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5)
135. 플레이어(2)
이안과 벤에게 항상 공작새니, 이상한 짓 좀 그만하라고 구박을 듣는 데미안이지만, 놀랍게도 대외적 이미지는 이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일단 외모부터가 차가운 인상의 미남이다. 어지간한 푼수 짓은 외모가 가려준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공작새와 찍은 사진을 SNS에 시도 때도 없이 올려도 인간미 있다고 하겠는가.
‘거기에 인성 문제도 사라졌지.’
데미안을 만난 때가 오만하다며 안 좋은 소문이 빠르게 퍼지던 시기였다.
원래라면 그게 크게 터지며 바닥까지 한 번 떨어졌어야 했는데 스태프 이름 전원 외우기라는 극약처방으로 다행히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애석하게도 인간성을 얻은 대신 인간이 아니라 공작새가 되긴 했지만.’
인생사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아무튼, 재스퍼도 이런 이미지에 속은 상태였다.
이안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재스퍼를 봤다.
그가 데미안의 말을 따르고 있는 이유는 뻔했다. 일종의 롤모델일 테니까.
재스퍼만큼 심각하진 않았어도 안 좋은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멘토처럼 따를 만하다. 하지만 이젠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줄 때가 됐다.
“지금 데미안에게 속은 거예요.”
“속았다고?”
“제가 이런 동물 잠옷을 좋아하겠어요?”
아직 어린 에반이라면 모를까.
“…역시 그렇지?”
다행히도 재스퍼에겐 아직 상식이란 게 남아 있었다. 전염병이 골수까지 치닫진 않았다는 뜻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안은 잠옷을 구겨 넣은 종이 가방을 돌려주며 진지하게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요. 공작새 이야기는 꼭 흘려듣고요.”
이것보다 증상이 악화하면 게빈의 엑소시즘 세트로도 물리치지 못한다.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 재스퍼를 떠밀 듯 내보냈다.
“이안은 이런 거 싫어한다는데요?”
“부끄러워서 그렇지.”
…아니, 이 사기꾼이?
집에 들어가다 말고 이안이 휙 고개를 돌리자 데미안은 새끼 공작새를 챙기는 어미처럼 서둘러 재스퍼와 함께 도망쳤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는 ‘만약 ~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하이 콘셉트를 따라 제작된다.
이번에 크게 성공한 백악기 월드도 ‘멸종한 공룡이 되살아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된 영화였다. 하이 콘셉트는 직관적인 줄거리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가상현실 E스포츠를 모티브로 제작된 플레이어는 ‘알고 보니 게임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면?’에서 출발한 영화였다.
소재는 낯설지 몰라도 성장을 통해 정점에 도달한다는 흔한 이야기 전개를 따르고 있다.
이런 주제가 돋보기 위해선 목표가 되는 대상이 주인공이 이겼을 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줄 만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를 악역으로 만드는 거지.’
적을 비열하고 악하게 만들수록 관중들이 상대를 쓰러뜨리길 갈망하게 되니까.
플레이어가 흥미로운 점은 정점인 유진에 도달하기 전까지 그런 악역들이 자주 나온다. 불법 프로그램과 도핑을 사용하기도 하고 승부 조작을 제안하거나 수작을 부리기도 하니.
하지만 정작 정점인 유진은 오히려 구정물에 핀 연꽃처럼 고고한 느낌만 줬다.
제작진이 마지막에 쉬운 길로 가는 걸 포기한 만큼 이안이 연기하는 유진의 연기 난이도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악역이 아니라도 이겼을 때 관중이 희열을 느낄 만큼 엄청난 목표처럼 보여야 한다는 뜻이니까.
플레이어 제작진이 이안을 간절히 바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invisible children에서 노아 역할로 보여준 강렬한 카리스마를 이 작품에서 재현해주길 바랐으니까.
감독은 이안의 연기를 카메라에 담으며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화자찬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 오늘이 세트장에서 하는 마지막 촬영이지?”
“벌써 그렇게 됐네요.”
초록색 배경만 보고 산 탓인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듯했다.
오늘 액션 장면만 찍으면 한국으로 가서 하는 촬영이고 스케줄은 빠듯하지 않았다.
‘홍보 의미가 강한 일정이니까.’
플레이어 개봉이 예정된 시기엔 Holy Love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일 때다. 영화 홍보를 함께 할 수 없는 만큼 이번에 같이 소화한다고 보면 됐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할게.”
감독의 간단한 디렉팅을 받은 이안은 크로마키 앞에 섰다.
동여맨 장발 가발이 목덜미를 간지럽혔고 소매가 펄럭이는 무복은 몇 번 입다 보니 어느덧 익숙해졌다.
눈을 감고 초록색으로 범벅된 세상을 지워나갔다.
아멜리아의 경험을 통해 발전한 상상력은 이 빈자리를 빠르게 채워나갔다.
