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0)
대학원생
레이먼은 뉴욕 대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는 자신이 있었다.
동문과 교수진에는 아카데미, 에미상, 토니상, 그래미상 수상자들이 잔뜩 있고 후보로 선정되는 사람은 너무 많아서 매년 따로 리스트를 올릴 정도로 뉴욕 대학교는 명문이다.
동문 파워가 엄청난 학교에서 학교 수업으로 여러 영화를 제작해봤으니 자신 있을 법했다. 겁도 없이 단편도 아닌 장편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때문이고.
물론 자만이었다.
“장편 영화? 헛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
“그래, 그거 찍을 돈으로 학자금 대출이나 갚아.”
“난 찍을 겁니다.”
손을 휘휘 젓는 선배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친한 선배는 다 마신 페트병으로 레이먼의 곱슬머리를 툭 쳤다.
“매년 제작되는 장편 독립 영화는 900편 정도야. 그중 극장에 걸리는 건 600편도 안 되고. 어쭈 할만하다고 생각했지? 여기서 개봉관이 1, 2개에 불과한 명목 개봉을 빼면 200편 남짓이라고.”
제작된 영화 80%가 투자금 회수는커녕 박스오피스 집계조차 안 되는 작품이다.
“…그 안에 들어가면 되잖아요.”
“그래, 뭐 들어가면 되지. 거기서 10만 달러 수익도 못 내서 제작비도 제대로 회수 못 하는 소규모 개봉을 또 빼야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준 선배는 술을 따라줬다.
“네가 능력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야. 아쉽지만 경력과 돈을 좀 모아서 시도해보라는 거지.”
“냅둬. 나처럼 한 번 깨지고 정신을 차릴 테니까.”
숫자로 들으니 더 암담한 현실.
하지만 진짜 암담한 현실은 투자금을 모으면서 느껴야 했다.
갓 졸업한 감독의 작품을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간택해서 전액 투자해줄 리도 없고, 성과도 못 낸 병아리의 작품을 사전구매 형태로 배급권을 따낼 곳도 없었다.
당연히 은행융자와 부분투자는 바라기도 힘들고.
‘공공자금으로 투자금 회수는… 아, 제작 이후에나 회수 가능하다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한 번 자금을 모아볼까.’
‘…선댄스 재단에 미친 척하고 시나리오를 보내볼까. 채택만 되면 보조는 물론이고 제작사랑 배급사도 붙는다는데.’
가족과 친구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곳에서 돈을 끌어모아 봤지만 장편 영화 제작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
반복된 거절과 그때마다 듣는 날카로운 말에 레이먼의 자존감은 너덜너덜해졌다.
올리버에게 연락이 온 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선댄스 재단에 시나리오를 보내기 전이었다.
-올리버 워커? 감독으론 실력이 있는 사람이지. 최근 제작자로 망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이야.
-프로듀서 크레딧을 원하는 걸 텐데 한 번 고민해봐. 작품에 어느 정도 개입할지는 모르겠네. 작품 스타일도 너랑 좀 안 맞고.
주변 아는 사람에게 올리버에 관해 물어봤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왜 당신의 작품을 선택했냐고요? 제가 고른 게 아닙니다. 제이 안이 고른 거죠. 네, 요즘 시끄러운 그 사람 맞습니다.
유니버스의 성공을 맞추며 엄청난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많고 많은 작품 중에 자기 작품을 골랐다고?
기대와 걱정을 안고 올리버를 만났다.
“진짜 제이 안이 선택한 게 맞냐고요? 제 경력을 날릴 수 있는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성공할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특히 홈리스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이어지는 제이 안의 칭찬은 몇 개월 동안 박살 난 자존감을 따뜻하게 감싸줬다.
홀린 듯이 듣는 레이먼에게 올리버는 칭찬만 한 게 아니었다.
