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4)
134. 플레이어(1)
가요계에 공작새가 전염된 건 인류의 비극이지만.
-이안, 재스퍼라는 친구.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래, 데미안이 행복하다면 됐다.
매일 공작새 타령을 한다고 구박만 받다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생겼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좋은 꿈이라도 계속 꿀 수 있게 이안은 신경을 껐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플레이어의 대본을 펼쳤다.
할리우드 영화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만큼 최대한 흥행이 보장되는 안전한 각본을 채택한다.
공장처럼 영화를 찍어내고 백인 주인공과 조력자인 흑인 같은 틀에 박힌 캐릭터가 나오는 이유였고.
그만큼 상업성을 따져가며 영화를 만든다는 뜻인데 이건 이 대본도 마찬가지였다.
‘배경은 근미래. 소재는 메타버스.’
가난한 청년이 우연히 얻은 낡은 접속기기로 재능을 깨닫고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이야기였다.
게임 장르는 대전 액션 게임인데 이건 꽤 영리한 선택이었다.
게임을 잘 모르는 관객도 1:1 대결 규칙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대전 게임 특성상 배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차가 쌩쌩 다니는 도시나 열차가 오가는 다리를 배경으로 하면 스릴 넘치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할리우드에서 침을 뚝뚝 흘리는 중국 시장을 겨냥해서 중국풍 배경을 사용해도 개연성 문제가 없었다.
‘대전에 사용할 캐릭터를 마음껏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엄청 좋지.’
화력을 쏟아내는 캐릭터로 폭발 장면처럼 화끈한 액션 장면을 만들 수도, 눈을 즐겁게 할 검술 액션을 선보일 수도 있다.
다양한 국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관심을 끄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이건 조금 노골적이긴 하지만.”
이안이 맡은 역인 유진과 주인공 케빈의 대결 장면을 봤다.
3판 2선승제로 이뤄지는 첫 번째 경기는 중국 무림인과 기사의 싸움이다. 결과는 전자를 고른 유진의 승리였고.
‘어떻습니까, 따거. 우리가 이렇게 중국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냄새가 풀풀 나는 전개였다.
뭐 굳이 나쁘게 볼 건 아니었다. 중국 시장을 노리려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는 법이다.
이것보다 더 노골적으로 구애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수두룩했고, 플레이어는 중국에서도 대박을 친 작품으로 기억했다.
틈틈이 분석한 대본을 내려놓은 이안은 세트장에 도착했다.
“다녀올게요.”
“고생하십쇼.”
마커스에게 인사를 건넨 이안은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인 세트장으로 들어갔다.
알아보는 스태프들과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촬영 장면을 봤다.
주인공 역할을 하는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흐아아압!”
“으아아악!”
초록 쫄쫄이를 입은 적이 무언가 던지는 시늉을 하자 주연 배우는 와이어에 붕 뜨며 비명을 질렀다.
초록색 크로마키 앞에서 펼쳐지는 열연!
‘…그래, 이게 할리우드고. 액션이지.’
저 초록색 앞에서도 진지하게 연기를 선보이는 것.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CG가 아니라 진짜 뭐든 터트리고 보는 폭발광 게빈이나 위험한 스턴트 액션을 직접 소화하며 팬들이 사고 없이 자연사하는 게 소원으로 여기게 하는 배우는 흔한 예는 아니었다.
오늘도 할리우드는 평화롭구나 싶은 생각으로 분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안에게 촬영 중이라 인사를 못 나눈 주연 배우, 홀든은 반가움을 가득 담아 다가왔다.
“노아, 아니. 이안! 잘 왔어! 요즘 드라마 엄청 잘 보고 있어. 13화, 엄청나더라! 역시 invisible children은 하수도 싸움이 근본이야. 그렇지?”
보통 작품을 거론하며 잘 보고 있다, 팬이다. 이런 말은 걸러 듣는 게 맞다. 하지만 홀든은 예외였다.
대본리딩 때 만나서 알게 된 건데.
‘골수 invisible children 팬이었지.’
게빈이 봤다면 ‘이렇게 잔인한 좀비 드라마를 좋아하다니, 랜든처럼 제정신이 아니군.’이라며 평가할 정도로 좋아했다.
“그렇긴 하죠.”
“시즌7까지 버티길 잘했어. 음… 근데 말이야.”
살짝 머뭇거린 홀든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래 이런 걸 물으면 안 되긴 하지만 이번 시즌 결말이 어떤 방향으로 될지 살짝 힌트만 주면 안 될까? 신경 쓰여서 촬영에 집중을 못 하겠더라고.”
“…그 정도예요?”
“당연하지! 팬들 사이에선 어떤 결말이 나올지 매일 시끌벅적 싸운다고.”
살짝 스태프에게 듣긴 했다. 노아가 죽는지 사는지로 엄청나게 싸운다고.
이번 시즌을 거치면서 노아의 팬들이 엄청 생긴 탓이었다.
‘그럼 마지막을 보고 꽤 충격받겠네.’
