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3)
133. 프로듀서 이안(2)
이안이 조슈아와 공동으로 Holy Love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을 때 허울뿐인 직책이란 평가가 나왔다.
기분 나쁘냐고?
‘나쁠 게 뭐 있어.’
실권 없는 사람을 총괄 프로듀서 같은 자리에 앉혀두는 건 드문 일이 아니고, 보통 홍보에 도움이 되는 원작자를 앉혀 놓는 경우다.
‘넌 그냥 얼굴마담이야.’라는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홍보에 도움이 될 정도로 이름값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노력의 결과물이니 싫어할 이유가 있나.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이름뿐인 프로듀서가 될 생각도 없지.’
17살 프로듀서라는 명예가 탐나서 벌인 일이 아니니까.
결국 조슈아와 긴 회의 끝에 업무를 나눴다.
“좋아. 그럼 나는 행정이나 재정 쪽을 주로 맡으마. 네가 협상을 이끌고 계약을 맺는 건 힘들 테니까.”
“좋아요. 제가 촬영이나 편집 쪽을 맡을게요.”
외부의 시선과 달리 작품 제작에 깊숙이 관여하는 건 오히려 이안이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위튜브에 올릴 Holy Love을 제작하면서 작품 이해도도 훨씬 깊은 상태고 원작자인 작가 남매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주연 배우로 촬영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좋다는 장점도 있고.
별다른 이견 없이 업무 분담이 이뤄졌으나 둘이 공통으로 관여하기로 한 게 바로 캐스팅이었다.
그만큼 오늘 오디션 일정은 중요했는데.
‘…이상한 사람이 셋이나 튀어나왔네.’
연기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탈락당해 울컥한 표정을 지은 재스퍼는 일단 미뤄두고.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온 야생의 벤과 공작새를 보며 물었다.
“왜 왔어요?”
“오디션 보러 왔지.”
“이야, 운 좋은 줄 알아. 드라마에서 우릴 조연으로 쓸 수 있을 거 같아?”
콧대를 세우는 데미안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비싼 몸값은 둘째치고 주연도 아니고 조연으로 들어갈 급이 아니긴 했다. 그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생은 좀 양심 없잖아요. 나이를 생각하시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탈락이에요.”
엄청난 동안도 아니고 40을 훌쩍 넘은 나이에 고등학생은 너무 뻔뻔했다.
이안의 지적에 둘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벤 로버츠도 다 늙었구나. 나이 때문에 연기도 못 보여주고 탈락이라니.”
“우리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나올 수가 있니. 마음이 너무 아프네.”
키우긴 누가 키워.
조류독감에 걸렸나, 이상한 소리를 하는 둘에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는데요.”
“응원도 해주고 비하인드 영상도 찍혀줄 겸 왔지. 굳이 안 와도 됐을 거 같지만.”
벤의 시선은 재스퍼를 향했다.
고운 눈초리는 아니다. 빌보드 1위에 오르는 데 톡톡한 공을 세웠지만 계기가 좋지 않았으니까.
물론 저런 시선은 지겹게 받은 재스퍼는 신경도 안 썼지만.
“브라이언트 씨?”
“편하게 재스퍼라고 불러.”
“좋아요, 재스퍼. 나도 그냥 편하게 이안이라고 불러요.”
‘뭘 이름을 불러?’라며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그를 싫어하진 않았다.
배우로 생각한다고 인터뷰까지 해줬으니 말이다.
“진짜 출연할 생각으로 왔어요?”
“이 드라마가 틴 무비라며. 내가 출연하면 도움이 될걸.”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모습은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날 왜 봐?”
“아니에요.”
데미안에게 시선을 거둔 이안은 냉정하게 말했다.
“캐스팅하면 분명 이슈도 될 테고 재스퍼의 여성 팬을 생각하면 시청률에도 큰 도움이 되겠죠. 그래서 조슈아도 최종까지 바로 올렸겠지만 저는 캐스팅할 생각이 없어요.”
“왜?”
“캐릭터의 이미지랑 안 맞으니까요. 제이스는 전형적인 틴 무비의 남자 주인공이에요. 운동도 잘하고 남자 다운 캐릭터죠. 일단 목소리부터 안 맞잖아요. 아, 물론 목소리가 싫다는 뜻은 아니에요.”
엘라의 전 남친 캐릭터다. 신부 지망생인 도미닉하고 대비되는 캐릭터인데 하이톤 목소리는 안 어울린다는 뜻이지.
실망하는 그를 보며 이안은 살짝 고민했다.
배역을 따지 못해서 실망한 건 아닐 테고.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벌인 일을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했나.’
빌보드 어워드에서 던진 폭탄 발언이 충격이었는지 아니면 원래도 이쯤 정신을 차렸는지 몰라도 그랬다고 들었다.