초라한 세트장은 어느덧 오래된 건물이 늘어선 중국거리가 되었고 손에 잡힌 모형칼은 날카로운 예기를 드러내는 진검처럼 느껴졌다.
이안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눈을 천천히 떴다.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시선에 주인공을 연기하는 홀든은 숨을 죽였다.
사람의 분위기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법이다. 날 두고 가라는 외침을 전쟁터에서 한다면 처절한 느낌이 나겠지만 길거리에서 하면 ‘뭐야, 이 또라이는?’이라는 느낌만 나잖는가.
초록색 크로마키 앞에서 하는 연기를 보는 건 저런 느낌을 준다.
아무리 진지한 연기도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는데 이안의 연기에는 배경을 신경 쓰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긴말은 필요 없겠지.”
무인의 칼과 기사의 검이 조명 아래 모습을 드러냈고 둘은 순식간에 맞부딪혔다.
화려하고 빠른 무인의 검은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왔다.
검을 움켜쥔 케빈은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하고 방어를 거듭했고 시합을 함께 준비한 레아의 말을 떠올렸다.
-네가 돌연변이라면 상대는 괴물이야. 그리고 무인을 사용하면 신이고.
두꺼운 갑옷으로 매섭게 들어오는 칼날을 빗겨냈다. 카강! 하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었다.
무아지경으로 빠지며 눈에 핏발이 서는 게 느껴졌다.
-그럼 어쩌라고.
-1라운드는 진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대신 넌 거기서 확인해야 해. 기사로도 유진의 매서운 공격에 반응할 수 있는지 말이야.
-만약 제대로 반응할 수 있다면?
-네가 이길 확률이 20%는 되겠지.
턱없이 낮은 승률.
냉정한 레아의 판단을 떠올리며 케빈은 유진의 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기 다발에 발을 굴렀다.
빗나간 검기에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가장 중요한 시야를 가려진 상황.
서로가 공평하게 불리해졌다고 생각한 케빈은 이것조차 노림수라는 걸 깨달았다.
갑옷을 입은 기사의 육중한 발걸음을 감지한 유진은 보법으로 소리 없이 접근해 칼을 찔러넣었다.
가까스로 반응했지만 깊게 베인 한쪽 팔은 덜렁거렸다.
훅하고 다가온 패배에 케빈은 레아와 나눈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그럼 내가 반격까지 성공한다면?
-…뭐? 꿈이 크긴 하지만. 그래, 만약 성공한다면 승률이 절반 정도는 되겠네.
검을 크게 휘둘러 흙먼지를 흩어낸 케빈은 처형장면처럼 목을 노리는 칼을 노려봤다.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밀려오던 칼이 느릿하게 보이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졌다. 구역질이 나는 걸 참으며 그는 칼을 빗겨내며 순간적으로 생긴 빈틈을 노렸다.
촤악-
목덜미를 얇게 검이 훑고 가자 유진이 눈을 크게 뜬 게 보였다.
주르륵 깎이는 체력 칸에 한 방 제대로 먹였다며 좋아하던 케빈은 곧 몸이 돌처럼 굳는 걸 느껴야 했다.
푸욱!
기뻐하며 방심한 아주 짧은 틈. 정점에 있는 유진에겐 케빈의 목을 꿰뚫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승패는 결정됐고 유진은 칼을 칼집에 집어넣으면서 아까 베인 목을 만졌다.
“재밌네.”
짧은 감상을 듣고 케빈이 눈을 뜨자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유진! 유진!
1라운드 승자를 부르는 환호성이었고 끼고 있던 접속기기를 빼내 자리에서 일어나자 활짝 웃고 있는 레아가 보였다.
엄지를 치켜든 그녀의 모습에 살짝 웃은 케빈은 반대편을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몸을 돌렸다.
이안은 촬영 종료를 알리는 외침에 길게 숨을 내뱉었다.
모형칼이라도 무게가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뻐근한 팔을 주무르고 있자니 손뼉 치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플레이어의 프로듀서였다.
“오늘 촬영은 감독이 꼭 봐야 한다고 해서 왔는데 오길 잘했습니다.”
“홀든이 합을 잘 맞춰준 덕분이죠.”
“아, 물론 홀든도 훌륭하죠. 안 그랬다면 주연으로 뽑았겠습니까?”
홀든을 칭찬하면서 프로듀서는 이안을 봤다.
프로듀서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 케빈이 유진을 이기는 마지막 라운드만큼 1라운드 장면도 중요했다.
중국 관객이 만족할 장면이어야 하니까.
‘근데 기대 이상이었어.’
CG가 없는 촬영 영상조차 볼만했는데 CG와 편집이 들어간 영상은 얼마나 괜찮을지 기대가 됐다.
칭찬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안의 눈치를 봐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 한국행 비행기에 타는 건 아시죠? 도착하면 간단한 언론 인터뷰도 있을 예정입니다.”
“네, 알고 있어요.”
“촬영 장소는 서울이고요.”