“물론 지적한 내용이 있긴 합니다. 캐릭터에 개성을 더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홈리스 데릭은 보조금을 모으고 있고 그 이유는 하와이행 편도 티켓을 사기 위해서로 하죠.”
“하와이요?”
“네, 1년 내내 따뜻하고 인심 좋은 관광객도 많이 오죠. 홈리스 사이에선 하와이가 지상낙원처럼 여겨진다고 하더군요. 매년 노숙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고요.”
줄줄이 이어지는 조언에 레이먼은 연신 감탄했다.
‘역시 교수님인가.’
Quiver에서 괜히 교수님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감탄하며 조언을 마음 깊이 새겨나가던 레이먼은 퍼뜩 정신을 다잡았다.
칭찬도, 조언도 고마우나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프로듀서 크레딧을 가져간다고 들었는데. 그럼 얼마나 투자를 해주실 건지…”
“아. 투자금요.”
제발 날강도 같은 제안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바랄 때.
“지분에 대해선 조율을 해야겠지만 제이 안은 전액 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전액요?”
“네, 전액요.”
레이먼은 깨달았다.
제이 안은 교수가 아니었다.
“교주님! 역시 제이 안은 교주님이군요. 아닌가, 신인가?!”
2번째 신도가 입교한 순간이었다.
***
올리버가 투자뿐만 아니라 포교까지 성공한 원인을 들은 이안은 착각을 깨달았다.
레이먼은 성공의 맛을 본 감독이 아니라 사회의 쓴맛을 잔뜩 맛본 초년생이다.
‘좌절한 상황에서 키다리 아저씨처럼 찾아왔으니 고맙긴 할 테지.’
어떻게 말했길래 광신도 느낌이 나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지만.
올리버는 레이먼에게 정체를 알려줄지 물어봤으나 이안은 거절했다.
그를 통해 정체가 들통날까 걱정해서 그런 게 아니다. 비밀유지계약을 쓰면 그만이니까.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상태가 됐는데 괜히 환상을 깨부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제게 전할 사항이 있으면 꼭 연락해주세요. 쓸데없이 돈 낭비하지 않게 감시도 잘 해주고요.”
-같은 감독이니 잘 알지. 안 그래도 과하게 비싼 장비를 대여하려고 해서 막았어.
“잘 했네요.”
프로듀서는 쓸데없이 제작비가 안 늘어나게 목줄을 붙잡는 역할도 해야 했다.
작품 보는 눈이 없어서 실패했지 그 외 능력은 괜찮으니 올리버가 잘 할 거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끊은 이안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Happy Homeless가 어떻게 제작됐나 했더니 시나리오가 선댄스 재단의 선택을 받았었나.”
선댄스 재단에 시나리오를 보내기 전이라 했으니 잘못했으면 손가락만 빨뻔했다.
물론 재단의 선택을 받았으면 레이먼은 더 좋은 환경에서 촬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조언을 듣고 만든 영화가 더 나을걸.’
베테랑 노숙자의 조언이 듬뿍 담겼으니까.
결과적으로 이안과 레이먼 둘 다 이득이 되는 계약이었다.
Happy Homeless의 제작에 참여하게 됐으니 일단 프로듀서 일은 잠시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정확히는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invisible children이 방영되고 그 결과물로 한창 떠들썩했으니까.
-파격적인 노아의 변신, 첫 회 763만! invisible children의 완벽한 부활!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킨 invisible children 시즌7!
-이를 갈고 준비했다는 시즌7! 액션과 연기. 무엇 하나 아쉬운 점이 없었다.
-가수 활동을 접고 배우 일을 하겠다는 이안. 실력으로 입증하다.
파격적인 노아의 변신과 이안의 이슈를 타고 첫 회 시청률이 높게 나온 걸 생각해도 763만은 엄청났다.
‘시즌1 때가 230만이었나.’
노아가 하차한 시즌2 마지막 회가 400만 언저리였을 거다. 모든 시즌을 통틀어서 최고 시청률이 500만 남짓했고.