사과를 위해 내민 손을 매정하게 거절하긴 그런 만큼 다른 제안을 건넸다.
“대신 OST를 만들어줄 수 있나요?”
“OST?”
“네, 전에 만들어줬던 사람이 지금 앨범 준비한다고 바쁘거든요. 어때요?”
레이첼은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지만 괜히 부담 줄 생각은 없었다.
거기에 재스퍼가 OST를 맡으면 이안은 홍보에 쏠쏠히 써먹을 수 있어 좋고, 그는 화해했다는 걸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재스퍼는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좋아. 내가 OST를 만들어줄게.”
“관련 계약은 나중에 준비해서 보내줄게요. 잘 부탁해요.”
가볍게 악수한 이안은 시계를 힐끔 보며 말했다.
“이야기는 끝났으니까 이만 가봐요. 밖에서 기다리는 배우들 평가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요. 거기 두 사람도요.”
“치사하긴. 가면 되잖아. 가면.”
“자, 같이 나가자.”
데미안의 손짓에 재스퍼는 둘을 따라가다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음, 오늘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넌 훌륭한 가수야. 다음엔 배우가 아니라 가수로 보고 싶네. 난 가본다.”
민망하다는 듯이 서둘러 나가는 모습을 보며 조슈아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사과한다고 과거의 실수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이 정도면 이안의 마음도 풀렸겠군.’
기대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아, 진짜 좋게 봤는데 실망이네. 가수라고?”
…어째서?!
조슈아는 요즘 10대 마음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
벤, 공작새, 가요계 악동.
삼두견의 등장으로 조금 지체되긴 했지만 남은 오디션은 순탄하게 이뤄졌다.
지금은 작은 역할을 전전하고 다니지만 미래에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는 이들도 몇몇이 보였고.
비중이 그나마 높은 배역들을 중심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시간은 훌쩍 지났고 대략 캐스팅할 인원이 추려졌다.
“역시 클라라는 도로시, 제이스는 다니엘이 맡는 게 낫겠네요.”
“동의해. 캐릭터 분석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준비가 잘 됐더군.”
그럴 만도 하다.
둘은 원작 소설도 읽어봤고 이미 위튜브 용 Holy Love 촬영도 했었으니까.
인맥 덕을 봤다기엔 여기 온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한 두 사람이니 선택에 거리낌은 없었다.
둘을 시작으로 토론을 통해 캐스팅할 인원을 고른 이안은 피곤함을 느꼈다.
캐스팅 업무가 낯설기도 했고 그만큼 집중한 탓이다.
아직 주인 없는 배역이 많으나 대부분 작은 역이고 이 정돈 캐스팅 디렉터가 뽑았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오디션 일정이 끝나도 조슈아는 쉴 틈이 없었다. 바로 배우들과 계약 조건을 조율해야 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이안이 여유롭다는 건 아니었다.
보름간 예정된 플레이어 촬영 전에 해야 제작자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대표적으로 작가방을 관리하는 일이다.
“어때. 일이 어렵진 않아?”
이안의 물음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생각보다 재밌어요. 다른 분들도 잘 대해주시고요.”
“그래? 다행이네.”
아무리 눈이 안 보여도 작품 원작자고 프로듀서가 틈날 때마다 챙기는 사람을 막 대할 정도로 생각 없는 각본가라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다.
옆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에이든도 있고.
“에이든, 아멜리아가 내는 의견은 잘 반영되고 있어요?”
“응. 물론 다 받아주는 건 아니지만 거절할 때는 충분히 이유를 설명해줬어.”
“기분 나쁜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우린 각본을 잘 모르잖아. 의견이 있으면 들어야지.”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소설과 대본은 다르다. 예를 들어 소설은 생각까지 묘사할 수 있으나 대본은 모든 걸 대화와 행동으로 풀어내야 하는 것처럼.
‘거기에 해상도 차이도 있지.’
소설에선 묘사도 없이 진행되는 장면이라도 드라마는 소품부터 시작해서 많은 걸 준비해야 하니까.
일단 각자 역할에 충실하다는 걸 확인한 이안은 어느 정도 완성된 대본을 집어 들었다.
“그럼 한 번 확인해볼게요.”
이안은 진지한 얼굴로 대본을 넘겼다.
에피소드마다 담당한 각본가도 다르고 촬영을 진행하는 감독도 다르다. 이걸 한 각본가가, 한 감독이 준비한 것처럼 조율하는 사람이 쇼러너인데 이 일을 맡을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4화와 안 맞네요. 감정이 너무 크게 바뀌었어요. 한 번 확인해줄래요?”
“아멜리아, 이 캐릭터는 불필요하지 않아? 이 정도 일은 기존에 있는 조력자 캐릭터들에게 나눠줘도 될 거 같은데.”
이안이 내놓는 의견을 들으며 각본가들은 살짝 놀란 눈을 했다.