서울은 꽤 흥미로운 장소다.
조명이 들어온 간판이 걸린 골목은 걷다 보면 사이버펑크 느낌이 들기도 하고 고층의 빌딩 숲과 빨간 벽돌로 이뤄진 주택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면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정된 로케이션 장소도 이런 서울의 느낌을 살리는 장소였다.
“그럼 한국에서 일정도 잘 부탁합니다.”
프로듀서와 간단하게 인사한 이안은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한국으로 가기 전에 푹 쉴까 하고 돌아온 집에는 예상 외의 사람이 반겨줬다.
“허니, 잘 다녀왔어?”
“…로티?”
이안은 멈칫했다.
샬럿이 놀러 오는 건 그럴 수 있다. 할머니인 소피아와 어머니 클로이와도 꽤 친한 사이였으니까.
소파에 앉은 모습만 봐도 아까까지 계속 담소를 나눴다는 걸 알 수 있고.
하지만 짙은 미소를 짓는 모습이 여간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이리 와봐.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이요?”
“그래?”
진짜 몰라서 대답하자 샬럿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이안의 볼을 쫘악 잡아당겼다.
“누가 저딴식으로 짐을 싸래? 내가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역시였더라?!”
“…신경 써서 챙긴 짐인데요. 명작들로만 챙겼어요.”
저기서 뺄 게 뭐가 있냐는 당당한 대답에 샬럿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빨리 올라가서 짐을 다시 챙겨. 아니면 나랑 같이 백화점이라도 돌래?”
샬럿이랑 백화점 투어라고? 끔찍한 협박에 이안은 투덜거리며 방으로 올라갔다.
샬럿의 철저한 코디를 받아 옷을 챙겼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
한국에서 이안의 인기는 굉장했다.
냉정히 따지고 보면 해외로 입양 간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하지만 이안의 어린 시절부터 명절 예능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틈나면 한국 연예계 뉴스에 나올 정도로 여러 일을 벌이기도 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본 만큼 내적 친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유명한 스타면서 바른 생활과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이안의 팬이라고 말하면 부모님이 ‘그렇게 좋아하면 좀 닮아보던가!’라며 구박할지언정 ‘왜 저딴 애를 좋아하는지 모르겠구나.’라는 말은 안 들었다.
애초에 한국에서 이안의 별명 중 하나가 초통령이다. 그만큼 어릴 때부터 이안을 좋아한 10대들이 많다는 뜻이다.
“언제쯤 내리려나.”
“비행기는 도착했으니 슬슬 등장하겠지.”
기자들과 팬들이 공항에 잔뜩 모인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몇 년 만이지. 키도 엄청 컸던데.”
“가족들이 놀러 왔을 때랑 비교하면 이젠 완전히 어른처럼 보이더라.”
가족끼리 오랫동안 머물 정도로 한국의 애정을 보여줬던 이안이지만 방한은 꽤 오랜만이다.
그랜드 라인의 홍보를 위한 방한 예정도 칸 영화제에서 사람을 구하면서 취소됐으니 말이다.
팬들은 얼굴이나 볼 수 있게 까치발을 들었고 기자들은 질문 하나, 사진 한 장이라도 찍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나왔다!”
촬영팀과 이안이 나오자 셔터 소리와 함성이 울렸다.
이미 공항측 사람들에게 경고를 들었던 촬영팀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이안! 이쪽 좀 봐줘요!”
바리케이드 너머로 손을 뻗는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이안은 마커스에게 펜을 빌려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사인을 해줬다.
가벼운 팬미팅 시간이 지나고 이안은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 일정을 가졌다.
“오랜만에 한국에 오시니 어떠십니까?”
“당연히 좋죠. 이렇게 열성적으로 반겨주시니 안 좋을 수가 있나요.”
이렇게 시작된 질문은 의례적인 질문이 이어지는 와중 질문 기회를 받은 한 기자가 물어봤다.
“예전에 한국에 가족과 놀러 왔을 때 드라마 촬영을 하신 건 기억나십니까?”
“아, 기억 나죠.”
고사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참여했었다.
그때 촬영 때문에 고통 받는 주민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면서 개념 배우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혹시 다음에도 한국 작품에 참여하실 생각이 있나요?”
이 질문에 다른 기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하겠냐? 미국에서 받는 출연료가 얼마인데.’
‘뭐 의례적인 말을 하겠지.’
기자들이 별 기대 없이 대답을 기다렸을 때 이안이 대답했다.
“물론이죠. 좋은 작품이 있다면 참여할 생각이 있습니다.”
“…네?”
“아, 이건 빈말이 아닙니다. 캐스팅 제안을 실제로 보내셔도 좋거든요.”
이안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기자들은 환하게 웃었다.
특종이었다.
-이안 프라이스, ‘한국 작품에 참여할 의사 충분히 있어.’
이안의 폭탄 발언이 한국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생태계 파괴자가 한국에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