갑자기 치솟은 시청률에 제작진들은 축포를 터트릴 만했다.
커뮤니티 반응도 좋았다.
-omggggg! 노아를 봤어? 진짜 쿨하더라.
└이안이 맞나 의심할 정도였어. 착하고 모범생 같은 느낌이 있었잖아.
└인종차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아시아인 이미지였으니까.
└이번 편을 보고 그런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 났어.
-제작진들이 이안을 데려오려고 엄청 고생했다고 하던데 왜 그랬는지 알겠다.
└왜 이제야 모셔온 거야?! 진즉에 데려왔어야지! 응?!
└그럼 뭐해 이번 시즌만 나오는데.
└닥쳐! 나중에 또 나올 거라고!
-드라마 내내 보는데 어린 시절 노아가 안 떠오르더라.
└과거를 좀 추억하나 싶을 때마다 머리통을 쪼개니 더 그렇지.
└지금까지 나온 빌런 중에 가장 강렬하긴 한 듯.
└빌런이 아닐 수도 있잖아. 응? 주인공을 만나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
└과연 그럴까? 이안: 가장 하고 싶은 배역이요? 빌런이죠.
└멈춰! 내 희망을 깨부수지 말라고!
커뮤니티 반응도 좋고 고작 1화에 불과하지만 평점도 높았다.
이보다 완벽한 시작은 없었고 아직 이르지만.
-이번에야말로 이안이 에미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후보에만 그쳤던 상을 이번엔 받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올 정도였다.
“그럼 이번엔 에미상을 받아야지.”
“너무 설레발 아니에요?”
“뭐 어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아니고.”
쇼러너인 케이틀린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드라마 제작을 총괄하는 만큼 이번 시즌에 가장 큰 부담을 가졌던 사람도 그녀였다.
승부수가 이렇게 성공했으니 기쁠 수밖에.
“방송국에서 널 다음 시즌까지 출연할 수 있게 꼬셔보라고 하더라.”
“에이, 그건 이미 이야기된 일이잖아요. 거기다가 노아가 죽는 거로 대본까지 다 썼잖아요.”
“그 정도야 얼마든지 바꾸면 되지.”
“내년엔 Holy Love 촬영을 해야 하는 거 아시잖아요.”
케이틀린은 아쉬움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그냥 배우로 참여하는 거라면 계속 시도해보겠는데 공동 제작자로 이름 올리는 작품에서 빼낼 순 없었다.
“아무튼 축하해. 덕분에 조슈아가 더 바쁘다고 하더라. 판권 판매도 더 쉬울 테고.”
“손해는 안 보겠죠.”
“얄밉기는.”
손해가 문제인가. 한 시즌으로 끝내는 게 아쉬울 아이템인데.
어릴 때부터 봐온 아이가 이렇게 성공한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케이틀린은 촬영 세팅이 진행 중인 곳을 봤다.
노아를 따르는 생존자들, 주인공 벤자민을 따르는 반란자들, 거기에 소란을 듣고 습격한 좀비까지.
호텔을 중심으로 삼파전이 벌어진 상태였다.
후반부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싸움과 개척한 하수도를 통해 사람들이 도망치는 이야기였다.
물론 곳곳에 좀비가 있는 하수도에서도 계속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엔 노아가 물리는 거로 이번 시즌이 종료될 예정이었다.
‘언제 이 아이랑 같이 또 작업할 수 있을까.’
노아가 죽으면 이 드라마에 합류할 수도 없고 나중에 다른 시리즈 드라마를 제작할 때는 지금보다 더 크게 성공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땐 드라마보단 몸값을 맞춰줄 수 있는 영화에 참여할 테고.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번 시즌이 끝나면 언제 또 너랑 작업할까 싶어서.”
이안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중에 카메오로 좀비 역할이나 할까요.”
“…뭐?”
“시청자들이 엄청 놀라겠죠?”
