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7)
137. 퇴마
얼굴만 보고 비명 지르고, 울고, 도망치는 일은 이안에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365일 할로윈 분장 같은 얼굴을 달고 살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기절까지 한 적은 없었는데.’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기절하지 않는다. 이미 그건 게빈이 몸으로 증명한 사실이다.
온갖 경험을 통해 단련된 이안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많이 심약하신 분들인가 봅니다?”
예약을 받아줬던 직원은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냐는 듯이 답했다.
“밤에 산속 무덤가에서 혼자 굿까지 하고 오시는 분입니다. 심약할 리가 있습니까?”
이쪽 세계를 모르는 사람으로선 그런 일을 왜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게빈이 함께 있었다면 낙하산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람처럼 보지 않았을까?
아무튼, 진짜로 심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물어본 건 아니다. 멀쩡한 얼굴을 보고 한 명도 아니라 둘이 쓰러졌는데 다른 이유가 있겠지.
현실도피를 멈춘 이안은 남수에게 물었다.
“다행히 쓰러질 때 다친 거 같진 않지만, 구급대원이라도 부를까요.”
“어떻게 하는 게 낫다고 보시나?”
냉정히 말해 이것도 다 영업이다. 무당이 쌍으로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이 보인다면 안 좋은 소문이 돌 수도 있다.
사려 깊은 남수의 질문에 직원은 짧게 고민하곤 말했다.
“정신만 잃으신 듯하니 일단 안쪽에 모시겠습니다.”
“그럼 제가 도와줄게요.”
정신을 잃은 사람은 훨씬 무겁다. 혼자 옮기기 힘들 테니 원인 제공자로서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다.
쓰러진 사람을 들기 위해 상대를 잡았고.
덜덜덜덜
“으어어어억…”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떠는 모습에 재빨리 손을 놨다.
싸늘한 침묵이 흘렀고 직원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정중히 말했다.
“제발 나가주시겠습니까?”
달칵!
밖으로 내쫓겼고 뒤에선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허허허, 이게 무슨 일인지.”
기껏 수소문해서 안내한 당집에서 해괴한 꼴을 당하니 민망하기도 하고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뻘쭘하게 서 있던 이안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흐음, 내가 찾아보니까 이 근처에 당집이 많더구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것보단 다른 곳도 들려보는 게 낫지 않겠니.”
이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에게 퇴마 당한 두 무당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큰 기대하고 찾아간 건 아니었다. 근데 일이 이렇게 되니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
설마 다른 무당도 다 기절하겠는가.
이안과 남수는 다른 무당집을 찾았다.
“아니, 왜 갑자기 내보내고 난리야. 진짜 이상한 곳이네.”
구시렁거리는 손님과 굳게 닫힌 문이 보였고.
“당장 깃발도 내려. 빨리.”
예민한 귀에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와 함께 ‘나 당집이요.’라고 알리는 깃발이 휙하고 사라졌다.
시간만 더 줬으면 간판까지 내릴 기세였고 남수가 이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여기는 외국인 차별이 심한 거 같구나.”
검은 머리 외국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륜이 느껴지는 상냥함이 이상하게 아팠다.
***
회귀를 시작으로 특별한 일을 자주 경험했지만 지금 일은 꽤 신기했다.
“전부 안 받네.”
여러 무당집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블랙리스트 오른 것처럼 아무도 받지를 않았다.
무당을 격파한 게 소문이 났다고 하기엔 지금 전화 거는 번호를 알 리가 없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에라, 모르겠다.”
직접 만났다가 기절하는 꼴을 보는 것보단 낫긴 하다.
괜히 기자 귀에까지 들어가서 ‘이안 프라이스, 무당 퇴마해. 게빈 감독의 엑소시즘 효과일까?’ 이런 기사가 나오는 것보단 낫다.
포기하고 호텔에서 대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문이 열리고 남수가 들어왔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만나고 왔단다.”
모든 무당에게 입구컷을 당하는 상황.
아이러니하게 작은 힌트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은 쓰러뜨리고 온 무당이었고 이번엔 남수 혼자 다녀왔다.
‘만나기 쉽진 않았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원로 배우가 아니었다면 만나주지 않았을 태도였다.
자세를 고쳐 앉는 이안과 마주 앉았다.
“너무 기대하진 않는 게 좋단다. 속 시원하게 알려준 건 아니거든.”
“이야기라도 한 게 어디에요. 그래서 왜 그랬대요?”
이 물음에 남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안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급하게 다녀온 것치곤 나쁜 대답을 들은 건 아닌데…
“너무 크고 밝아서 무섭게 느껴졌다고 하더라.”
이건 뭔 해괴한 소리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태양 마차 알지? 그게 가까이 다가왔다면 무슨 느낌이겠니.”
“아…”
이 예시를 들면서도 덜덜 떠는 걸 봐선 뒷사정이 더 있는 거 같지만 상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괜한 말로 불안감을 심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남수는 이야기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들이랑 비슷한 끼가 있는 건 확실하다는 말도 했지.”