‘생각보다 훨씬 잘 하네?’
‘괜히 걱정했네. 이 정도면 믿고 따라도 되겠는데.’
이안이 훌륭한 배우인 건 잘 알지만 쇼러너 역할을 잘 할 수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였다.
위튜브에 올린 Holy Love 각본 제작을 직접 했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불안감이 쉽게 가시지 않았는데 지시 사항만 보면 이미 일이 익숙한 쇼러너처럼 보였다.
한동안 학교가 끝나자마자 작가방에 와서 업무를 지시한 이안은 한시름 놨다.
적어도 플레이어 촬영 기간에 이쪽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였으니까.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보름 정도 이곳에 못 오는 거 아시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시면 돼요.”
“고생했습니다.”
각본가들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해산시킨 이안에게 아멜리아가 다가왔다.
“대단해요. 난 이렇게 못 할 거 같은데.”
invisible children 시즌7의 대본 준비를 거들면서 경험한 일이 도움이 된 건 맞지만 역시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아멜리아를 통해 본 환상이었다.
에이든을 잃고 각본가로 생활한 그녀의 경험은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없애줬다.
감탄하는 그녀에게 이안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다 네 덕분이야.”
“…네?”
“아니야. 너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나중에 이번 경험을 살려서 한번 도전해보면 어때?”
“제가요?”
“응. 네가 짜는 스토리와 캐릭터는 매력적이잖아. 나 말고도 다른 제작자들이 탐낼걸.”
좋은 시나리오를 구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는 제작자들은 발에 챌 정도로 많았다.
이안의 칭찬에 그녀는 볼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요.”
“기대하고 있을게.”
에이든이라는 든든한 지지대를 잃지 않은 그녀가 어떤 대본을 가져올지 기대가 됐다.
***
이안은 제작 현황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했다.
제작 3개월을 앞두고 주요 배역은 캐스팅이 완료됐고 촬영 장소도 섭외를 끝냈다.
의상, 세트 같은 미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스케줄 조정, 장비 대여, 식사 및 숙박 같이 물리적인 일을 담당하는 라인 프로듀서도 일정에 맞춰 준비를 끝내고 있었고.
이미 쇼러너 일에 이골이 난 조슈아가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 알 수 있었다.
‘나도 틈틈이 업무를 배우긴 해야지. 언제까지 공동 제작으로 남의 손을 빌릴 수도 없고 제작사까지 일단 만들긴 했으니까.’
물론 페이퍼 컴퍼니에 가까운 제작사긴 했지만 이상하게 볼 건 아니다.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고용한 인력 대부분이 프리랜서니 제작이 없을 때는 극소수의 인원으로 유지하는 소규모 제작사는 허다했다.
아무튼, 급한 일을 마무리한 이안은 플레이어 촬영을 앞두고 남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셨어요?”
-이안, 나야 못 지낼 게 뭐 있겠니. 촬영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단다.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벌써 이쪽 연예계란은 네 이야기로 뜨거워. 이 늙은이 귀에 들어올 정도로.
관심을 많이 보낸다니 고마운 일이다.
이번 한국 일정이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Holy Love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어쩐 일로 전화를 줬니?
“아, 이번에 한국에 들어간 김에 며칠 더 있을 예정이거든요. 그때 시간이 되나 여쭤보려고 전화했죠.”
-오, 나야 괜찮지. 준혁 감독도 괜찮을 게다. 요즘 새로 시나리오 쓴다고 골방에 박혀 있으니 한 번 꺼내줄 때가 됐지.
그랜드라인의 감독인 고준혁 감독이 새 작품을 준비한다는 말에 이안은 눈을 빛냈다.
‘다음 작품이면 그 작품 아닌가?’
고준혁이라는 이름이 세계에 크게 알린 작품이었다. 물론 그랜드라인의 성과부터 달라졌으니 똑같은 시나리오가 나오리란 보장은 없으나 확인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그럼 한국에서 뵐게요.”
-그래, 들어오면 연락하렴.
통화를 끝낸 이안은 설레는 걸 느꼈다.
플레이어 작품에 들어가는 것도, 고준혁 감독이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일지도 기대가 됐다.
곧 있을 촬영을 위해 대본을 읽으려던 이안은 핸드폰이 울리자 내려봤다.
“재스퍼?”
OST 계약으로 차단에서 풀려난 재스퍼의 문자였다.
-내 SNS를 봐봐. 네가 좋아한다고 들었어.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수천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재스퍼의 SNS에 들어가 봤다.
(공작새와 함께 찍은 사진)
이안이 좋아하는 공작새와 함께.
…아무리 생각해도 오디션장에서 셋을 함께 내보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환하게 웃은 데미안이 재스퍼를 챙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 해도 늦었다.
공작새가 기어코 포교에 성공했다.
이안은 조용히 등록된 재스퍼의 이름을 ‘공작새2’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