 흘려들으며 이안은 사진작가 앞에 섰다.
“그럼 어디 좀비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얼마나 잘 하나 볼까?”
“얼마든지요.”
환하게 비추는 조명 아래 선 이안을 보던 여성이 조연출을 향해 물었다.
“저 아이 맞지? 프로듀서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아이가.”
“네, 맞습니다.”
“확실히 영상으로 본 것처럼 끼가 있네. 노아 역할로 딱 맞아.”
여러 작가가 맡는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톤과 이야기로 묶는 헤드 작가이며.
고용은 물론이고, 편집, 음악, 시각 효과 같은 후반 작업까지 개입하는 드라마 제작의 최고 권력자인 쇼러너(showrunner).
그런 쇼러너인 케이틀린 넬슨은 속으로 합격점을 내렸다.
‘프로듀서랑 캐스팅 디렉터가 괜히 가장 먼저 합격시킨 게 아니야.’
포스터 촬영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앞서 찍고 간 아역들과 디테일부터가 달랐다.
“저기 다리가 살짝 꺾인 거 보이지? 보통 자신보다 더 큰 사람을 제압하면 저렇게 되거든.”
CG로 채울 부분을 어떻게 실제로 있는 것처럼 채워 넣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지막으로 화난 장면을 연기해볼까? 저기 준비된 봉을 들고 찍으면 돼.”
“죽일 거 같은 얼굴이면 될까요?”
“그래!”
창처럼 끝이 뾰족한 쇠파이프를 몇 번 휘두른 이안은 눈을 떴다.
무기질적인 검은 눈동자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싸늘한 한기가 흘렀다.
이미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 첨단에는 흔들림이 없고 당장이라도 목을 후벼팔 것처럼 차가운 냉소가 입에 머금어졌다.
조금 전까지 본 장난기 많은 얼굴이 먹물이 칠해진 것처럼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위태로움과 강인함이 느껴지는 모습은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우리 메인 포스터는 저거네.”
찰칵이는 셔터 소리와 함께 쇼러너의 한마디가 촬영장에 퍼졌다.
***
Pryce’s Diner라고 적힌 낡은 가게 앞에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주변 다른 가게에 비해 유독 인파가 몰리는 가게 앞으로 동양인 무리가 나타났다.
“PD님 여기 그 가게 맞죠?! 그 뉴스로도 나왔던 곳이요.”
“거기 맞아요. 아직도 인터넷에선 난리잖아요.”
김치와 스포츠 스타 등이 포함된 국뽕 포스터에 뜬금없이 감자 핫도그가 자리 잡게 된 이유가 저 가게였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난 일이지만 콘도그를 먹는 벤 로버츠의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아다녔다.
“그것보다 확실히 다르긴 하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옆으로 핫도그 가게가 줄지어 생겼을 거 같은데.”
“그러다가 핫도그 거리가 생기고요?”
메인 작가의 물음에 PD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짓 하다가 총 맞을까 봐 그럴 수도 있죠. 미국 대형 마트에선 좀도둑도 안 잡잖아요.”
대놓고 절도를 해도 총 맞을까 봐 경비도 그냥 손 놓고 지켜보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농담도 은근히 신빙성이 더해졌다.
“핫도그 거리든 뭐든 섭외만 됐으면 좋겠네요.”
PD는 핸드폰에 띄워놓은 사진을 내려봤다.
할리우드 스타인 벤 로버츠에게 핫도그를 내밀고 있는 소년.
이번 예능 촬영을 위해 반드시 섭외해야 할 게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