“제가요?”
“놀랄 거 없다. 무당과 연예인 팔자가 비슷하다는 말은 많거든. 연예인 생활을 하다가 무당이 되는 일도 더러 있고. 귀신을 본다는 사람도 많지.”
그러고 보니 무당의 신기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
섬광을 통해 미래를 보거나 딱 들어맞는 느낌 같은 거 말이다. 고사를 지낸 후 이런 효과가 더 강해진 걸 생각하면 신빙성이 있는 듯했다.
‘물론 회귀나 바뀐 육체 능력 같은 건 신기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그게 됐으면 스포츠 선수는 무당으로 뒤덮였을 거다.
“근데 저는 귀신 같은 걸 본 적이 없는데요.”
그런 걸 봤으면 게빈에게 열심히 썰이라도 풀어줬겠지.
남수는 살짝 어색한 얼굴로 이유를 알려줬다.
“그것도 눈앞에 있어야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무당이 모시는 신도 네가 들어가자마자 도망쳤다고 하던데.”
신도 퇴치한 남자.
그 이름은 이안 프라이스.
왜 무당들이 그렇게 기겁했는지 잘 알겠다.
***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지만 의문이 개운하게 풀린 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의문만 잔뜩 생겼으면 모를까.
마음 같아선 한국에 온 김에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고 싶었으나.
“다른 이야기를 들으려면 진짜 대단한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그런 사람은 찾는 것도 힘들단다.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어쩔 수 없네요.”
급한 일도 아니고 한국에서 더 체류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Holy Love 제작 일이 있으니 말이다.
플레이어 촬영 중에 간간이 전화로 진행 상황을 살폈고 각본가부터 시작해서 다들 경력 많은 이들을 고용했다지만.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계속 자리를 비우는 건 썩 좋은 행동이 아니지.’
조슈아와 달리 맡은 일이 쇼러너에 가까운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때 남수가 선뜻 손을 내밀었다.
“일단 내가 괜찮은 사람이 있는지 계속 수소문해보마. 이쪽은 나에게 맡기고 네 일에 집중하는 게 어떻겠니.”
“감사합니다.”
남수도 배우로 바쁜 사람이고 고작 영화 한 편 같이 촬영한 인연인데 이렇게 도와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중에 보답하기로 다짐한 이안은 짧은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오랜 비행도 끄떡없는 몸을 이끌고 이안을 바로 Holy Love 제작 진행 상황을 살폈다.
벌써 4월로 접어들었다. 제작을 시작하는 6월까진 진짜 눈 깜빡할 사이에 도달할 게 뻔했고 슬슬 조슈아도 기사를 뿌리기 시작했다.
-Holy Love, 주연 배우로 이안 프라이스, 오드리 데이 확정.
-클라라 역으로 도로시 브루스, 제이스 역으로 다니엘 브라운 확정. 위튜브 Holy Love의 멤버를 그대로 캐스팅!
-위튜브를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드라마, Holy Love는 어떤 작품일까?
배우의 캐스팅 정보를 우선으로 해서 홍보를 시작했고 캐스팅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에 속했다.
이안은 말할 것도 없고 라이징스타인 오드리와 아역으로 꾸준히 활동해온 도로시와 다니엘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배우였다.
거기에 이미 위튜브로 올라간 Holy Love에 출연한 경력까지 있으니 반발이 있을 리 없었다.
홍보까지 시작되자 슬슬 각본 작업도 마무리에 들어갔다.
드라마마다 각본 준비 과정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제작 몇 개월 전에 다 같이 작가방에 모여 큰 줄기의 아이디어와 캐릭터 관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각본가들은 각자 에피소드를 맡아 이때 정한 큰 주제에 맞춰 대본을 만든다.
대본리딩 전까지 모든 대본을 준비하고 리딩 후 연기를 확인하고 대본을 수정한 뒤 촬영에 들어가는 편이고.
리딩이 5월 중순에 잡혀 있으니 그렇게 여유롭진 않았다.
“남자 주인공인 도미닉은 신부를 꿈꾼다고 학생들에게 놀림은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제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소년이잖습니까.”
도미닉이 놀림 받는 이유는 신부들이 벌인 추악한 범죄들이 알려지면서 신부가 되려는 사람이 급감한 미국 상황이 Holy Love에도 반영됐기 때문이다.
주변이 자신의 꿈을 아무리 모욕하고 놀려도 제 목표를 위해 달리는 도미닉은 ‘허무맹랑한 꿈이다.’, ‘그 직업은 별로잖아.’ 같은 말로 지친 사람들을 대변할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나랑도 비슷하지.’
아멜리아가 알고 쓴 건 아닐 테지만 화상 입은 얼굴로 배우가 된다고 할 때 들은 반응은 도미닉과 비슷했다.
“그렇죠.”
“마지막에 엘라와 진짜 맺어지면서 신부의 꿈을 포기하게 되지만 도미닉이 전하는 응원 메시지는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금 다듬어주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각본가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수정할 수도 있지만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니다.
