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llywood Child Actor to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9)
139. 시작점(2)
처음이란 단어 뒤에는 의심이 꼬리표처럼 따라오고 증명이란 과제가 떨어진다.
라이가 아닌 솔로로 나서는 게 결정됐을 때 레이첼도 마찬가지였다.
-라이가 아닌 레이첼 그레이스. 과연 이안이 없이도 성공할 수 있을까?
-다수 전문가, 작곡가로 실력은 증명했으나 싱어송라이터로는 의문.
팝스타 아일라 올슨의 딸, 라이의 엄청난 성공.
두 가지 기대감이 그녀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기존 라이 팬을 최대한 성공적으로 흡수하고 자신만의 팬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그렇게 여성 솔로 가수로 첫발을 내딛는 기념비적인 앨범이 발매됐고.
-레이첼 그레이스, 타이틀곡 첫주 빌보드 순위 62위 랭크!
-사랑스러운 곡, Good Luck.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며 호평을 받아.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홍보가 미흡한 첫주에 순조롭게 빌보드에 입성했고 호평 속에 다음 주엔 순위가 껑충 뛸 게 확실했다.
아일라 팬은 ‘역시 그 엄마에 그 딸이다.’ 말을 했고, 라이 팬은 활동 중단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잘됐네.’
이 결과에 걱정하던 이안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라디오 출연부터 바쁜 일정을 시작한 레이첼에게 전화로 간단하게 축하 인사를 전한 이안의 옆구리를 도로시가 쿡쿡 찔렀다.
“레이가 나오는 제리 페레스의 토크쇼는 봤지?”
“봤지.”
벤에게 납치당해서 같이 봤다. 어차피 볼 생각이긴 했지만.
“엄청 잘하더라.”
“그동안 노력을 많이 했으니까.”
노력이 언제나 보상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노력 끝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쳐주는 걸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길을 꿋꿋이 걸어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니까.
“레이도 잘 해냈으니 이젠 우리 차례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은 레이첼만이 아니다.
배우 겸 제작자로 활약하는 첫 작품인 Holy Love로 제작자 역량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오드리, 도로시, 다니엘도 마찬가지지.’
그저 인맥으로 캐스팅된 게 아니라 맡은 배역에 가장 맞는 배우였다는 걸 확인시켜줘야 했다.
이안은 옆에 있는 도로시부터 대본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오드리와 스노우레이크 촬영장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고사상을 차리는 다니엘을 훑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셋 다 좋은 배우다. 훌륭한 연기를 선보일 게 뻔한 만큼 남은 건 자신의 역량을 모두 동원해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안! 이렇게 준비하면 됐지?!”
상을 다 차리고 손을 붕붕 흔드는 다니엘에게 이안은 다가갔다.
본격적인 촬영 시작을 알리는 축문이 타올랐다.
***
방학을 맞이한 고등학교에서 스태프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트장에서 이뤄지는 학교 내부 촬영과 달리 외부 촬영은 실제 고등학교의 협조를 받아 진행됐다.
“엑스트라 배우들까지 전부 다 모였나? 숫자가 안 맞는데.”
“잠시 다른 곳에 간 거 같습니다. 한 번 확인해볼게요.”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어디론가 사라진 엑스트라를 찾으러 스태프가 움직이기도 했고.
“여기 누가 간식 세팅을 안 해놨어?”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낯선 촬영 현장에 얼타고 있던 초짜 스태프가 지적받기도 했다.
스태프 사이에 합이 잘 맞지 않는 모습은 아직 촬영이 초창기라는 걸 선명하게 보여줬다.
제작의 물리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라인 프로듀서는 촬영 현장을 전체적으로 훑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불안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나.”
촬영장이 조금 산만한 느낌이다.
어쩔 수 없긴 하다. 하이틴 드라마인 만큼 주연 배우들은 물론이고 엑스트라까지 전반적으로 나이가 어리다.
스태프들도 첫 촬영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공존하는 상태였고.
‘이럴 때 제작자가 분위기를 확 잡아주면 좋긴 한데.’
제작자인 이안이 와 있긴 하지만 어린 나이 탓인지 아니면 착한 성격이라 소문난 탓인지 무게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움을 느끼며 돌아다니던 그의 눈에 편하게 있는 한 스태프가 보였다.
촬영 준비를 서두르는 다른 스태프와 달리 여유롭게 대본을 팔랑일 수 있는 스태프는 한 종류였다.
“혹시 각본가입니까?”
“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려요.”
마침 잘 됐다.
예산 같은 문제로 조슈아와 소통을 더 많이 했던 그와 달리 각본가들은 이안 밑에서 일을 했다. 촬영과 대본 준비가 다르다고 하지만 참고할만한 정보는 얻을 수 있을 거다.