아이를 대신해 앞장서는 노아와 그걸 보며 과거 모습으로 돌아왔다며 좋아하는 벤자민의 행동은 ‘혹시 이렇게 화해하나?’라며 헛된 기대를 심어줄 만한 장면이다.
나중에 노아가 동료로 다시 합류할 거란 기대를 품은 상태에서 결국 좀비에게 물리는 장면을 본다?
‘…엄청 기뻐하겠네.’
너무 기뻐한 나머지 커뮤니티를 불태우지 않을까.
“…역시 알려주면 안 되지?”
홀든은 괜한 말을 꺼냈다며 미안했지만 촬영에 방해될 정도로 신경 쓰인다면 힌트 정도는 줄 수 있다.
“해피 엔딩이에요.”
“진짜?!”
“그럼요.”
확답을 받은 그는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빌런이 죽으면 해피엔딩이지.’
아님 말고.
“자, 촬영하러 갑시다.”
이안은 플레이어 카메라 앞에 섰다.
***
함성이 울리는 거대한 경기장.
치열했던 승부로 녹초가 된 몸으로 경기장 복도를 지나던 케빈의 멱살을 방금 싸운 상대가 움켜쥐었다.
“야! 솔직히 말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아까 같은 반응이 정상적으로 나올 리가 없잖아!”
“필립 선수! 진정하시죠!”
“이거야?! 이 기기로 수작 부린 거지? 엄청 구형 모델을 쓴다고 할 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고글 형태의 기기를 필립이 움켜쥐자 케빈은 이를 까득 물었다.
“건들지 마!”
“하, 이것 봐! 그렇게 거부하니 더 수상하네.”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필립은 기기를 부술 것처럼 힘을 줬다.
‘안 돼.’
자신을 이곳까지 이끌어준 파트너고 희망이었다. 그걸 부수려고 하다니 케빈은 주먹을 움켜쥐고 휘두르려고 했다.
싸늘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리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다.
“시답잖고. 구질구질하군.”
“유, 유진!”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케빈과 달리 오랫동안 정점에 있던 상대.
당황하는 필립에게 다가간 유진은 기기를 붙잡은 손을 비틀었다.
“아아악!”
“시답잖은 짓거리하지 말고 졌으면 꺼져. 네까짓 게 못한다고 남이 못한다는 멍청한 생각도 버리고.”
“고, 고맙습니다.”
케빈의 감사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유진은 복도를 지나쳐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유진! 유진!
경기장이 떠나갈 것 같은 환호성.
복도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에는 뜨거운 관중의 반응을 익숙하게 받는 유진의 모습이 나왔다.
대기실로 돌아온 케빈은 홀린 듯 진행되는 경기를 봤다.
-맵은 고속도로! 로드킬로 악명 높은 맵이죠!
-한국에선 고라니 맵이라고 불린다고 하죠.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차들까지 경계하며 싸워야 하는 난이도 높은 맵입니다!
케빈과 관중들은 이어지는 경기를 보며 감탄사와 경악만 흘려야 했다.
숨 막히는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미세한 차이로 피하며 쏟아내는 검은 흔들림이 없었다.
화려한 임팩트와 함께 상대는 변변찮은 반격조차 못 하고 밀려났고 높게 치켜든 칼이 상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PERFECT!
화면에 올라온 표시에 미친듯한 함성이 울렸다. 게임에서 신으로 분류되는 유진의 실력을 본 케빈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뭐야, 쫄았어?”
다리를 꼬고 앉은 에이전트, 레아의 물음에 케빈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결승까지 올라서 꼭 싸워볼 거야.”
“좋아! 그래야, 내 선수지! 자, 가자고. 유진을 상대하는 건 보통 준비로 안 된다?”
몸을 돌린 케빈의 뒤로 무심한 얼굴로 환호를 받는 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좋아요!”
합격 선언을 받은 이안은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게임처럼 빠른 속도감을 보여주는 액션을 찍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이 바뀐 게 아니었다면 진짜 버거웠겠네.’
와이어를 이용해 곡예 가까운 모습도 찍어야 하니 당연했다.
물론 고난이도 액션 장면도 척척 소화하는 이안의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연신 감탄만 흘려야 했다.
몸에 묶인 와이어를 푸는 이안에게 감독이 다가왔다.
“수고했어요! 어디 아프거나 힘든 부분은 없죠?”
“네, 다행히요.”
“좀만 더 고생해주세요. 주인공과 대결 장면만 찍으면 남은 촬영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대본을 확인했으니 잘 알고 있다.
“아, 그리고 한국에 입국하는 일정은 기억하고 있죠?”
“당연하죠.”
안 그래도 촬영 일정이 끝나고 잡은 약속에 고준혁 감독도 나오겠다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한국에 이틀 정도 더 머무는 탓에 갈 때는 촬영팀과 돌아올 때는 이안이 따로 와야 했다.
“경호원도 함께 가신다고 하시니 별문제 없겠지만 무슨 일이 생기시면 연락을 줘야 합니다.”
“알겠어요.”
문제라도 생기면 괜한 불똥이 영화에 튈 수 있으니 당연한 말이다.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이안은 여행 가방을 열었다.