…안 놀라겠나.
아마 놀라 펄쩍 뛸 거다. 다신 안 나올 줄 알았던 노아가 좀비로 나오면.
“진짜 나올 생각이니?”
“이 드라마가 완전히 끝날 때면 나올만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때 상황 봐서지만요.”
“…기억하고 있을 거야.”
“네, 꼭 연락하세요.”
이 드라마로 얻은 걸 생각하면 카메오 출연 정돈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마주 웃은 이안은 촬영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걸음을 옮겼다.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invisible children 촬영과 함께 한 해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
첫 회 시청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invisible children은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뛰어넘었다.
매년 경험하는 겨울 휴방기가 다가올수록 아우성을 내뱉을 정도로.
invisible children뿐만 아니라 Holy Love 제작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방송사는 지상파로 정했단다. 괜찮지?
“물론이죠.”
냉정히 말해서 심의와 스폰서 광고의 압박을 받는 지상파 3사의 영광은 끝났고 케이블은 과감한 시도로 비평적으론 완전히 역전된 상태였다.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에서 작품상으로 지명을 거의 못 받을 정도로.
‘그래도 지상파는 지상파지.’
비평으론 몰라도 시청률은 낮지 않았다.
Holy Love의 수위가 그렇게 높지 않으니 심의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지상파 방송국은 탐나는 드라마였을 거다.
독점방영권을 대가로 받은 제작비를 통해 조슈아는 본격적으로 스태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내년 10월부터 방영이니 보통 드라마보다 훨씬 시간 여유가 있었다.
물론 이안도 조슈아의 일을 구경만 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각본 제작에 너희 둘이 참여하는 건 어때?”
“…우리 둘이요?”
“응.”
아멜리아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가 썼잖아. 소설로 낼 생각이 없다고 했으니 각본으로 참여해봐. 부담 없이. 어때?”
“잘 할 수 있을까요?”
소설과 각본은 다르니 잘 못 할 수도 있다.
이안은 머뭇거리는 아멜리아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못 하면 뭐 어때. 이미 익숙한 작가들이 보조해줄 테니 걱정할 거 없어. 소설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드라마로 담아볼 기회잖아.”
한동안 고민하던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볼게요.”
“잘 생각했어.”
이안은 활짝 웃었다.
이안에게 아멜리아는 소설가보단 각본가였다. 에이든을 잃고 무기력하게 각본가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 일을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낼지 솔직히 궁금했다.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는 연말.
열리는 파티가 많아졌고 쏟아지는 초청장에는 거절하기 힘든 파티들도 여럿 있었다.
2015년 가수로 배우로 성공을 거뒀고 드라마 제작까지 참여한다고 하니 이안은 온갖 인파에 휩싸여야 했다.
지금 쌓은 인맥이 미래의 큰 자산이란 걸 아는 이안이 한 바퀴를 돌고 겨우 숨을 돌릴 때 함께 파티장에 온 오드리가 찾아왔다.
“이안. 괜찮은 친구를 찾았어.”
“괜찮은 친구요?”
오드리에게 친구가 생겼다고?
이안은 환한 미소로 물어봤다.
“누군데요.”
이안의 물음에 오드리는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점점 다가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이안은 당황한 얼굴을 했다.
누군지 잘 알았다. 언젠가 만나겠거니 했지만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고.
“벨라 에반스야. 여기는 이안 프라이스고.”
“편하게 벨라라고 불러요.”
당황한 감정을 숨기고 벨라와 악수를 한 이안은 드레스에 어울리지 않게 옆에 끼고 있는 종이 더미를 바라봤다.
이안의 시선을 눈치 챈 오드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파티장에서까지 대본을 읽더라고.”
“…네, 그렇게 됐습니다.”
힘없는 미소를 지은 벨라는 대본을 흔들었다.
제이 안이라는 교수의 마수에 잡힌 그녀에겐 대학원생의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