“프로듀서와 함께 일하셨죠? 거기선 어땠어요.”
“음, 어땠냐고요?”
경험한 걸 다 말하면 촬영이 시작하고도 남으니 간단하게 말했다.
“우리 각본가가 촬영에 계속 참여하는 건 대본을 수정할 일이 생기면 바로 하려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근데 이번 작품에는 우리가 나설 일이 없을 걸요.”
무슨 소리인가 싶을 때 각본가는 작게 웃었다.
“프로듀서가 적어도 우리만큼은 대본 수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봐요. 나이랑 경력을 속였나 깜짝 놀랄지도 모르니까요.”
확고한 믿음.
도대체 몇 개월간 어떤 걸 경험했는지 몰라도 저 말대로라면 나쁠 게 없었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고 그는 왜 각본가가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위튜브에 올라간 Holy Love는 일종의 긴 예고편과 같았고 초반은 이야기를 압축하느라 삭제된 이야기가 많이 포함됐다.
여주인공인 엘라의 몰락과 전형적인 하이틴 주인공 같은 클라라와 전 남친 제이스의 삼각관계가 1화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출연 분량이 거의 없는 이안은 배우보단 프로듀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나탈리 씨였죠? 엘라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는 클라라와 달리 다른 학생처럼 그녀의 추락이 즐거운 학생이에요. 조금 더 비웃는 느낌으로. 네, 락커에 기대주시고요.”
먼저 일반 배우가 아니라 제작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디렉팅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촬영 시간이 지체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들어가는 디렉팅에 초기에 의심하던 감독도 이안의 지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여기까진 원래 배우로 활동했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어라, 진즉에 정리해놨네?”
“방금 프로듀서가 왔다 갔어요.”
이안이 촬영장을 한 바퀴 돌면 라인 프로듀서가 지적할 일이 사라졌다.
그중에는 어떻게 이걸 알고 먼저 처리했지? 라는 의문이 들만한 일까지 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봐도 그냥 느낌이 그랬다고 두루뭉술한 대답만 들을 뿐이었고.
‘수상할 정도로 일을 잘하는 프로듀서.’라는 별명이 붙을 때쯤 이안도 촬영할 때가 됐다.
“음, 교복이라니 조금 낯선데.”
미국에서 교복은 사립 학교에서 주로 입긴 하지만 빈부격차로 인한 옷 문제로 공립에도 교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공립인 이안의 학교에도 교복은 있다. 패턴이나 로고도 없는 일상복에 가까운 교복이라서 그렇지.
지금처럼 재킷과 넥타이까지 있는 예쁜 교복과는 거리가 확실히 멀었다.
어색해하는 이안과 달리 드라마용 교복을 제작한 미술팀 스태프는 손뼉을 쳤다.
“역시 잘 어울려요!”
“…그래요?”
“의심하면 섭섭하죠. 남자 교복은 주연 배우가 가장 잘 어울릴 만한 거로 신경 썼는데 말이에요.”
이상하지 않다면 됐다.
이안이 나오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던 다니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같은 교복 맞지? 왜 네 거만 더 신경 쓴 거 같냐.”
실제로 그랬을 리는 없다. 다르게 해봤자 보는 시청자에게 위화감만 줄 테니까.
그만큼 잘 어울린다는 뜻이었다. 참 칭찬도 삐뚤어지게 한다고 생각하며 이안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비가 오나?”
“글쎄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날씨도 좋잖아.”
6월의 LA는 June gloom, 우울한 6월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회색 구름으로 흐린 날씨와 비가 오는 날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 하늘은 화창한 편이었고 일기예보도 강수 확률은 거의 없었다.
‘…올 거 같은데.’
고작 느낌이라 설명할 방법은 없으나 지금까지 촬영 중에 든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잠시 고민한 이안은 감독에게 다가갔다.
“촬영 순서를 조금 바꾸죠.”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촬영 순서를 바꾸면 배우 준비부터 일정이 어그러질 수 있다. 감독이 되묻는 게 당연했고 이안도 아무 생각 없이 바꾸자고 한 건 아니었다.
“저랑 오드리가 단둘이 나오는 이 장면만 뒤로 빼서 찍죠. 그럼 별로 문제는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아무 이유 없이 저런 판단을 내렸을 리 없다. 며칠간 이어진 촬영은 그런 신뢰를 줬다.
실권을 쥐고 있는 제작자라는 것도 컸고.
순서가 조금 바뀌긴 했으나 촬영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오늘 촬영은 학교 최고 스타에서 따돌림당하는 상황이 된 엘라가 과거의 인기를 되찾기 발버둥치는 과정이었다.
비싼 명품 신발을 신고 와도 예전처럼 봐주지 않았다. 공들여 머리를 하고 와도 짓궂은 장난에 머리가 순식간에 헝클어졌다.