아직 출발까지 며칠이 남긴 했는데.
-허니, 이번 촬영 때문에 한국에 간다며. 옷은 제대로 입어야 하는 거 알지?
-야, 넌 한국 갈 때. 짐을 미리 준비해 놔. 미뤄놓다가 대충 싸지 말고.
샬럿과 벤이 구박을 하니 다 준비해두는 게 속이 편했다.
옷장을 열자 잘 나열된 옷들이 보였다. 키가 크면서 샬럿과 광고 계약을 맺은 브랜드에서 새로 보낸 옷들이었다.
‘슬슬 키도 거의 다 큰 거 같긴 한데.’
지금 키가 183cm고 회귀 전보다 5cm 정도 더 커졌다.
과거보다 더 영양을 잘 섭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니엘을 돕고 바뀐 몸의 영향인지 몰라도 그렇게 됐다.
이안은 옷장에서 옷을 대충 휘적거렸다.
오가는 시간을 빼면 한국에서 일정은 5일 정도였다.
“세 벌은 많을 거 같고, 두 벌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
LA와 달리 3월의 한국은 꽤 쌀쌀하다고 하니 외투를 생각하면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샬럿과 벤이 들었으면 속 터진다면서 당장 뛰어왔을 말을 내뱉으며 이안은 옷 두 벌을 꺼냈다.
가방에 옷을 넣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 날씨가 추운 곳은 싫다니까. 벌써 가방이 꽤 찼네.”
두툼한 옷에 불평하고 여행을 갈 때 필수품을 챙기기 위해 움직였다.
책장 앞이었다.
‘역시 여행에는 대본이지.’
투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대본 뭉치가 바닥에 놓였다.
“이것들은 비행기 오갈 때 읽을 대본들이고. 얘네들은 밤에 호텔에서 읽어야겠네.”
한동안 AP 시험 준비, 드라마 촬영, Holy Love 제작 준비, 플레이어 촬영까지 정신없는 일정이 이어진 탓에 대본을 제대로 못 읽었다.
이번에 시간이 났을 때 잔뜩 읽어둘 생각이었다.
‘괜찮은 대본이 있으면 벨라에게 또 추천해줘야지.’
물론 벨라가 들었으면 ‘교수님, 또 새로운 과제라고요?!’라며 좌절했겠지만 원래 교수는 밑에 있는 대학원생의 비명 따윈 들어주지 않는 법이다.
꾹꾹 가방을 눌러 짐을 싼 이안은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보다 완벽하게 짐을 챙길 수는 없었다.
짐까지 다 챙긴 이안은 요 며칠 이어진 촬영을 떠올려봤다.
“고사. 역시 고사를 하긴 해야 해.”
invisible children에서 연신 경고하던 감각이 이번 플레이어 촬영에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촬영 중에 ‘저러다 문제 생기겠는데.’ 싶은 경우는 있었지만 그건 느낌보단 경험에 가까운 판단이었다.
이번 생에는 의문인 점이 많긴 하지만 특히 고사에 대한 건 궁금증이 컸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다칠 때도 섬광을 볼 수 있을까?’
이것 때문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리 섬광을 통해 알 수 있다면 위험한 액션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엄청난 이득이다.
스턴트 액션을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부상의 공포에 사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물론 이걸 확인하겠다고 촬영 중에 위험한 상황이 되길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궁금증으로만 품어 왔다.
잠시 고민하던 이안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국에는 아직도 샤먼 같은 게 있다고 했던가.”
고사도 어떻게 보면 그쪽에서 나온 의식이니 한국에 갔을 때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새로운 일정까지 추가하고 내일 촬영을 위해 일찍 자려던 이안은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자 고개를 돌렸다.
“…공작새2?”
재스퍼가 문자도 아니고 갑자기 전화하다니 이상하단 생각을 하며 받았다.
“재스퍼? 어쩐 일이에요?”
-지금 집에 있지? 잠시 나와 볼래. 줄 게 있는데.
“줄 거요? 뭔데요.”
-있어. 그런 게. 나올 수 있어?
뭐 나가는 게 어렵진 않다. 이미 화해까지 한 마당에 위험한 짓을 할 리도 없고.
벌써 OST를 다 만들었나 싶어 집 밖으로 나가자 입구에서 기다리는 재스퍼가 손에 든 봉투를 내밀었다.
“자, 오다가 주웠다.”
…어라?
싸구려 멘트와 선물. 데자뷰처럼 익숙한 풍경이었다.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이안은 봉투에 든 물건을 꺼냈다.
“한국까지 간다며 잠옷이라도 필요할 거 같아서 준비했지.”
이안은 말없이 잠옷을 봤다. 잠옷과 붙어 있는 후드에는 앙증맞은 공작새 얼굴이 보였다.
펼치니 잠옷에 붙은 공작새 꼬리가 펄럭거렸다.
공작새 동물 잠옷을 물끄러미 보던 이안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고 차 앞에 똥폼을 잡은 데미안이 보였다.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고? 엄지까지 치켜들어?’
이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공작새는 질병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