그를 존중하는 행위기도 하고 경력이 많은 사람이니 더 좋게 수정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나중에 영 시원찮으면 그때 개입해도 늦지 않았다.
‘대충 끝났나.’
자리를 비운 사이 진행된 각본을 살피며 지시를 내린 이안은 한숨을 돌렸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인사와 함께 떠나는 이안을 보며 각본가들은 질린 얼굴을 했다.
귀국한 바로 당일부터 오더니 순식간에 일을 해치우고 떠났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체력도 경이로울 정도였다.
사무실을 떠난 이안은 핸드폰을 꺼냈다.
-오늘 우리 집으로 올 수 있지? 다른 사람들도 모였어.
벤을 포함한 백수 모임이었다.
조금 피곤하긴 해도 에반을 볼 겸 갈 수 있다는 말을 보낸 이안은 벤의 집으로 향했다.
“오! 이안 왔니?”
자서전 후 백수 생활을 즐기는 감독이 한 명.
“이아아안!”
“…나는 저렇게 반겨주지도 않으면서. 진짜 누구 아들인지 모르겠네.”
활짝 웃으며 달려가는 에반을 보며 심통 난 표정을 짓는 철없는 아빠가 한 명.
“왔냐.”
조류면서 술을 꺼내고 있는 데미안까지. 비싼 몸값의 백수가 셋이나 모였다.
“읏차, 꽤 무거워졌네.”
에반을 안아 든 이안은 소파에 앉았다.
“레이는요?”
“5월에 앨범 공개잖아. 그것 때문에 엄청 바빠. 아일라도 도와준다며 나갔고.”
레이첼을 못 본 건 아쉽지만 앨범 준비가 우선인 건 맞았다.
홀로 무대에 서야 하는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긴 했으나 아일라가 도와준다면 아마 괜찮을 거다.
앉은 이안에게 게빈이 물었다.
“한국은 어땠니?”
“재밌었어요. 그랜드 라인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만났고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게빈을 만나면 이 이야기는 해주고 싶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샤먼을 만나고 왔거든요. 막 귀신도 보고 하는 사람이요.”
“…잠시만 기다리렴.”
심각하게 표정이 굳은 게빈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갈 꺼냈다. 함께 지낼 때 지겹게 봤던 십자가와 성수 같은 엑소시즘 세트였다.
성수로 뺨을 맞기 전에 이안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거기 사람이 제 근처론 귀신이 얼씬도 못 한다고 하던데요.”
“…정말?”
“네, 정말 놀라던데요.”
너무 놀라서 기절하기까지 했다.
갓슬레이어라는 이상한 타이틀까지 덤으로 얻기도 했고.
게빈은 이안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나랑 같이 살지 않겠니?”
이 간절한 프로포즈에 대답한 건 이안이 아니었다.
“안 돼! 살아도 나랑 살 거야!”
단호하게 말한 에반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게빈을 낑낑거리며 밀었다.
귀여운 행동에 그는 그저 껄껄 웃음만 터트렸다.
뾰로통한 표정을 짓던 에반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휙하고 사라졌다.
어딜 갔나 했더니 잠시 후 박스 하나를 들고 다가왔고 이안은 벤에게 물었다.
“저게 뭐예요?”
“나도 처음 보는 건데.”
처음 본다고?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상자를 툭 내려놓은 에반은 뚜껑을 열었고 왜 이렇게 불안감이 들었는지 깨달았다.
“짜잔! 공작새!”
작은 공작새 동물 잠옷을 꺼낸 에반이 활짝 웃자 셋의 시선이 한 명에 꽂혔다.
데미안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 순진한 애를 꼬셨지? 따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애석하게도 분노하기엔 일렀다.
“이건 이안 거!”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이다. 재스퍼에게 돌려줬던 그 잠옷이 확실했다.
오늘은 새고기인가 싶을 때 에반이 옷을 내밀었다.
“해죠!”
커플룩 제안에 이걸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할 때 벤이 손을 내밀었다.
“아빠랑 할까?”
함께 입을 수 있다면 기꺼이 공작새가 되겠다는 다짐은 좋았으나.
“싫어! 이안 거야!”
“…이안, 이 나쁜 놈.”
벤은 원망 어린 시선을 보냈고 에반은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올려봤다.
도저히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이안은 손을 뻗어 잠옷을 붙잡았다.
그날 이안은 첫 커플룩으로 공작새가 되었다.
***
다음 날 재스퍼에게 전화가 왔다.
-사진 잘 봤어. 그때 굳이 변명할 거 없이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야.
-데미안 씨랑 같이 좋은 선물 준비 많이 해서 보내줄 게. 뭐, 꽤 어울리더라.
칭찬과 함께 끊긴 전화에 이안은 두통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이놈의 공작새는 몇 수까지 내다봤는지 모르겠지만 재스퍼는 결국 완전히 타락하고 말았다.
이안은 깨달았다.
공작새는 신보다 강력했고 퇴마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