괴롭히고 무시하는 학생들 앞에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홀로 남았을 때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져 가는지 오드리는 좋은 연기력으로 보여줬다.
모든 촬영이 대충 마무리되고 이안이 미룬 촬영 장면만이 남았다.
좌절하는 엘라에게 도미닉이 무심하게 위로를 건네는 장면이었고 이안은 마지막으로 대본을 확인하는 오드리에게 말했다.
“중간에 애드리브가 들어갈 수 있는데 괜찮겠죠?”
“애드리브? 뭔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주면 돼요. 조금 자연스러운 표정을 담고 싶거든요.”
이안은 장난스럽게 오드리의 대본을 뺏었다.
“나도 대본을 좋아하긴 하지만 여기에 너무 얽매이는 것도 안 좋고요.”
이 말에 오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이 그렇다는데 의심할 필요는 없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감독의 말과 함께 탁하는 슬레이트 소리가 울렸고 카메라가 돌아갔다.
“…망할, 나쁜 새끼들.”
학교 구석진 곳에서
축축하게 젖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던 엘라는 눈시울을 붉혔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처지는 고등학생 소녀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느라 화장이 번진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머리를 빗던 그녀는 발소리에 움찔했다.
또 누가 자길 괴롭히러 왔나? 우는 걸 보고 또 놀리겠지.
부정적인 감정이 솟구칠 때 머리에 무언가 툭 떨어지자 흠칫 놀랐던 그녀는 그게 수건이란 걸 깨달았다.
“잘 닦아라. 어릴 땐 감기도 잘 걸렸으면서.”
“…뭐야. 왜 왔어. 너도 놀리려고?”
퉁명스러운 대답에 도미닉은 벽에 등을 기댔고 얼굴에는 한심하다는 표정이 선명하게 자리했다.
“내가 너희랑 똑같냐.”
“잘 나셨어요.”
이제 남은 대사는 ‘쓰고 우리 집 우체통에 넣어놔.’였다.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둘이 여러모로 가까웠던 사이란 걸 보여주는 대사였다.
모두가 이 대사를 기다릴 때 이안의 입에서 나온 건 다른 대사였다.
“뭘 그렇게 힘들어해. 가끔 구름 없는 날에 비가 내려도 그건 소나기잖아.”
이게 이안이 말한 애드리브라는 걸 깨달은 오드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과연 자신이 엘라라면 대답할까? 그동안 분석해온 캐릭터 정보를 떠올린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음 대사를 뱉었다.
“헛소리 말고 그냥 가지? 무슨 시답지 않은 소리야.”
“하, 그렇게 말 안 해도 갈 거거든. 수건은 우리 집 우체통에 넣어놔.”
이안에게 연기를 배워온 오드리는 무심한 대사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받아친 건 맞는 듯한데 왜 이런 애드리브를 넣었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차가운 촉감을 느꼈다.
톡!
“어?”
얼굴을 때리는 물방울에 고개를 들자 맑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sun shower, 여우비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렸다.
놀란 오드리의 얼굴을 카메라로 잡은 감독은 ‘컷’을 외치며 서둘러 말했다.
“촬영 끝! 빨리 장비 치우죠! 아마 소나기일 테니 일단 뭐라도 덮어요.”
지시를 내리며 감독은 방금 찍은 영상을 떠올려봤다.
여우비는 전 세계 문화권에서 신비한 현상으로 여겨졌다. 명확한 과학적 이유가 있지만 겉으로 보기엔 특이한 일이었으니까.
아무도 예상 못 한 여우비가 더해지면서 영상미가 더해졌다. 비하인드로 이게 진짜 예상하지 못한 일인 게 알려진다면 더 큰 관심을 받을 거다.
‘비가 올 줄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감독만 품은 의문이 아니었고 장비에 모든 조치를 취한 스태프들이 물어봤으나.
이안은 대충 둘러댔다.
“그냥 우연히 느낌이 맞은 거예요. 무릎도 쑤시고요.”
…노인이냐.
제작자가 그렇다는데 어떡하겠는가. 스태프들은 이안의 대답을 받아들였고.
“프로듀서, 오늘 날씨는 어때요?”
“제발, 오늘 촬영 중에 비가 안 오게 해주세요.”
신부를 꿈꾸는 도미닉을 연기하는 이안은 민간신앙이 되었다.
아무래도 촬영장에 사탄이 들린 것 같았다.
***
Holy Love 촬영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7월.
레이첼의 타이틀이 최고 순위 빌보드 24위까지 오르며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은 날.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에미상 후보 발표!
-이안 프라이스, 노아 역할로 2번째 남우조연상 후보 선정. 과연 이번에는 수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이안이 배우로 전국적으로 알리게 된 시작점.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다시 한번 선정됐다.